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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그린 May 22. 2023

사실은 도망이었다.

캐나다를 그리워하다 

2012년 03월 20일 이른 새벽 나는 설렘에 가득 차 있었지만, 엄마는 눈물에 가득 차 있었다. 

엄마의 슬픈 마음을 볼 수 없었다.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어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가족의 걱정과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출국 전날까지 엄마와 실랑이를 했다.


"뭘 이런 것까지 챙겨가냐."

"가서 사려면 다 돈이야. 4월까지 춥다는데 전기장판을 어디 가서 사겠어. 가져가야지"

"급하게 필요한 것들만 먼저 가져가. 나머진 엄마가 보내줄게."

"이게 다 당장 필요한 것들이야."

 

전날까지 짐을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큰 이민 가방이 허리까지 올라왔다. 꾸역꾸역 집어넣고도 모자라 배낭가방에도 한가득 짊어졌다. 왼팔로는 기내용 트렁크 1개를 끌면서 오른손으로는 엄마와 함께 이민가방을 끌었다. 가방에 달린 바퀴 4개가 부서질 기세였다. 너무 무거워 여자 둘이 끌고 가기에도 힘에 부쳤다.  

공항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 벤치에 엄마와 나란히 앉았다. 새벽어둠이 가라앉은 정류장에는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짐 싸들고 집 떠나는 딸에게 해줄 말은 없었다. 가는 입장에서 남겨지는 이에게 잘 있어라는 말도 사치였다. 우리는 그렇게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 서로의 얼굴을 경계하며 김포공항으로 갔다. 

7시 50분 즈음 공항에 도착해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이별의 시간을 갖고 있을 때였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주었다. 

헤어짐이 아쉬운지 친구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친구를 안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엄마도 참아온 감정을 터트렸다. 순간 눈물바다가 되었다.

      

“1년 뒤에 온다니까 왜 그래 다들. 누가 보면 전쟁터 나가는 줄 알겠다.”     


그들에게 금방 돌아올 거라고 안심을 시키며 떠났지만 사실 나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 계획이었다. 

눈물을 흘기며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드는 엄마와 친구에겐 미안했지만, 출입국장을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그들이 내 시야에서 멀어졌을 때 나는 30년간 써내려 온 노트 한 장을 찢었다. 

새로운 노트, 깨끗한 종이에 나의 인생을 다시 써 내려갈 생각에 모든 것이 홀가분했다.  

30살 내 인생 전부를 버리고 나는 그렇게 떠났다. 많은 걸 지우고 싶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시작하는 용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나 자신을 대견스럽게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도망가는 진짜 나는 한국에 남겨두고 씩씩하게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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