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미드에서 봤던 모습들이 나의 삶의 일부가 된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필리핀계 캐네이디언 집에서 홈스테이를 시작 한지 한 달 만에 쫒겨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외국에서의 첫 터전이었지만 어이 없는 일로 집을 나오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종아리와 허벅지 두세 군데 생긴 붉은 반점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모기에 물린 생김새와는 달랐다.
갑자기 몸이 어디 아픈 건지 불안해졌다. 뭘 잘못 먹을 걸까? 윗옷을 들어 배 쪽을 살폈다. 배 주변에도 붉은 반점이 있었다.
바지를 벗어 엉덩이 쪽을 살펴보니 다행히 없었다. 팔뚝에도 있는 붉은 반점. 병에 걸린 건지 무서워졌다.
이 상황에서 병원을 갈 수도 없고 유일한 정보통은 유학생들의 커뮤니티였다. 인터넷에 접속해 카페에 들어갔다.
붉은 반점을 검색하니 배드버그라는 글들이 보였다. 배드버그라는 벌레에 물려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간지러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베드버그는 빈대과의 곤충으로 침구나 옷으로 옮겨 다닌다고 했다. 고온에서는 사멸하기 때문에 베드버그에 물리면 온 집안이 발칵 뒤집어진다는 글을 봤다.
이유인즉슨, 침구는 세탁을 해야 하고, 침대 매트리스는 햇볕에 소독해야 하며, 옷이며 속옷들은 싹 다 빨래를 다시 하고 건조기에 돌려야 하기에 대청소의 날이 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숨어있는 베드버그에 언제 다시 물릴지 모른다.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학생들은 호스트에게 이 사실을 즉각 알려 집안 전체에 버그가 퍼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유학원에서도 권고하고 있었다.
그날 밤 호스트에게 내 몸을 보여주며 베드버그가 집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호스트는 나를 보자마자 베드버그를 어디서 데리고 왔냐며 되려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괜찮냐는 걱정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싸늘한 목소리에 당황해서 안그래도 짧은 영어가 더 기어들어갔다. 집안을 다 뒤집어 청소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아는 주인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지만 불쾌했다. 머무는 집에 베드버그가 있었는지. 내가 밖에서 데려왔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모든 걸 내 탓으로 말하는 호스트에게 서운함이 몰려왔다. 밤이 늦었으니, 내일 다시 이야기 하자며 상황을 종료시켰다.
어딘가에 있을 수마리의 베드버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방에 있는 것 자체가 찝찝했다. 베드버그를 잡아보겠다고 눈에 불을켜고 찾아보느라 잠도 자지 않았다. 긴긴밤을 벌레와 싸운 후 이 집에서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호스트와의 신뢰가 깨진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이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안부를 묻고, 함께 홈스테이 하는 한국인 친구와도 친해지고, 호스트의 추천으로 현지인들이 가는 음식점과 카페를 다녀오고, 오고 가며 마주치는 눈빛에 영어로 따뜻함을 나눌 수 있다는 환상이 순식간에 흩어져버렸다. 헛헛해진 마음을 추슬렀다.
다음 날 아침, 호스트 가족이 모두 집을 나간 후에야 1층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어색한 사이가 되어 최대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옷가지를 건조기에 넣고 고온으로 돌려 버그를 사멸시킨 후 빨래를 정리하고 짐을 쌌다. 끝이 좋지 않은 시작에 의미를 두지 말자며 애써 위로했다.
그렇게 나의 로망이 끝나버렸다. 캐나다에서의 생활. 외국인과의 동거를 상상하며 비행기타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왔는데, 한달만에 부서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