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그린 Jun 16. 2023

캐나다의 펜트하우스에 초대받다.

유학원을 통해 캐나다로 오면서 ELS 어학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영어가 많이 약했기에 한국인 유학생 비율이 적은 학원으로 배정을 요청했었다. 적은 비율의 학원을 찾았지만, 캐나다로 오는 한국인들이 워낙 많다 보니 한 반에 30%는 한국인이라고 했다. 한국친구들을 안 사귈 생각은 아니었지만, 학원에서는 영어를 공부하는데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은 터라 일본, 멕시코 학생들과 의도적으로 어울려 다녔다. 그래도 동양인이라고 일본 친구들과는 짧은 단어에도 오고 가는 공감대가 생겨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항상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던 유코, 도도하지만 친절했던 나쯔미와 나는 절친이 되었다. 


어느 날, 학원 수업 쉬는 시간에 유코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선생 데브라(Deborah)가 우리를 조용히 따로 불러 냈다. 이번 주 토요일 시간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있다고 하자 그럼 돈을 벌고 싶냐고 이어 질문했다. 

학생에게 갑자기 돈을 벌고 싶냐고 묻다니. 뭔가 잘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머뭇거리던 찰나! 유코가 옆에서 웃으며 "YES! YES!"를 외친다. 데브라는 이어서 이야기했다.

 데브라의 형부의 아버지가 팔순 생일을 맞아서 홈파티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말의 요지는 홈파티에 헬퍼가 필요한데 가능하냐는 질문이었다. 나와 유코는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데브라에게 말했다."YES!" 

 우리는 그렇게 선택되었다. 반에서 영어를 좀 더 잘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왜 나와 유코에게 부탁했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었다. 

한 시간에 15$을 받고 6시간 정도 일하기로 했다. 10년 전에 시간당 15$이면 꽤나 큰 액수였다. 홈파티에 혼자도 모르고, 유코와 나도 서로 대화가 원활하진 않았지만 우린 그냥 계속 웃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음에 좋아서 서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홈파티 당일 데브라가 알려준 주소지로 찾아갔다. 경비원에게 팬트하우스에 파티 헬퍼로 왔다고 말했다. 그때 우리를 마중 나온 파티 주최자 Deborah의 형부를 만날 수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를 따라 진짜 좀 산다는 캐네디언 집으로 들어갔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와’를 얼마나 외쳤을까 눈이 마주친 우린 분명 같은 걸 느꼈다는 걸 직감한 듯 서로 웃었다. 

집으로 들어서니 이미 음식은 다 만들어져 있었고, 테이블에 세팅도 어느 정도 다 되어있었다.      

유코와 나는 손님이 오면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맥주를 가리키며 한마디만 하면 되었다.      


“Would you like something to drink?”    

 

중학교 교과서부터 단골로 나오는 문장이라 이 한 마디쯤은 자신 있었다. 주방에 미리 준비되어 있는 치즈와 스낵 그리고 과일을 옮겨 접시에 담는 일도 어려울 것이 없었다. 캐나다 일일 연속극에 출연하는 기분이었다. 이 시간 이 공간에 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올랐다. 15$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계속 믿기지 않는 현실에 비현실적으로 내가 있다 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파티가 시작되고 하나둘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상투적인 미소가 아닌 행복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쥬 라이크 썸띵 투 드링크? 대답은 레드와인 아니면 화이트와인 그뿐이었다. 유코와 나는 그 마저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와인을 잘못 내어주는 실수를 반복했다. 그 순간 각자에게 어이가 없어 웃었다. 덕분에 우리는 파티가 끝날 때 미소천사들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5시에 시작된 팔순 파티는 9시가 넘어서야 한 커플 분위기가 꺾였다. 긴 시간 서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웃고만 있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중년의 아주머니 한분이 말도 걸어주고 음식도 챙겨주셨다. 우리는 말만 핼러였지 파티에 초대받은 손님들처럼 대해주셨다.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우리는 함께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영광이란 건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80$과 와인 한 병씩 선물로 받고 팬트하우스에서 나왔다. 유코와 나는 다음날 데브라에게 감사의 표현을 했다. 덕분에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경험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의 연결고리가 어떠한 시공간에 나를 데려다주는 것은 아닐까이라고 생각했다. 

이전 04화 양딸이 되어줄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