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에 일을 해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자.
세수만 하고 로션 한번 문지르고 미리 꺼내둔 옷을 입는데 5분이면 되겠지.?
걸어서 가는데 15분, 25분 전에는 일어나야 하고 10분 전에 도착해야니까...
2시 15분에는 일어나야겠네. 한 번에 눈을 뜬다는 보장이 없으니, 2시부터 5분 간격으로 알람을 설정하자!
새벽 3시에 일을 해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자.
새벽 3시에 일을 해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자. '
수십 번도 더 되뇌었다.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팀홀튼 매장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분 단위로 머릿속에 그리며 잠들었다. 긴장을 한 탓인지 눈은 정확히 2시에 떠졌다. 잠은 잔 건지, 눈만 감고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화장실로 가서 간단히 세수와 양치만 하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거실로 나왔다. 호스트 어머님이 주방에서 계란 프라이를 부치고 계셨다.
'이 새벽에 어머님이 안 주무시고 주방에서 뭐 하시지..?'
한국에 두고 온 자녀들이 그리워 종종 불면증에 시달리던 어머님이 오늘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줄 았았다.
“정현 씨~ 이거 먹고 가요. 그래도 새벽에 일하러 가는데 빈속으로 가면 안돼요”
“아...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그리고 내가 같이 가줄게요. 밤에 무서운데 아가씨 혼자 새벽에 걸어가게 할 순 없지~
1주일 정도 적응 될 때까지만 매일 새벽에 같이 가줄게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홈스테이 호스트와 호스티스. 단순한 관계 그 이상이었다.
어머님이 준비해 준 계란프라이 한 접시 먹고 새벽 2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아주셨다. 적막한 어둠만 내려앉은 새벽. 지나가는 차 한 대도 없었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서 우리 둘은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하며 무서움을 떨쳐냈다. 15분 정도 걸었더니 매장 앞에 도착했다.
“데려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님 이따 아침에 봬요”
“이렇게 일하는 곳을 직접보고 나니 맘이 편하네요. 잘하고 파이팅!”
어머님은 정말 1주일간 매일 새벽 2시에 먼저 일어나셔서 혹여나 내가 못 일어날까 봐 깨워주시려고 거실에서 기다리셨다. 그리고 뭐라도 한입 먹여서 손을 잡고 새벽에 매장까지 바래다주셨다. 타지에서 한국인의 정을 느낀 정도가 아니라 벅찬 사랑을 받았다. 어느 정도 적응이 된 이후 나는 혼자 출근했다. 무서웠지만 함께 걸었던 길이였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나는 무섭지 않아’ 되네이며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달뒤, 매장으로 가는 길에서 두 번의 총기 사건과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역 뉴스에도 나고 큰 사건으로 동네가 시끌했었다. 그 거리를 반드시 지나가야만 매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장 다음 날 어떻게 출근을 해야 할지 무서웠다. 나의 두려움 때문에 깊은 밤 어머님을 깨울 수 없었다. 나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은 고스란히 어머님 혼자 이겨내야 하는 무서움임이었다. 지금까지 잘 지나왔던 길이었다. 길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 마음만 달라질 뿐이다. 마음을 기분을 처음처럼 되돌리면 무서울 게 없는 일이었다.
핏빛 자국 대신 길가에는 피해자를 애도하는 꽃다발과 초들로 채워졌다. 한 달 동안 초와 꽃다발을 보며 희생자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 길을 지나갔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거리를 새벽 2시 40분에 지나가면서 속으로 끊임없이 외쳤다.
‘이 거리에서 나는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