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원을 통해 캐나다로 오면서 ELS 어학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영어가 많이 약했기에 한국인 유학생 비율이 적은 학원으로 배정을 요청했었다. 적은 비율의 학원을 찾았지만, 캐나다로 오는 한국인들이 워낙 많다 보니 한 반에 30%는 한국인이라고 했다. 한국친구들을 안 사귈 생각은 아니었지만, 학원에서는 영어를 공부하는데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은 터라 일본, 멕시코 학생들과 의도적으로 어울려 다녔다. 그래도 동양인이라고 일본 친구들과는 짧은 단어에도 오고 가는 공감대가 생겨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항상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던 유코, 도도하지만 친절했던 나쯔미와 나는 절친이 되었다.
어느 날, 학원 수업 쉬는 시간에 유코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선생 데브라(Deborah)가 우리를 조용히 따로 불러 냈다. 이번 주 토요일 시간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있다고 하자 그럼 돈을 벌고 싶냐고 이어 질문했다.
학생에게 갑자기 돈을 벌고 싶냐고 묻다니. 뭔가 잘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머뭇거리던 찰나! 유코가 옆에서 웃으며 "YES! YES!"를 외친다. 데브라는 이어서 이야기했다.
데브라의 형부의 아버지가 팔순 생일을 맞아서 홈파티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말의 요지는 홈파티에 헬퍼가 필요한데 가능하냐는 질문이었다. 나와 유코는 서로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 데브라에게 말했다."YES!"
우리는 그렇게 선택되었다. 반에서 영어를 좀 더 잘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왜 나와 유코에게 부탁했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었다.
한 시간에 15$을 받고 6시간 정도 일하기로 했다. 10년 전에 시간당 15$이면 꽤나 큰 액수였다. 홈파티에 혼자도 모르고, 유코와 나도 서로 대화가 원활하진 않았지만 우린 그냥 계속 웃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음에 좋아서 서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홈파티 당일 데브라가 알려준 주소지로 찾아갔다. 경비원에게 팬트하우스에 파티 헬퍼로 왔다고 말했다. 그때 우리를 마중 나온 파티 주최자 Deborah의 형부를 만날 수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는 그를 따라 진짜 좀 산다는 캐네디언 집으로 들어갔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집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우와’를 얼마나 외쳤을까 눈이 마주친 우린 분명 같은 걸 느꼈다는 걸 직감한 듯 서로 웃었다.
집으로 들어서니 이미 음식은 다 만들어져 있었고, 테이블에 세팅도 어느 정도 다 되어있었다.
유코와 나는 손님이 오면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맥주를 가리키며 한마디만 하면 되었다.
“Would you like something to drink?”
중학교 교과서부터 단골로 나오는 문장이라 이 한 마디쯤은 자신 있었다. 주방에 미리 준비되어 있는 치즈와 스낵 그리고 과일을 옮겨 접시에 담는 일도 어려울 것이 없었다. 캐나다 일일 연속극에 출연하는 기분이었다. 이 시간 이 공간에 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올랐다. 15$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계속 믿기지 않는 현실에 비현실적으로 내가 있다 보니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파티가 시작되고 하나둘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상투적인 미소가 아닌 행복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쥬 라이크 썸띵 투 드링크? 대답은 레드와인 아니면 화이트와인 그뿐이었다. 유코와 나는 그 마저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와인을 잘못 내어주는 실수를 반복했다. 그 순간 각자에게 어이가 없어 웃었다. 덕분에 우리는 파티가 끝날 때 미소천사들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5시에 시작된 팔순 파티는 9시가 넘어서야 한 커플 분위기가 꺾였다. 긴 시간 서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웃고만 있는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중년의 아주머니 한분이 말도 걸어주고 음식도 챙겨주셨다. 우리는 말만 핼러였지 파티에 초대받은 손님들처럼 대해주셨다.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우리는 함께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영광이란 건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80$과 와인 한 병씩 선물로 받고 팬트하우스에서 나왔다. 유코와 나는 다음날 데브라에게 감사의 표현을 했다. 덕분에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경험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의 연결고리가 어떠한 시공간에 나를 데려다주는 것은 아닐까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