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히는 점집이 있대. 같이 갈래?”
“갑자기 점을 보라고?”
“요즘 네가 힘든 거나, 고민인 거 말해 봐. 언제 괜찮아지는지도 물어보고.”
“됐어. 뭘 그런 걸 봐.”
며칠 뒤에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점집 연락처를 물었다. 신기 있는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뭐든 해결될 것 같았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무당은 골목 어귀 허름한 건물의 으스스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강한 인상을 가진 무속인이 부채를 들고 손님을 맞이했던 것 같은데, 무당의 세계에도 트렌드가 있나 보다.
보내준 주소를 따라가 보니 생뚱 맞은 곳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오피스텔이 있었다. 편하게 입는 티셔츠와 트레이닝 반바지를 입은 무당이 문을 열어주었고,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내가 알던 화려한 신당의 모습과는 달리 간소하게 점술 도구와 향초, 꽃만 테이블 위에 있었다.
생년월일만 말했을 뿐, 그 외의 말은 하지 않았다. 무당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가족 세 명이 죽을 거야.”
“네?”
반문도 못 했다. 온갖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와 남편 그리고 아이를 말하는 것인지, 친정을 말하는 것인지, 시댁을 말하는 것인지 몰랐다. 무당은 나와 아이는 확정이고, 친정 식구 중 한 명일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을 들으러 온 게아닌데…. 심장이 요동치다 못해 튀어나오려 했다.
“친정 가족 중 어른이 먼저 가는 건 살 만큼 살았으니 갈 수도 있겠지만, 너랑 아이는 아직 가면 안 되지 않아?”
누군가의 죽음을 이토록 가볍게 말할 수 있다니.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타인의 운명을 생년월일 하나로 수학 문제 풀듯 알아내는 무당의 점술이 꽤 허무했다. 나와 아이가 죽는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무당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암 선고를 받았더라면 의사에게 검사 결과를 보여달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귀신을 섬기는 사람한테는 뭘 보여달라고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몸을 일으키자, 무당이 다급하게 말했다.
“친정 가족 중 한 명이 죽으면 다음에는 너와 아이를 데려가려고 할 거야. 액운을 떼어내야 해!”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데요?”
“굿을 하면 돼.”
굿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너무 궁금해서 가격을 물어봤다. 도대체 나와 아이의 목숨값이 얼마인지, 얼마면 우리가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신에게 기도 드리는 비용과 상 차리고 의식을 행하는 비용까지 다 합치면… 두 명이니까… 3000만 원 정도 들어.”
금액을 듣는 순간 흐르던 눈물이 다시 눈 안으로 역행했다. 남편과 상의하고 연락 드리겠다고 말한 뒤 복비를 지불하고 서둘러 나왔다.
“가여운 것... 차 조심하고.”
무당의 마지막 인사가 귓가에 자꾸 맴돌았지만, 태연한 척현관문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숨이 꺽꺽 넘어가도록 울부짖었다.
‘사기였네.’라고 하며 잊으면 될 문젠데, 계속 매달리고 있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동시에 아이의 얼굴은 자꾸 떠올랐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몸 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마음이 온전하지 못 한 엄마 같아 미안했다. 귀하게 만난 아이 앞에서 책임감이 없어 보여, 배와 엉덩이에 주사를 수백 번 찔러가며 임신했던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곧장 집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눈두덩이는 부어 있었고, 실핏줄은 터져 있었다. 이 상황을 남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머릿속은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