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곡이가 아닌 규담이에게
석곡아,
오늘은 너의 아홉 번째 생일이구나.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너를 이제는 이름으로 불러볼게.
규담아, 부쩍 자랐을 너의 얼굴을 상상해 본다.
거울 앞에서 앞니 빠진 얼굴로 웃고 있을 너를.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널 생각하면 아빠는 마음속에 자꾸 “조금만 더 보고 싶다”는 말이 맴돈다.
너의 하루가 어떤지, 친구는 생겼는지, 급식은 잘 나오는지.
그런 사소한 이야기를 들을 수만 있다면 참 좋을 텐데.
아빠는 오늘도 너의 하루가 별일 없이 흘러가기를 바란다.
크게 웃을 일이 하나라도 있기를, 혼자 너무 속상한 날이 없기를.
혹시 속상한 날이 있더라도 누군가 너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너는 이제 아홉 번째 봄을 건너는 중이야.
아홉 번이나 계절을 맞이하고, 햇살과 바람을 기억한 몸이 되었겠지.
그건 참 대단한 일이란다. 열심히 자라고 있다는 증거야.
이제 곧 너는 스스로 더 많은 것을 해내게 될 거야.
책도 더 유창하게 읽을 테고, 숙제도 조금은 혼자 할 수 있을 거야.
그건 책임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네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뜻이기도 해.
혹시 엄마와 마음이 부딪히는 날도 있었니?
속으로 “엄마는 나를 덜 사랑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지.
그럴 땐 말없이 엄마가 좋아하는 초록매실 큰 병 두 개를 조용히 들고 서 있어 보렴.
규담이가 얼마나 서 있었을까?
엄마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보다 무거운 너를 열 달이나 품고 있을 수는 없었을 거야.
엄마가 너를 생각해서 한 말일 테니 이번만큼은 네가 먼저 다가가 보렴.
규담아, 아빠는 늘 너를 믿어.
네가 아직 서툴고 작아도, 마음만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아빠는 알아.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가끔은 울어도 괜찮아.
모든 아이가 울며 자라듯,
울어도 되는 시간이 있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지금 너의 곁에 있는 사람이
네가 어떤 감정이든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어른이기를.
그리고 너도 언젠가 그런 어른이 되기를.
오늘 생일상엔 무슨 반찬이 올랐을까.
혹시 너는 “이거 아빠가 좋아하던 건데”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을까.
그랬다면 아빠는 하늘에서 두 손을 모아 너를 껴안았을 거야.
그리고 말했을 거야.
“그래, 그거 아빠가 정말 좋아해.
그렇지만 지금은 너를 훨씬 더 좋아해.”
아들, 생일 축하해.
오늘 너에게 따뜻한 바람이 스쳤기를.
그리고 다음 봄에도, 그다음 봄에도,
너는 꼭 다시 웃을 수 있기를.
언제나 너의 봄이 따뜻하기를.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