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에 대하여
규담아,
오늘은 너의 열한 번째 생일이구나.
아홉 살, 열 살을 지나
이제 열한 번째 봄을 맞이한 너는 어떤 모습일까.
아빠는 오늘, 너와 함께 봄 산길을 걷는 상상을 했어.
너는 새순이 돋은 나무를 보며 “아빠, 저건 무슨 나무야?” 하고 물을 테고,
아빠는 나름 공부를 한 사람이라며 그걸 대답해 주려 애쓰겠지.
그리고 대답을 모르면 “몰라도 돼, 그냥 예쁘다고 느끼면 돼” 하며 웃을 거야.
그런 평범한 순간이 아빠는 그리워.
열한 살은 참 묘한 나이지.
어느 날은 어른 같고, 어느 날은 아직 아기 같고.
감정도 복잡해지고,
이제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속상함도 많아질 거야.
규담아,
혹시 누군가 너의 마음을 오해하더라도
너는 너를 먼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충분히 괜찮은 아이고,
괜찮은 사람으로 자라고 있어.
예전엔 “왜 그런 거야?” 하고 물으면 대답하던 네가
요즘은 “그냥”이라는 말을 많이 하게 될 수도 있어.
아빠는 그 말속에 숨어 있는 수많은 감정을 안다고 말해주고 싶다.
무서움, 미안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그냥”이라고 해도.
너는 표현하지 않아도 여전히 소중한 아이야.
열한 살이 되면 책임감이 조금씩 너를 찾아갈 거야.
어떤 일은 너 혼자서 감당해야 할지도 몰라.
그럴 때마다 꼭 기억해 줘.
“책임진다”는 말은 무게를 짊어지는 게 아니라
너의 선택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야.
부디 그 책임 앞에서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한 걸음씩 걸어가 주길 바란다.
규담아,
요즘 좋아하는 게 뭐니?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영화를 보고,
어떤 날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빠는 네가 무엇을 좋아하든,
그걸 함께 좋아해 주고 싶어.
오늘 생일상에는 뭐가 나왔을까?
엄마가 만든 미역국은 여전하니?
아빠는 대학생이 될 때까지 산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홍합이나 생선이 들어간 미역국은 잘 못 먹는데,
엄마는 아빠에게 자주 바다향이 물씬 나는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했었어.
이제는 엄마의 요리실력이 많이 좋아졌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규담아,
혹시 길을 걷다가 하늘을 한 번 쳐다보게 된다면,
그건 아빠가 너를 보고 있어서 그럴지도 몰라.
한 번씩 손을 흔들어 주렴
열한 번째 봄이 시작됐구나,
네 이름처럼 굳세고 평온하게
이 계절을 잘 건너가길.
사랑해, 아들.
생일 축하해.
언제나처럼
봄에,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