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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비교체, 마음가짐 교체

오늘도 나는 달린다

by 간달프 아저씨

기록이 좋아지길 바라며, 아니면 조금이라도 편안한 호흡을 바라며 달리는 것에만 집중한 채 나는 달린다. 좋은 기록을 얻기 위해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훈련이란 결국 꾸준히 마일리지를 쌓아가는 것,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 취미로 여러 대회를 함께해 오면서 매번 느꼈던 부분이 있었다. 친구들 대비 훈련량이 현저히 부족했고, 그래서 대회 성적도 늘 아쉬웠다. 친구들은 수개월 전부터 매달 200킬로미터씩 준비해 왔다. 그러나 나는 벼락치기하듯 한두 달 전 급히 몸을 끌어올리며 대회를 치러왔다. ‘러너’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였지만 친구들은 오히려 그런 나를 보며 "대단하다"라고 칭찬해 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닳고 닳은 낡은 러닝화를 신고 완주한 것에도 박수를 보내주었다.


나는 오랜 기간 러닝화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좋은 러닝화 한 켤레가 기록 향상이나 수월한 러닝을 돕는다고 친구들은 말해줬지만,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보냈다. 그렇다고 마음 한편에 좋은 러닝화에 대한 동경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생일을 맞은 내게 아내가 갖고 싶은 걸 물었다. 고가의 러닝화를 마음에 두고 있던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용기 내어 “나이키 러닝화 하나 갖고 싶어”라고 했더니 아내는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서울의 여러 나이키 매장을 돌아다닌 끝에, 나는 내 발에 딱 맞는, 평생 구매한 것 중 가장 비싼 러닝화를 품에 안았다.


바로 며칠 뒤 성능 테스트 겸 동네에서 새 러닝화 신고 첫 10킬로미터를 뛰었고, 뜀과 동시에 난 깜짝 놀랐다. “이건 뭐지? 발이 이렇게 통통 튀고, 몸이 이렇게 가볍다고?”

장비에 무관심했던 나에게는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맞다, 러닝에서 러닝화의 중요성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아무리 심장과 폐가 열심히 일한다 해도 발을 받쳐주고 지탱해 주는 러닝화 없이는 수월한 달리기도, 좋은 기록도 어렵다.

그날 나는 개인 최고 기록(PB)을 세웠고, 몸은 한없이 가벼웠다.


이런 경험을 하며 떠오른 생각이 있다.

아주 긴 호흡 속 걷다 뛰다 지치다 포기하다를 반복해야 하는 마라톤처럼 우리는 삶에서 방향을 잃어 방황하거나 지치다 포기할 때가 있다. 우울하고 무기력해질 때,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의지할 대상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낡고 닳은 마음을 교체하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 걸음 내디뎌야 할까?

마치 새 러닝화로 교체하고 뛰듯, 삶의 고단함 속에서도 한 번쯤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운동이든, 다이어트든, 아니면 평범한 일상 속 도전이든 무언가를 극복하고 헤쳐나가야 할 때, 특별히 거창한 열정이 필요한 건 아니다.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낡은 신발을 벗고 새 신발을 신듯, 새로운 마음가짐 하나만 챙겨주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와 다른 색깔의 신발을 고르듯, 그렇게 일상의 방향을 조금 바꿔주면 된다. 그리고 평소처럼 한발 한 발 내딛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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