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_정토출판
나는 부처에게서 인생의 해답을 찾았다_쇼펜하우어
첫번째 인생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다. 두 번 읽었고, 읽을 때마다 광활한 우주의 매력에 빠졌었다. 빅뱅부터 시작되는 우주의 역사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미미했다. 하지만 우주 안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 기뻤다. 코스모스를 읽기 전과 후의 나의 자아는 달라졌다. 책을 읽은 후에 나는, 내가 중심이라는 생각을 깨트릴 수 있었다. 그런 생각과 마음은 삶의 부담감을 지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자유가 찾아 왔다. 나라는 집착을 또 한번 깨트리는 책을 두 번째로 찾았다. 바로 불교의 경전 금강경이다. 많은 금강경 해석서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법륜스님의 금강경 강의가 제일 쉽다는 독서회 지인 추천으로 모임에서 읽게 되었다. 금강경은 나의 두번째 인생책에 등극했다.
금강경의 본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금강은 다이아몬드, 반야는 지혜, 바라밀은 해탈한 후의 내세의 세계를 말한다. 다이아몬드가 세상 모든 물질을 다 깨뜨리듯 금강경의 지혜로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깨트린다는 뜻이다.
금강경에서 좋았던 첫번째는 스스로 경험하고 체험한 것을 진리로 삼으라는 말씀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카쟌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났다. 조르바는 화자 나에게 항상 말한다. 머릿속으로 계산하지 말고 시도해 보라고 말이다.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아서 계속 계산을 한다며,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라고 말했다. 책만 읽고 계산만 하다 끝나버렸던 나의 지난 날들이 생각났다. 그때 걱정과 두려움을 허상이라고 말하는 금강경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금강경은 한번에 완성된 경전이 아니다. 여러번 증강되고 편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반복되는 개념이 있다. 바로 '상'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다. 상은 사람들이 일으킨 생각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것을 객관적 실체라고 착각한다. 때로는 이런 상들이 모여, 생각의 감옥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상들이 집착으로 점철되어 아집과 고집으로 쌓이면, 삶에 대한 번민과 고뇌로 다가온다. 이 가르침 또한 나의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두번째로 좋았던 점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에서 선생님은 자신을 능동적 허무주의자라고 하셨다. 세상은 실제로는 아무런 목표도,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단순히 살아가는 것 그 자체, 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말씀하셨다. '상'은 삶의 목표나 의미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 나도 이런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꽤나 열심히 살았다. 이룬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다. 후회되는 것도 보람있는 것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생각의 감옥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지점이었다.
또한 이 상은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점이 된다.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취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라고 생각하면 그만인데, 평가하고 내 기준에 맞추려고 했다. 그들의 고민을 듣고, 조언했던 말들은 나의 경험과 생각의 상에 갖힌 기준점 이었다. 그들의 생각과 감정이 고려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인간의 감정이란 동일한 패턴이 아니니 말이다.
금강경을 읽고 나니 섶부른 조언은 더이상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말보다, 금강경을 한 번 읽어보라는 한마디면 되겠다 싶다. 결국 누구나 마음의 상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는 스스로 경험에 의해 깨우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인생은 수행이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은 분별이나 판단없이 늘 시선이 나를 향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금강경의 가르침이 희미해 질 수도 있다. 다시 고뇌와 번민이 찾아 올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두 권의 인생책을 다시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