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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마 Oct 13. 2023

보통사람이 특별해지는 단 하나의 이유

낯설고 어색하지만, 어쨌든 우리 동네/ 추석 특집 콘서트

추석 특집으로는 뭘 하려나 싶어 티비를 켰다.

티비에는 지오디 콘서트가 나오고 있었다.

나의 10대 시절을  함께한 지오디 오빠들이 이제 추석 특집콘서트에 나오는 때가 된 건가 반가우면서도 씁쓸했다.

25주년이란다. 그래. 25년이면 이제 티비에서 지오디 콘서트 볼 때가 되기도 했지.

나의 아이들이 볼 때 지오디 오빠들은 내가 나훈아, 설운도 오빠님들을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인 걸까.


어이구 우리 장첸오빠가 랩을 이렇게 잘하시다니. 이제는 장첸이란 이름이 더 먼저 떠오르는 계상 오빠.  어머나~ 태우오빠는 살이 더 쪘네. 아가들 이제 다 컸겠어요. 애기들이 몇 살이려나. 쭈니오빠는 그냥 여전히 쭈니오빠네. 오빠는 뭐 유튜브에서도 종종 보니까. 잘 지내는 거 알고 있고. 와.... 호영이 오빠는 어디 냉장고에 갇혀있다가 지금 나왔어요? 옛날 기억 속 그대로네요. 노화방지 비결강좌라도 열면 들으러 가고 싶을 지경이에요. 데니오빠는 잘 지냈어요? 통 소식을 잘 못 들은 것 같네요.


힘들다고 티를 팍팍 내는 오빠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 하니 나만 나이 먹은 건 아니구나 싶다.

우리는 함께 나이 먹어가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오빠들의 목소리는,  나를 한창 공부에는 관심 없고 그냥 친구들이랑 연예인 얘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운 시절로 소환해 갔다.  차라리 진득하게 책상에 붙어 앉아 공부를 했다면 더 마음이 편안했겠지만, 그때의 나는 공부는 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만 하는 시간이 훨씬 많고 길었다.

노래를 들으며 '이 길에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오빠들의 노래를 듣던 그 시절의 나는  20년 후에 난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를 상상하고 궁금해했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그때보다 20년 만큼 나이를 먹었고, 

나는 무사히 졸업을 하고 취업도 했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수많은 크고 작은 고난들과 걱정 근심이 함께 하긴 했었지만,

그만큼 크고 작은 행복들과 재미들도 함께 했다.

상상했던 것만큼 근사하게 살고 있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매일 일상을 이야기하며 밥을 먹고, 손잡고 산책을 하고, 과일을 나눠 먹으며 티비도 보며 지내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때 그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 너무 많이 걱정하지 말고 그냥 눈앞에 놓인 매 순간을 잘 누리며 최선을 다해 살아'라고 응원해주고 싶다. 

'20년 이 지나도 너는 여전히 평범한 보통사람이겠지만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야'

라고 인생을 스포해 주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는데 콘서트는 슬슬 마무리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성덕 중에 성덕이라는 아이유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보잘것없다 생각했던 나의 일상도 당신들의 노래를 통하면 사뭇 근사해졌습니다.

이제 나의 삶이 좋습니다. 덕분에 이제 보통 사람들의 보통날들이 참 좋습니다.

우리 모두 가 만든 그룹 g.o.d. g.o.d 가 어루만진 우리 모두의 마음들"


내레이션을 들으며 보통 사람이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사회에 대해 생각했다.

보통 청년 g.o.d.


"지오디가 보통 청년이라고? 에이~"


하는데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정말 화려하고 번쩍번쩍한 사람들만 연예인을 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는데,

지오디는 그에 비해 좀 수수하고 평범한 축에 속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던 것 같다.

사실 그때 당시의 나는 꽤 어렸고, 지오디가 이미 꽤 인기를 끌고 나서부터 좋아했어서 지오디가 평범한 보통 청년들이라는 모토로 만들어진 그룹이라는 거의 생각도 해 본 적 없지만.


어린 시절에는 모두가 다들 조금씩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것 같다.

나는 좀 특별하지 않을까. 난 커서 세상을 지키는 히어로가 되진 않을까.

내가 커서 멋진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루하루 살다 보면 나는 특별하지 않았고, 그저 평범했고, 수많은 점들 중에 하나라는 것이 깨달아지는 날이 온다.

하지만 그 평범한 인생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오히려 나를 안전하게 지켜 준다는 것을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어서 뼛속 깊이 알게 되었다.


평범한 나는 곁을 둘러보았다. 티비 화면에서 눈을 떼어 옆을 돌아보았다.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게임을 하고 있는 평범한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내가 쳐다보니,  


"왜? 내가 과자 다 먹었는데... 과자 더 가져다줘? "


하고 묻는다.

이 사람과 함께 하겠다고 선택을 했던, 그때 그 시절과는 사뭇 다르게 꽤 뱃살도 늘었고  흰머리도 하나둘 보이곤 한다.

이제는 서로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지도 않고 긴장하지도 않는다. 

늘씬했던 나의 남자 친구는 나와 데이트할 때 긴장해서 밥을 많이 먹지도 못하고 집에 가서 허겁지겁 밥을 더 먹곤 했었다고 했다.

그랬던 그는 지금은 내가 먹던 맥주와 과자를 몽땅 와구와구 먹어버리기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의 인생에 가장 특별한 존재가 되어주기로 결정한,  

평범한 사람과 하루만큼 더 나이 먹어 가고 있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의 곁을 지켜주어 우리가 되는 순간, 

서로의 인생에 특별한 존재가 되는구나.  

우린 모두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특별한 존재가 되어 살아간다.


문득 내가 마주치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낯설고 어색한 동네에 처음 이사 왔을땐 크레파스로로 칠해진 듯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냈다.

어쩌다 한 명씩 알고 관계를 맺으면 

그때부터는 그 사람과 그 가게에는 곱고 밝은 색이 입혀진 듯 눈에 잘 들어왔다.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곳은 정이 붙고 머지않아 애정하는 곳이 되어 주었다.

낯설고 어색한 동네가 어쨌든 우리 동네가 되어가는건,  순전히 이곳에서 만난 아는 얼굴 덕이다. 

그렇게 그들에게도 행인 1이었던 나는 아는 애기 엄마가 되었고, 단골 손님이 되었고, 지인이 되어가고 있다.


예전에 정겨운 80년대 배경으로 그려진 드라마를 좋아 했었다.

한 번도 그렇게 끈끈한 이웃을 가져본 적 없는 나는 그들을 동경했고 부러워했다.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 서로의 끈끈한 이웃이 되어 삶을 함께 하는 것이 그렇게 행복하고 따뜻해 보였다.

내 삶이 더 추울수록 더 많이 부러웠다.


이사, 취업, 이직, 기타 등등의 이유로 낯설고 어색한 곳에 뚝 떨어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어쨌든 우리 동네가 된 거 잘 지내보는 건 어때요?

그곳에서 당신이 행복하고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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