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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마 Oct 13. 2023

요즘 곱슬머리는 좀 어때요?

낯설고 어색하지만, 어쨌든 우리 동네/ 미용실

지긋지긋한 곱슬머리다.

모습을 인정하고 사랑하려고 하지만 꽤 많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일단 머리카락이다.

심한 곱슬이어서 매직으로 펴지 않으면 곱슬곱슬 자기 멋대로 휘는 건 기본이고 부스스하게 머리가 떠올라 머리 위에 검은 구름이 생기는 것처럼 된다.

도저히 매직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머리카락이다.

중고등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1년에 한두 번씩은 매직을 해 쭉쭉 펴러  미용실에 다녀야만 했다.  

20대 초반까지는 쫙쫙 곧게 펴는 생머리를 주로 했었고, 20대 중반부터는 위쪽은 펴고 아래쪽은 파마를 하는 일명 볼륨매직 세팅파마를 주로 해왔다.

정말 꾸준히 꼬박꼬박 열을 가했기 때문에 염색을 할 수도 없었고, 그냥 매번 비슷비슷하게 한다.


예전에는 나름 잘한다는 미용실을 검색하고 후기도 꼼꼼히 읽어보고 고심 끝에 골라서 미용실을 다녀보았지만 수십 번의 매직+세팅파마 끝에 그냥 적당한 곳 아무 데나 다니게 되었다.

헤어디자이너의 실력도 중요하겠지만, 나의 머릿결 관리와 날씨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열심히 매직으로 쫙쫙 펴 주어도 집에 가는 길에 내가 땀을 줄줄 흘리고 가면 반년은 그냥 좀 곱실거리는 머리로 살게 된다.

어쨌든, 새로운 동네에 이사오니 당연히 아는 미용실은 없었고, 집에서 가까우면서 가격이 적당하면서도 규모도 적당한 곳을 다녔다.

신혼 때는 마트 안에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동안 남편은 영화를 보거나 장을 보기도 했고, 같이 머리를 하고 핸드폰 게임을 하며 기다려 주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아이가 낮잠 자는 틈에 집 앞에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다.


아이가 한동안 많이 아파서 몇 달을 집 밖을 거의 나가지 못하고 아이와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긴 남편이 본인이 퇴근하면 몇 시간이라도 좋으니 외출 좀 하고 오는 게 어떻냐고 등을 떠밀어 주었다.

하지만 특별히 할 것도 갈 곳도 없었다.  거울을 보니 마침 곱슬곱슬기가 머리에 올라오기 시작해서 네이버에 미용실을 검색했다.

대충 가깝고 가격도 적당한 곳.... 을 눈으로 스캔하는데


"시간 없으신 분들도 예쁘게 머리 하셔야죠. 퇴근하고 오셔도 돼요. 애기 엄마들 육퇴하고 오세요^^"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프랜차이즈 미용실이었고 가격도 그냥저냥 합리적이었다. 

전화를 걸어 정말로 저녁에 가도 매직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다정하고 나긋나긋한 말투의 여자는 "그럼요~ 환영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곱슬이 좀 심한 편이라 오래 걸리는 편이라는 것을 말하며 한번 더 물었고, 

그녀는 "그럼요~ 기다릴게요. 오늘 오세요."라고 했다.

그곳에 발을 들인 건 애기 엄마도 환영한다는 제스처 한 줄이었다.


미용실 문을 열며 안을 빼꼼 둘러보았다. 

안에는 열 명도 넘는 손님들로 가득해 있었고 

헤어디자이너들은 저마다 열중해서 자신의 손님들의 머리를 매만지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쓸고 있던 아주 앳된 여자 직원이 카운터로 나오더니 예약을 했는지 물었다.

조금 전에 전화 통화로 이야기 하고 왔다고 말하자 그녀는 가장 안쪽에서 머리를 하고 있던 연한 갈색의 머리를 한 디자이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갈색 머리 디자이너는 마치 내가 잘 아는 친구라도 되는 마냥 환하게 웃으며 눈인사를 했고, 이것만 다 하고 금방 가겠다는 듯한 손 모양을 했다.

가운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미용실을 한번 쭉 둘러보았다. 

역에 가까웠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한 꽤 잘 되는 미용실이었다.

몇몇의 남자는 머리를 자르고 있었고, 몇몇은 하얀 크림 같은걸 머리에 바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 손님은 많지 않았다. 남자를 위주로 하는 곳인가 싶은 생각이 잠시 들 무렵,  갈색 머리 디자이너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자리를 안내하며, 자신은 이곳의 원장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나의 머리를 살펴보더니 정말로 곱슬은 심한 편이고 꾸준히 매직을 해온 것 치고는 머릿결이 많이 상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위에는 볼륨매직으로 펴주시고 밑에는 자연스러운 컬로 말아주시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는 혹시 매번 비슷한 스타일만 했냐고 물으며 흘깃 내 눈을 쳐다보았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곱슬이 너무 심해서 다른 스타일은 감당할 엄두가 잘 나지 않아서 매번 이렇게 한다고 했다.  


그녀는 장난기가 어린 표정으로 빙긋 웃으며


"곱슬머리가 아니라고 치고, 어떤 스타일해보고 싶어요?"


특별히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답했다.


" 매직으로 쫙쫙 펴진 머리 말고, 자연스럽고 여성스러운 웨이브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


그녀는 나의 모질과 곱슬이 심한 머리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서 윗부분의 매직을 피할 수 없지만 아랫부분의 컷과 C, S컬로 최대한 살랑살랑한 느낌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매직과 파마를 하는 동안 썰물처럼 다른 손님들은 각자의 개성 넘치는 머리들을 매만지며 미용실을 나섰고, 이내 스텝 몇몇과 우리만 남았다.

다른 스텝들은 같이 고데기를 펴주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쓸어주기도 했다.

내 머리를 만지고 있던 갈색머리 원장님은 스텝들이 도와줄 때마다 꼬박꼬박 "감사해요~"라고 인사를 건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주 바쁜 와중에도 물건을 가지고 온 거래처 사람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나가는 문까지 열어주며 배웅을 해주었다.

내 머리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몇몇의 스텝들은 옷을 갈아입고 와서는 퇴근 인사를 했고, 정말 원장님과 나, 스텝 한 명, 그리고 원장님을 데리러 온 원장님의 남편만 남았다.

이쯤 되니 내 머리가 너무 오래 걸려 또 미안해졌다.


"곱슬이 심해서 오래 걸리죠. 이렇게 늦게 퇴근해서 미안해서 어떡해요."


"아니에요~ 엄마들도 예쁘게 머리 해야죠. 남편이 퇴근해서 애기를 맡아 줘야 이렇게 나올 수 있는 상황인 거 다 알아요. 고객님 머리 예쁘게 나오시면 저도 진짜 보람찰 것 같아요. 마음에 들게 돼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머리가 완성되고 거울을 봤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 쪽은 볼륨매직이었고, 아래쪽은 적당한 컬들이 들어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좀 더 여성스러운 느낌이 드나? 싶기는 했지만 아주 자세히 봐야만 티가 나는 정도였다.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녀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런 그녀가 잘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용실 문을 나서는 나에게 그녀는 문을 반쯤 열고 몸을 내밀어 손을 흔들며 이야기했다.


"머리 고민 있으면 언제든 같이 고민해요~ 또 오세요~ 꼭 또 봐요~"


그녀는 자기 자신을 돈 받고 머리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의 머리카락에 대해 고민을 함께 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믿고 있었다.

나는 그 미용실 앞을 지날 때 종종 그녀가 생각나서 유리 안쪽을 슬쩍 슬쩍 구경했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단골이 되었다.

그녀는 나의 아는 헤어디자이너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2년 전 이야기이다.

나는 반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그녀를 찾아갔고, 그녀는 언제나 상냥하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느 날은 아주 머리가 잘 펴졌고, 어느 해에는 어느 한 부분이 잘 펴지지 않았다.

끙끙 앓다가 지나가는 길에 들러 머리를 보여주며 고민을 나눴고, 

그녀는 다시 머리를 다시 펴주겠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는 대충 묶고 다닐 테니 다음번에 깔끔하게 펴달라며 실랑이를 하다가 커트만 다시 해주는 정도로 타협을 보기로 했다.

의자에 앉자, 그녀는 몇 시까지 가야 하는지 물었다.


"컷만 해준다는 건 그냥 들어오라면 안 들어올까 봐 한말이었고, 여기 다시 펼게요"


하면서
 덜 펴진 머리를 다시 펴주었다.


우리는 머리를 하며 조금씩 서로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또래였지만,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을 낳은 사람이었고, 

그녀는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종종 "휘마님이 보기에 내가 아이 낳는 건 어떨 것 같아요? 추천? 비추천?"이라고 묻기도 했고,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에 편을 들어달라는 듯이 이야기하기도 했다.

미용실 운영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고, 가정사에 대한 고민도 늘어놓았다.  

나는 아이 둘을 건사하는 것이  버거운 애기 엄마였고, 

그녀는 직원 10명을 건사하는 게 버거운 원장님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삶이 더 고생하고 애쓰는 거라며 훈훈한 덕담들을 나누었고

집에 와서 나는 문득문득 그녀 생각이 날 만큼 많이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종종 머리를 감다 곱슬머리가 만져지면 그녀를 생각한다.

이 낯설고 어색한  우리 동네에 나의 곱슬머리를 같이 고민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유모차를 밀며 산책을 가고 있는데, 그녀가 날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미용실 밖으로 나왔다.


"잘 지내셨어요? 이제 곱슬머리 올라올 때 된 거 같은데, 곱슬머리는 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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