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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마 Oct 13. 2023

아플 때 생각나는 병원이 있나요?

낯설고 어색하지만, 어쨌든 우리 동네/ 한의원

허리 어딘가쯤에서 진동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지잉~ 울리는 기분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기적 거리면서 걷고 있었다.

업혀 있던 아이를 내려주고 허리를 쭉 펴보려고 했지만 잘 펴지지 않찌릿찌릿한 느낌과 함께 다리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나무늘보처럼 의자에 앉아 보니 나팔관에서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뱃속 안쪽이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어렴풋이 아이를 출산할 때 진통이 허리에 걸렸을 때의 느낌 같기도 했다.

허리인지 배인지 골반인지 척추인지 어디가 근원지인지 모르겠는 아픔을 애써 모른 척하고 팔 힘으로 아이를 끌어당겨 몸 가까이로 데려와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나는 한의원을 검색해 보았고, 동네 한의원을 가게 되었다.

왜 정형외과를 가지 않았냐 하면 둘째 아이를 낳고 반년쯤 되었을까.

그때도 한번 비슷한 상황을 겪었었고, 언제까지나 튼튼할 것만 같던 나의 통허리가 처음으로 아팠던 날이었다.

편안하게 앉지도 서지도 못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본 남편은 당장 아주 큰 정형외과로 데려다주었고, 나는 정형외과에서 심하게 무안을 당했었다.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갈비뼈가 부러진 적이 잇었는데 그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아무래도 너무 심하게 갈비뼈가 아파서 찾아 간 병원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수십 분 앉아계셨고, 나만 젊디 젊은 임산부였다.

내가 너무 갈비뼈가 아프다고 호소하자 아마 만삭이라 갈비뼈가 밀리는 느낌일 거라며 그냥 심리적인 요인이 클 거라고 했다. 

그 정도의 고통이 아니라 진짜 엄청 심하게 아프니 확인해 달라는 요청에 의사는 그럴 리 없다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의 강력한 요청에 결국 초음파로 뼈를 확인하고 오라는 오더가 떨어졌고, 

나는 갈비뼈 골절 상태였다.  

갈비뼈가 부러져 있는 임산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진통제를 먹고  절대 안정을 취하는 것뿐이었다.

수술을 해서 아이를 조산아로 꺼내고 싶지 않으면 그냥 그게 전부였다.

어쨌든 이러한 2번의 경험으로 나는 정말 뼈가 부러졌다는 확신이 들지 않으면 정형외과는 가지 않고 싶어졌다.  

정형외과는 교통사고 환자나 어르신들이 가는 곳인가 싶다.

나도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발을 들여놓기는 싫다.


한의원 중 집에서 가까우면서 후기가 괜찮은 곳을 추렸다.

불친절하다는 후기가 있는 곳은 일단 리스트에서 지웠다.

최종 후보 2개 중에 한 곳을 골랐는데,  햇살이 가득 비치는 통유리로 되어 있는 1층 한의원이었다.

대부분의 2층 이상에 위치해 있는 한의원들과 다르게 1층에 있는 것을 보고  

"한의원이 지나가다가 마음 내켜서 들어가는 곳은 아닌데 왜 월세 더 비싸게 1층에 내셨지?"

라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가게 된 한의원은 깨끗했다. 

진료 접수를 하고 소파에 앉아있는데 열려 있는 원장실 안이 그대로 보였다.

 한 어르신이 치료를 받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고 한의사라기보다는 물리치료사 같은 모습을 한 남자가 치료를 하고 있었다.  큰 덩치에 곰 같은 느낌의 한의사가 뭐라고 말하자 치료를 받으시던 어르신이 푸흐흐 웃으시는 게 보였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최대한 덜 아프게 일어나 천천히 원장실로 들어갔다.


며칠 전에 차가운 냉골 바닥에서 잠들었는데 등이 좀 뻐근 했었고,

요즘 둘째 아이를 업을 일이 좀 많았었다는 이야기를 최대한 덜 구구절절하게 읊었다.

운동회 가서 단체줄넘기를 좀 여러 번 뛰었는데 그때 무지외반증이 있는 발을 조금 다친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무슨 사고나 충격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업었던 아이를 내려 놓다가 이렇게 아파졌고,

어디가 아픈지도 잘 모르겠다고 설명하면서도 또 혼날까 봐 한의사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같은 한의사님은 정말 귀를 쫑긋 세우듯이 내쪽으로 귀를 살짝 기울여 가까이하며 내 이야기를 들으셨고,

깊은 공감의 눈동자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앞에 서서 허리를 숙여봐라 뒤로 넘겨봐라 똑바로 서봐라 하시면서 허리 여기저기를 톡톡 만지며 말씀 하셨다.


"천장 보고 못 주무시고, 옆으로 새우잠 주무시겠네요."


"네!! 맞아요. 어젯밤엔 진짜 그대로 새우처럼 잤어요."


"아이는 5살 미만이시고"


"~ 둘째 가요!"


"아이 안으실 때 왼팔이 더 편하시고."


"네!! 맞아요!!"


"허리가 아프다고 표현하시지만 사실은 배 안 쪽도 아프시고."


"오 맞아요! 저 나팔관이 아픈 느낌이었어요. "


내가 점집을 찾아왔던가 싶게 흑곰도사님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아 나의 생활을 보기라도 한 듯 짚어내셨다.

흑곰도사님께  "맞아요!!"를 외치며 묻지도 않은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맞아요~ 배도 아파서 어느 병원 가야하나 고민했어요~ 여기 찾아온 게 맞는 걸까요?"


그는 옅게 웃으시면서 육아의 고충에 깊은 공감의 아우라를 풍기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장요근 문제로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택배기사님들처럼 무거운걸 자주 들어야 하시는 분들, 그리고 택배보다 더 무겁고 버둥거리는 아이들을 수시로 들어 올리는 애기 엄마들이 많이 오셔요. 자 여기 화면 보시고, 이 근육이 문제 있는 건데, 이 근육이 이렇게 수축되면 이쪽이 아프고......"


그는 자신이 무릎팍 도사가 아니라 한의사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의학적 지식들을 나에게 전달해 주면서 조언을 하셨다.


"결론은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고 허리를 덜 써야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후 나는 부항도 뜨고 침도 맞고 마사지도 받았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슬리퍼 끌고 걷는 소리, 어르신들의 조곤조곤 이야기 소리, 커튼을 여닫는 소리들을 들으며 차라리 오분이라도 자볼까 마음먹었지만 불편한 허리 때문인지 불편한 자리 때문 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치료가 끝나고 계산을 하러 가는 길에 남편에게 치료가 끝났다는 카톡을 보냈는데,

다시 원장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상하게 생긴 의자에 누우라고 하고는 내 배꼽 옆 어딘가를 지긋이 꾹 누르셨다.

끄어어어억!이라는 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일단 눈이 똥그래지는 정도로 잘 참았다.

그는 내게 물었다.


"변이 안 좋으시죠?"


  들은 줄 알았다. 허리가 아파서 갔는데 나의 배변 상태를 물어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허리 근처에 변이라는 부위가 있었던가 머리를 굴리고 있자 좀 더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물으셨다.


"제가 보기엔 변이 좀 안 좋으실 것 같은데요."


"변.... 이요? 변비....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하더니, 자신이 추측하는 나의 변 상태를 이야기하셨다.

그는 마치, 오늘 아침 나의 화장실에서 같은 것을 본 것처럼 그대로를 묘사해 내셨다.

일단 그가 누르고 있는 배 부분 어느 근육이 억 소리 나게 아프기도 했고,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나의 은밀한 똥이 타인의 입에서 설명되고 있는 것도 혼란스러웠다.

내과가 아니라 추나요법을 받으면서 이런 대화가 오갈 줄은 몰랐었다.


그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들을 했고, 나는 이번에도 6가지 질문 중에 5가지에 "네 맞아요!"를 외쳤다.


나는 급하게 먹고,  한 끼에 몰아서 먹고,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고, 고기도 좋아하고,  종종 아기 재우고 저녁에 술 먹는 사람이었다. 대답을 하는  내 귀에도 변이 정상일리 없는 생활습관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을 마치신 곰도사님은 나를 스트레칭 기계에 널어 두고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다.

약을 처방해줄수도 있긴 하지만, 평생 약을 먹으면서 살 것도 아니니 생활습관을 고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했다.

그는 푸근한 미소로 이렇게 자주 삐끗하고 여기저기 아파서 만날 거 아니면 잘 고민해 보고 생활습관을 고치는 걸 추천하고 싶다는 말을 건넸다.


곰 도사님은 허리가 아파서 온 환자에게 잠자는 습관부터, 아이를 안아 올리는 올바른 방법과 장요근을 늘리는 스트레칭, 장건강을 지키는 생활습관 개선에 대해 길고 자세하게 논하셨다.


참을성이 바닥나 원장실 문 앞을 서성이는 나의 아이를 향해 그는

"에너지가 넘치네. 장난기도 넘쳐흐르고."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곰 도사님으로서 하신 말씀이신지, 애기바보 아빠로서 또래 아이를 향한 애정으로 한 말인지 궁금했다.


그가 육아맘에게 이렇게 진심을 꾹꾹 눌러 담은 진료와 조언들을 건네는 것을 보며, 

그는 참 좋은 남편이겠구나 싶었다.

그는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수시로 앉아 올리고, 종종 거리며 아이를 돌보고, 고생하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고, 그런 그녀는 소중히 아끼고 응원하고 있겠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왔다.

한결 편안해지긴 했지만 완전히 개운하지는 않았었다.

한 시간 남짓 곰 도사님께 치료를 받는 동안, 그는 나에게 무려 4번이나 스트레칭을 강조 하셨었다.

진료실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강조하셨었던 스트레칭을 시도해 보았다.

뭔가 찌릿하고 아플 것 같은 공포심에 도전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슬그머니 까먹은 척을 했다.

자기 전에 이제야 생각이 난 척 아주 소심하게 슬슬 도전해 보았다.

생각보다는 할 만했고, 몸을 다 풀고 긴 베개를 안고 옆으로 새우처럼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양치를 하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았고, 퍼뜩 깨달았다.

어제는 허리가 아팠었구나.



" 아플 때 생각나는 병원이 되겠습니다."  -흑곰 한의원-


그가 써 놓은 문구처럼 나는 허리가 아플 때마다 그 한의원이 생각날 것 같다.


낯설고 어색한 동네에 아플 때 생각나는 병원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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