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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마 Oct 13. 2023

우리 동네와 친구 맺는 가장 빠른 방법

낯설고 어색하지만, 어쨌든 우리 동네/ 산책길, 새벽 가게

낯설고 어색한 동네와 친해지는 데에는 동네 산책 만한 게 없다.

어떤 계기와 이유가 있어서 한 곳 씩 정을 붙이고 알아가는 상가들과는 다르게,

산책은 이 동네 전체와 조금씩 알아가고 친해지는 느낌이다.

동네가 낯설때는 산책길 마저도 낯설고 차가운 기운이 서린 느낌이지만,

꽤 많이 동네와 친해지고 난 후에는 같은 길도 포근하고 다정한 느낌이 든다.


우리 집 앞에는 작은 천이 흐르고 있다.

당연히 천변으로 산책로가 조성이 되어있고, 나의 가장 기본적인 산책로가 되어 주었다.

계절에 따라 천변 산책로는 옷을 바꿔 입었고, 분위기와 표정이 달라졌다.

이사 온 지 며칠 안된 봄날, 화사하고 사랑스러운 벚꽃들이 흐드러지게 흩날리며  반겨주었고 나는 그 산책길에서 행복했다.

뜨거운 여름날, 다리 밑에서  아이들은 돌멩이를 물가에 던지며 퐁당! 하는 물소리에 숨 넘어 갈듯이 까르르 웃었고,

나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바스락 소리가 들리던 가을날, 딸아이는 있지도 않은 도토리를 줍겠다며 그 산책길 나무 아래를 하나하나 뒤지고 돌아다녔다.

나는 도토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같이 낙엽 밑을 들춰보며 도토리가 없는 것을 아쉬워해 주었다.


아이들은 주로 놀이터에서 놀든 공놀이를 하든 모레놀이를 하든 놀기를 원하는 편이라 산책다운 산책 하고 싶으면 나 혼자 나오는 시간을 노려야 한다.

내가 선택한 산책 시간은 모두가 자고 있는 새벽이었다.

아이들 몰래 까치발을 들고 새벽 산책에 나서면 차갑고 시원한 공기가 나를 맞이해준다.


오롯이 나 혼자 맞이 하는 새벽의 첫 숨을 사랑한다.

5분만 더 잘까 하며 내 몸을 붙잡는 침대를 벗어나는 이유다.


우리 동네는 새벽 6시 전에는 신호등도 전부 꺼져있다.

신호등마저 잠들어 있는 새벽에 오히려 살아 있는 기분이 느껴진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천변까지 내려가면 이미 운동 나온 사람들이 꽤 많다.

아주 가끔 유모차를 밀고 나온 애기엄마도 있고, 자전거 뒤에 끌차 같은 걸 달아서 자고 있는 아이를 태우고 달리는 아빠도 있지만, 대체로 혼자 운동 나온 어르신들이 많다.  

사이좋은 부부들이나 다정한 모녀 사이들도 종종 보인다.

이들 틈에 끼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앞뒤로 힘차게 흔들면서 빠르게 걷게 된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한참 파워워킹을 하다 보면 점점 주위가 밝아오고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우리 동네가 아침잠에서 깨어난 게 느껴질 무렵이면 나는 집으로 향한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니 산책 나온 강아지들이 주인을 재촉하며 여기저기 코를 막고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닌다.

잠이 덜 견주들은 후드점퍼를 뒤집어쓴 슬리퍼 차림이다.

문득 나의 똥강아지들이 보고 싶어 져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은 이미 잠에서 깨 초롱이는 눈망울로 나를 맞이하고 남편은 시계를 한번 보더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하며  면도를 한다.


매일 천변을 걷지는 않는다. 그냥 무작정 발길 닿는데로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오디오 북을 들으면서  걸으면 도란도란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서 동네 구경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걷다보면 '이런 골목 구석에 이런 가게가 있었어?' 싶은 때가 많다.

배달의 민족에서 자주 보던 집이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뿅!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 같다. 새벽에는 지나는 행인도 거의 없고 상점들도 영업중이지 않은 곳들이 많아서, 궁금하면 가까이에 가서 오랫동안 메뉴판을 구경하거나 디피되어 있는 물건들을 구경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아서 좋다.

다음번에는 여기에서 사먹어봐야지 마음에 새기다 못해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한다.

어느날은 산책은 제쳐두고 큰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서 저 멀리 찬찬히 해가 떠오르는 것을 구경하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는 편의점과 24시 스터디 카페, 무인 점포 등을 제외하고 이른 새벽에 문을 연 상가들이 거의 없는 편인데, 동네를 크게 돌아보았지만 새벽 6시 전에 불이 켜지는 곳은  2곳이었다.

한 곳은 집  앞에 있는 빵집이었는데, 오픈시간이 10시임에도 불구하고 5시반부터 반죽을 하고 계셨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큰 남자 사장님은 정말 성실하고 꾸준히 언제나 새벽마다 반죽을 치대고 계셨고, 아주 신뢰가 가는 빵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빵집에서 빵을 사다 듣게 된건데, 여기는 2호점인데 여기에서 2곳의 빵을 모두 굽느라 새벽부터 나오신다고 했다.

그 빵집에 자주 들르지는 않아도 제빵을 취미로 하는 친구가 우리동네에 놀러왔을때 우리동네에서 가장 일찍 일어나서 빵을 굽는 집이라며 데려가게 되었다.


새벽 6시 전에 불이 켜지는 다른 가게는 김밥집이다.

우리 동네에 김밥집이 3~4군데 정도 되는데, 그중에 가장 멀리 있는 김밥집이다.

아이들의 아침메뉴가 딱히 떠오르는게 없던 날, 새벽산책 끝에 이 가게에 들러 김밥을 사보았는데 이모님 4분이 김밥을 말고 계셨고 사장님은 전화주문을 받으시며 내게 김밥을 건내셨다.

새벽에 일을 나가야 하는 손님들이 이곳에 들러 빈 속을 채우고 가는 곳인게 느껴졌다.

가끔 김밥을 먹고 싶으면 나는 굳이 가장 멀리 있는 이 가게에 가서 사게 된다.

맛이 특별히 엄청난 것도 아니고 사장님이 친절한 것도 아니지만 왠지 그러고 싶다.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새벽출근인들에게 든든한 가게가 되어주는 이 곳을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산책을 꾸준히 하다 보면 같은 시간에 운동나오는 사람들이 눈에 익숙해지는데, 사람 얼굴을 잘 보지는 않는 편이라 주로 강아지들이 기억에 남곤 한다.

어느날 놀이터에서 산책길에 자주 보던 골든 리트리버를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어머~ 오늘은 오후에도 만났네~ "라고 혼잣말을 하자 남편이 아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아는 사람은 아닌데 새벽 산책을 갔다 돌아오는길에 저쪽 집에서 나오는걸 종종 봤다고 말하자 남편이 웃었다.

자연스럽게 우리동네에는 아파트에서 진돗개를 키우는 분도 계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매일 강아지 산책을 나오던 임산부가 몇일째  안 보이면 출산은 하셨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도 그 견주들을 모르고, 그분들도 나를 모르지만 어쨋든 그 강아지들은 내 마음속의 이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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