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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마 Oct 13. 2023

저 별은 나의 별, 저 카페는 나의 단골 카페

낯설고 어색하지만, 어쨌든 우리 동네/ 카페

골목골목마다 카페가 없는 골목이 없을 만큼 카페가 많다.

어느 카페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다 카페로 사용할 만큼 크기도 하고, 어느 카페는 테이블 4~5개가 전부 일만큼 작기도 하다.

우리 동네에카페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아이들이 아파서 일주일도 넘게 집콕을 하곤 하면 남편은 나가서 두어 시간이라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오라며 등을 떠밀어준다.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 애기들 저녁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나서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는 집을 나선다.

특별히 갈 곳이 없다. 불러낼 사람은 더 없다.

날씨라도 좋으면 산책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내가 등 떠밀려 나오는 계절은 주로 겨울이다.

할 것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카페들을 하나씩 돌아다녀 봤다.

집을 나서면서 카페 또는 커피숍을 검색하면 지도에 수많은 점들이 찍히는데,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매번 다른 커피숍을 가보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모험을 떠나는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조금 신이 났다.


다들 커피를 파는 가게이지만 인테리어와 분위기부터 시작해서 선곡하는 노래,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취향과 개성 까지도 달랐다. 가끔은 사장님께 이용객으로서의 코멘트를 달아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꾹 참고 그저 맛있게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등 떠밀려 나올 때마다 매번 다른 커피숍을 다녀보았지만 여전히 우리 동네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커피숍들이 꽤 있다.

많이 생기고 또 그만큼 많이 없어진다.

한참 커피숍 탐방을 하다가 어느 순간 흥미를 잃었고, 자주 가는 커피숍이 생기게 되었다.


첫 번째 커피숍은 생기는 과정부터 관찰했었다.

상가 자리 하나가 공사를 하고 있으면 어떤 가게가 생기나 궁금해서 오며 가며 설레는 마음으로 구경하는 편인데,

'아 이번에도 카페구나. 이 골목에만 커피숍이 몇 개인데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친 게 첫 기억이었다.

며칠 후에는 가게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현수막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이런 멘트가 적혀 있었다.


#우리 동네 아지트 #엄빠 환영 #8시 오픈 #공간대여가능


현수막만 봤는데도 이 사장님들 뭔가 다정하고 귀여운 분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동네 아지트라니.

앞에 흐르는 천변 쪽을 향해 야외 테라스가 마련된 것을 보니 저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옆자리에는 주스를 마시는 아이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정말 그 자리에 앉아 물이 졸졸 흐르는 천을 바라보며 아이와 티타임을 즐겼다. 사장님은 '#엄빠환영'이라는 멘트가 빈말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아이에게는 떡뻥을 주셨다.

이미 속세의 단맛을 다 맛본 나의 아가는 "이거 맛없어!" 라며 사장님에게 다시 돌려주고 왔고, 사장님은 깔깔 웃으시더니 사과를 깎아 주셨다.

아이를 대하는 사장님의 눈빛이 따뜻하고 다정했다.

나는 이 잉꼬부부 사장님이 잘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서 정말 우리 동네 아지트가 되어 주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사진도 예쁘게 찍어 리뷰도 몇 글자 적어보았다.

며칠 후 한번 더 그 커피숍에 들르게 되었는데, 머뭇머뭇하시더니 수줍게 웃으시며 리뷰 적어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제가 리뷰 쓴 건지는 어떻게 아시냐고 물었더니, 그날 자몽주스와 라테를 시킨 사람은 나뿐이었다고 하셨다.


잉꼬부부 카페에 현수막이 붙었다.

1인 빙수셰이크를 판매를 개시했다는 문구 밑에는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왠지 무더운 여름 뜨거운 햇빛을 건너가  먹어야 기가 막힐 것 같아  축축하고 습한 장마가 끝나길 기다렸다.

해가 나고 에어컨을 켜지 않고는 배길수 없이 훅한 더위가 찾아온 아침이었다.

눈을 뜨는 순간 생각했다.


'오늘이다! 오늘이 그 빙수셰이크를 먹으러 가는 날이야!'


첫째 아이를 등원 버스에 태우기 무섭게 잉꼬부부 카페로 향했다.

고슬고슬 올라가 있는 팥과 동그란 아이스림을 사이좋게 숟가락 위에 올려 한입을 딱 먹었다.

'크~ 이 맛이야! ~~'

입맛에는 맞으시냐고 물으시며 크래커가 담긴 접시를 가져다 주신 사장님께 엄지 척을 날려드리자 사장님은 또 깔깔 웃으셨다.


잉꼬부부의 카페를 사랑하고 응원하지만, 글을 쓰거나 책을 읽어야 할 때는 발길이 향하지 않았다.

좀 더 크고 넓은, 사람들이 많은 카페에 가야 나를 숨길 수 있었다.


우리 집에서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걸어갈만한 거리에 꽤 큰 카페가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도 아닌데도 아주 널찍한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고,  야자나무와 푸르고 작은 나무들 몇몇이 자리하고 있다.

실내에 있지만 야외테라스에 와 있나 착각이 드는 밝은 빛이 가득 들어오는 투명한 유리와 원목느낌의 테이블과 파라솔까지 꽤 매력적이었다.  공간을 둘도 뚝 나누어서 반쪽은 넓고 트인 심플한 카페 느낌을 주었고, 반쪽은 단체석과 모임을 위한 테이블이 만들어져 있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 야트막한 벽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구획이 나누어져 있다. 카공족들을 위한 곳일까 싶어서 테이블석에서 글을 써볼까 했지만 3명 이상 오신 손님들을 위한 곳이라고 쫓겨났다. 홀로 이 동네와 친구 맺기를 하고 있는 나는 저쪽 문 너머의 공간에는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그 후 나는 자연스럽게 이 카페의 반쪽, 내가 허락되는 공간에 자리를 잡는 게 익숙해졌고, 오늘도 이곳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공간이 넓어서 울림이 좋은 건지 좋은 오디오를 사용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향긋한 커피 향과 잘 어울리는 재즈가 기분 좋게 흘러나온다.  또 분위기에 잘 맞는 커피가 맛있는 편이고, 원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은 편이다.  젊은 남자 바리스타가 커피원두를 분쇄하는 소리가 자주 들리긴 하지만 왠지 소음이라기보다는 이곳의 매력을 돋구워주는 추임새 정도의 느낌이다.

이곳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꽤 여유롭고 느긋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싱그럽고 풋풋한 기운이 넘치는 손님들이 와 음료를 시키며 까르르 웃으며 메뉴를 주문했다. 그들의 밝고 사랑스러운 웃음소리를 들키지 않고 들을 수 있는, 테라스 카페에 종종 자리를 잡게 된다.


마지막으로 또 자주 가게 되는 카페도 꽤 넓은 곳이다.

테이블 수가 꽤 많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라 적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이곳의 분위기를 한번 적고 싶어서 적어본다.

이곳은 주로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들르게 되는 곳인데, 평일 오전 이곳에 오시는 분들은 커피를 즐기고 여유를 만끽하러 오신다기보다는 각자의 일에 집중하러 오는 듯해 보인다.

다들 노트북을 하나씩 들고 나타나서는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집중을 한다.

이어폰을 끼고 통화를 하기도 하고, 뭔가를 열심히 끄적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하다. 각자 다 다른 것에 집중하고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쯤에 가면 지난번에 봤던 얼굴들이 자주 보이는 걸로 보아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분들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이 거대한 집중의 파도에 휩쓸리고 싶을 때 종종 오게 되는 곳이다.  

키오스크를 사용해서 아르바이트생들과 마주칠 일도 없고 정말 카페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마음먹은 일만 하다 올 수 있는 곳이다. 카페라기보다는 문턱이 낮은 공유 오피스가 연상되는 곳이다.


각자의 매력이 다 다른 카페들이다. 이곳들 말고도 수많은 카페들을 자주 드나들게 되지만, 각자의 매력이 뚜렷한 이  세 곳의 카페를 주로 많이 이용하게 되는 것 같다.

이제는 커피숍이 정말 커피는 파는 가게라는 의미보다는 그 공간과 분위기를 잠시 누리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 커진 것 같다.

별처럼 수많은 카페들을 만나보며, 이 와중에도 다들 각자의 매력과 분위기가 다른 게 재밌고 좋다.

별처럼 수많은 글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매력과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당신의 지도에 찍힌 수많은 카페 중에, 자주 가는 곳은 어디인가요?

왜 그곳을 자주 가게 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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