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반찬 가게가 있다는 것

낯설고 어색하지만, 어쨌든 우리 동네/ 반찬가게

동네에 반찬 가게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반찬가게는 있었는데 내 눈에는 안 보였던 건지  요즘 몇 년 사이에 많이 생기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삼시 세 끼를 다 차려야 하는 입장에 설 때쯤부터 반찬가게가 눈에 보였다.

신혼 때 몇 번 반찬을  사 먹어 보고 꽤 만족스러워했다.

하지만 우리는 떡 벌어지는 한식보다는 단품 요리나 양식을 더 좋아한다는 결론을 얻고는 반찬 가게에 발을 잘 들이지 않게 되었다.  

한참 후 아이들에게는 국과 반찬이 따로 준비된  제대로 된 한식을 먹여 키워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매일 구슬땀 흘려 반찬과 새 밥을 해주었건만, 야속하게도 아이가 입 꾹 닫고 잘 안 먹어 주었다.

나는 쉽게 화가 났고, 서운함과 분노에 휩싸이던 나날들이 이어졌다.

유아식 요리책도 몇 권 사서 식단표를 만들어 놓고 따라 했다.

책에서는  "안 먹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좀 더 각오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해요"라고 말했고,

나는 점점 더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장군 같은 마음으로 아이의 식사를 준비했다.

남편은 종종  매일 음식을 하는 대신 그 시간에 아이와 놀아주는 게 더 남는 장사가 아니냐는 말을 했다.

그 말에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나의 노력을 몰라주는 것 같아 야속하기도 했다.

남편은 회사 동료들에게 괜찮은 반찬집을 알아 와서  내 귓가에 반찬가게 홍보를 해 주었다.

반찬을 좀 사 먹여 볼까 마음이 들었지만,  눈치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좋은 엄마 지망생이였다.

아이들에게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든 음식들만 먹이는 좋은 엄마이고 싶었지만 내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반찬가게 중에서도 나름 유기농 재료를 쓴다거나, 저염저당을 추구하는 반찬집을 눈여겨 보았다.  

언젠간 저기서 반찬을 한번 사야지 생각만 했다.

반찬을 사러 들어가면 누군가 '저 엄마는 애기한테 반찬을 사 먹이나 봐'라고 욕이라도 할 것같이 느껴졌다.

단 한 번도 반찬을 사 먹여 본 적 없는 친정엄마의 뒷모습이 나를 질책 할 것만 같았다.

내가 식당 겸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그 집에 들어서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모차를 밀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풍겨왔다.

청국장을 아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종종 생각이 날 때가 있었는데, 왠지 그날은 유모차를 밀고 들어가서라도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게 안을 보니 손님은 한 명만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한가할 때 가면 유모차가 들어가도 덜 민폐겠지 싶어서 용기를 내 들어갔다.

청국장을 먹으러 들어왔지만, 이제 들어와 고민하는 척  메뉴판을 둘러보았다.

여자 사장님은 주방 안에 있다가 우리를 향해 사뿐사뿐 걸어오시더니 박수를 짝! 치시며 말씀하셨다.

"어머~~~~ 이렇게 예쁜이가 어디서 왔어??

세상에 어떤 꽃이 이렇게 예쁘겠어~ 어떤 꽃이 이렇게 귀하고 예쁘겠냐고"

유모차 앞에 쪼그리고 앉으신 사장님은 애기 종아리를 두어 번 조물조물하셨다.

"애기 몇 살이에요? 요구르트 먹어도 되나?"

"아~ 지난주에 돌 지났어요~ 요구르트는 아직 안 먹여봤어서...."

"어머~ 우리 공주님 생일이었어? 다른 생일은 몰라도 돌은 꼭 챙기는 거랬어~

내가 우리 공주님 내복 한 벌 사줄게. 다음 주에 꼭 다시 와~

그래서 뭐 드시게?"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 청국장 하나 주세요!"

사장님은 쪼그려 앉은 상태로 나를 올려다보시며 잠시 나를 지긋이 바라보셨다.

청국장은 메뉴 준비가 안된 건가 생각이 들 무렵 사장님이 다시 입을 여셨다.

"비빔밥은 안 좋아해요? 애기엄마. 산채비빔밥 시켜~ 그럼 내가 비빔밥도 주고 청국장도 줄게~ 아기 키우려면 엄마가 골고루 든든하게 잘 먹어야 되는 거야."

특별히 딱 잘라 거절할 이유도 없고 애초에 비빔밥도 좋아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사장님은  금세 보글보글 끓는 청국장과 샛노란 계란 프라이가 얹은 비빔밥이 올려져 있는 쟁반을 들고 나타나셨다.

사장님은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아이에게 떡뻥과 물을 번갈아 건네며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셨다.

아이는 2개밖에 없는 앞니로 뽀독뽀독 뻥떡을 잘라먹었고, 사장님은 아예 턱을 괴고 아이의 앞니를 구경하셨다.

밥을 다 먹고, 반찬을 3개 골라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사장님이 또 말씀하셨다.

"내가 일요일 쉬거든. 그때 애기 내복 사서 기다릴 거니까 다음 주에 꼭 또 와야 돼. 꼭~"

"아이고~마음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

"아니야~ 빈 말 아니야~ 진짜야~ 꼭! 공주님~~ 꼭 와야 돼~~"

사장님은 유모차까지 밀어주며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누구도 반찬을 사서 먹이는 엄마를  타박하지도 욕하지도 않았다.

반찬 가게 사장님의 그 따뜻한 기세에 내 마음속에 살던 감시자도 힘을 잃어 비난 섞인 질책을 멈췄다.

첫째는 사 온 반찬도 시큰둥했고 한 두 입 먹고는 안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온화하고 우아한 말투로  "그래~ 다음번엔 더 열심히 먹어보자~"라고 말했고,

남편은 평화의 길을 찾은 것 같다며 기뻐했다.

그다음 주에 정말로 반찬가게에 다시 들러야 하는 건지 그냥 빈말이었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고민을 하는 사이에 시간은 흘렀고, 몇 주 후에야 그 반찬가게를 다시 방문했다.

사장님은 우리 아이를 기억하지 못했고, 또다시 예전처럼 귀여워하며 몇 살인지 물으셨다.

우리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모두에게 이렇게 친절한 분이라는 사실에 좀 웃음이 나왔다.

반찬을 세 개쯤 집어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우리 공주님 먹으라고 콩튀김도 같이 넣어 놨어~ 엄마도 먹고 공주님도 먹고 해~"

난 요즘도 가끔 그 반찬가게에 들르곤 한다.

사장님은 날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 같다. 

어느날은 기억하시는 것 같다가도 어느날은 잘 기억 못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매번 친근하게 나의 딸을 귀여워해 주시고, 혼자서 아이 둘을 건사하느라 고생하는 애기 엄마를 위로하고 응원해 주신다.

저당 저염식 반찬을 하고 있으니, 당뇨 환자나 아이들이 먹기에도 괜찮은 반찬이라며 은근슬쩍 자랑도 하신다.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따뜻한 인품의 그 가게의 단골이다.

비록 나를 기억하지 못하셔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