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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마 Oct 13. 2023

동전 2개로 할 수 있는 일

낯설고 어색하지만, 어쨌든 우리 동네/ 영화관, 노래방


대부분 다들 그렇겠지만, 연애할 때는 영화를 자주 보았다.

유명한 맛집, 괜찮은 데이트 코스, 각종 축제들을 얼추 같이 다 해보았을 만큼 만난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이번주엔 뭐 하지' 고민이 많아졌다. 

특별한 계획이 있는 날도 있지만, 뾰족한 아이디가 없고 돈도 여유롭지 않은 날에는 영화 보고 밥 먹고 산책을 하곤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주로 집에서 놀다가 아주 가끔 꽃놀이나 영화관 데이트를 하고 외식을 하게 되었다.

 다 지독한 집순이 집돌이었어서 아주 가끔만 데이트를 하러 나가도 충분했다.


우리 신혼집 바로 앞에 영화관이 있었다.

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 아주 가까운 거리여서 가끔 저녁을 먹고


"심야영화?"


" 콜"


하며 손을 잡고 쪼르르 걸어가 영화를 보고 집에 오곤 했다.

나는 아주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있었는데 다행히 남편도 그 감독의 영화를 좋아라 해서 같이 보러 다녔다.

남편은 히어로 무비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개봉 정보 링크를 나에게 보내면서 꼬시면 나는 순순히 같이 영화를 보러 갔다.

그렇게 나도 그와 마블 영화를 꽤 많이 챙겨 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와 다르게 찐 팬은 아닌 건지 비슷한 전개에 피로감이 느껴졌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것을 인정하며 우리는 각자 따로따로 영화관을 다니게 되었다.

집순이와 집돌이는 점점 밖에서 나가 놀기보다는 집에서 재밌게 노는 방법들을 연구했고,

친구며 지인들도 집으로 초대해서 놀았다.


아이가 생기고 나자 영화관 나들이에는 발걸음이 뚝 끊겼다.

처음에는 모유를 먹여야 하니 두어 시간 이상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오는 게 살짝 불안했고,

조금 더 커서는  내가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 남편이 오롯이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게 왠지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요즘엔 어떤 영화를 하는지도 모르고 지내는데 익숙해졌다.

남편은 아주 가끔 히어로 무비를 보러 다녀왔고,

나는 1년에 한두 번쯤, 알고 지내게 된 동네 언니들이랑 영화를 보러 몰려다니기도 했지만,

코로나 시대와 함께 그 마저도 발길을 끊게 되었다.


대신 소소하게 집 앞에 있는 코인 노래방에 맛을 들이게 되었다.

천 원을 넣으면 세곡을 부를 수 있었는데, 그게 왠지 기분이 좋았다.

우리 집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코인 노래방의 간판이 보였다.

남편은 설거지를 하다 종종,


"나 동전 좀 줘~ 노래 좀 부르고 오게~"


라고 말하고 다녀왔다.

다녀오고 나서는, 묻지 않아도 그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왔는지 알 수 있었다.

하루종일 노래를 흥얼거렸고, 샤워를 하면서는 열창을 했다.

그는 천 원을 내고 하루 종일 노래를 불렀고, 아이는 아빠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천 원을 내고 두 남자가 하루종일 노래를 부르는 티켓을 얻은 것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주로 화가 나면 코인 노래방을 갔다.

한 줄인 임신 테스트기를 10번째 확인 한 날에 코인 노래방을 갔다.

성심성의껏 불고기와 누룽지 삼계탕을 끓여 아이의 식판에 올려 곱게 차려주었건만,

누룽지만 두 숟가락 먹고는 안 먹겠다고 떼를 부리며 버둥거리다가 식판을 엎어버린 날에도 코인 노래방을 갔다.

아이가 유독 말을 안 듣고 고집을 부렸거나, 오랫동안 아파서 집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남편은 내게 동전 지갑을 내밀었다.

남편이 축 쳐지고 지친 어깨와 눈꼬리를 하고 있는 날이면 나는 남편에게 동전 지갑을 내밀었다.

둘 다 노래실력은 그닥이지만 그냥 그때는 그랬다.


감사하게도 우리에게는 둘째 아이도 허락되었고, 우리는 다른 동네로 이사 오게 되면서 코인 노래방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대신 아이들 피아노 장난감에 딸려있는 마이크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신나게 다 같이 열창을 되었다.

누구 한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동전 하나 쓰지 않고 4명이 각자의 개성대로 아무렇게나 부르게 되었고 나름 귀엽고 좋다.


올해의 우리 가족 대표열창곡은 '사건의 지평선'이다.

아이들이 사건의 지평선을 얼마나 열심히 부르는지 유치원 선생님도 이 곡이 우리 가족이 다 같이 부르는 노래라는 걸 알고 계셨다. 어느 날 놀이터에서 같은 반 친구랑 불협화음을 자랑하며 부르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내가 좋아하던 감독의 마지막 영화가 상영했다.

나는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신혼 때 가던 그 영화관에 혼자 영화를 보러 다녀왔다.

검색을 해보니 인터뷰 영상 속의 그 감독은 많이 나이 들어 있었지만 여전히 행복해 보였다. 그는 여전히 영화 속에서 수많은 해석의 여지와 메시지들을 숨겨 놓았고, 나는 내가 사랑했던 감독에게 나 혼자 마지막 인사를 고하며 그동안 고생하셨다고 말을 건넸다. 영화가 좀 긴 편이었다.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고, 영화관을 나서는 길에 바로 남편에게 전화했다. 남편은 아이들과 놀이터에 있으니 천천히 오라고 했다.



영화관 건물을 나서려는데 코인 노래방이 보였다.

뭔가 웃음이 나왔다. 그때의 우리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노래 3곡 정도는 더 부르고 가도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화가 나지 않았지만 코인 노래방에 들어가 마이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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