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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휘마 Oct 13. 2023

마음이 시린 날, 위로가 되는 음식이 있나요?

낯설고 어색하지만 어쨌든 우리 동네/ 토스트와 분식


햄치즈 토스트!


나의 최애 메뉴를 적어 놓고 보니 왠지 기분이 좋다.

특별하고 화려한 속재료들이 가득한 토스트들도 많지만, 난 유독 햄치즈 토스트를 좋아한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던 대학생 시절 햄치즈 토스트를 자주 먹었었고,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포근하고 달착지근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이사 오고 나서 집 근처에 토스트 가게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사 먹을 틈이 나지 않아서 꽤 오랫동안 간판만 보며 스쳐지나다녔다.


어느 날 간판 앞에 멈춰 섰고, 아이와 함께  햄치즈 토스트를 시켰다.

아들이 잘 먹을지 어떨지 모르겠어서 일단 토스트 2개와 딸기주스를  사 와서 먹기 시작했다.

한 입을 베어문 아들은  머리 위에 뿅! 별이 뜬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토스트 한번 배어 먹고 주스 한번 쭉 마시고를 반복해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토스트 한 개를 뚝딱 해치우고 내 토스트를 쳐다보았다.

두 입 정도 베어 먹은 내 토스트를 그렇게 아들에게 넘겼다.  아이는 게눈 감추듯 내 토스트도 입속으로 감추어 버렸다.

아들은 작고 마른 아이였어서 뭐든 이렇게 좋아해서 잘만 먹어줘서 살이 오르고 건강해지기만 한다면 감사한 일이었다.

딸기 주스까지 호로록 다 마신 아들이 "더 주세요!"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연락해 퇴근길에 햄치즈 토스트를 더 사 올 수 있냐고 부탁했고, 몇 시간 후 아이는 저녁을 먹고 나서도 또 한 개의 토스트를 더 먹고서야 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 후로 아들과 나는 종종 토스트를 사 먹으러 갔다.


아들의 단짝 친구가 다른 친구와 짝꿍을 하겠다며 자리를 옮겼던 날, 아들은 내 다리에 매달려 울었다.

우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던 나는  "토스트 먹으러 갈까?" 하고 물었다.

아들은 닭똥 같은 눈물을 닦으며 말없이 양말을 챙겨 신었다.


소풍을 가야만 할 것 같은 어느 화창한 날에도 토스트는 우리와 함께 한다.

돗자리와 공을 챙기고 있으면 아이가 내 주위를 맴돌며 묻는다.


"우리 소풍 가는 길에 토스트도 사갈까요?"


그렇게 우리 가족은 햄치즈 토스트 6개를 포장 주문한다.

처음에는 전화번호 뒷자리를 확인하고 토스트를 건네시던 토스트 가게 사장님이 어느 날부터는 내 얼굴을 보면 그냥 햄치즈 토스트 6개 든 봉투를 건네신다.

가끔  남편은 왜 다른 토스트도 많은데 햄치즈만 먹냐고 다른 토스트들을 시키곤 했었지만, 온 가족의 거대한 메뉴통일에 기가 죽었는지,

그가 느끼기에도 햄치즈 토스트만 한 게 없다 싶었는지 그냥 햄치즈의 대열에 합류했다.

사실 나도 이제는 아이들이 햄치즈 말고 야채들도 듬뿍 들어있는 다른 토스트를 먹어줬음 싶긴 하지만,

아이의 마음이 시리고 서러운 날 포근한 위로의 말 대신 건넬 메뉴가 있다는 것에 일단 감사해 보려 한다.


나의 아이와 나의 최애 메뉴  소개하려고 한다.

토스트에 비해 순대를 파는 가게를 꽤 여러 곳 있어서 딱 한 집이 단골집으로 자리잡힌 것은 아니지만, 집 근처에 있는 분식집을 주로 가게 된다.

나는 순대를 꽤 좋아라 하는 편이었지만, 남편은 순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니 별말하지 않는 것이었을 뿐, 순대에 대한 취향은 불호였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아이가 순대를 좋아하자 남편은 크게 놀라는 기색이었다.


'이걸 도대체 왜? 넌 5살밖에 안된 애기인데 왜 순대를 먹어?'


라는 표정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아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엄마의 순대를 몽창 빼앗아 먹었다.

아들은 목요일에 김이 폴폴 나는 순대차가 오면 참을성 있게 그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 순대를 사가는 것을 즐거워했다.

식판 한 칸을 채운 순대는 가장 먼저 사라졌다.  

나도 순대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아이가 먹기에 영양가 있는 음식은 아닌 것 같아 그냥 그렇게 몇 번 먹이고 말았다.


아이가 폐렴과 후두염이 동시에 와서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10일에 가까운 입원 기간에 아이는 지쳤고, 우울해 있었다.

창 밖을 보며,


"왜 나는 감기 하나 이겨내지 못하는 멍청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어?

이 몸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고 싶어! "


라고  이야기 했다.

입을 떼면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아 아이를 등 뒤에서 안고는 뒤통수에 뽀뽀를 했다.

한참 아무 말 없던 아이는


"엄마. 내가 무사히 퇴원을 하면,  우리 순대 먹으러 갈까?"라고 했다.


며칠 후 우리는 퇴원을 했고, 집 앞 분식집에서 순대과 떡볶이를 시켜 먹었다.

혼자서 순대 1인분을 혼자서 다 먹은 아들은 1인분을 더 시켜서 포장해서 가도 되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니 그럼 파란색 슬러시도 한 잔 사서 집에 가는 길에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는 그 다음 달에도,  퇴원 다음날에 순대를 먹으러 갔다.

꼭 퇴원길에만 순대를 먹는 건 아니지만, 퇴원한 다음날에는 거의 항상 순대를 먹었다.

분식집 사장님은 우리 아들을 볼 때마다 "아이고~ 아들~ 참 씩씩하게도 생겼다! 많이 먹어~"라고 말씀하신다.

모진 시간을 견뎌 내면서도 구겨지지 않고 밝고 씩씩하게 자라 주는 나의 아들은 씩씩한 목소리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며 그 가게 문을 나선다.


토스트 가게와 분식집.

나와 나의 아들에게 위로가 되는 곳이다.

사장님들은 본인들의 가게가 우리 가족에게 이런 존재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계시겠지만, 우린 그분들의 음식에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

나와 아들이 우리 동네에 위로받고 힘을 얻을 곳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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