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나였다.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속편하다면 속 편한. 사람들의 무례한 언행과 행동. 도를 넘는 참견질을 견디다 견디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가 택한 것이 기억을 지우자였다.
이게 내가 택한다고 가능해요? 누군가는 물을 수 있지만 난 가능했다. 스스로에게 하는 세뇌의 힘을 그때 느꼈다. 나는 잘 잊을 수 있는 사람이다 세뇌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기 시작했던 것이 대학교 때였다. 지금의 나는 사회의 온갖 때가 묻어 마치 누가 나 건드냐? 나도 그럼 가만있지 않아. 언제든지 전투모드를 장착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지만 대학생 때는 여리디 여린 아주 소심한 아이였다. 친한 사람들에게는 목소리 크고 잘 지내지만 낯선이가 들어오면 저 구석에 쭈그리고 말없이 앉아있는 사람. 현재의 내 모습만 아는 사람들이라면 믿지 못했을 그런 모습이었다. 현재는 사회인 패치가 되어 내면은 I지만 겉으로는 연기하며 E로 살아가고 있지만 어릴 적에는 겉도 I형 내면도 I형 그 자체였다.
어릴 때 그런 성격이다 보니 누군가가 나에게 나의 신체에 대해서 평가하거나 도를 넘는 무례한 발언을 했을 때 홀로 저 구석에 가서 뒤로 눈물을 훔치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그런 얘기를 한 당사자는 본인이 그런 말로 나를 할퀴었다는 것조차 잊고 사는데 나는 그게 계속 아프다는 것이다.
어느 날은 화가 났다.
언제쯤 그 친구가 내 옷차림이 이렇네 저렇네 지적한 것에 신경 쓰며 옷을 입는 나 자신을 보면서. 아니 나는 남한테 그 사람을 평가하는 말도 안 하고 막말도 안 하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당장 그 친구를 손절하고 싶었지만 인간관계란 복잡한 법. 얽혀있는 다른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지지부진하게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택한 것이 지우는 것이었다. 기분 나쁜 얘기를 들어도 어느 정도 정색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 뒤로 맘에 담아 두는 것이 아니라 개소리라 치부하며 기억 속에서 지웠다. 기억 속에서 지워내니 어느 정도 그 순간은 해결됐지만 문제는 무례한 얘기를 하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 친구를 손절하고 나서야 내면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무례한 인간 특히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피해왔다. 마치 보호습성처럼 말이다.
단순하게.
잊어버리면서.
적당히 개무시하면서.
견딜 수 없는 건 돌직구로 표현.
난 이 네 가지를 항상 유념하고 살았기에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는 적은 편이었다. 게다가 지독한 개인주의적 성향이 한몫하기도 했다. 남의 일은 남의 일. 내 일은 내 일. 나한테 민폐 끼치지 마. 나도 안끼칠 테니까. 니 인생은 네가. 내 인생은 내가. 이게 내 모토처럼 자리 잡았다.
가까운 지인이어도 어떤 고민을 내게 얘기해도 그래. 결국에는 네가 결정짓고 네가 감당해야 하는 거야. 나는 들어줄 뿐이야. Mbti는 isfj이지만 이런 때에는 T와 F사이에서 T가 강한 인간이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했다. 공감과 들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뿐 개인이 갖고 있는 문제는 결국 내 개인이 해결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무엇이든지 적당히 거리 두고 살았기에 불안장애? 정신병? 내게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직장상사와 트러블이 내게 불안장애를 안겨줬다. 끊어내고자 하면 끊을 수 있으나 매달 들어오는 고정적인 급여로 인해 놓지 못하는 관계. 삶의 안정감과 정신적인 안정감 사이에서 삶의 안정감을 택했더니 병이 나버린 것이다.
직장상사와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되려 사이가 좋았다. 직업 특성상 많은 사람들의 민원과 비난을 견뎌야 했기에 서로서로 의지를 많이 하며 버텼다. 이 상황을 함께 견딜 수 있는 건 오직 둘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가까우면 가까워질수록 오해가 쌓이고 서로에 대한 불편함이 쌓이는데 문제는 나는 을인 직원이고 상대는 갑인 직장상사였기에 일방적인 분노와 표현을 나만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래서 회사 사람하고는 가까이 지내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 후회해도 이미 선이 없어진 사이였기에 늦은 후였다. 상대는 나한테 풀기라도 하지. 나는 풀 데가 없으니 화가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에 터진 것이다.
홧병이라는 것에 무서움을 난 그때 느꼈다.
풀리지 않는 분노가 쌓이고 쌓여 그것이 내 안에 화로 돌아와
우울증과 불안장애 증상이 동시에 찾아왔다.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께서 양동이의 물이 가득 찬 상태에서 마지막 물이 들이부어지면서 터졌다고 표현하셨다. 마지막 물도 역시 직장상사가 아주 시원하게 뿌려줬다. 감사하여라. 그 뒤로 4개월간 병원을 다녔다. 온갖 심란함이 몰아쳤다. 정상인이 아니라고 판정받은 느낌. 현대인들이 많이 걸린다는 뉴스는 봤지만 그게 난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유난스러운가. 지나칠 수 있는 것도 못지나치나? 자존감이 낮은 편은 아니었는데 바닥을 치다 못해 굴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지금은 쉬기 위해 침대에 누워있지만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나가고 싶으면 나간다. 그러나 그 당시에 한참 심했을 때는 침대에 일어나지 못했다. 내 자유의지가 아닌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그렇게 침대 속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최근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마치 힐링드라마라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가 그 시절의 내 모습을 기억나게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늪에 빠지는 것처럼 방문을 나서기가 어찌나 두렵던지. 햇볕을 보고 길을 걸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내가 얼마나 두렵던지. 그 드라마를 보니 과거에 내가 떠올라 눈물이 나기도 했다.
문제는 직장상사가 완전히 나쁜 놈이면 좋았을 텐데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스트레스와 그 직업의 무게와 한계를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였다면 견디지 못할 자리였을 그 자리를 견디고 있단 걸 알기에 그냥 무작정 미워하고 싶은데 한편에는 괜한 죄책감이 쌓여갔다.
어딜 가나 남의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지 않나. 상사에게는 정확히 얘기를 안 하고 몸이 아파 병원만 다닌다고 얘기했었지만 남의 이야기를 본인 이야기보다 편히 하는 사람이 상사에게 내가 겪는 문제를 다 얘기했다. 내가 본인 때문에 병원 다닌다는 것을 알고서 미안해하는 것과 나를 눈치 보는 것도 미워지면서도 백 프로 완전히 미워할 수가 없는 이상하고 오묘한 감정 속에서 나는 이 구렁텅이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걸까. 텅 빈 것처럼. 내가 담겨있지 않은 것과 같은 느낌을 계속 겪어야 하는 걸까. 불안함이 찾아오는 것은 언제쯤 사라질까. 구렁텅이로 빠질 때 나를 꺼내준 것은 가족이었다. 특별하게 대하지도 그저 일상적으로 똑같이. 우울증에 걸렸던 엄마의 경험도 얘기해 주며 언젠간 나아진다는 확신을 주며. 일어나기 힘들었던 하루에도 약을 꼬박꼬박 먹으며 조금이라도 걷자. 조금이라도 일어나자. 그냥 조금조금씩 하자. 안 걸렸으면 좋았겠지만 내게 생겨난 일이니까. 받아들이자. 나를 스스로 위로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자 조금씩 일상이 돌아왔다. 현재는 회사 사업이 완료되면서 내 몫의 일을 완전히 다 마치고 난 퇴사를 했다. 퇴사도 정신적인 안정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불편한 것과 멀어졌으니까. 퇴사를 진즉에 하지 그랬어. 어떤 친구는 내게 말했다. 이상한 책임감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내가 자부심을 갖고 쌓아 올라갔다는 내 결과물이 있었다. 그렇기에 쉽게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의무감처럼 이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그것을 내가 지켜내야 한다는 어떤 사명이 있었다. 그것도 부질없다는 걸 마지막까지 일깨워주는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아마 그 에피도 이 속풀이 시리즈에 올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