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에게 쓴소리나 조언을 해주는 어른은 점점 사라진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고나이가 들었다는 이유 하나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 스스로에게 어떤 고집이 생긴 것 때문일 수도 있다. 어릴 적에는 나이가 들어가고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20대 중반부터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나이가 나보다 많다고 해서 반드시 어른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먹어간다고 해서 나도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른'이라는 칭호가 내게도 붙기 어렵고 참 붙이기 어려운 칭호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것을 느끼게 된 계기는 다양한 사람을 많이 부딪히는직장을 만나게 되면서 더 강해졌다.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무조건 목소리가 크면 이긴다고 생각하고 고집을 꺾지 않는 어른들이나 나이를 위계로 내세우면서 자신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막말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로남불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여러 일들을 겪게 되면서 마치 절대적인 악을 마주한 것처럼 '나는 절대! 절대!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래서 누군가가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인데' 나에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며 조언을 해주면 듣고 나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쓴소리와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내 곁에 있음으로써 내가 발전되어 가면 나에게 좋잖아.' 처음에는 이런 일련의 행동이 나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조언자가 조언을 해주면 해줄수록 점점 더 선을 넘게 되면 그때는 어찌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신체적인 것을 지적한다거나, 옷차림을 지적한다거나, 이건 이렇네 저건 저렇네 평가하는 것을 극도로 안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심지어 누군가가 내게 옷차림이 어때? 나에게 물어봐도 '괜찮은데. 좋아.'이 단 두 마디로 대화를 끝낸다. 이게 진심이 아닌 것도 아니다. 진심이다. 어찌 보면 솔직하지 못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글쎄. 상대를 평가해 주는 것만이 옳은 걸까? 내게 옷차림을 물어본 사람이 정말로 신랄한 평가를 원해서 내게 물은 걸까? 상대가 입은 옷이 너무 이상한 옷차림이면 에둘러서 얘기를 하겠지만 굳이 솔직해서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은 여러 경험들을 통해서 배웠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 그래. 난 솔직한 성격이니까 얘기할게. 이건 별로고. 이건 그래서 별로. 저래서 별로. 이런 식으로 평가를 하는 게 과연 좋은 걸까? 난 무엇이든지 말을 할 때 상대의 기분이나 감정을 배려하면서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는 솔직한 것을 무기로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이유는 어릴 적의 내 경험 때문이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지적하는 것이 별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굉장한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내가 원치 않았음에도 만날 때마다 나의 신체적인 것 내 옷차림까지 지적하던 친구가 있었기에 그것이 얼마나 거지 같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더욱 조심하는 것도 있다.
간혹 살다 보면 유독 남에게 조언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꼭 하나씩 있다. 늘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거나 어떤 사람에 대해서 평가를 하는 사람을 지켜보면 늘 내가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남들에게 조언을 하는 사람은 조언을 하면 할수록 더욱더 스스로의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누군가에게 너는 이렇게 행동하면 안 돼. 이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널 욕해. 이러는 건 아니야. 그렇게 조언을 하며 쓴소리를 했지만 본인이 정작 같은 상황에 닥쳤을 때는 본인이 남에게 한 조언이 무색하게 본인이 남에게 하지 말라고 했던 그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을 종종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되려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이 내로남불이라고 본다. 본인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남들에게 조언과 훈계와 평가를 해놓고 본인이 같은 상황이 되면 그 조언대로 행하지 않으면 이제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은 조언이 아니라 개소리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언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들에게 본인이 더 많은 인생 경험을 살았다고 해서, 혹은 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당사자 본인은 그냥 가볍게 건넨 타인에 대한 평가와 조언이 되려 스스로에게 더 독이 되어서 돌아올 수도 있다.
나에게도 이런 조언자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접하지 못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 조언자는 인간관계가 나보다 더 넓었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새로운 인간관계에서의 힘듦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등 여러 조언을 해주었다. 실제로 그게 도움이 됐었기에 그 사람의 조언을 들으려고 했고 그 사람에 고마워했었다. 나를 위해서 타인이 관심을 갖고 얘기해 주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행동이 계속되면 될수록 말함에 있어 점점 선이라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조언을 넘어선 나에 대한 평가와 나라는 사람에 대한 단정이 이어졌다. 넌 이래. 넌 이런 사람이야. 넌 이게 문제야. 넌 이래서 안 돼. 너 이렇게 살면 안돼. 등등 이제는 고맙던 조언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만 계속해서 이어지니 버거울 정도였다.
점점 더 그 사람의 말이 버거워지고 내 자존감이 점점 하락했다가 뭔가 내가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늘 자신감과 자존감이 항상 넘쳐나던 엄마의 유전의 영향도 있는 것 같고, 가장 친한 친구의 걱정 어린 조언도 있었다. 친구는 나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있잖아 친구야. 내가 오랜 시간 곁에서 봐온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왜 그 사람이 평가하는 대로 네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만약 네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랑 친해지지 못했을 거야. 나는 내로남불의 유형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거든. 근데 내가 진짜 가까이에서 본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너한테 매번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과연 너에게 도움 되는 말을 해주는 건지 난 잘 모르겠어. 있잖아. 그 사람이 과연 너한테 조언하는 대로 본인은 그렇게 살고 있는지 너 자세히 봐봐. 내가 장담하건대 그 사람 너한테 얘기한 대로 본인은 절대 그렇게 안 살걸?
나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인간인가 봐.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내가 너무 부족한 인간인가? 네가 봤을 땐 나 어때? 친구에게 이렇게 카톡을 보냈었다. 하도 한 사람에게 많은 평가를 받으니 스스로 자존감이 낮아지고 있던 와중의 친구가 보내온 답장이었다. 나는 친구의 카톡을 보고 매번 나에게 '너를 위한 말인데'라며 얘기를 해주던 그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렇군요. 그럼 당신의 말대로 나는 그런 사람이란 거죠. 저는 이런 사람이고 이게 문제고 이런 게 잘못되었고 그렇다면 당신은요?
나는 크게 남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극도의 개인주의자인데, 상대방이 나에게 무언가 잘못됐다고 말하니 그 사람을 상세히 살펴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랬더니 전에는 안 보이던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이렇게 하지 말라며 가르치던 것들을 본인은 그 누구보다 그렇게 행동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남들에 대해서 평가하고 욕하면서 저렇게 살면 안 돼 저렇게 살면 큰일 나했던 것들을 정작 본인의 상황이 되니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조언과 잔소리에 대해서 느낀 것이 본인도 그렇게 살지 말아야 그것이 끝까지 조언과 남들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잔소리로 남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남들에게는 그렇게 살지 마라고 말하면서 본인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건 그냥 개소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되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책을 더 가까이했다. 나의 고민과 내가 갖고 있는 개인의 문제가 스스로 파악하고 내 자신을 돌아봐야 할 일이지 남이 해주는 평가와 조언에 맞추어 흔들릴 일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떤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전문가가 아닌 타인에게 자신의 고민과 인생에 대한 상담을 한다고 그것이 답이 되겠냐는 얘기였다. 그것도 정답이었다. 내가 아닌 타인에게 고민을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그게 결국엔 내 약점이 되는 것이었다. 이전의 '유재석'님이 비보티비에 나와서 한 얘기가 인상적이었다.
저는 이런 이야기들을 주변에 많이 하지 않아요. 고민스러운 일이 있거나 이런 일이 있을 때. 혼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고. 주변의 조언이 필요하고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결정에 대한,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야 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의지고 나의 마음이다.
좋은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어서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스스로를 변화해보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어찌 보면 제일 중요한 것은 나를 내가 가장 잘 알고 나의 단점을 잘 파악하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에게 좋은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또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의 조언이 무조건 싫다며 피하진 않을 것이다. 내게 도움이 되는 진정한 조언자가 그리고 좋은 지인이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 바로 독서다. 독서는 내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을 제일 편리하게 볼 수 있다. 다양한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들. 인생에 대한 여러 이야기와 교훈들. 그래서 독서를 놓지 않으려 한다. 여러 심리학 책을 읽으면서 내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잘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과정은 결국엔 내가 나를 잘 알고, 내 문제를 잘 파악하고 고치려 노력하는 것 그게 첫 번째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