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준비하면서 자신감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다. 7년여의 경력이 그동안 허사였나라는 생각도 들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채워야 하는 자격증이라도 준비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제대로 직장을 찾기 시작한 지 아직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곤 한다. 젊었을 때일수록 나는 더욱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속에서 꼰대인 내가 나오고 있었다.
이력서를 수십 곳에 보내도 면접 연락이 오는 곳은 두 군데 세 군데 이렇게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있을까. 점점 더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는 그래도 백수 중에서 그나마 형편이 괜찮은 백수임에도 이렇게 쪼그라든다. 하다못해 경기북부인 집 주소로 인해서 서울에서는 아예 채용 고려 자체가 패스인 것 같아. 괜히 잘 살고 있는 홈 스위트홈 내 집조차도 원망스러워졌다. 어차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이러하니 뭐. 서울 공화국 그래 너들 좋겠다. 잘 먹고 잘 살아. 정신승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긍정의 주문을 건다. 이것도 다 나아지는 과정이야. 시간이 여유로워서 운전 연수도 하고, 다시 운동에 재미도 붙이고, 글도 쓰고, 하고 싶던 공부도 하고, 스스로 배워나가는 게 있을 거야. 나 자신을 다독이며 내가 나를 점점 펴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이전의 직장과 직무도 유사한 공고가 떠서 얼른 지원을 했다. 공고에 나온 연봉이 내가 받던 연봉보다 낮았지만, 경력에 따라 조정협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지원을 했다. 지원을 하고 연락이 오려나 싶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경기 북부인 우리 집과 거리가 있었기에 나를 뽑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락이 오니 붙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쪽 직종에서 끝판왕의 업무를 겪고 일명 A부터 Z까지 겪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면접날. 면접을 보고서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계속 내가 맘에 든다면서 면접관들이 얘기를 해서 뽑힐 확률이 높겠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불안한 점은 그들이 내 희망연봉을 묻기에 직전 연봉에는 맞춰서 받았으면 좋겠다고 내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 순간 눈이 흔들리는 것이 음.. 불안하네라고 생각했다.
오늘 집 근처로 운전 연수를 가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것은 분명히 합격전화다. 운전 중이라 받을 수 없어 차에 함께 타고 있던 엄마가 양해를 하고 차를 세우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희가 땡땡씨 너무 맘에 들어서 채용을 고려하고 있는데..."
전화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신들의 사업규모는 작고, 이곳에 와도 업무 강도가 높거나 일이 많지는 않을 것이며, 사실 자기네들은 채용계획을 아이가 있는 엄마들을 채용을 할 생각으로 유연근무도 하고 재택근무도 가능한 분들을 찾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를 면접으로 보고 해당 직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채용을 너무 하고 싶은데 의향을 물어보고 싶다.
의향? 듣자마자 아... 김 빠지는 얘기겠구나 싶었다. 역시나였다.
시간을 적게 근무하고 유연하게 근무하고 자기 계발하는 대신에 연봉을 조금 적게 받을지 VS 직전연봉을 그대로 받을지
전화를 받으면서도 힘이 빠졌다. 그래도 엄청나게 높은 연봉이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아주 높은 연봉도 아닌 상황인데. 이미 그 월급에 맞춰서 살아오고 있는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연봉을 줄여가며 유연근무와 자기 계발을 하겠나. 이런 의향 자체를 물어본 것이 일을 구직하고 있는 내게는 찬물을 뿌리는 것과 같이 느껴졌다. 나는 무조건 직전연봉을 받아야 한다고 강경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본인들도 직장을 다니고 하는 사람들일 텐데 일하는 사람의 급여를 깎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이렇게 정리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사정이 어떠하든 상대의 사정에 대한 배려는 없는 것이 아닌가. 면접에서 분명하게 밝힌 내 의사가 있었음에도 말이다. 차라리 연락을 주지 않았으면 했던 불쾌한 연락이었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점점 생각할수록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스트레스가 될 것 같아. 분노를 풀고자 헬스장을 향해 열심히 천국을 향한 계단을 올랐다.
다음날 또 전화가 왔다. 나를 너무 채용하고 싶어서 예산이 예를들어 100이었다면 150까지 올렸는데, 1년동안 10씩 올려줄테니 2년뒤에는 내 연봉을 맞춰주겠다는것. 같은 얘기를 몇번이나 하는걸까. 받고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의상 전화를 받았는데 결국 또 기분만 나빠졌다. 직전 연봉을 맞춰줘야 다닐 수 있다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곳은 막상 뽑혀서 다녀도 내가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 뒤에 전화가 두통이 더 왔는데 결국 차단을 했다.
차단하고 그 후에 모르는 번호로 다시 연락와 연락을 몇번이나 했는데 안받는다며 예의가 아니지않냐고
되려 큰소리를 낸다.
예의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한테
너의 월급 깎아서 우리 사업에 다닐래?
어떻게든지 내 월급을 깎고자 하는 연락을 3번이나 하고
나는 똑같은 답변을 3번이나 하고
그런데 되려 나한테 예의를 찾다니.
이제 참을 인도 세번이 넘어 구직자에게 계속 월급 깎는다는 조정 연락을 3회나 걸쳐 하고 찬물 끼얹으면서 지금 나한테 예의를 묻는거냐 저는 거기 갈 생각이 없다 일갈했다.마지막 전화마저도 어렵사리 연봉은 맞춰주는데 식대 포함으로 해야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