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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소 Nov 20. 2023

야! 너 재미없대!

불안한 내 마음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들

속풀이 글쓰기라는 연재 제목에 맞는 지극히 내 입장에서 쓰는 인간관계를 정리한 일에 대하여 쓰고자 한다. 내 감정이 가득 담긴 속풀이 용 글이다.


나의 정신과 마음이 아프면 여기저기에 신경이 쓰인다. 혹시라도 찾아오게 될 불안증상 두렵기도 하고,

평소와 다른 내 불완전한 상태를 사람들이 알아차릴까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서 연극하듯이 기분이나 내 상태를 꾸며내보려고 해도 아픈 순간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계속 나를 심연으로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처음에 병원을 다니면서 한 1~2주는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건 매일 같이 찾아오는 이유 모를 불안증세에 눈물 흘리고 아무런 의욕 없이 의자나 침대에 누워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조금의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래서 그런 내 모습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 싶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과 연락하는 것을 피하곤 했다.


근데 지나와서 현재는 많이 좋아지고 보니 내가 아프고 힘들 때 내 주위 사람들을 거를 수 좋은 기준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믿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내가 아파오고 나니 그들이 나를 그동안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던 일이 있었다.


병원에 다녀온 지 이틀 밖에 안 됐을 때, 출근이 그 당시에 내게는 지옥이었다. 병에 걸리게 된 이유가 직장상사가 80프로 이상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출근한다고 해서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닌 특수한 사업이었기에 출근해도 그 직장상사는 있지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업무카톡 등등 계속 마주치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이 스트레스가 배부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개인이 감당하는 무게는 각자 다른 것으로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그 당시에 나는 정신적인 병에 걸리게 되면서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것 하나 이기지 못하고 이렇게 나약하게 무너질 일인가 나를 탓하기도 했다. 한참 동안이나 그런 기분이 이어졌다. 병원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특히나 그런 감정이 심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런 나를 아무도 지적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건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점심을 먹으러 나가자는 권유에 내키지 않아도 나갔는데 당시 지인들과 밥을 먹으면서도 내 감정상태와 정신적인 상태는 계속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얘기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멍한 상태가 이어졌다. 그 당시에 같이 식사했던 지인들은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들이 즐거워야 좋아하던 사람들이었다. 편한 듯 대했지만 편하지 않은 늘 내가 불편하게 느껴지던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만나고 지냈던 것은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식사이후로 그 사람들에게 정이 떨어졌다. 그날 점심식사 이후에 내가 유독 어두웠기에 나는 그들이 나를 향해할 이야기들을 예상하며 친구에게 이렇게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 예상은 정확했다.


다음날 내가 사무실에  그녀가


야 너 언니가 재미없대!


사무실에 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그 얘기를 나에게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지인하고 본인이 얘기를 했는데 네가 재미가 없고 너무 어두워서 앞으로 자리가 있을 때 너를 불러야 할지 말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건 무슨 신종갑질인가? 내가 당신들 기분 맞춰줘 가면서 만나야 하나? 나는 병원을 엊그제 다녀와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알면서 나한테 이런 얘기를 꼭 해야 하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고 화가 났다. 내가 이들에게 왜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어이가 없는 것은 나한테 그런 얘기를 했던 당사자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늘 그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챙기지 못하는 것을 내가 챙기고 불편한 자리는 내가 앉고 사람이 많은 곳은 최대한 피할 수 있게 해 주고 등등. 내 나름대로 내가 배려할 수 있는 건 챙겼는데 그 당사자가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그들에게 갖고 있던 정이 다 떨어졌다. 그리곤 눈물이 확 쏟아졌다.


재미가 없으면 안 부르시면 되잖아요.

저도 안나 갈 테니까 부르지 마세요.


이렇게 얘기하니 그네 왈 계속 그 감정에 갇혀서 그렇게 지내면 내 다른 지인들도 나를 부르지 않을 거도 계속 혼자 그렇게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협박인가?


언니는 너를 걱정해서 그런 거야. 계속 더 안 좋아지지 말라고 얘기한 거야. 너 상태 안 좋은 거 그렇게 다 표출하면 주위에 사람이 다 사라져 등등. 그내 노력으로 가능하면 병원을 다녔겠는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말들이 과연 나를 위한 걱정인 건가 싶다. 재미없다는 말로 나는 이미 비수가 꽂혔는데. 그런데 나는 바보 같게도 주위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 걸 싫어하기에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거지를 시전 하며 그 상황을 넘겼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비수가 박힌 게 계속 아팠던 것이었다. 그 순간엔 표현하지 못하고 뒤이어서 생각할수록 황당했다. 여기서 웃긴 건 나한테 그렇게 조언을 한 당사자는 본인이 우울한 상황일 때 그 누구보다 남들에게 표출을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이런저런 내로남불적인 그들의 행동이 눈에 들어왔다. 나한테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조언하면서 본인들은 그 누구보다 그렇게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순간 그 사람들에 대한 껍질이 벗겨졌다. 나에게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그 순간으로 명확해졌다. 그날 저녁에 울면서 친구에게 전화해 이 이야기를 하니 나보다 더 화를 냈다. 친구는 진지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네가 우울하든 기쁘든 그냥 너 자체로 나는 만나는데 그들이 과연 지인인 거냐고 되물었다. 그 사람들을 만나야 할 필요가 있냐고 얘기했다. 친구는 네가 기쁘든 슬프든 만나서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지인인 거 아니겠냐고 했다. 그 말이 정답이었다.


나한테 너 재미없다며 조언을 한 사람은 어찌 보면 앞뒤가 다른 사람이었다. 늘 누군가를 평가했다.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래. 난 사람을 잘 봐. 저 사람은 저게 문제야. 너 이러면 안 돼 등등 내게 많은 조언을 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 앞에서는 잘 지내는 척 하지만 뒤돌아서면 그 사람의 욕을 나에게 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성향을 알아도 가까워진것은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였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나도 마찬가지고 그녀의 지인들고 러가지 고민을 얘기하곤 했다. 녀는 내 고민을 듣고 게 많은 조언을 하곤 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고 좀 더 인생의 경험이 있었기에 도움되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들어야 하는 것들은 듣곤 했다. 어떤 조언은 나라는 사람을 한참 깎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와 가까이 지내면서 생각했다. 그래 험담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도 하곤 하잖아라고 나는 잘 지내는 사이니깐 내 얘긴 안 하겠지. 점보다 장점이 더 많잖아. 런데 나중에 보니 전혀 아니었다.


어찌 보면 보통 다들 타인의 험담을 한다. 그러나 나와 그 사람과 다른 점이 있었다. 나는 나한테 안 좋게 대하던 직장상사, 이기적인 지인 등 나한테 못되게 대하던 사람들을 욕하지만, 그 사람은 본인과 잘 지내는 사람도 그 자리에서 없어지면 험담을 시작했다. 그 모임에서 나오고 나니 그녀가 내 얘기들을 한 것도 들을 수 있었다. 참 허무하고 허탈했다. 지금도 내가 없어진 자리에서 내 얘기를 어떤 식으로든 할 것이다. 나를 나쁜 년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든지 말든지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그들과 인간관계에서 나쁜 점만 있었다면 관계가 이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좋은 추억도 있고 즐거운 기억도 있다.


그러나 항상 말이 상처였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무례한 말들에 나는 계속 상처 입고 있었다. 만나는 순간에는 즐거워도 만나고 오면 그들이 얘기하는 말들에 지쳐갔다. 그래도 좋은 관계라고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완전히 무너졌다.


내가 다닌 직장은 특이한 직장이었지만 열심히 일했다. 아등바등 사람들에게 시달리고 버텨가면서 그나마 내 노력여하에 따라 월급이 오르는 것을 위안 삼았다. 버티다 버티다 결국엔 넘쳤다. 정신적인 문제 직장상사에 감정기복과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 퇴사를 하려는데 사무실에 늘 나를 도와주기 위해 나를 위해 나왔다는 그녀 본인은 사명감에 끝까지 남아 사업을 정리한다고 포장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위선이었다.


내가 다닌 직장은 특수한 사업이라 마지막에 사업이 완료되고 사라지는 곳이며 특히 사람들에게 어마무시하게 시달리게 되는 직장이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결국엔 직장상사에 분노가 담긴 전화를 받고 그 이후에 병이 나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퇴사하기 1-2주 전에 그녀가 나를 떠보듯이 직장상사한테 연말까지 사업 유지하고 네가 다녔으면 너 월급 그대로 나갔을 텐데 너 월급 그대로 나한테 달라고 할까? 물었다. 나는 정색하면서 양심이 없는 것 아니냐고 일갈했다. 사업이 완료된 그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느낀 싸함이 결국에는 나한테 독이 되었다.


돈을 벌고자 하면 우리는 이렇게 한다. 월급을 받고 직장에 다닌다는 것은 출퇴근 시간 정확히 지키고, 회사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 규칙은 그곳에선 나한테만 적용된다는 것을 알았다.


퇴사를 하고 다시는 가기 싫었던 사무실에서 놀러 오라는 그녀의 연락에 방문했을 땐 해맑게 자랑하듯 내 월급을 본인이 그대로 받으며 본인은 나오고 싶을 때 나오고, 할 수 있는 일만 하고, 본인이 일 있을 땐 나오지 않고, 본인에 본업을 우선으로 한다고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참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나는 바보여서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켰나. 나는 할 수 없는 일 할 수 있는 일 구분 없이 그곳에서  일처럼 일했나. 그 사무실에서 할 일이 이제는 전혀 없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점점 더 시간이 지날수록 허무해지고 내 자신이 한심해졌고 너는 호구였다고 도장 찍힌 것 같았다. 과거의 나야. 왜 그렇게 바보처럼 열심히 일했니.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게 어찌 보면 그녀의 능력일 수도 있다. 그녀는 엄밀히 말하면 우리 사무실의 일원이 아니었다. 늘 혼자 있는 나를 위한다며 나왔지만 이렇게 끝을 보고 나니 나를 위한다는 포장이 내가 그녀에게 늘 고맙게 만들고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하는 거였나 싶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위한 건 그 어디에도 없었다.


힘들었던 직장생활, 감정기복이 널을 뛰며 대하기 힘든 직장상사.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내가 겪어온 고난과 스트레스를 얘기하며 그래도 월급이라도 올라 위안받는다고 늘 그녀에게 얘기했었다. 나의 그 마지막 위안마저도 그녀가 산산이 부숴트렸다. 그녀의 지인은 그녀가 고생했기에 그 정도는 뻔뻔하게 받아도 된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늘 항상 손해보지 않을 만큼 회사에서 보상을 받아왔다. 늘 남들이 돈을 쉽게 벌어간다며 주위사람들을 욕하던 그녀가 누구보다 쉽게 돈을 버는 모습을 보니 이제는 남은 잔정까지 떨어져서 연을 끊었다.


인터넷을 보다가 공감이 되는 문장을 봤는데 당시에 내 기분이 딱 이러했다.

모든 관계의 끝은
갈등의 최고조가 아니라
이해하기 조차 귀찮아질 때 온다
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야기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변할 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도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귀찮아질 때


나와 이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내가 느끼는 허무함과 내 상처에 다들 공감해 주었다. 그리고 항상 뒤에 붙이는 말이 이제는 나보고 여우같이 살라고 했다.


여우같이 사는 게 정답일까? 정답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여우같이 살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로 남불 하지 말자. 누군가에 대해서 그렇게 욕하고 내 스스로 똑같이 행하고 정작 내 일이 되면 그것을 못 본 척하지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남의 험담을 하지 말자. 내가 싫고 불편한 것은 상대에게 표현하고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안 보면 된다.


그리고 더욱더 정직하게 살고자 결심했다. 열심히 일하고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일하자. 설렁설렁 살지 말자. 요행을 바라지 말자. 노력한 만큼 얻자. 그게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이고 내가 떳떳할 수 있는 길이다.


일련의 일들로 인해서 한동안 사람에 대한 현타가 깊이 왔다. 나중에 속이 터질 것 같아 지인에게 얘기하니 그녀가 내 연봉이 올랐을 때 너무 많이 받는다고 험담했다고 한다. 그만큼 받는 것이 과연 맞냐고. 의지하고 믿었기에 내 아픔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고, 내 노력의 결과도 그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나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찌 보면 사람에 대해서 보는 시선도 바뀌고 이제는 사람이 그렇게 필요치 않는 내가 되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야. 만났을 땐 좋아. 그러나 만나고 오면 내 마음 한편이 불편해.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이 버거워. 누구나 그렇게 되는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 관계는 만나지 않는 것이 정답인 듯싶다. 그저 나를 있는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관계가 정답이다. 내가 힘들 때 기쁠 때 나를 나로 봐주는 사람. 그게 전부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파본 뒤로 현재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기운 내라는 얘기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겠다. 그 사람이 얼마나 기운내고 싶은지 힘을 내고 싶은지 남들보다 본인이 더 간절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둡다고 평가하고 너도 노력해서 힘내봐봐 노력으로 안되는게 어딨냐 너 도대체 왜 그래 등등 그 사람들 말에 상처받지 말자. 그런 사람들은 내 인생에 도움 되지 않는 끊어내야 할 인간일 뿐이다.


결국 스스로의 인생이고 스스로 잘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답이라는 걸. 어찌 보면 깨닫게 해 줘서 여러모로 고맙다. 어느 순간에는 죽도록 미웠는데 이제는 고마운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미운 감정조차 내 안에 남겨놓기 아까워졌다. 나는 그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기로 했다.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이 다가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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