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워낙 좋아하는 편이다. 한 달에 책 7-8권은 거뜬히 읽는 정도이다. 다독가의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책들을 읽고 매번 발간되는 신간을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수집하듯이 모아가며 책장에 쌓아가는 것을 보며 혼자 흐뭇해하고 좋아하곤 했다. 무엇이든지 과용이 문제인 듯싶다. 근 몇 년간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읽고 보관하고 이것이 반복되다 보니 내 공간에 책이 포화상태가 되어있었다. 내가 책이 사는 공간에 얹혀살고 있는 격이었다.
E-book을 시작해볼까 싶었지만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제맛이지 나 홀로 이상한 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신문물을 두려워하는 나의 성향도 한몫했다. 그러나 더 이상 내 공간에 책을 늘릴 수 없을 것 같고 그래서 이북리더기를 구매했다. 눈이 아파서 제대로 독서를 못할까 싶었지만 정반대로 이북리더기를 사고 책을 더 많이 읽고 있다. 두꺼운 종이책을 들어가며 손목 아프게 읽었던 책도 이북리더기에 구입하면 가볍게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읽는다.
이 좋은 걸 난 왜 이제야 시작했을까 싶다. 새로운 것에 두려워하는 혹은 기존의 것만을 고집하는 내 성향에 대한 반성도 이어졌다.
그러면서 신문물을 발견한 뒤로 어느 순간에 책장에 가득 찬 종이책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1-2번 읽고 다시 꺼내지 않는 책들이 된 내 책장의 책들. 저것을 정리해서 책에 얹혀사는 삶이 아닌 나의 온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책들을 중고서점에 내놓기 시작했다. 중고서점에 책을 팔면서 조금 충격 받았다. 최근에 나온 신간도 중고로 내놓으면 가격이 원래의 값의 반값을 받기도 어렵다. 거기에 책을 깨끗하게 읽었음에도 책장에 꽂혀있다 보니 살짝 변색이 된 책은 아예 팔 수도 없었다.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어떤 도서는 심지어 판매불가 책이기도 했다.
무엇이든지 중고이면 가치가 떨어진다지만 책은 중고로 판매할 때 더욱더 심각했다. 온라인 서점의 등급이 플래티넘의 승급됐을 정도로 책을 많이 구입했지만 중고로 판매되는 책들의 가격을 보니 어쩐지 종이책에 대한 애정이 떨어졌다. 신간으로 살 때는 몰랐던 책의 중고세계를 알고 나니 종이책으로의 구입이 의미가 있나 싶었다. 앞으로는 이북으로 구매하는 것이 나의 공간도 차지하지 않고 되려 다시 읽고 싶을 때 편히 읽을 수 있지 않나. 온라인 서점에 대한 배신감까지 생겼다. 신간으로 팔아서 온라인 서점에서 산 책인데 중고로 팔 때는 판매불가인 경우가 수두룩이었다. 혼자 나름의 배신감들이 쌓여갔다.
내 방안에 책들을 정리하면서 나는 종이책과의 이별을 결심했다. 보통 신간이 출판되면 이북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종이책과 이북이 동시출판 되는 경우는 드문 편인 듯싶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종이책과 이별하려 한다. 물건을 줄이고 미니멀하게 살고 싶다는 요즘 나의 생각과도 일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