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속버스 터미널이 반포에 있지만 초등학교6학년 때는 동대문 평화시장 건너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있었다.
서울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공부하라고 전학시킨 아들을 보려고 어머니는 아들이 호박죽을 좋아한다고 커다란 늙은 호박을 횡성군 강림에서 가지고 오셨다.
토요일 오후 동대문고속버스에서 만나 보따리 큰 것은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호박을 내가 들고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대방역에 내려서 택시비가 비싸다고 생각하신 어머니는 걸어가자고 하셨다.
가다 쉬고 가다 쉬 고를 반복하다가 나는 성남중고등학교 올라가는 언덕길에 호박을 내동댕이 쳤다.
호박죽 먹고 싶으면 돈 주고 사 먹으면 되지 무거운 걸 강림서 원주까지 버스로 원주서 서울까지 동부고속으로 지하철로 대방역 대방역에서 성남중 야구장 담장 아래까지 이 무슨 개고생이냐고 했다.
어머니는 깨진 호박을 잘 추슬러 들고 대신 어머니가 이고 온 보따리를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호박보다 더 무거웠다.
집에 도착해서 할아버지가 왜 호박을 깼냐는 물음에 어머니는 고속버스서 내리다 다른 사람과 부딪쳐서 떨어뜨려 깨졌다고 백색 거짓말을 하셨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어머니가 지난 광복절날 돌아가셨다.
채널을 돌리다 예전 우정의 무대 그리운 어머니 편이 나와 울컥했다.
시골에서 아들이 호박죽을 어려서 잘 먹었다고 그 무거운 늙은 호박을 머리에 이고 다른 반찬을 보자기에 바리바리 싸서 강림에서 원주까지 동신운수로 원주서 동대문고속버스터미널까지 동부고속으로 동대문서 대방역까지 전철로 대방역에서 성남중고 야구장 담장 끝 전셋집까지 걸어서 호박과 반찬을 가져오신 걸 나는 무겁다고 성남중고 언덕길에 호박을 내동댕이쳐서 산산조각을 냈다.
어머니는 그걸 다 주워 모아 보자기에 담았다.집에 도착하여 할머니와 어머니는 깨진 늙은 호박을 껍질을 벗기고 잘 씻어 호박죽을 만들었다.
주인댁 성남고등학교 영어선생님께도 드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나 모두 호박죽으로 즐거운 한 끼를 해결했다.
광복절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펑펑 울었는데 늙은 호박을 박살 낸 것이 떠올라 더 울고 더 죄송했다.어머니 그곳에선 아들 걱정 마시고 편히 쉬세요.
친구들이 어머니가 치매라도 자주 찾아뵈라 돌아가시면 지주 못 간 것이 후회 된다고 경험에서 하는 말인데 무시했다. 정말 돌아가시고 나니 한동안 무력감에서 헤어나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