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동 S중학교 교훈이 의에 살고 의에 죽자였다. 일본군 대대장을 역임하고 해방 후 1 사단장을 하다가 북한과 명태 북어 교역을 하는 채병덕과 싸워 둘 다 보직해임 되었으나 이승만에게 아부한 채병덕은 복직이 되고 정의의 길을 간다고 버틴 김석원 장군은 복직이 안 되었다.
하여튼 이 나라는 정의의 길을 가는 사람은 고달프고 불의라도 권력자에 붙으면 편한 길을 간다.
대학생 시절 할아버지께서 이름은 모르는데 정의로운 사람 이야기를 해주시면서 절대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장손만 알고 있으라고 하셨는데 최근 유튜브를 보다가 알게 되어 소개한다.
유튜브에 허장환이라고 치면 나온다. 이분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시기에 광주보안부대 수사관이었다.
상관인 서의남 중령이 홍남순 변호사를 고문을 해서라도 김대중에게 1억을 받아서 전남대와 조선대 총학생회장에게 각각 오천만 원씩을 나누어주고 데모를 주동한 것으로 조서를 꾸미는 것에 홍변호사님은 여기 출신도 아니라서 두 학교총학생회장과 엮으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가 서의남 중령이 권총을 뽑아 머리에 대자 쏠 테면 쏴보라고 대들어 광주사태가 평정되고 난 후에 전역했다.
세월이 흘러 평민당 전성기 시기에 양심선언 형식의 기자회견을 했다. 이 나라는 해방 후 이승만이 친일 부역자 정리를 못해 친일파는 후손이 삼대 사대까지 떵떵거리고 살고 독립군 후손이나 이름을 숨기고 독립군에 군자금 보낸 후손은 가난하게 산다.
아무리 일본에게 사죄하라 아우성쳐도 사과 안 하게 만든 것은 우리 국민이다. 우리 국민이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뽑고 빅정희를 총 맞아 죽을 때까지 각하로 모신 것은 우리 국민이다.
더 이상 일본에 사과요구하지 말고 더 연구 잘해서 일본보다 잘 사는 나라 만들면 된다.
허장환 같은 의인을 찾아 국가 표창을 해야 다시는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허장환이 홍남순 변호사를 희생양으로 엮으려 하는 서 중령에게 다음 네 가지 이유를 주장했다.
첫째 홍 변호사는 이곳 지방대학 출신도 아니므로 학연관계가 없고 전남대 조선대 양 대학 총학생회장과 전혀 연관이 없다.
둘째 홍 변호사는 당시 무정부 상태인 광주에 대하여 어떻게든 최대한 희생을 막기 위하여 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수습에 나섰을 뿐이다.
셋째 광주사태는 초창기에 공수부대원들이 진입한 후 과잉진압을 함으로써 시민과 학생들이 살상되어 이에 흥분한 시민들이 들고일어난 것이지 사전 조직이 있어 광주사태를 일으킨 것이 아니다.
넷째 홍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정광진은 그를 심부름시켜 김대중으로부터 돈을 받아온 것으로 한 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며 수사상 무리가 있을 뿐이므로 달리 방향을 정해야 한다.
이 주장에 서 중령은 권총을 꺼내 허장환에게 향했다. 허장환이 쏠 테면 쏴봐 하고 대들어 허장환은 항명죄로 불명예 퇴직을 했는데 이제는 이것도 허장환의 누명을 국가가 해결해 줄 때가 되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