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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마음 하얀 마음 10

가경 선생 어록 1

by 함문평

가경 선생은 나의 할아버지라고 밝혔다. 그는 1911년에 태어나 1995년에 돌아가셨다.


당신이 돌아가신 후 30년이 되면 어록을 책으로 내도 된다고 하셨다. 왜 하필이면 30년일까 그때 여쭈어봤어야 하는데 장손이 미숙하여 그냥 넘겼다.


아마도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때가 되면 당신이 손자에게 하신 말씀을 일반인이 공감하는 사람이 더러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셨는지 모를 일이다.


솔직히 할아버지는 당신 연배에서는 외톨이였다. 다들 박정희를 흠모하고 반신반인으로 추종하던 시절에 그가 다카키 마사오로 창씨개명을 했고 만주에서 독립군 토벌하러 간다고 하면 신이 나서 앞장을 섰다고 하면 복덕방에 있던 노인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당신을 성토했다.


박정희가 최고 권좌에 있을 때는 일거수일투족이 뉴스였고 좋은 이야기만 해야지 흠결 된 이야기를 하면 바로 영장 없이 잡아갔기에 30년 후라고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어디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고 할아버지가 구술했던 것을 그것도 30년 후에 내놓으라고 하신 것을 28년 차에 옮기는 것이니 읽는 분은 한눈으로 읽고 한눈으로 버려야지 무슨 논문처럼 검증하자고 달려들면 후속 이야기는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박정희 모친은 백남의다. 여자 이름치고는 억센 이름이다. 가난했기에 박정희 아니라도 아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임신한 것을 알자 바로 낙태시키려고 아는 낙태 방법을 다 동원했다.


조선간장을 한 사발 마셔도 보고 섬돌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버들강아지 뿌리를 달여마시면 낙태된다는 말에 그 짓도 했으나 독종 박정희는 낙태가 안 되고 태어났다.


박정희를 임신했을 때 백남의는 심신이 피폐했다. 아홉이나 되는 대식구에 쌀이 없어 입에 풀칠하기도 벅찼다. 가난하면 근면함이라도 있어야지 남편은 술독에 빠져 빈둥대는 꼴이 보기 싫었지만 그 시절은 여자라서 참아야 했다.


박정희 형은 정신지체가 있었다. 자식이 장애인이 된 것이 엄마의 죄로 생각했다. 요즘이야 국가에서 장애인 등록을 하면 각종 의료혜택이 있지만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던 시절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집이 가난하면 가난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할 법도 하건만 아버지 박중빈은 술에 절어 지냈다. 박정희 피부가 까무 짭짭한 것은 태중에 엄마가 조선간장을 많이 먹어 그렇게 된 것이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민주공화당 창당시기 횡성군 조직책이었는데 당원 교육장에서 강사도 그 말을 했다고 들었다.


태중에 영양도 부실해 박정희는 체구도 작게 태어났다. 남아있는 사진을 보면 키도 작고 눈도 와이셔츠 단추구멍만 하고 피부도 간장 색깔이다.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가난한 농민의 집에서 5남 2녀 중 막내로 박정희가 태어났다. 자기 땅이 한 마지기도 없는 소작농에 술만 마시고 건달인 아버지에게 바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 백남의는 임신 기간에 낙태 시도에 대한 죄책감으로 박정희를 편애했다.

가경 선생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은 역대 헌법 중에서 제2공화국 헌법이 가장 민주주의에 어울리는 헌법인데 만들고 사용도 못하고 5.16 군사 쿠데타로 물거품이 된 것이라고 했다.


장도영이 어정쩡한 양다리 걸치기로 쿠데타가 성공했다.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학생들을 가르치니 학생들이 장교가 되어 12.12군사반란에도 적극 진압을 못하고 장군이란 것들이 어느 쪽으로 기우나 힘의 균형추 기우는 쪽만 바라보니 나라에 정의가 사라지고 눈치만 남았다고 했다.


토사구팽을 당했다고 장도영은 미국 가서 떠들어댔지만 장도영이 눈치로 장군짓을 한 결과였다.

김종필이 중앙정보부 정예요원으로 장도영 외 40명을 반혁명분자로 체포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장면 총리는 혜화동 천주교 수녀원으로 도망갔다. 윤보선 대통령은 가족들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청와대에 있었다. 대통령이면 대통령답게 국군을 명령으로 다스리지 못했다. 윤보신은 김일성이가 무서워 쿠데타 진압을 포기했다.


그 내막을 김일성이 몰랐으니 다행이지 알았다면 박정희 유신 독재보다 김일성이 조선반도 전체를 그때 독재했을 뻔했다.

민주주의 헌법을 잘 만든 제2공화국 대통령 윤보선 총리 장 면 참모총장 장도영 이 세 인간이 박정희 쿠데타 일등 공신이었다.

미국은 박정희의 사상이 걱정되었다. 혁명공약 1번으로 반공을 국시로 한다에 사후 용인했다.


미국은 가장 두려운 것이 조선반도가 정말 공산화되는 것이다. 먼 훗날 일이지만 박정희가 시해도고 1980년 끔찍한 광주사태에도 미국은 광주에서 시민이 얼마나 죽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고 오직 김일성에 의한 적화통일만 막고 미국을 배신하지 않는 정권이면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는 김종필이가 대통령이 되든 김대중이나 김영삼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상관없는 태도를 취했다. 그것은 40년 후에 비밀해제된 문서에서 확인되어 이미 언론에 다 공개되어 그것에 대한 언급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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