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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마음 하얀 마음 10

가경 선생 어록 2

by 함문평

박정희는 구미보통학교 1.2학년은 체구도 작고 공부도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는데 3학년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 시절은 성적 우수자를 담임이 반장으로 지명하면 반장이 되었다.


일본인 선생이 반장으로 지명하자 박정희는 그 반에서는 담임을 대리하는 권력을 쥐게 되었다.

일제의 조선반도 보통학교 교육 목표는 간단하게 표현하면 천황에 절대복종하는 황국신민을 만드는 것이었다.


교과목은 일본어 일본사 수신 창가와 번외로 조선어를 요즘말로 특별활동 수업으로 가르쳤다.

일제강점기 교육을 받은 아버지 경험담이 그 시절은 교사는 교육에 전념하고 학급통솔은 급장의 권한이었다.


박정희는 이문열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 수준이었다. 키가 작으니 키가 큰 반 아이를 껑충 뛰어 귀싸대기를 때렸다. 별명이 대추방망이였다.


박정희와 동급생이지만 나이가 많고 결혼까지 했던 동네 형 권해도를 따귀를 때렸다. 그런 박정희였다. 그 시절은 그랬다. 결혼한 아들이 대추방망이에게 맞아도 항변도 못하던 시기가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던 시기의 단면이다.


천황이 일본과 조선에서 통치권을 누리듯이 박정희 학급은 박정희 손아귀에 놓여 있었다. 급장의 권력은 절대적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권력에 절대복종하는 황국신민을 만드는 것이 조선에서 일본이 보통학교를 전국에 만든 이유였다.


황국신민교육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거이기에 인간의 개별 존업성이나 인격은 찾을 필요가 없었다.


어머니 백남의는 태아시절 박정희를 낙태시키려고 한 것에 죄의식으로 박정희에게 집착했다. 대구사범학교에 갈 때도 만주군관학교에 갈 때도 어머니는 말렸으나 박정희는 갔다.


일제강점기 사범학교 진학은 요새 서울대 가는 것보다 힘들었고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런데도 백남의는 아들 박정희의 대구사범 진학을 반대했다. 떨어지게 해달라고 칠성님께 빌었다. 만주군관학교에 갈 때도 늙은 어미를 두고 왜 그리 먼 곳을 가려고 하느냐 하면서 울었다.


박정희의 행동은 누구에게 상의 한번 없이 독자적인 결행이었다. 그의 행동에서는 윤리와 도덕 혈연의 정은 없었다.


박정희는 오직 자신의 판단으로 대구사범학교로 일본군 장교 양성기관 만주군관학교를 거쳐 일본육군사관학교를 갔다. 장교가 되어 조센징 토벌에 앞장서는 다카키 마사오가 되었다.


아직도 박정희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박정희는 근대화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친일파였고 독재자 역시 사실이다. 이 글은 남산의 부장들 박정희의 국가와 혁명과 나를 참고하였다.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아라는 읽기는 했지만 온통 박정희 찬양이라 반영할 내용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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