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 선생은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를 가기 위해 혈서를 쓴 것에 대하여 조선인 피가 아니라 일본인 피가 섞여도 너무 많이 섞인 것이 아닌가 의심하셨다. 하지만 의심만 했지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 기간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불경한 말을 할 수 없었다. 말하자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갈대밭에 소리치는 형상이었다.
김재규 총탄에 박정희가 시해되고 9일간의 애도와 국장이 끝나서야 손자에게 하신 말씀이 박정희는 박정희로 산 것보다 다카키 마사오로 산 것이 어울렸다고 하셨다.
얼마나 일본인 보다 더 일본인 다웠으면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해 일본 본토에 있는 일본 육사에 편입의 영광을 얻었겠는가.
1942년 만주군관학교 졸업식에 1등을 했다. 만주제국 황제가 수여하는 금시계를 부상으로 받았다. 만주일보에 박정희 사진까지 실리고 수석 졸업의 기사가 났다. 졸업생을 대표하여 답사에 일본 천황과 만주제국 황제에게 죽을 때까지 충성을 맹세했다.
춘원 이광수가 조선인은 더럽다고 했는데 다카키 마사오는 더러운 조선인에서 개화된 일본 천황의 총폭탄이 되었다. 졸업식 답사에서 대동아 공영권을 완성하기 위한 성전에서 다카키 마사오는 한 목숨 바쳐 시쿠라처럼 산화하겠습니다라고 불후의 명답사를 했다.
전쟁터에서 총알받이로 맥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천황폐하 만세를 사자가 표효하듯이 울부짖으면서 죽는 것이 사쿠라처럼 산화하는 것이었다.
다카키 마사오에 대한 일본 육사 교장 나구모 쥬이치가 평하기를 다카키 마사오 생도는 태생은 조선이나 천황폐하에 대한 충서임은 보통의 일본인 보다 더 일본인 다운 면모가 있습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칭찬을 했다.
박정희는 자신이 학생시절 여러번 읽은 책에 대해 밝힌 적이 있다. 나폴레옹 전기 이순신전 알렉산더 대왕전 플루타크영웅전 삼국지라고 했다. 모두 영웅전 일색이다.
고인이 된 김자옥이 유행시킨 공주병에 반대쪽에 위치하는 것이 왕자병 또는 위인병 주인공병이다. 박정희는 장유유서 개념이 없었다. 오직 자신이 최고이어야 했다. 그러니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유신을 만들어 종신 대통령이 된 것이다.
일본의 천황이 한국에서는 박정희 경지로 만든 것이 유신헌법이었다.
박정희가 만든 구호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학생 시절 그말을 엄청 멋있는 말로 알고 지냈는데 어느 날 가경 선생이 불렀다. 당시 나는 육군 중위로 신병교육대 인사 장교 겸 제식훈련과 화생방 과목의 교관을 하고 있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것은 거짓말이다. 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되는 것이고 되는 것은 되는 것이다. 장손이 인사장교면 돈으로 백으로 안 되는 것을 되게 해다라는 청탁이 들어올 것이다. 그럴 때 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 되어야지 안 될 것을 되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정말 그런일이 닥쳤다. 모그룹 손자가 군대를 병무비리브로커를 통해서 면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박노항 원사가 잡혀가서 입대했다고 하면서 편지 봉투에 10만원 자기압 수표를 가득 담아 주면서 입소식 날 수도통합병원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할아버지 가경 선생 말씀이 생각났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해주지마라. 단호하게 거저했다.편지봉투를 돌려주고 입소시켰다.
입소하고 훈련2중대 1소대에서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 후에 군의관이 소견서 첨부하여 국군통합병원에서 재검을 받고 일병으로 전역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필름 바꾸는 수법을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유사한 일은 중위에서 대위로 진급하여 지금 해운대 송정 신시가지가 된 곳이 과거에는 미국서 도입하는 각종 무기와 탄약을 전방으로 올려보내기 전 임시로 보관하는 탄약 및 무기를 보관하는 200 만평의 창고가 있었다.
여기를 경비하기 위해 3개의 경비중대가 있었는데 중대원이 현역은 47명이고 외부 경계병력은 방위병을 210명을 3개조로 나누어 70명은 주간 매일출근조 70명은 야간 홀수일 출근조 70명은 야간 짝수일 출근조를 휴가도 빠짐없이 보내면서 주간 야간을 균등하게 돌아가면서 근무명령서를 작성했다.
하루는 방위병의 애인과 그녀의 어머니 즉 예비장모가 면회실에 중대장을 면회 왔다기에 나갔다.
그녀는 자기 딸의 애인 강삼재 방위병인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3학년 휴학 중에 방위병 근무한다. 고시공부를 하는데 매월 주간 야홀 야짝 근무가 바뀌니 공부하는데 리듬이 깨지니 야간 홀수든 야간 째수든 고정시켜달라고 하면서 편지 봉투에 10만원 수표를 편지봉투가 터지기 직전까지 채워 나에게 시집 한권 속에 넣어서 주었다.
제가 현재는 군인 대위지만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미래 국어교사니 시집은 받겠습니다만 봉투는 돌려드립니다 하고 돌려주었다.
이 봉투 받고 그렇게 해줄 수도 있고 내 전임자나 인접 경비중대장이 그렇게 명문대 고시준비생 편의 봐주고 방위 근무하면서 고시 합격한 것을 중대장이 자랑으로 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저는 가경 선생 손자로 힐아버지 유언이 안 더는 일은 안 되는 것이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지마라고 유언을 하셨다. 더구나 고시에 합격하면 검사가 되거니 판사가 될텐데 고시 준비부터 정도의 길이 아닌 돈으로 박봉 26만 8천원 받는 중대장에게 중대장 봉급 이상의 돈으로 매수해 사법 시험에 합격한다면 그 검사 그 판사는 무전유죄 유전무죄 검사 판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봉투를 거절합니다리고 하니 아가씨와 예비 장모가 얼굴이 빨개져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