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군사반란과 12.3 차이

똥별과 민주교육이 된 대령에서 이병까지

by 함문평

12.12군사반란과 12.3 계엄 차이

영화 <서울의 봄> 모티브가 된 12.12군사반란은 1979년 12월 12일에 발생했다.

46년 후 2024년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었다. 12.12군사반란은 전두환을 정점으로 하는 하나회와 보안사가 주축이 되었다.


영화에서는 사실과 픽션이 섞여있어 재미와 울분이 섞여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통령의 결재도 없이 저지른 하극상이었으나 성공했다.


12.3 계엄은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육군대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계엄을 선포했다.


외형상으로는 정상적인 지휘계통으로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 없는 계엄이었다. 하지만 계엄군 출동부터 저항이 있었다.


특전사령부 707 특임부대가 헬기를 연병장에 시동을 걸고, 탑승이 완료된 상태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착륙하기 위해 P-73 공역비행승인요청을 수도방위사령부로 보냈다.


작전항공장교와 작전처장은 비행 목적과 착륙지점 좌표가 없다고 승인을 안 했다.

전화로 이미 수방사령관과 특전사령관이 협조된 사항이라고 승인을 요청했으나 끝까지 규정대로 빈칸 없이 서식을 채워 보내야 비행승인한다고 했다.


결국 계엄사령관 박안수 대장이 공역 승인으로 윤석열과 김용현, 이진우, 곽중근 등이 최초 약속한 시간보다 40분 늦게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우면 마지막 단추는 끼울 구멍이 없듯이 계엄이 실패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79.12.12군사반란은 잘못된 명령이라도 상명하복이 통했지만 2024년 12월 3일 명령은 대통령, 국방장관, 특전사령관, 수방사령관, 방첩사령관 명령이더라도 대령 이하 이병까지는 그 명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명령인가 불의의 명령인가를 나의 머리로 생각하는 군인이었다.


1979년 불의의 명령이더라도 상명하복의 시대와 달랐다.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방첩사령관, 수방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별 셋, 별넷은 윤 내란수괴에게 충성을 다짐했지만 수방사령부 작전처장, 수방사 1 경비단장, 특전사 1 공수여단 1 대장과 관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압수를 나간 대령, 중령, 소령 등은 똥별들의 명령을 차후 항명죄로 군법회의에 넘겨질 것을 각오하고 소극적 임무수행으로 계엄해제까지 시간을 끌었다.

우선 수방사 작전처장 김 대령은 707 특임부대 김현태 대령과 부대원이 헬기에 탑승 이륙 직전에 서울 하늘에 P-73이라고 그려진 공역에 비행승인을 요청했다. 당당하다면 비행목적, 착륙지점을 밝히고 요청해야 하는데, 비행목적과 착륙지점이 빈칸인 공역승인 요청을 보냈다. 김대령은 안흥찐빵이 아무리 맛있어도 앙꼬 없는 찐빵 먹어봤어? 수방사 작전항공장교를 혼내주었다. 육군 소령 고스톱으로 달았어? 특전사 작전항공장교에게 전화에 공문 양식에 맞게 빈칸 없이 보내지 않으면 공역승인 해줄 수 없다고 해?

혼이 난 수방사 작전항공장교가 특전사 작전항공장교에게 전화해 공역사용하려면 빈칸 없이 다시 보내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허비되면 김현태 일당이 23시에 국회의사당에 착륙해야 할 것이 23시 44분에 착륙했다. 그 지체된 44분이 야당 국회의원이 의사당 본회의실로 모이고,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는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특전사령관이 707특임부댜장과 1공수여단 1대대장 김형기 중령에게 4인이 1조가 되어 팔다리 한짝씩 잡고 끌어내라는 명령에 김 중령은 부하들에게 절대로 진입하지 말고 시민과 접촉하지 말고 일정 거리 유지하라고 했다. 오히려 시민에게 1대대 병력이 맞았어도 대응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날 김형기 대대장이 진압하라고 했으면 특수훈련으로 무장된 특전사 1공수여단과 707특임부대가 국회본희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3화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삼립은 삼립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