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 선생은 우리 작은 아버지가 월남전 참전을 지원했을 때 횡성한우 99마리 중에서 2마리 팔아 경비를 마련해서 맹호부대를 찾아가 겁 없이 사단장 면회를 신청했다.
지금이야 각 군부대 면회시설이 반듯한 건물이지만 그 시절은 그냥 부대 주변 나무그늘이 면회소였다. 왜 그 먼 나라로 전쟁터에 가려는 물음에 작은 아버지는 간단했다.
돈 벌러 갑니다.
군인 박봉으로는 철원에 땅 한평 사기 힘들어 지원했다는 말에 가경 선생이 청일면에 있는 산 2 정보 팔아줄 테니 그 돈으로 땅사고 파병지원 취소하라고 해도 그건 형 누나 나누어주라고 하고 월남으로 떠났다.
뉴스에 맹호부대가 이겼고 베트콩 사살된 뉴스만 나왔지 완전 철수 후에 동작동 파월 국군장병 묘역을 별도로 조성했다. 선생은 묘역을 돌아보고 작은 아버지 부하였던 병사 묘에 참배하고 눈물을 흘리셨다.
혼잣말로 이 많은 젊은이가 죽었는데 여태 이기는 뉴스만 내보낸 아나운서 아가리를 확 찢고 싶다고 하셨다. 확 찢고 싶은 아가리가 아나운서뿐이랴.
세월이 흘러 88 올림픽을 기념하는 한강다리 올림픽 대교를 건설하고 오륜기가 들어간 상징물을설치한다고 했다.
상당히 무거운 조형물을 높은 곳에 올리려면 높게 올라가는 크레인이나 민간 건설 타워를 사용해야지 왜 군용 비행기를 전시도 비상시국도 아닌데 사용해서 헬기가 추락해서 조종사가 사망했다.
그 당시 서울시장 어느 놈인지 당시 국방장관은 어느 놈인지 정말 개념 없는 인간이고 가경 선생 표현으로 천자문도 모르는 놈들이 직급만 높아서 생사람 잡았다고 하셨을 것이다.
생각 조금만 하면 서울시장이 민선 아니라 민선 할아버지 출신이라도 군용기를 전시가 아닌데 동윈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아요 한마디면 될 것을 국방장관 마친 놈이 서울시장 출마하려고 한 짓인지 헬기 조종사 유가족에게 조치나 사후라도 했는지 모를 일이다.
최근 해병대 최 상병 순직을 놓고 누가 잘못인가 왈가왈부가 많다. 군인복무규율 상 책임은 2단계 상급지휘자가 진다고만 했지 한 번도 2단계 책임자가 지는 일이 없는 나라다. 온천지 아랫사람에게 전가하지 상급자라고 나서서 해결하는 꼴을 가경 선생 손자는 구경을 못했다.
사례 하나 들자면 대위로 진급해서 통일전망대가 보이는 고성산 앞 북천강 강변의 불곰대대 중대장을 핬다.
이진삼 참모총장이 진지를 견고하게 작업하라고 호박돌 넣은 진지 폐타이어를 넣은 진지를 구축하고 상단에 떼를 덮으라고 했다.
우리 중대 거점 앞에 밭도 아니고 논도 아닌 묵은 경작지에서 병사들이 떼를 뜨다가 그 땅임자에게 걸렸다. 대뜸 중대장을 찾더니 경위서를 불러주는 대로 쓰라고 해서 썼다.
대대장에게 보고를 했더니 중대장이 알아서 해 너희 중대 진지 앞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그 땅 임자 말에 의하면 원래 논이었으나 물이 부족해 밭으로 변경하고 다시 오미자 과수원으로 변경했다고 오미자값을 평당 만원 씩 980평이라고 물어내라고 했다.
아니 대위 본봉이 288.000 원인데 몇 년치 봉급을 나 지금은 총각인데 앞으로 결혼도 해야 하는데 한 푼도 안 쓰고 그걸 물어내라는 이야기냐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경위서 쓴 거 사본 중대일지 뒷면에 오미자밭이나 천 평에 오미자 오십 그루 정도 있음 해서 사진까지 부착하고 이일로 문저가 있으면 내가 책임이니 연락하라고 후임 중대장에게 나의 차후 근무지는 부산 해운대 탄약사령부 3 경비 중대장이라고 알려주고 떠났다.
세상에 경비중대장 하는 중에 8군단 군사법원 출두명령서가 왔다. 창장님 돌아가셨을 3사 4기인지 5기인지 정 병 모 중령에게 보고 드리고 선임 소대장에게 없는 동안 직무대리 잘하라고 하고 양양 군사법원 다녀오겠습니다 했더니 정 중령님 왈 야 보병 놈들은 상급 지휘관이라는 게 명령만 내리지 책임은 안 지는 놈들이야 하시면서 5만 원 신사임당이 없던 시절이라 십만 원 수표 두장을 주시면서 수표로 주면 감찰장교가 추적 때문에 안 받을 수도 있으니 가다 은항 만나면 현금으로 교환하 편지봉투에 담아 현장조사 따라붙는 장교 전해주고 십만 원은 끼니 거르지 말고 밤사먹어 하시는 말씀에 눈물이 났다.
군사법원에서 묻는 말에 답변을 하고 판결문은 문서로 송달한다고 했고 정말 소령 한 명이 현장조사 따라붙었다 그 소령은 공정하게 한다고 밥도 각자 계산하고 봉투도 안 받으려는 것을 이건 내가 드리는 것이 아니고 부산 탄약사령부 창장님이 경비중대장 자리 비우고 법원 판결에 다시 자리 비우면 창장님이 힘들어진다고 상급 지휘관 지휘활동비 집행이니 받아리 안 받고 반납하면 병기병과 중령에게 보병 대위가 작살난다고 하니 받았다.
군사법원 판결문이 국고변상 80만 원이 넘어가면 대위에서 소령진급 불가인데 국고변상 50 만원으로 다른 동기 1차 진급에 함께 하지는 못했어도 익년도 2차 진급을 해서 가문에 첫 영관 장교라고 중의 시절 경로당에 한산도 1000갑 보낼 때만큼 좋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