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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프라 사운드(Infra-Sound)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4년 5월 4일 영변의 5MWe 원자로에서 사용 후 연료봉 인출 작업을 했다. IAEA와 사전협의 없이 무단으로 8,000개의 폐연료봉을 6월 15일까지 모두 꺼냈다. 폐연료봉 인출사태로 대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물 건너갔다.
미국과 한국은 유엔안보리에서 제제와 군사적 대응 태세를 병행하였다.
한편, 미국은 영변 핵시설에 대한 타격을 가하기 위한 작전계획 502X를 만들었다. 이 작전계획은 F-117 스텔스 전투기나 B-2 스텔스 폭격기를 투입해 2-3 일 단기간에 재처리 시설을 포함한 영변의 핵 단지를 폭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게리 럭은 미군과 미군의 가족을 포함한 수만 명의 인명피해와 1,000억 달러 예상되는 전쟁 비용을 보고하여 작전계획 5026의 실행을 막았다.
미국은 6월 초부터 유엔안보리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재결의안을 준비했다. 6월 15일에는 3단계로 구성된 대북한 결의안 초안을 제시했다.
반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유엔안보리가 제재결의안을 채택하면 이것을 선전포고로 간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은 고도로 긴장된 분위기에서 결의안 초안을 제시했다. 전쟁 일보 직전의 위기 상황에서 지미 카터(Jimmy Carter)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다.
풍전등화 위기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 카터 일행은 6월 15일 판문점을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6월 16일 김일성 주석과 카터의 회담에서 몇 가지 합의했다. 카터는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3차 고위급 회담이 성사되기 전까지 핵개발 계획을 동결할 것과 IAEA 사찰단을 추방하지 말고 그대로 영변에 체류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대로 김일성 주석은 카터에게 미국이 경수로 지원에 협력할 것을 요청했다.
한국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전 한마디 언질도 없이, 김일성 주석과 카터의 회담 성과는 전 세계 톱뉴스로 긴급 타전되었다.
부수적으로 김일성이 조건 없이 김영삼 대통령을 7월 25일 평양에서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분단 이후 첫 정상회담이 예정되었다.
김일성은 김영삼 대통령이 평양에 오는 역사적인 만남에 선물을 고심했다. 고심 끝에 김영삼 대통령에게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에서 순도 높게 제련된 철강을 5만 톤을 방북선물로 줄 생각이었다. 묘향산 별장으로 김정일과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책임자 이강선을 불렀다. 김일성이 철강 5만 톤을 남조선 김영삼 대통령이 평양에 오기 전에 해주항에 선적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빨치산 시절부터 거짓말을 모르고 직언을 해온 이강선이고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최초 명칭이 그의 이름을 넣어 강선제련소로 불렸다.
“수령님, 불가능하옵니다.”
“아니, 조선에 철광석이 조사된 매장량이 얼마인데 5만 톤을 준비 못하나?”
다그치자 철광석은 산더미처럼 많으나 전기가 없어서 공장 가동을 못한다고 보고했다. 그 말에 김일성이 쇼크를 받아 심근경색을 일으켰다. 헬기로 바로 봉화진료소로 갔더라면 살렸을지 모르지만 그날 묘향산에 억수로 비가 내려 헬기를 부를 수가 없었다. 영생불멸할 것 같던 김일성 수령은 8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 시신을 부패하지 않게 처리하여 금수산 의사당에 영구보존했다. 영생불멸의 수령을 그렇게라도 만들어야 김정일의 면이 섰던 것일까? 사망하기 2주 전에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회담이 있었다.
카터는 협상을 마친 후 워싱턴에 전화를 했다. 그 시간 백악관에서는 클린턴 대통령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주요 의제는 유엔안보리 제재 승인 문제와 한반도 주변에 미군 병력 증강 배치 문제였다. 카터의 전화가 오기 전에 클린턴은 유엔안보리 제재를 최종 승인했다. 병력 증강 배치 문제를 토론하던 중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카터는 전화를 받은 갈루치(Gallucci, Robert)에게 김일성이 핵 개발 동결 조치에 동의했으며, IAEA 사찰단의 영변 체류도 허락했다는 것을 전달했다. 3차 북·미 고위급 회담이 곧 재개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견해를 밝히며, 북한 측에 이에 대해 답변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 카터는 CNN 생방송으로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갈루치(Gallucci, Robert) 보고를 받은 클린턴 대통령과 회의 참석자들은 큰 충격과 혼란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CNN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진 카터의 메시지는 상황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백악관 회의에서 불만을 토로해도 카터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숙의 끝에 백악관은 북한의 핵 개발 계획 동결에 대해 영변 5MWe 원자로에 새로운 연료봉을 장입해서는 안 되며, 이미 인출 폐연료봉은 재처리하지 않을 것을 카터를 통해 북한에게 요구했다. 카터는 난색을 표명했어도 북한은 이 제안을 즉시 수락했다.
17일 카터는 김일성을 다시 만났다. 한국전쟁 중 전사한 미군 유해 발굴 사업을 허용하는 것과 남북정상회담을 전제조건 없이 하겠다는 김일성 주석의 답변을 들었다. 남북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1994년 7월 25일 하기로 했다. 이후 김일성은 남북정상회담 준비에 열중했다. 그러던 중 7월 7일 밤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7월 8일 새벽 2시에 사망했다.
조선중앙TV 이춘희 아나운서의 비장한 목소리가 김일성 서거 소식을 알렸다.
‘ 1994년 7월 8일 2시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급변으로 서거하셨다는 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온 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알린다.’ 이춘희 아나운서는 김일성 수령 살아생전 보통남자 아나운서 열 명과도 바꿀 수 없다고 칭찬받던 그녀라 이날의 서거 소식을 알리는 방송은 더 침통했다.
(이 하 생 략)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일대에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가 있었다. 군대 은어로 ‘개나리’ 부대라고 했다. 정식명칭 제3야전공병여단 예하 서부전선 땅굴시추 부대라는 명칭이 있었지만 ‘개나리 부대로 불렸다.
이유는 시추공을 굴착하는 작업을 땅이 얼면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추부대는 김장철이라고 하는 11월 말이 되면 모든 야외 굴착을 금지하고 부대로 굴착기를 끌고 들어와 영내 교육을 하였다. 부대 위병소와 탄약고 경계근무만 하고 강당에서 정신교육을 하거나 연병장에서 전투체육을 했다.
땅굴 시추 장비가 고가의 공병 장비라서 부대장은 공병 대령 중에서 장군 진급 심사 대상이 지난 고참 대령이 맡았다. 실질적인 임무는 땅굴탐지라 탐지는 정보 및 작전업무라 정작과장은 정보나 보병 중령으로 보직했다. 정작과장 중령 아래 정보장교 대위와 작전장교 대위가 보직되었다.
정보장교는 최재림 대위, 작전장교는 손석우 대위였다. 땅이 얼면 시추작업을 할 수 없기에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는 부대가 한가했다. 겨울이 지나고 개나리가 노랗게 피는 봄이 되면 시추부대는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했다.
1994년 7월 8일 개나리 부대에도 김일성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이날도 최재림 대위와 개나리 부대 수색 정찰조 20여 명은 작전지역 내 그날의 수색 정찰 시추공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날씨는 덥고 수색 정찰로는 한동안 다니지 않은 통로를 이용하라는 상급 부대 지침에 따라 이동하다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병사들은 많이 지쳤다. 서부전선 시추부대의 책임 구역은 좌측은 5사단 열쇄 전망대에서 우측은 6사단 산명호수까지다. 따라서 개나리 부대가 수색 정찰하는 날은 협조 공문을 5사단과 6사단 양쪽 부대에 보냈다. 아침과 저녁은 개나리 부대에서 먹고 점심은 5사단이나 6사단 수색 정찰 중간 부대에서 먹어야 했다. 장병들 점심을 굶지 않게 하려면 급식명령서와 보급정지 서류를 해당부대로 사전에 보내주어야 했다. 개나리 부대는 3개 소대로 편성되었다. 3개 소대가 소대장조와 부소대장조로 나누어 수색정찰을 실시했다. 정보장교 최재림 대위와 작전장교 손석우 대위는 교대로 동반 수색을 했다.
김일성이 사망하자 북한은 애도 기간을 정하고 조선중앙TV를 통해 인민들이 통곡하는 모습을 매일 방영했다.
개나리 부대 병사들이나 동반 수색 나가는 정보장교, 작전장교도 타성에 젖어 의무감으로 수색 정찰을 했다.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이 될 무렵 정보사령부에서 대외비로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 공문이 왔다. 정보사령부 지하벙커에서 비밀회의를 할 예정이니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장이 참석하라는 공문이었다.
참석 지시는 땅굴시추부대장이었으나 공병 대령 이흥섭 시추부대장이 정보업무는 부대장보다 정작과장 조성복 중령이 더 잘 안다고 대리 참석 시켰다.
참석자는 정보사령관 육군소장 조필원, 정보처장 해군 대령 송준희, 정보분석과장 공군 중령 최영훈, 정보분석장교 육군 소령 안춘호,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 정작과장 이흥섭 등이었다.
비밀 회의실에는 대형 태극기가 정면에 걸려있고, 태극기 우측으로 김영삼 대통령 사진이 걸려있었다. 태극기 좌측으로는 역대정보사령관 사진이 모서리를 지나 길게 걸려 있었다. 회의 참석자들이 모두 도착하자 오늘의 발표자 수집처장 김홍기 대령이 앞에 나와 정보사령관에게 회의 시작 보고를 했다.
“충성! 수집처장입니다. 발표하겠습니다.”
김 대령의 발표는 전방지역 동·서부전선에 6,000 여 개의 시추공을 이용하여 북한의 핵실험을 탐지하는 암호명 ‘인프라사운드(Infra-Sound)'를 만들고 동부 전선은 제1야전공병여단 예하 제 1 땅굴시추 부대가 서부전선은 제3 야전 공병여단 예하 제3땅굴시추 부대에 수집 임무를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탐지는 주 2-3회 부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주간 정찰보고는 매주 금요일 전령이 직접 정보사령부 수집처로 제출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충성!“
김홍기 대령의 발표가 끝나고 자유토론을 하였다. 먼저 조필원 정보사령관이 말문을 열었다.
“김홍기 수집처장 발표 잘 들었습니다.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만 과연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첩첩 산중에 지하 갱도를 굴토하고 실험하는 것이 우리의 땅굴 발견을 위해 만든 시추공에 얼마나 탐지가 가능한가? 의문이 듭니다.”
“예, 사령관님 일본은 지진이 많이 발생합니다. 지진이 나기 전에 개미나 물고기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것을 보고 과학자들이 연구를해본 결과 사람은 20Hz 이하의 극저주파를 들을 수 없지만 개미는 30Hz 아하 극저주파에 반응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지진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굉음도 나지만 그 전에 미세한 진동이 지진 전과 후에 상당한 기간 잔존한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연구 결과입니다. 인프라사운드는 최초 자연 지진과 쓰나미를 연구하기 위해 만든 민간지질연구기관입니다만 미국 국방성이 세계 핵개발이 의심되지만 물증이 없는 것을 탐지하고자 민간연구기관에 일정한 사용료를 내고 데이터만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의 핵 위협이 의심을 가지만 북한의 발표가 얼마만큼 진실이고 얼마만큼이 거짓인지를 알 수 없기에 이런 방법을 동원한 것입니다. 미군이 하늘에 정찰기와 인공위성으로 하루 10회 이상 북한 상공을 촬영하고 지나가지만 지하의 시설물과 장비는 촬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정보를 투입하자니 미군은 특수부대 요원을 투입하려해도 외모부터 바로 북한 주민에 걸릴 것이고, 한국 특수부대는 정치적으로 7.4 남북공동성명에 상호 간첩행위를 할 수 없게 되어 특수부대를 파견 못하고 있습니다.”
“정보처장 조성복 대령입니다. 그럼 동부전선과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에서는 20Hz이하의 극저주파를 탐지할 수 있습니까?”
“탐지할 수 있다고 확정적인 말씀은 못 드리고, 일단 시추공에 극저주파를 탐지할 수 있는 미국에서 공수해 온 신호 발생 장치를 부착하고 자연 지진이든 인공지진이든 탐지를 해봐야 알 수 있겠습니다.”
“정보 분석 장교 안춘호 소령입니다. 그럼 수집된 저주파 분석은 누가 합니까?”
누가 분석을 해? 질문한 안춘호 소령이 직책이 정보 분석 장교니까 당신이 해야지? 하는 사령관 말씀에 참석자 모두가 웃었다. 수집처장이 답변을 했다.
“그 분석은 안춘호 소령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2개월 동안은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한국지질자원연구소에서 지진연구로 일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신 강영수 박사가 정보분석실의 육. 해. 공 정보분석 장교들을 대상으로 지진과 저주파 극저주파에 대한 특강을 해주실 것입니다. 그때 사령관님과 오늘 이 회의에 참석하신 분들을 강 박사님 모시고 지진과 핵실험으로 발생되는 인공지진에 대해 공부를 하는 시간을 마련하겠습니다.”
“서부전선 땅굴 시추부대 정작과장입니다. 인프라사운드는 정보사령부가 종결입니까?”
“아닙니다. 미군은 미 501정보여단의 한국 파견관이 주1회 서부전선 시추부대와 동부전선 시추부대를 격주로 방문할 것입니다. 정보사령부의 인프라사운드 정보 분석보고는 정보본부를 경유 한미연합사령부 정보융합실로 보고되고 정보사령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도 보고할 것입니다.
“기대되는군요.”
“예, 더 이상 질문이 없으면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충성!”
미국은 김일성 사망 이후 KH-9와 KH-11을 교대로 500 킬로미터 상공에서 하루 2회 북한 영공을 촬영하던 것을 4회로 늘려 총 8회 촬영했다. 또한 오산 공군 기지에서 이륙한 U-2전략 정찰기는 휴전선 북방 24밀로미터 상공을 동세서 서러 서에서 동으로 비행하면서 휴전선 근접 군사 시설물과 지상군 무기의 이동 여부를 촬영했다. 일본 오키나와 기지 격납고에서 미끄러지듯 나온 RC-135정찰기는 대한해협을 건너 독도 상공을 우회하여 휴전선을 연하여 횡단 정찰을 하고, 중간 급유가 필요할 대만 오산 기지에 착륙해 연료 보충 후 다시 이륙했다. RC-135는 영상촬영뿐만 아니라 북한의 다양한 종류의 통신장비신호를 비행을 하면서 신호정보를 수집해 한미합동으로 암호해독을 해서 그날그날 훈련정보를 정보보고를 했다. 서해안 백령도에서 휴전선 남방으로 주요 고지마다 설치된 고성능 안테나에 수신된 감청정보는 777(쓰리세븐)부대의 전문 판독 군무원에 의해 정보문서로 전환되었다.
일 최재림 대위는 퇴근하여 장교숙소에 군복도 벗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동기들은 2년 전에 전역해 사회로 나갔는데 대학시절 육군 장학금을 받은 것 때문에 5년차 복무 중이라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천정 벽지 무늬를 보다가 눈을 감았다. 대학 3,4학년 시절 군사훈련부터 소위 중위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때 장교 숙소 관리병이 방문을 두두렸다.
“충성! 관리병 일병 이흔정입니다!”
“무슨 일이야?”
“개나리부대장 당번병 전화를 받았습니다. 최 대위님을 부대장님이 찾으신다고 사복으로 갈입고 위병소로 오시랍니다.”
“알았다.”
최 대위는 신속히 군복 대신 사복을 입고 위병소로 향했다. 빠른 걸음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 시간에 부대장님이 찾는 것은 저녁식사를 하자는 뜻이었다. 그가 위병소 옆에 서서 기다리자 개나리부대 3727부대 1호 지프가 그 앞에 정차했다. 개나리 부대장 이흥섭 대령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지프차 뒷좌석에 탔다.
“ 최 대위 많이 기다렸나?”
“ 아닙니다. 한 3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 사실 아침에 말하려다가 다들 퇴근한 후에 부른 것은 부대 내 육사, 3사, 학사, 간부후보생 출신 장교들이 있는 상태서 최 대위만 지명해서 식사 한다고 하면 R. O. T. C만 편애한다는 소리 나올까봐 지금 연락했는데 다른 선약을 깬 건 아니지?”
“예.”
차량은 신탄리 역을 지나 백마고지 근처의 백마순두부집으로 향했다. 이집은 철원에서 소문난 맛 집으로 예약 없이 갔다가는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이흥섭 대령이 예약을 했기에 안방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운전병은 홀에서 식사를 하고 부대에 들어가 있다가 연락을 하면 나오라고 했다. 이 대령과 최 대위 단둘이 순두부전골을 사이에 두고 술잔을 기울였다.
“최 대위, 동기와 후배들이 전역하고 혼자 남은 기분이 어때?”
“처음에는 출근하기 싫었는데, 내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자 생각하니 편합니다.”
“월급만큼 일해서 되겠어? 최소한 3 배는 해야지 조직이 유지되지?”
“단장님은 어디서 동기생들 전역하고 장기로 남으셨습니까?”
“양구에 있는 공병 대대였는데, 대대장이 나를 소대장 10 개월만 시키고 바로 군수장교로 보직을 부여해서 동기생들 전역 날에도 야근을 했다.”
“단장님 위관 장교시절에는 장기복무나 복무연장이 합해 몇 명이나 되었습니까?”
“ 장시 복무는 20 명 복무연장이 150 명 총 170 명이었지.”
“예, 그러셨군요. 저희는 복무연장과 장기복무자 합하면 600 명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인원에 비해 진급이 안 되니 문제야?”
“예, 육사가 워낙 많은 인원 진급하고 남은 자리를 3사 학사 학군 경쟁하고 있으니 큰 문제입니다.”
“최 대위 장기 안하길 잘했다. 그 머리 그 성실함이면 사회에서 성공한다.”
“예, 전역해서 무엇을 할까? 고민입니다.”
“지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중요하니, 좋은 아이디어 내서 사업하기 바란다.”
“예.”
“야, 어서 먹고 마시자 음식 앞에 두고 서론이 너무 길었다. 최 대위 건강과 사회 나가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단장과 술을 마시고 일어나기 전에 단장이 최 대위에게 휴가를 다녀오라고 했다. 특별휴가를 준 것이다. 단장 배려로 5일간의 특별휴가를 얻어 강원도 횡성군 최 대위 고향집을 방문했다.
월동준비를 마친 개나리부대장 이 대령은 지휘통제실에 서부전선 시추부대 중사 이상의 간부를 소집하여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이 대령이 말문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서부전선 시추부대 중사 이상 간부를 모이게 한 것은 월동준비만 하면 내년 봄 개나리가 필 때까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위병소와 탄약고 경계근무만 서고 세월을 보내는데, 좀 더 활기찬 병영생활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려 하니 허심탄회하게 생각나는 대로 말하기바랍니다.”
부대장의 모두 발언이 끝나자 작전장교가 의견을 말했다.
“ 작전장교 손 대윕니다. 저는 부대에 전 장병을 대상으로 동계기간 독서 감상문을 모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좋은 생각인데. 책은 어떻게 확보해?”
“예, 철원군청과 연천군청에 협조하여 이동도서관을 부대에 운영해달라고 하거나 부대원 신분증을 회수하여 희망도서를 사전에 받아 대표로 간부가 차량 배차하여 도서관 출장업무를 다녀오면 가능하겠습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다른 의견 있는 사람?”
“예, 정보장교 최 대윕니다. 저는 좀 엉뚱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우리부대가 겨울철에 새롭게 시추공을 뚫는 일은 할 수 없지만 이미 굴착한 시추공에 대하여 뭔가 지하 미상 음이나 미세한 지진파를 탐지하거나 수집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한다면 동절기에도 부대활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역시 정보장교답다. 정작과장 공문 만들어 정보사령부에 보낼 준비해봐. 서부전선 시추부대가 새롭게 시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굴착한 시추공에 정부사령부가 예산이 있다면 지하 미세한 음파나 지진파를 탐지하거나 수집할 장치를 설치해주면 우리 부대서 정찰보고서를 올리겠다고 해봐. 정보사령부도 좋아할 거야”
“예, 알겠습니다.”
“199X 년 11월 15일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장 이흥섭 대령의 명의로 공문 한 장이 정보사령관 조필원 소장에게 전달되었다. 문서는 대외비 문건이었다.
(대외비)
수 신 : 정보사령관
참 조 : 정보처장/수집처장
제 목 : 서부전선 시추공을 이용한 지하 소리 청취 시스템 설치 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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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시추부대 동절기 부대 운영 실태)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는 부대 별명이 개나리 부대인 것처럼 봄부터 가을까지 지하 땅굴 발견을 위한 시추를 하지만 11월부터 다음 년도 3월까지는 땅이 동결된 관계로 영외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2. 개선 방안
신규 땅굴 시추공을 굴착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이미 굴착된 시추공에 지하의 미세한 음이나 지진 파동을 탐지하거나 수집이 가능한 장치를 한다면 동절기에 주기적인 수색 정찰로 지하의 미세한 지진 파동이나 저주파 탐지로 북한의 지하 핵실험이나 자연적인 지진을 조기에 탐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건의 사항
정보사령부 정보예산 중에 1995 회계연도 미사용 예산이 있다면 미상 지하 소리 지진파 청취시스템(가칭)을 서부전선 시추부대에 시험적 설치 운영할 것을 건의합니다.
199X. 11. 15.
서부전선 땅굴탐지 시추부대장 공병 대령 이 흥 섭 (서명)
199X년 정보사령부는 미사용 정보예산 5 천만 원 정도를 국고로 반납할 예정이었다. 서부전선 시추부대장의 보고를 받은 정보사령관 조필원 소장은 정보처장과 수집처장을 사령관 집무실로 불렀다.
“충성! 정보처장입니다. 사령관님 부르셨습니까?”
“수집처장은?”
“예, 곧 온다고 했습니다.”
“충성! 수집처장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래, 정보처장과 수집처장을 부른 것은 금년도 정보예산 중에 불용액 5 천만 원을 국고로 반납하려고 했는데, 오늘 이런 공문을 받았어. 이거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장 이흥섭 대령이 보낸 공문인데, 처음 읽을 때는 무슨 도깨비 소리 하나 황당했는데, 다시 읽어 보니 일리가 있고 정보장교도 아닌 공병장교가 참신한 아이디어로 보여 정보처장과 수집처장을 부른 것이야. 이거 읽어 봐!”
“예, 저도 읽어 보니 타당성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예, 저는 이 아이디어를 보고 솔직히 정보장교로서 부끄러웠습니다. 왜 진작 이런 착안을 못했을까 하고요.”
“예산처장에게 정보예산 반납을 중지하라고 지시할 것이니 수집처장은 시추공에 어떤 장비를 넣을 것인가 수집부서 장교들과 의논하여 기종을 선정하고 정보처장은 금년은 불용예산으로 시험 운영하고 내년부터는 정규예산에 반영되도록 정보처 사업 편성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정보사령관은 예산처장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예산처장입니다.”
“그래, 사령부 정보예산 5천만 원 국고 반납하기로 한 것 반납하지 말고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 요구 사항 들어주도록 해.”
“예, 정보처장이 전화로 알려주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실수 없게 처리하게나.”
“예, 알겠습니다.”
수집처장은 수집처의 장교들을 모두 모이도록 하고 회의를 했다.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내 말이 타당한지 아닌지 듣고 평가하기 바랍니다. 서부전선이나 동부전선이나 땅굴 탐지를 위한 시추공이 여러 개 있는데. 이곳 몇 곳을 선정하여 지하에서 울리는 미세한 소리 탐지나 지진 파동 등을 그래프로 그릴 수 있는 장치를 한다면 우리나라 남이나 북이나 지진파나 지하 핵실험의 미세한 파동 극 저주파를 탐지할 수 있겠지?”
“그런 아이디어를 처장님이 내신 것입니까?”
“아니, 방금 전 사령관님이 불러서 다녀왔는데,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 이흥섭 대령이 그런 공문을 보냈더군.”
“아주 좋은 아이디어고 집음 장치를 부착한다면 지진이나 지하 핵실험을 조기에 탐지할 획기적인 시스템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수집 장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오늘부터 3 일 이내 땅굴탐지 시추공에 어떤 장치를 부착하면 좋은지 각자가 자료 수집하여 금요일 오후 3 시에 이 자리서 다시 회의를 한다. 이상!”
정보사령관은 비서실장을 불러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 방문하겠다고 그 부대에 알려주고 사령관 시간계획에 반영하도록 했다.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 정보사령관이 방문한다고 하니 그 부대는 비상이 걸렸다. 병사나 간부나 모두 빗자루 걸레를 들고 부대 대청소를 하였다. 위병소부터 지휘통제실까지 이동로상의 청소와 부대 울타리 보수와 도색도 하였다.
“부대 창설 이후 정보사령관이 땅굴 시추부대 방문은 처음이지?”
“그래, 내가 땅굴시추부대 창설요원인데 3 군사령관이나 육군 공병감은 매년 다녀갔어도 정보사령관이 우리 부대 방문은 처음이다.”
“이게 다 정보장교 최 대위 때문이야.”
“아니, 장기 복무자도 아니고 5 년 3 개 월 복무 연장자가 조용히 자리나 지키다 전역을 하지 뭐 잘났다고 그런 소릴 해서 부대원 전체를 이런 개고생하게 만드는지 모르겠어?”
“정말 최 대위는 보통 정상인의 머리가 아닌가봐. 땅굴 탐지 시추공에 무슨 장치를 한들 뭐가 나온다고 우리들이 이런 개고생을 하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추운 날씨에 수색정찰하면 병사들 얼마나 고생되겠어?”
다들 한 마디 씩 투덜거리며 부대 주변 청소를 했다.
강원도 철원군 일대의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 정보사령관 차량이 도착했다. 전방에서는 지프 차량에 빨강 바탕에 은색의 별판을 달고 부대를 방문하는 장군만 봤는데, 정보사령관 육군소장 조필원 차량은 일반 그랜저 승용차에 차량번호 서울 55 에 1001 호 차량이었다. 위병소 근무자는 충성! 소리가 지휘통제실에서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경례와 받들어총을 했다. 부대 현관에는 땅굴시추부대장 이흥섭 대령과 주요 참모들이 도열해 정보사령관을 맞이했다.
“충성! 시추부대장입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래, 이 부대 창설 이후 정보사령관 방문이 처음이라며?”
“예, 그렇습니다. 3 군 사령관과 육군 공병감은 매년 업무보고로 한번 이상은 방문하는데, 정보사령관은 처음입니다.”
“이 대령이 보낸 공문 받아보고 처음에는 이 무슨 도깨비장난 치나 했어. 다시 천천히 공문을 읽어 보니 정말 참신하고 실현 가능한 이야기로 생각되더군. 그래서 정보처장과 수집처장을 불러 같이 공문을 앞에 놓고 회의를 했지. 그리고 오늘 방문을 온 걸세.”
“방문을 환영합니다. 지휘통제실로 가시죠?”
지휘통제실에는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 중사 이상의 간부가 다 모여 있었다. 정보사령관 조필원은 간부들을 대상으로 격려의 인사를 했다.
“정보사령관이 땅굴시추부대에 시간적 여유 없이 방문해서 여러분들에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급하게 방문한 것은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서 보낸 공문이 정말로 창의적이고 정보 사령관으로 현장의 시추공 상태와 밀도 그리고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의 위치를 확인하고 미래의 정보 수집을 위한 현장방문이 필요했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하여튼 별명이 개나리 부대지만 여러분은 새로운 첩보 수집 부대원이라 생각하고 동절기에도 열심히 근무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보사령관은 지휘통제실을 나와 이 대령의 집무실로 향했다. 정보사령관과 이 대령 둘만이 독대를 했다.
“이 대령은 공병 장교인데 어떻게 시추공에 저주파나 극 저주파 탐지장치를 부착할 생각을 하였소?”
“예, 그건 제 아이디어가 아니라 정보장교 최재림 대위 생각입니다.”
학군장교 대부분이 지난 6월 30 일 전역을 하였는데, 최 대위는 5 년 3 개월 근무자라 부대 남게 되었습니다. 간부들 모아 놓고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과정에서 최 대위의 그런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런 생각을 한 최 대위는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 근무할 것이 아니라 정보사령부로 전보시켜 일하면 안 될까?”
“안 됩니다. 사령관님 최 대위가 아이디어 제안자라서 여기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서 시추공에서 수집 장비로부터 수집되는 소리와 저주파를 종합하여 정보사령부로 보고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군!”
“일단 아이디어만으로도 정보사령관 표창감이니 정보사령부로 최 대위와 정작과장 2명의 장교에 대하여 공적조서를 정보사령부 인사처로 보내시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보사령관이 전방 시추공 정찰을 다녀가고 수집부서에서 기술자들이 와서 시추공 하단에 집음 센서를 부착했다. 그것은 지하 시추공에 진동이 탐지되면 신호파장을 보내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 지휘통제실의 주 통제장비에 저장되었다.
5 개의 시추공에 장비를 설치하고 시추공 지상 1 미터 위치로 다른 시추공과 구분하기 위하여 녹색 깃발을 부착했다. 한겨울 눈이 많이 내려도 녹색 깃발은 백색과 구분이 잘 되었다. 매일 매일 개나리 부대 소대장조와 부소대장 조가 교대로 시추공을 수색 정찰했다. 매일 관측일지를 작성했다.
금요일이면 한 주 동안의 관측일지를 복사하여 정부사령부로 직접 전령을 운용하여 제출했다. 최 대위가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를 떠나는 199X년 6월까지 서부전선 시추부대의 5개의 시추공에서 특이 사항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최 대위는 199X년 6월 30일에 5년 3개월의 군대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이 통치하던 199X년 11 월 정보사령부는 극비작전을 수행했다. 정보사령관 육군 소장 조필원 장군은 정보사령부 지하 벙커에 주요 정보장교를 불러 회의를 하였다. 정보처장 대령 정율화, 수집처장 해군대령 김홍기, 정보 분석 과장 육군 중령 최영훈, 정보분석 장교 육군 소령 안춘호 등이 참석 대상이다. 정보사령관은 회의에 앞서 당부의 말을 먼저 했다.
“여기 있는 여러분은 군인입니다. 밖에서 정치적 사회적으로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구호가 바뀌더라도 우리 군인은 정치와 무관하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햇볕정책에 짓눌려 첩보 수집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되고, 국방부에서 우리가 수집한 첩보를 비중 있게 취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의기소침해서도 안 됩니다.
정보사령부는 육군, 해군, 공군이 군은 달라도 목표는 하나 첩보 수집입니다.
정보전의 첨병으로서 북한군의 일거수일투족을 파노라마 사진 찍듯이 정확히 수집 보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보사령부의 존재 이유입니다.
수집된 정보가 국방부에서 어떻게 처리되고 활용하는지는 국방부 차원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목숨 걸고 수집한 첩보가 쓸모없는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국방부나 국가를 원망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집 부대로서의 수집 임무만 묵묵히 수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상 내가 할 말은 다했으니 수집처장이 수집 임무에 대한 현재 상황을 여기 모인 주요 직위자에게 설명바랍니다.“
“충성! 수집처장 김홍기 대령입니다. 수집부서에서는 북한에 신규 고정 첩보원을 2명 심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민준입니다. 함경북도 청진의 조직 폭력배입니다. 별명이 벼락 바위입니다. 주먹이 바위처럼 단단하다고 그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보고서에는 <은행잎>이라는 암호명으로 보고가 들어올 것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오득남이라는 사람입니다. 오득남은 혜산 사람으로 장사꾼입니다. 중국에서 한약재를 구매하여 한국으로 수출하고 경동시장에서 시세 차익을 노리고 팔아서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의류상품 신상품을 중국으로 수출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 중국에 거점을 구축했습니다.
오득남의 암호명은 <단풍잎>입니다. 따라서 여기 계신 분들은 접수한 공문의 발신자가 <은행잎>이면 이민준, <단풍잎>이면 오득남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질문 있으십니까?”
“북한 첩보 수집원은 은행잎과 단풍잎으로 기억하고 우리 회사 전무나 부장은 누가 나가 있습니까?”
“그건 조직 보호를 위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수집처장 말로만 비밀로 하고 나중에 다 알게 되는 거 여기 다 정보사령부 요원만 모였으니 솔직히 말해 중국에 누가 나가게 되었는지?”
“예, 그럼 사령관님 명령이니 말씀드리겠지만 한 귀로 듣고 누구에게도 발설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사장은 대방동 대성공사에서 귀순자나 간첩 신문하던 유영희 전무가 뽑혔고, 부장은 이시연 전무와 안광수 부장입니다.”
정보사령부에서 해외 특수임무 파견하는 요원은 군복이 아닌 사복으로 보내고 만약에 문제가 되더라도 외교 문제로 비화 안 되도록 가명을 사용했다. 일반 회사의 직함으로 명함도 만들었다. 은행잎 작전을 수행하는 유영희 전무가 중국에서 한약재와 송이버섯, 고사리 등을 손질하는 무역상사를 설립했다. 상호는 <행림상사>로 했다. 길림성 조선족 자치주에 상가 건물을 임대하여 杏林商社 간판을 달고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중국과 북한에서 나오는 한약재와 송이버섯을 구입하여 한국으로 수출했다. 한약재를 주문하고 화물 송장을 보내는 공문에 특수임무에 대한 내용은 암호화된 공문으로 한국 정보사령부로 보고했다. 4 층 건물의 1 층 120 평을 임대하여 칸막이 공사를 해서 30평은 사무실로 쓰고 90평은 한약재 수집 창고로 활용했다. 직원들 명함도 만들었다. 행림상사 대표이사 사장 유영희, 전무 이시연, 영업부장 안광수, 구매과장 구영삼, 사무실 행정업무와 사장 비서를 겸하는 총무사원 신윤희 중국어 통역을 담당하는 통역 박영식이 행림상사 직원이었다.
영업부장 하태성은 약속된 장소로 나갔다.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대화라 통역이 필요 없지만 연변 지역의 길 안내를 위해 박영식이 동행했다. 북한식 식당 <진달래 식당>이었다. 주 메뉴는 평양냉면과 초계탕 전문이었다. 식당 종업원에게 여기서 점심 약속한 오득남을 만나러 왔다고 하니 조용한 방으로 안내했다.
“행림상사 영업부장 안광수입니다. 우리 회사는 북한과 중국에서 한약재와 송이버섯을 구입하여 한국 경동시장으로 수출하는 회사입니다. 제 정도 선생과 승 득남 선생의 많은 도움바랍니다.”
“반갑습니다. 이민준 입니다. 남한 사람을 직접 만나니 반갑습니다. 기쁘기도 하고.”
“반갑습니다. 오득남입니다. 행림상사가 값만 잘 쳐주면 북한에서 나는 송이 한약재는 최상품으로 구해오겠습니다.”
“앞으로 두 분 선생님들의 도움 부탁드립니다.”
“예, 값만 제대로 쳐주신다면 김일성 장수연구소 품목도 가져오겠습니다.”
“예, 인사는 이 정도로 하고 식사합시다.”
식사를 하면서 이민준은 재일동포 후손인데 할아버지가 60년대 일본 조총련 거류민단의 만경봉호로 귀국할 무렵 할아버지는 일본의 미쓰비시 상사의 좋은 직장을 버리고 북으로 입북했다고 소개했다.
청진에 자리 잡고 할머니가 일본인 여자라 한국말이 서툴렀다. 그래도 할머니가 장손인 민준이를 많이 사랑해 알사탕은 항상 먹고 자랐다고 했다. 오득남은 혜산 사람인데, 집안 형편이 좋지 않고 토대도 안 좋아 군대도 못 갔다고 했다.
6.25 시기에 큰아버지가 국군 장교로 복무했다고 했다. 이민준과 오득남은 199X 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199X 년부터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배급도 못 받고 먹을 것이 없어 먹을거리 구하느라 국경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잠입해서 농사일을 거들어 주고 식량을 구하거나 중국에서 막노동을 해서 몇 달러 생기면 쌀을 구입해 북한으로 잠입해 청진, 혜산의 식구가 먹고 살게 했다고 말했다. 지금은 약간의 자본이 생겨 북한과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송이나 천궁 당귀 녹용 등 한약재를 구매하여 여기 행림상사에 납품하게 되었다. 미꾸라지가 용이 되었다고 할 만큼 청진에서는 이 민준 혜산에서는 승 득남을 출세한 사람으로 여긴다고 자랑했다.
이민준은 어린 시절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 할아버지가 일본서 귀국할 때 가져온 금붕어를 키웠는데, 하루는 할아버지 할머니 출타하고 혼자 집을 보다가 심심해서 금붕어를 마당에 쏟아 놓고 나뭇가지로 불을 붙여 새까맣게 태워 죽였다고 한다. 그리고 불쌍해서 마당 구석에 묻어주고 나무로 십자가를 만들어 금붕어 무덤에 세웠다고 한다. 외출에서 돌아온 할아버지가 어항이 빈 것을 보고 민준아 금붕어 어디로 갔지? 하는 할아버지 질문에 마당 구석의 나무 십자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할아버지는 멍하니 말이 없으셨고 어머니가 민준이를 한구석으로 끌고 가서 전용 회초리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때렸다.
오득남은 혜산에서 먹을 것이 없어 학교를 다니는 일보다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거나 산나물 채취하는 날이 더 많았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결석자가 많아지자 학급반장을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주먹이 센 아이들에게 학급반장을 맡기기도 했다.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학생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 바람에 공부 못하던 청진의 망나니 제 정도가 학급 급장을 맡았다.
이민준과 오득남을 만나고 온 하태성 부장은 면담 결과를 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장님, 영업부장입니다.”
“그래 들어와, 만나보니 믿을 만하든가?”
“이민준은 196X년 생으로 청진에서 알아주는 주먹입니다. 별명이 벼락 바위입니다. 청진에서 벼락 바위라고 하면 당 간부들에게 뇌물 많이 고이고 밀무역을 다양하게 했다고 알려졌다고 합니다. 우리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득남은 196X 년 생으로 특별한 재주는 없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착오 없이 잘 할 모범생입니다.”
“그래 영업부장 중국에서 첫 대면 수고했다. 서울 본사에 보고할 수 있게 보고서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수 신 : 서조산업
참 조 : 영업부장
제 목 : 북한 및 중국산 한약재 시세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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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십니까? 귀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래와 같이 중국 및 북한산 한약재 시세를 알려드리니 구매에 참조 바랍니다.
2. 품목 별 가격
가. 중국산
- 당 귀 : 4000 원/kg
- 천 궁 : 3500 원/kg
- 울 금 : 6000 원/kg
나. 북한산
- 송 이 : 200000 원/kg
- 백복령 : 2000 원/kg
- 은행잎 : 미정/kg
- 단풍잎 : 미정/kg
3. 은행잎 단풍잎에 대하여는 차후 연락 별도로 드리겠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한약재나 산나물 구입하고 수출하는 견적서로 보이나 무역 공문을 가장한 정보 보고였다.
즉 <은행잎>과 <단풍잎>에 대한 접선을 하고 정보사령부에서 모종의 임무만 부여하면 즉시 임무 수행할 준비가 다되었다는 보고였다. 공문을 접수한 정보사령부 수집처장은 정보사령관에게 즉시 보고를 했다.
조 정보사령관은 수집처장에게 영변 핵실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 일대의 물과 나뭇잎을 입수하여 방사능 오염 잔해가 있는지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사령관 지시는 바로 암호문으로 하달되었다.
수 신 : 행림상사
참 조 : 영업부장
제 목 : 한약재 및 산나물 구입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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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십니까? 귀사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작년 연말에 귀사에서 보내준 한약재 및 산나물 시세를 기준으로 아래와 같이 구매를 할 예정이니 수집하여 탁송바랍니다.
2. 내 용
- 송 이 : 200 kg
- 당 귀 : 50 kg
- 천 궁 : 50 kg
- 도라지 : 100 kg
- 은행잎 :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 <생수> 20 리터
- 단풍잎 :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 <나뭇잎> 20 kg 씩
3. 위 물품에 대한 대금은 선적하였다는 운송장 팩스로 보내면 바로 달러로 입금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99X. 1. 16 일
서조산업 영업부장 이 시 연 드림
김일성이 핵개발을 명령한 것은 1954 년이다. 김일성 교시에 핵 보유는 조선의 자주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언급한 후 1955 년에 핵물리 연구소를 설립했다. 선발한 과학자를 소련으로 6 명 유학을 보냈다. 처음 6 명의 유학생이 30 년 동안 250 명의 북한 과학자들이 러시아 두브나 연구소에서 핵물리학 공부를 했다. 북한과 구소련은 1956 년 <원자력 상호 협력 협정>을 모스크바서 체결했다.
그 당시 소련에는 모스크바에서 약 100 킬로미터 떨어진 볼가강변의 경치 좋은 곳 두브나라는 곳에 과학도시를 만들었다. 과학 신도시를 만들었다. 두브나 연구소는 완전 독립적으로 운영하여 소련 국립 과학 아카데미에서도 두브나 연구단지는 간섭할 수 없도록 했다.
핵물리연구소의 주요인물은 서울대학교 물리학 교수를 하다가 월북한 도상록 박사였다.
도상록은 김일성에게 1959 년에 영변의 구룡 강변에 ‘구룡 가구공장’이라는 가구공장 간판을 내걸고 실제로는 핵 연구 개발을 하였다.
남한이 창원에 자동차 부품공장으로 위장 간판을 달고 M 16 소총을 만들거나 트럭 공장으로 간판을 걸고 K-1 전차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 군사시설을 위장하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위장 간판을 쌍방의 첩보 수집자 쉬운 말로 간첩에 의해 서로 다 알게 되었다. 도 상록의 주도면밀한 연구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의 부분 연구를 끝내고 김일성이 사망한 1994 년 7월 에는 이미 핵무기를 다 개발을 하고 폭발시험만 남겨 놓은 상태였다. 도 상록은 김일성 살아생전에 시험 폭발을 하고 싶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1994 년 7월 25일 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했다. 김일성이 공들여 남북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준비하는데, 차마 도상록은 핵실험 하겠다는 보고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7월 8일 예고도 없이 김일성 수령이 사망했다. 도상록은 눈물이 흘렀다. 한평생을 핵 하나에 매달려 핵 보유 국가 지위를 얻으면 남한도 미국도 북한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을 수령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었는데, 핵 개발 완성의 직전에 수령님이 급서했다.
폭발 시험은 정치적 난관에 봉착했다. 1985 년 12월 12일 북한은 세계 핵무기 확산 조약(N. P. T :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에 가입을 하였다. 1991 년에는 노태우 대통령 당시 남북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를 했다. 1993 년 3월 12 일 북한은 N. P. T 탈퇴 선언을 하였다.
김일성은 1976 년 10월 노동당 회의에서 산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밭을 건설하라는 교시를 내렸다. 자연을 개조해 한 톨의 알곡이라도 더 생산해 인민을 배불리 먹이겠다는 수령의 교시는 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 199X 년 100년만의 대홍수가 났다. 520 만 명의 이재민과 150억 달러의 피해를 냈다. 자연 재해 대홍수지만 그해는 북한만 비가 많이 온 것이 아니라 남한도 그 만한 량의 비가 내렸다. 남한의 산은 푸른 산이고 북한의 산은 민둥산이라 북한의 피해가 큰 것이었다. 감히 수령님의 교시를 탓할 수는 없고 김정일은 1999년 조림 10개년 계획을 만들어 기간 동안 6 억 그루의 나무를 심으라고 지시했다. 마을 마다 21세기 영웅 김정일 장군 만세라는 입간판도 세웠다.
대홍수에 가을 추수도 안 되어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는 험난한 시기를 견뎌야 했다. 북한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먹고 살기 위해 산으로 들로 나섰다. 가을걷이가 끝난 옥수수 밭에서 뿌리를 캐내 물에 씻어 먹기도 했다. 부토라고 하는 부드러운 진흙을 식량 대신 먹기도 했다.
그 결과 피똥을 싸며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여러 구호를 만들었는데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라는 구호도 있었다. 누군가 구호 짓기 대회에 입상한 작품이겠지만 정말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구호였다.
중국에서 번 돈을 청진 집에 전해 주려고 이민준은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어쩌다 국경연선에서의 군인들에게 검문을 당해도 주머니에 달러만 넉넉하게 있으면 겁날 것이 없었다. 검문하는 군인에게 1 달러를 손에 쥐어주면 여행증명서 없어도 여행하는데 검문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정도가 5만 달러의 돈을 어머니에게 주자 어머니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야, 민준아! 이게 무슨 돈이냐?”
“아버지, 어머니 제가 나쁜 짓한 것이 아니고 정정당당하게 노력해서 번 돈이니 안심하고 쓰세요.”
“이 큰돈을 어떻게 벌게 되었느냐?”
“중국 가서 한국으로 한약 수출하는 행림상사라는 곳에 취직해 번 돈입니다.
이제 걱정 마시고 편안히 먹고 싶은 사 드시고 사세요.”
“아이쿠, 장한 아들 덕분에 우리가 청진에서 가장 배불리 먹고 사는 집 된 기분이구나!”
그는 청진에서 이틀 묵고 다시 연변의 행림상사로 향했다.
김일성은 1955 년 주체를 내세웠다. 강대국의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핵무기 보유가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했다. 도상록 박사가 핵심이 되어 추진한 핵개발 팀은 1969 년부터 북한 방식의 핵분열과 융합 장치를 만들었다. 1979 년에는 자체 기술로 실험용 핵반응 고로를 건설하여 1986 년부터 가동을 했다.
1985 년부터 영변 핵시설에서 사용했던 핵연료봉을 써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실험실을 건설했다. 이어 198X 년부터 199X 년 까지 영변 핵 시설 내부의 모래밭에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고폭 실험을 76 회 실시했다.
1989 년 소련이 해체되어 러시아의 독립국가연합에서 구소련의 핵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서방으로 망명할 때 일부는 북한에 초빙되었다. 이어 1990 년대 들어서자 국제 핵물질 암시장이 활성화 되었다. 미국 중심의 핵 확산 방지 정책을 펴긴 했지만 돈으로 암거래 하는 것을 막으면 막을수록 팽창하는 풍선처럼 커졌다.
북한은 조직적으로 소련에서 독립되어 나온 중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우라늄 235와 239를 고가로 매입했다.
무사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김일성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칸 박사가 북한의 핵 개발에 음성적 지원하는 것을 묵인했다. 칸 박사는 직접 북한을 관광객으로 가장하여 입북하여 원심 분리기 설치에 도움을 주었다.
1994 년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합의는 북한은 합의는 합의고 우리는 우리식으로 간다는 배짱 합의였다. 제네바 합의 전에 북한은 10 kg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상태였다. 1945 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탄의 2 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1994 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미국은 3 년 길어봐야 7 년 이내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분석 보고가 언론에 나돌았다. 그 연장선에서 경수로 지원 사업을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었다. 북한은 이미 미국의 경수로 지원이 지지부진한 것을 눈치 채고 핵 개발에 더욱 매진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미국이 북한이 핵 개발을 안 해도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없을 정도의 에너지원 지원을 해주면 핵 개발을 중단하려 했으나 이미 수가 보이는 미국의 행태에 북한은 조기 핵 실험이 답이라는 내부 입장 정리를 마쳤다.
1 차 핵 위기가 타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2002 년 10월부터 제 2 차 북 핵 위기가 시작되었다. 존 케리가 북한 방문 시 농축 우라늄 개발 프로그램을 숨기는 척하면서 케리가 눈치를 채도록 연출했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노선에 대한 북한은 강 대 강 대응 전법을 구사했다.
미국이 북한의 제네바 협약 위반한다고 중유 공금을 중단하자 북한의 미사일 부품을 운반하던 선박이 인도양에서 나포된 이틀 후인 2002 년 12월 12일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겨 원자력을 이용한 전력생산을 한다고 핵 동결 해제를 선언했다.
곧 이어 12월 21 일에는 영변의 5 MWe 원자로와 핵 재처리 시설을 봉인했던 것을 해제하고 감시 카메라를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북한에 머물던 국제원자력 기구의 I. A. E. A 사찰단을 추방하였다.
북한에 도상록 박사가 있었다면 남한에는 이휘소 박사가 있었다. 1935 년생인 이휘소 박사는 1955 년 미국으로 건너가 피츠버그 대학에서 물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펜실버니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곧 이어 페르미 연구소에서 핵물리 연구를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극비로 추진한 핵 개발 사업에 애국심에 호소하는 박 대통령의 말에 페르미 연구소에서 전폭적인 연구지원을 사양하고 한국의 핵 개발에 가담하여 불의의 교통사고로 꿈을 이루지 못하고 고인이 되었다.
서조산업에서 행림상사로 은밀한 지령이 하달되었다. 북한이 ‘강성대국’을 구호로 들고 나오는데, 강성대국 뒤에는 <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미국과 한국의 정보 당국이 추정하는 공동 관심사가 되었다.
미 CIA도 그런 관심을 바탕으로 영변 핵 시설에서 관연 핵무기를 완성했는지 완성했다면 어디에선가 지하 실험이 실시될 것이고 그렇다면 샘물과 나뭇잎에서 우라늄 방사능 검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미 CIA에서는 북한 핵 실험을 증명할 수 있는 샘물 20 리터와 나뭇잎 20 kg 에 100 만 $ 의 현상금을 걸었다. 사실 서조산업에서 행림 상사를 통해 10 만 $의 현상금을 걸고 샘물 20리터와 나뭇잎 1 kg을 구하고 있었는데, 슬그머니 상금을 올리게 되었다.
행림상사 유 사장은 이시연 전무와 하태성 부장을 불렀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모두 자리에 앉아 봐.”
“무슨 급한 지령이 있나요?”
“급한 정도가 아니야, 우리가 10 만 $ 상금을 걸고 추진하던 일을 미 CIA가 100 만 $로 현상금을 올렸다. 양도 샘물은 20 리터 나뭇잎은 20 kg이다.”
“물 20 리터를 식수로 떠 올수 있지만 나뭇잎 20 kg은 어떻게 반출하지?”
“물 20 리터는 운반 가능하지만 나뭇잎 20 킬로그램이면 거의 지게로 한 짐 되는데 그걸 어떻게 북한서 여기까지 내오지?”
“사장님, 이민준이 하고 오득남에게 그냥 돈만 조금 올려주고 당신들이 알아서 행림상사까지 가져오라 하면 그들이 달러 맛으로 할 것 아닙니까?”
“이민준, 오득남이 그만한 실력이 되겠어?”
“되지요?”
“아니야 아직 한 번도 위험한 일을 맡겨본 적이 없으니 이건 우리 행림에서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북한 출신 사람은 최소한의 운반만 할 수 있게 해야 될 것 같다.”
“아닙니다. 100 만$이면 목숨을 걸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래도 이번 일은 우리 행림이 주도적으로 하고 북한 주민은 최소한의 도움만 받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에 발각되면 파장이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냐.”
“예, 사장님, 제가 이 민준 하고 승 득남을 한번 만나보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 하 부장이 최대한 그 두 사람 빨리 만나보기 바란다.”
“예, 알겠습니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하 부장은 진달래 식당에서 이민준과 오득남을 만났다. 전에 만나 인사를 한터라 바로 알아봤다.
“안녕 하세요~~하- 부장님!”
“오랜 만입니다. 이민준 선생!”
“부장님 이민준만 보이고 오득남은 안보입니까?”
“아니오, 내가 몸이 둘이 아니니까 한 명씩 인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오득남 선생!”
“부장님, 그 동안 잘 지내셨죠?”
“예, 두 분이 우리 회사 구입 의뢰 물품 조달을 잘해주어 본사에서도 우리를 아주 좋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부장님이 물품에 대한 가격을 후하게 쳐주셔서 제가 청진에서 소문난 부자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너무 빨리 소문나면 안 되는데......”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청진 부모님들이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혜산에서 승 득남이 신흥 부자라고 합니다.”
북한은 계획경제 체제가 무너졌다. 199X년부터 199X년 시기의 고난의 행군이라고 이름 지어진 시기에 노동당에서 식량배급을 할 수 없어 인민들이 각자 도생의 길에 들어섰다. 그래서 장마당이라고 하는 시장도 생겼고 ‘꽃제비’라 부르는 어린 패거리도 생겼다. ‘꽃제비’들은 때로는 강도로 때로는 거지로 변했다.
“오늘은 단고기로 합시다!”
“예, 좋습니다!”
“사장님, 여기 단고기 전골로 3인분에 소주 한 병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단고기 전골과 소주가 한상 차려졌다.
“두 분 선생들이 우리가 원하는 물품을 잘 구해주어 요즘 행림상사가 여기 연변서 아주 성장하는 무역상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잘 조달해 주기 바랍니다. 한 잔 받으시죠?”
하 부장은 이민준과 오득남에게 최대한의 예를 다해 대접했다. 아무리 신체적 단련이 되어 있어도 사람이 먹는 것이 부실하거나 끼니를 걱정하면 일이 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북한에 아무리 남에서 훈련을 잘 한 군인이라도 침투하여 생활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 영토 내에 들어가서 물건을 획득하는 일은 북한 국경 밖에서 북한 내부에 달러를 받고 일하는 일꾼을 구해야 한다. 다행하게도 하 부장은 이민준, 오득남을 만나 서울의 서조산업에서 행림상사로 요구하는 물건을 지금까지 송이면 송이, 장뇌삼이면 장뇌삼, 북한 특정지역의 사진이면 사진, 북한 수용소에 수감되어 아직 생존해 있는 6.25 시기의 국군포로 명단까지 서조산업에서 요구하는 모든 물목을 해결했다.
“한 잔 합사다!”
“예!”
“우리 행림상사 번창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술이 한 순배 돌자 취기가 올랐다. 하태성 부장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두 분 선생님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 CIA가 북한에서 ‘강성대국’ 구호를 외치자 그 ‘강성대국’ 뒤에는 북한이 핵을 개발을 완료하고 폭발실험만 남은 상태로 인식하고 핵폭발 장소 주변서 나뭇잎 20 kg과 물 20 리터를 요구한다고 합니다.”
“물 20 리터야 막걸리 통에 담으면 한 번에 가져올 수 있는데, 나뭇잎 20 kg은 부피가 산더미 같은데 어떻게 운반을 하죠?”
“아니, 물 20 리터는 이해가 가는데, 나뭇잎 20 kg은 지게로 져도 한 짐 이상인데 그 많은 나뭇잎을 어떻게 구하고 운반하죠?”
“물 20 리터를 분석하면 그 속에 방사능이 검출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데 나뭇잎에서는 낙진 찾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뭇잎은 20 kg를 요구한다고 합니다.”
“그럼 이민준 형님과 저 오득남이가 하나 씩 맡아서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맡죠?”
“이민준 씨가 형님이니 물을 담당하고 승 득남 씨가 나뭇잎을 맡으시죠?”
“그렇게 하고 일 마친 후 노임을 각자 50 만$ 받는다고요?”
“그렇습니다.”
“그건 너무 불공평합니다. 물은 막걸리 통 하나로 이동할 수 있지만 나뭇잎 20 kg는 모으기도 운반하기도 훨씬 힘들어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물은 30 만$ 나뭇잎은 70 만$ 해야 일하는 수고에 대한 노임이 맞을 거 같습니다.”
“나뭇잎 20 kg에 70 만$, 물 20 리터에 30 만$라? 이런 결정은 저 혼자 못하니 잠시 제가 사장에게 전화 좀 하겠습니다.”
카운터로 와서 하 부장은 유 영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행림상사 유 사장입니다.”
“사장님, 하 부장입니다.”
“왜? 무슨 일이야? 혹시 진행에 문제가 생긴 거야?”
“어려운 건 아닌데, 이민준 하고 오득남 이야기 도중에 물 20 L에 30 만 $ 나뭇잎 20 kg에 70 만 $로 금액을 차등지급 해달라는 요구입니다. 사장님 의견은 어떠한 지요?”
“차등 지급 이유가 뭐래?”
“물은 막걸리 통 하나로 운반 가능하지만 나뭇잎은 부피가 커서 눈에 걸리기 쉽고 운반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 그거까진 우리가 미처 생각 못했구나, 그렇게 한다고 해.”
“예, 알겠습니다.”
“잠깐! 그런데 그걸 그 두 사람이 할 수는 있다는 거야?”
“예.”
“알았다. 수고!”
“예, 진행하겠습니다.”
제자리로 돌아온 하 부장이 이민준, 오득남에게 사장님이 두 사람 의견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민준이 금액이 달라지면 차라리 자기가 나뭇잎을 맡겠다고 나섰다.
“아니, 아까 분명히 형님이 샘물 한다고 해놓고 이제 바꾸십니까?”
“야, 득남이 잘 들어라. 처음 시작 금액은 50만, 50만 똑같은 노임이라 그렇게 했는데, 이제 노임이 하나는 70만 하나는 30만 달라진 상태서 결정은 안 했어!”
“그럼, 형님이 저랑 가위바위보라도 하자는 겁니까?”
“그래, 가위바위보로 정하든 사다리를 타든 정하자.”
“싫습니다. 그냥 형님이 나뭇잎 하시오. 난 물 20 리터 할게요.”
“그럼 나뭇잎 이민준, 물 오득남으로 하는 겁니다.”
“예.”
“그럼 우리의 사업 성공을 위해 한잔들 합시다. 잔을 들어 주세요. 사업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단고기 전골 안주가 좋아서인지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골이 다 없어지자 추가로 2인분을 더 시켰다. 진달래 식당은 은밀한 대화가 가능하도록 작은 방을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
이곳은 관공서 공무원과 청탁하는 민간인들의 모임이 많은 곳이라 넓은 홀 좌석은 탁자 4개만 준비하고 나머지는 격실 방으로 꾸몄다.
“물과 나뭇잎 이곳 행림 상사로 가져오는 기간을 얼마면 되겠습니까?”
“사회 안전원이나 국경경비초소의 군인들에게 붙들리지 않으면 1주일이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사전에 통과할 지점의 안전원을 매수하고 국경경비대의 중대 간부를 뇌물을 주고 통로 확보하려면 2개월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행림 상사 유 사장님에게는 3개월 걸린다고 말씀드리고 두 분 최대한 2개월 안에 물건 가져오고 달러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두 분이 물건을 행림 상사에 가져왔을 때 받는 달러와 관계없이 행림 상사 사장님이 두 분에게 그동안의 물건을 제 시기에 매입해준 것에 대한 감사 표시로 각각 5 만 $씩 드리는 것입니다. 나중에 유 사장님 만나면, 사장님깨서 주신 격려금 덕분에 일이 빨리 진행되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하 부장은 이민준 과 오득남을 만나고 온 결과를 요약하여 유 사장에게 말했다.
“하 부장, 3개월 안에 핵 실험장 근처의 물 20 리터와 나뭇잎 20 Kg을 가져올 수 있어?”
“이민준, 오득남 모두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이민준 오득남 생각이고, 북한 온 천지에 사회 안전부 감시와 국경 연선의 경비병이 깔려있는데 붙들리면 3개월이 3년 될지 누가 알아?”
“사장님, 일단 두 사람 믿고 진행해야지 딱히 다른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다. 하 부장은 계급은 소령인데 마음은 장군 그것도 별 넷 대장 마음이구나?”
“그럼요, 저는 이미 군대 생활 중위로 전역했어야 제격인데 어쩌다 장기 복무를 해서 소령으로 전역해도 행복합니다.”
“소령으로 전역해서 뭐 할래?”
“정보장교 했던 경험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모조품 물건 가져다 팔고 한국에서 옷, 신발, 화장품 중국으로 가져와 팔고 하면 돈 좀 벌고, 북한산 송이나 한약재를 매입해서 한국으로 가져가면 더 큰 돈을 벌 수 있겠지요?”
“그럼 우리 행림 상사 망하라고?”
“에이, 사장님도 참나 행림 망하는 일은 없지요? 대기업 서조 산업이 있는데? 그 위에 국가정보원 있지, 그 옆에 미국 CIA가 돌봐주는 회사가 망하겠어요?”
“회사 망할 일은 없겠지만 그놈의 샘물 20 리터와 나뭇잎 20 Kg을 하 부장 말대로 3개월 이내에 가져오지 못하면 내가 전역해야 한다.”
“사장님 걱정을 마세요. 꼭 성공하고 사장님도 올해 사업 잘되고 장군 되실 겁니다.”
“그래, 잘 되었으면 좋겠다.”
연변 진달래 식당에서 헤어진 이민준은 청진으로 오득남은 혜산으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민준네 집은 청진이라서 기차를 타고 내려갔다. 청진역에는 어머니가 마중 나왔다.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은 언제나 맛있다. 도시의 조미료 많이 들어간 식당의 음식보다 정도는 어머니가 해 주는 담백한 된장국 맛이 최고의 맛으로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민준에게 어머니가 느닷없이 질문을 했다.
“아들?”
“예?”
“왜 그리 놀라니, 고민이라도 있는 거니?”
“아니요?”
“아니긴 네 얼굴이 평소 같지 않은데.”
“어머니 눈에 제가 고민 있는 사람으로 보여요?”
“그럼, 귀신을 속여도 넌 엄마는 못 속인다.”
“어떻게 제 고민을 아셨어요?”
“넌 내 자식이고 젖을 먹이고 키웠는데 네 눈만 보면 배고픈 지 아픈 지 얼굴만 봐도 네가 근심이 있는지 일이 잘되는지 알지.”
“어머니, 저 사실은 고민이 있는데, 이거 어머니 절대 다른 사람 아무에게도 말하면 안 됩니다. 아셨죠?”
“그래, 입조심 할 것이니 말해봐라.”
“영변에 핵 시설 아시죠?”
“알지?”
“거기서 핵무기 완성하면 어디선가 지하 핵실험을 할 것인데, 그 실험장 주변의 나뭇잎 20 Kg 이 필요합니다.”
“1 Kg 도 아니고 20 Kg 나?”
“예.”
“아, 그래서 우리 아들 얼굴에 근심이 꽉 찼구나?”
“처음에는 물 20리터 하기로 했는데, 물은 30만 $ 나뭇잎은 70만 $ 준다고 해서 제가 나뭇잎을 한다고 했는데, 그냥 물로 할 걸 후횝니다.”
“그럼, 너 지금까지 집에 벌어다 준 돈이 조국을 배반하고 간첩 노릇 해서 번 돈이냐?”
“아닙니다. 어머니, 지금까지 번 돈은 정말로 송이버섯, 천궁, 당귀 등 한약재 싸게 구입 행림 상사에 고가로 팔아서 번 돈입니다. 그동안 행림이 값을 후하게 쳐서 사준 것을 감안해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라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얼마에?”
“놀라지 마세요. 70만 $입니다.”
“뭐 70만 $?”
“예.”
“그렇게 큰돈이면 해 볼 만한데 나뭇잎 20 Kg이면 부피가 큰데 어떻게 운반하지?”
“그래서 제가 고민 중입니다.”
“내 생각은 20 Kg를 한 번에 운반하면 안전보위부 놈들이나 국경경비초소 군인들에게 발각될 우려 있으니까 1 Kg 씩 20명이 나누어 운반해라.”
“예, 저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나뭇잎 1 Kg 도 운반하다 보위부나 군인에게 걸리면 뭐라 답변하지?”
“뭐, 그냥 나뭇잎 말려 불쏘시개 한다고 답변하거나 약에 쓴다고 하지 뭐?”
“20 Kg 나 되는 나뭇잎을 어떻게 매입하고 운반하려고 하느냐?”
“일단 우리 집에다 커다란 나무 궤짝을 짜고 거기에 가져오는 대로 모아 놓고, 어느 정도 양이 차면 트럭 하나 빌려서 가려고요.”
“민준아, 네가 우리 집에 20 Kg 나뭇잎 모으는 거 소문나면 다 모으기도 전에 안전부에 잡혀가서 고문당할 것 같구나.”
“그럼, 어머니 생각은요?”
“내 생각은 네가 먼저 도강해서 중국 땅에 농가 하나 빌려 거기에 나뭇잎 모아 20 Kg가 차면 행림인가 너와 거래하는 곳으로 가져가거라.”
“예. 제가 처음부터 어머니께 말할 걸 혼자 고민했어요.”
“그리고 돈도 다된 후 한꺼번에 70만 $ 거금으로 받지 말고 10만 달러씩 서너 번에 나누어 달라고 해라.”
“그건 왜요?”
“너 혼자 20 Kg의 나뭇잎을 구할 것도 아닌데 사람들에게 1Kg 가져오면 100$씩 준다고 해서 중국에 주소만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가져오는 순서로 돈 주고받고 해서 20 Kg 차면 네가 덜 고생하고 추적을 피하고 좋지 않니?”
“예, 어머니 말씀대로 할게요.”
한편, 오득남은 혜산 집에서 동생 득철을 만나 다른 일 하지 말고 일반 노동보다 돈벌이 좋은 거 있으니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형, 돈벌이 좋다는 일이 뭐요?”
“음,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에 가서 물 20리터 떠오는 일이다.”
“아니 물이면 압록강 물이나 두만강 물이나 같은 물이지 풍계리 물은 금가루가 나와요? 20리터에 그런 돈을 주게?”
“득철아, 형 말 듣고 절대 남에게 말하지 말라. 영변 원자력 연구 시설에서 연구하고 핵무기를 다 만들면 풍계 일대 지하 폭발 실험을 하게 되는데 그 우라늄이 물에 잔량이 있는지를 검사하는 물이란다. 그래서 아무 물이나 떠다 주면 안 되고 반드시 풍계 물이어야 한다.”
“그럼 그 큰돈이 얼마야?”
“30만 $다!”
“형, 그 말을 믿어?”
“그럼, 내가 거기 부장이라는 사람에게 단고기 안주로 소주 마시면서 들은 말인데 그런 사람이 거짓말을 하겠어?”
“형! 그런데 물이 뭐 풍계 물하고 여기 혜산 물하고 뭔 차이가 있겠어? 그냥 막걸리 통에 20리터 물만 채워 주면 그만이지?”
“야, 남의 돈 받아먹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냐? 물을 검사해서 핵실험 한 방사능 낙진이 검출 안 되면 엉터리라는 것이 탄로 난다.”
“탄로 나면 어때? 이미 받은 돈은 우리가 다 써버렸다고 하고 그들이 시킨 것이 불법 간첩 노릇을 시킨 것인데, 탄로 나도 전혀 문제 안 될 거 같다.”
“너 그런 마음가짐으로 일하려면 빠져라. 나 혼자 하마.”
“아니야, 같이 해 그냥 내가 해본 소리야.”
“그래, 그럼 너 지금부터 절대로 말조심 행동 조심해야 한다.”
“알았어요. 형!”
이민준은 일단 10명을 모아 사업설명을 하였다.
“오늘 여기 모인 10명 동지들은 정말로 우리 사업이 끝날 때까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참고 성공하는 그날까지 함께 갑시다!”
“예!”
“우리가 하는 일은 위험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동지들 이외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일이 성공하기 전에 국가보위부나 사회 안전부 그리고 국경경비초소 군인들에게 적발될 시는 우리 모두 총살이거나 교화소로 갈 것입니다.
그러니 말조심 행동 조심하시오.”
“우리가 뭐 간첩 행위라도 한단 말이오?”
“우리가 간첩 행위를 안 해도 죄목을 간첩으로 씌우면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위험한 일이면 난 빠질 것이오. 난 가오. 잘 있으시오 민준 동무, 그렇다고 내가 어디다 이걸 일러바치지는 않겠소!” 하면서 2명이 떠났다.
이제 남은 8명이 이 일을 추진해야 했다.
“우리가 할 일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 일대에서 나뭇잎을 20 Kg 채취해서 연변에 있는 행림 상사라는 한약재 도매상에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나뭇잎 20 Kg에 70만 $이면 해볼만한 것 아닙니까? 70만 $ 중에서 10만$를 선금으로 내가 받아 왔습니다. 이 돈으로 여러분 식사대접도 하고 여러분 여비도 지급할 것입니다. 돌아갈 때 100 $씩 드리겠습니다.”
“아니, 풍계 나뭇잎하고 우리 사는 청진 나뭇잎하고 뭐가 달라요? 그냥 청진 나뭇잎 비료 마대에 담아 20 Kg만 주면 되지 않겠소?”
“안 됩니다. 우리가 채취해서 행림 상사로 보내는 나뭇잎에서는 아주 극소량이지만 우라늄 검출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싼 돈을 받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풍계까지 가서 나뭇잎을 1Kg 씩 담아 왔다면 어디서 나뭇잎을 모을 작정이오?”
“예, 제가 두만강 건너 단동에 허름한 농가를 하나 정하고 그 주소를 알려줄 테니 그리 가져오면 됩니다.”
“우리 8명이 한꺼번에 일을 하려면 몇 월 며칠에 만나자 약속을 해야 하지 않겠소?”
“그런 약속 했다가 한 명이라도 불참하면 모두 낭패가 될 수 있으니 각자 알아서 나뭇잎을 채취하여 국경을 넘어 단동에 차후 자리 정해준 곳으로 가져오기로 합시다.”
“알았소!”
민준 설명을 들은 8명의 청진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청진 국가보위부 당 간부가 이민준 집으로 찾아왔다. 정도는 중국으로 출타하고 정도의 어머니가 보위부 간부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어디서 오셨습니까?”
“여기가 이민준 동무 집 맞소?”
“예, 그렇습니다.”
“민준 동무 어디 있소?”
“예, 집에 쌀이 없어 식량 구하러 나갔는데, 어디로 갔는지는 모릅니다.”
“민준이 어머니요?”
“예, 그렇습니다.”
“이민준 동무 집에 오면 청진 보위부 우병우 과장이 찾는다고 꼭 빠른 시일에 만나야 한다고 전해주시오.”
“예, 알겠습니다.”
민준 어머니는 그가 돌아간 후 바로 행림 상사로 전화했다.
“예, 행림 상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청진 사람 이민준 어멈입니다. 민준이가 거기 들르면 집으로 꼭 전화하라고 전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민준은 행림 상사의 여직원이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는 말을 듣고 바로 청진에 전화했다.
“어머니, 민준입니다!”
“그래, 어미다. 넌 별일 없지?”
“예, 저는 일없습니다.”
“네가 떠나고 이틀 후에 보위부 간부가 다녀갔다.”
“왜요?”
“이유는 모르고 네가 오면 보위부 청진시 지부에 우 병우 과장을 만나고 가라더라.”
“우병우요?”
“그래, 네가 알고 지낸 인물이냐?”
“아니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그래, 알았다. 넌 이 어미 걱정을 말고 중국서 아예 다시는 청진 오지 말거라. 대신 네가 중국에 나뭇잎 수집할 주소만 알려주면 내가 나뭇잎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게 주소 알려주고 그리 가라 하면 될 것 아이냐?”
“예, 알겠어요.”
“그런데 말이다, 넌 절대로 그 주소 근처에 가지 말고 다른 사람 노임을 주고서라도 나뭇잎을 구입해라. 혹시 중국공안과 조선의 안전부 요원이 합동으로 농가에 검문 올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오득남과 득철 형제는 막걸리 통 20리터 용기 하나를 들고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로 갔다. 풍계 일대는 군인 경비 초소가 여러 개 있었다. 초소의 군인이 불렀다.
“거기 동무들 이리 오기요.”
“예, 저희 말입니까?”
“그럼, 여기 동무들 두 명 말고 또 누가 있소?”
“왜 그러십니까?”
“공민증 봅시다.”
“여기 있습니다.”
“자강도 혜산시 오득남, 오득철?”
“예, 맞습니다.”
“둘이 형제요?”
“예, 제가 득남이고 여기 득철이는 동생입니다.”
“집이 혜산인데 여기 풍계 산골까지 왜 왔소?”
“약수를 떠가려고 왔습니다.”
“뭔 약수요, 혜산도 먹는 샘물 많을 것인데.”
“어머님이 몸이 불편하신데 점쟁이가 풍계 산속 깊은 곳의 계곡물을 떠다 밥을 지어 드리면 낫는다고 해서 물통 들고 여기 찾아왔습니다.”
“동무는 나이도 젊은데 그런 미신을 믿소?”
“미신인 줄 알아도 칠순 노모가 하도 그걸 바라시기에 이렇게 왔습니다.”
“알았소. 그럼 가서 계곡서 물만 받아 바로 나오시오. 한 시간 이내 나와야 하오 그 시간 지나면 나는 근무 끝나고 다음 근무자 오면 난 몰라요.”
“예, 알겠습니다. 소대장 동지?”
“난 소대장이 아니고 부소대장이오.”
“예, 감사합니다. 부소대장 동지!”
득남 득철 형제는 풍계 계곡의 생수 20리터를 교대로 들어 집까지 운반했다.
일단 혜산 집에서 득남은 행림 상사로 전화했다.
“예, 행림 상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득남이라고 합니다. 하 부장님 통화연결 가능합니까?”
“예, 하 부장님 연결해드리지요.”
“행림상사 하 부장입니다.”
“부장님, 저 득남입니다. 부탁하신 막걸리 한 말 통 준비했습니다. 이거 언제 그리로 가져갈까요?”
“중간에 보위부나 국경경비초소 군인들에게 걸리지 않고 연변까지 가지고 올 수 있어요?”
“글쎄요, 장담은 어려우나 걸리는 곳마다 입막음용으로 1$씩 뿌리면 갈 수 있겠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럼 11월 15일 진달래 식당서 12시에 만납시다. 그때 1$ 봉투 전달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만 끊습니다.”
“예, 알았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승 득남은 진달래 식당으로 갔다.
“반갑습니다. 승 득남 선생!”
“예, 하 부장님!”
“어떻게 루트는 확인했습니까?”
“예, 혜산시서 국경초소까지 오는데 위험한 곳이 3 개 있습니다. 국경초소 2 곳입니다.”
“그럼, 총 5개로 예비로 하나 더해 6개로 보면 한곳에 50$씩 300$ 면 통과 뇌물 고이는 것은 되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1$로 300$ 정도면 되겠습니다.”
“제가 1$로 500$ 준비해왔습니다. 이걸로 걸리는 곳마다 뇌물 고이고 최대한 빨리 행림 상사로 납품 바랍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식사는 냉면으로 간단히 합시다!”
“예, 저도 시간이 촉박하니 냉면 빨리 먹고 자리를 떠야 합니다.”
“사장님, 여기 냉면 2개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오득남과 하 부장은 냉면을 마파람에 게눈을 감추듯 먹고 헤어졌다. 득남은 집에 오자마자 득철이를 찾았다.
“형 왜?”
“급하다. 빨리 준비해 우리 풍계서 떠 온 생수 행림 상사로 이동시키자.”
“가다가 걸리면 보위부나 국경경비대 아들 고일 돈은 있소?”
“그래, 다 확보했으니 걱정 말고 가자?”
“알았어, 형!”
혜산시서 국경경비대까지는 특별히 단속하는 일 없이 왔다. 국경경비초소에서 군인들이 검문 검색했다.
“이거 뭐요?”
“생수입니다.”
“이거 어디다 쓸 거요?”
“중국에 있는 친척이 고향 물맛 죽기 전에 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혜산 고향의 물을 한 말 떠가는 거라오.”
“오득남은 1$짜리 지폐 한 장을 군인에게 슬며시 주었다. 군인은 빨리 가라고 손짓했다. 북한 당국에서 틈만 나면 썩어빠진 자본주의 병폐라고 정신교육을 하지만 이미 북한 온 천지가 뇌물 공화국으로 물이 들어버린 지 오래다. 오득남, 득철 형제는 20리터 풍계 생수를 행림 상사에 전달하고 유 사장으로부터 30 만 $를 직접 받았다. 유 사장은 돈을 주면서 얼굴에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아닙니다. 감사는 우리 행림 상사가 오득남, 득철 두 형제의 노고로 이렇게 빠른 기간에 풍계 생수를 확보했으니 오늘 점심은 내가 내리다. 다 같이 갑시다!”
“예, 감사합니다!”
행림 상사는 사무실 전원을 끄고 셔터문도 내렸다. 유영희 사장, 이시연 전무, 하태성 부장, 김연주 과장. 신윤희 타자수, 박영식 통역사원까지 모두 진달래 식당으로 향했다. 진달래 식당에서 가장 넓은 방을 예약하고 이동했다.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우리 행림 상사가 풍계 생수를 특수임무 지시받고 한 달도 안 되어 확보하여 본사로부터 행림 상사의 위상을 높인 날입니다. 이것은 여기 오득남과득철 두 분 선생의 노고 덕분입니다. 우리 모두 감사의 박수를 칩시다!”
“짝! 짝! 짝!”
진달래 식당 종업원들이 알아서 단고기 전골과 소주를 테이블마다 올려놓았다.
“자 음식 앞에 두고 말이 길면 나쁘지요? 모두 자기 앞의 술잔을 채우기 바랍니다.”
“우리 행림 상사의 번영과 여러분 개인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제의합니다.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대낮부터 모두 얼굴이 불그스레할 정도로 마셨다. 진달래 식당 사장도 오늘 매상은 행림 상사에 걸었는지 아예 식당 문을 외부에서 내리고 큰 방으로 노래방 반주기를 가지고 왔다. 식당이 순식간에 노래주점으로 바뀌었다.
유영희 사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신형원의 <개똥벌레>를 불렀다. 이시연 전무는 최 희준의 <하숙생>을 불렀다. 하태성 부장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불렀다. 김연주 과장은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통역사원 박영식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고 오득남은 <휘파람>을 오득철은 <반갑습니다>를 불렀다. 진달래 식당 사장 권현주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간드러지게 불렀다.
주머니에 15만$를 품은 오득남, 득철 형제는 이날이 태어나 생애 최고의 돈을 만져본 날이다. 이날은 중국 최고의 부자 부럽지 않은 날이었다.
“득철아?”
“왜 형?”
“기분 어떠냐?”
“좋지 뭐?”
“좋아도 돈 조심조심 써라. 함부로 쓰면 보위부 잡혀간다.”
“형이나 형수 간수 잘하소. 허영에 들떠 마구 사치품 사면 그거야말로 보위부 냄새 맡고 집안 압수수색 당할 거요.”
“그래서 난 네 형수 돈 많이 안 줄 거다. 조금씩 필요할 때마다 줄 거야.”
“알았어. 나도 내 마누라에게 돈 조금씩 생활비 정도만 줄 것이오.”
호사다마(好事多魔) 라고 할까. 주머니에 돈이 든든한 득철이 혜산에서 특별히 직업 없이 빈둥거리는 중학교 동창 5명을 불러서 술을 사주고 안주도 고급으로 대접했다.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얻어먹은 친구 중에서 안봉근, 이재만이 보안 지서에 신고했다.
중학교 동창 오득철이 특별한 기술도 없는 놈이 중학교 동창들 끌어모아 술을 사주고 돈 씀씀이가 크다고 신고했다. 더구나 주머니는 공화국 화폐보다 달러가 더 많이 들어있다고 신고를 한 것이다.
보위부에 잡혀간 오득철은 구타와 고문으로 자기 돈의 출처를 불었다. 형이 길주군 풍계의 생수를 20리터 가지고 가면 중국에서 큰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따라가서 15만 $씩 받았다고 진술했다.
득철의 품에서 미화 13만 $가 나왔다.
그동안 2만$를 흥청망청 쓴 것이다.
“오득철 이 돈 13만 $ 어디서 났어?”
처음에는 중국에서 노동으로 번 돈이라고 했으나 노동으로 그 돈을 모으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몽둥이로 때리는 바람에 사실대로 말했다. 자백에는 고문이 최고라고 했다. 오득철은 혜산 제3 교화소로 입소했다.
12월의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득철은 교화소로 들어갔다.
나이 40에 뚜벅뚜벅 걸어서 교화소 철문 앞에 섰다.
죄명은 간첩죄였다. 정식 이름으로 공화국 배반죄였다.
서글펐다. 부끄러웠다.
“대가리 들라!”
“어디 할 지랄이 없어서 나이 40에 조국을 배반하는 간첩 노릇을 하느냐?”고 간수가 호통을 쳤다. 더러운 놈 15만$에 영혼을 팔고 조국을 배반하느냐고 했다. 득철은 할 말이 없었다. 형 득남이가 그렇게 돈 조심해서 쓰라고 했는데, 주머니의 돈이 순간 득철은 우쭐했다.
특별한 돈벌이 없는 중학 친구 안봉근, 이재만이 술 사주는 득철이 최고라고 치켜세우니 순간 우쭐해서 해야 할 말 안 할 말 다 했다. 교화소 담벼락에는 <도주자는 쏜다> <도주는 자멸이다>라는 글씨가 사람 키만큼 크게 새겨져 있다. 득철이가 간첩죄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은 오득남은 바로 아내 박은경과 딸 오혜령을 불렀다.
간단하게 자기의 가방을 챙겨 본인이 들고 도망가는데 지장없는 분량만 담아 바로 줄행랑을 쳐야 한다고 했다. 올해 11살 딸 혜령이 물었다.
“아버지, 우리 왜 가?”
“응, 득철 삼촌이 간첩죄로 잡혀갔다. 우리 집안 모두 교화소 가느니 어디든 도망가서 사는 편이 백배 좋다.”
“그럼,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일단 압록강을 도강하여 중국으로 가서 거기서 모색해 보자?”
오득남은 평소에 북한에서 송이버섯을 구입해 행림 상사로 납품하러 다니던 루트를 따라 이동하여 아내 박은경과 딸 혜령을 동행했음에도 큰 어려움 없이 연변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행림 상사 하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행림 상사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득남입니다. 풍계 생수 전달한 사람?”
“예, 반갑습니다. 누구 연결할까요?”
“하 부장님 부탁해요.”
“예, 하 부장님 연결하겠습니다.”
“예, 행림 상사 하 부장입니다.”
“부장님, 득남입니다.”
“웬일이세요?”
“급해서 그러는데, 바로 진달래 식당서 만날 수 있나요?”
“예, 기다리세요. 제가 사장님께 보고하고 바로 가지요.”
“예, 기다리겠습니다.”
진달래 식당에서 하태성 부장을 만난 승 득남은 아내 박은경과 딸 혜령을 하 부장에게 인사시키고 아내와 딸은 먼저 냉면으로 식사를 하고 하 부장과 득남 둘이는 다른 방에서 단고기 전골에 소주를 시켰다. 그리고 그간의 경과를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하 부장은 계산대로 가서 행림상사 유영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행림상사입니다.”
“김 양. 나 하 부장인데, 사장님 연결해줘.”
“예, 사장님 연결하겠습니다.”
“예, 행림상사 유 사장입니다.”
“사장님, 하 부장입니다.”
“말해?”
“예, 상황이 좀 급하게 되었습니다. 오득남, 오득철 형제가 지난 번 풍계 생수 제출하고 받은 돈 15만$를 득남은 조심해서 사용했는데 동생이 흥청망청 쓰다가 혜산에서 보위부에 잡혀가 교화소로 입소했다고 합니다.”
“뭐야?”
“죄송합니다. 제가 돈 사용 교육을 좀 더 철저하게 시켰어야 했는데.”
“그럼, 우리 행림 상사도 타격 입은 거 아냐?”
“그래서 긴급이라고 보고 드립니다. 북한에서 중국 공안에 요구해 합동 단속 나오면 우리는 완전 현행범 되는 것입니다.”
“알았다. 하 부장 개인 물건은 일단 박스 하나에 담아 진달래 식당에 맡겨줄 테니 하 부장은 오득남 처리 잘하고 연변에 남아 후속 조치해라. 행림 나머지 식구는 사업장 폐쇄하고 귀국한다.”
“예, 알겠습니다.”
유 사장과 통화를 마친 하 부장은 자리로 와서 승 득남과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음에 걱정거리가 있으면 식욕도 떨어지는데 이렇게 힘들수록 억지로라도 식사를 하셔야 합니다.”
“예.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동생이 잡혀갔다는 소식에 일단 가족 데리고 여기까지 도망쳤는데, 정말 난감합니다.”
“이미 동생이 간첩죄로 교화소에 간 이상 득남은 다시는 북한 땅을 밟지 않는다는 각오로 사셔야 합니다. 먼 훗날 통일이 되면 그때나 고향에 갈까 절대로 다시 북한 땅을 밟는 순간 교화소 간다고 생각하시고, 제 생각에는 일단 북경으로 가서 한국 대사관에 망명 신청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습니다.”
“예, 저도 그럴 생각으로 탈북하였습니다.”
득철은 교화소 입소 후 죄목이 간첩죄라 모든 죄수 중에 가장 천대받았다.
“야, 너 나이 몇 살이냐?”
“40세입니다.”
“나이 40 먹고 간첩죄야?”
“......”
“어떤 간첩 일을 했냐?”
“형과 함께 풍계 깊은 계곡의 생수 20리터를 중국에 가져다주면 30만 $ 준다고 해서 형과 운반하고 30만 $를 15만 $씩 나누어 가졌습니다.”
“야, 이 새끼 완전 봉이 김 선달이네?”
“아니지, 김선달보다 더한 놈이지 맹물 20리터에 30만 $ 면 1리터에 만 달러 이상 받은 놈이네?”
“그럼, 네 형은 지금 뭐 하냐?”
“모릅니다!”
“이 새끼보다 형이 더 원조 간첩 같네. 형을 먼저 잡아야지 보안서 놈들도 나사가 풀려 몸통은 못 잡고 깃털만 잡았네?”
“형도 곧 잡히겠지, 동생이 간첩죄 자백했으니 변명할 수 없지.”
“아니야, 형 놈은 동생 잡힌 거 알고 벌써 도망쳐 남조선 서울행 비행기 탔는지도 몰라?”
12월의 추운 날씨에 득철의 70세 노모 김 채란 노파가 아들 면회를 왔다.
오전 10시 30분 계호 책임자가 감방 7번 방으로 들어왔다.
“오득철! 어머니가 이 추운 날씨에 면회를 오셨다. 면회소로 내려가라!”
“예, 감사합니다!”
면회실에는 어머니 혼자 계셨다.
“득철아, 배고프지?”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먹는 것이 집보다 부실하지?”
“춥지?”
“예”
“여기 솜옷 가져왔다. 밥도 싸왔다.”
득철은 70 노모 앞에서 눈물범벅이 되어 어머니가 가져온 밥을 먹었다.
이민준은 행림 상사에 가서 사정을 말하고 압록강 접경지역 중국 땅에 농가 하나 빌려서 풍계서 가져올 나뭇잎 20 Kg 을 보관할 장소를 준비할 계획으로 행림 상사를 찾았다. 행림 상사는 이미 간판은 붙었으나 회사는 폐업된 후였다.
멍하니 행림 상사 간판을 쳐다보다가 진달래 식당을 생각해냈다. 진달래 식당 사장과 행림 상사 사장이 잘 알고 지내는 만큼 행림 상사의 폐업에 대해서도 진달래 식당 사장이 알 것이라는 생각하였다.
“안녕하셨어요, 진달래 사장님!”
“어서 오세요. 무얼 드시겠습니까?”
“냉면에 소주 한 병 주시고요, 그보다 사장님께 물어볼 말이 있어요?”
“말씀하세요?”
“행림 상사 거쳐오는 길인데, 행림 상사 무슨 일 있었나요?”
“아~모르셨구나?”
“뭔 일 있어요?”
“아주 큰일이죠? 혜산에 있는 오득남, 득철 형제가 행림 상사에 풍계 생수를 운반하고 30만 $ 받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동생이 그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보안 지서에 잡혀가 간첩죄로 지목되어 교화소서 노역 중입니다. 동생이 잡히자 형은 아내와 달을 데리고 도망을 가고.”
“그게 언제요?”
“한 열흘 되나?”
“세상에, 그럼, 나는?”
민준은 정말 난감했다. 자신은 행림 상사만 오면 미화 20만 $ 정도는 언제나 선불로 받아서 사업 진행할 수 있는 걸로 믿고 왔는데, 이미 회사는 폐업되고 말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하태성 부장의 핸드폰 번호로 전화했다.
“예, 하태성입니다.”
“안녕하세요? 하 부장님! 저는 청진의 이민준 입니다. 기억하시죠?”
“저도 민준씨 연락을 눈 빠지게 기다리던 중입니다. 지금 어디요?”
“진달래 식당입니다.”
“그럼, 내가 그리 갈 테니 그대로 있어요. 한 시간 안에 도착합니다.”
정말로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하 부장이 숨 가쁘게 진달래 식당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민준씨?”
“안녕하세요, 부장님?”
“오득남, 득철 형제 소식 모르시죠?”
“조금 전에 식당 사장님께 이야기 들었습니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우리 사업 반쪽을 담당했던 득남, 득철 형제가 행림 상사에 생수를 건네주고 받은 30만 $를 둘이 15만 $ 씩 나눈 것은 좋은데, 돈을 함부로 써 보안 지서에 잡혀가고 간첩죄로 교화소에 갔소. 우리 행림 상사가 중국 공안에 의해 사업장 폐쇄당하는 것보다 자진 폐업이 안전하고 나만 남기고 다 철수했어요.”
“그럼, 풍계 나뭇잎은 이제 소용없게 된 것입니까?”
“그래서 제가 제 정도 선생을 지금까지 숨어서 기다린 것입니다.”
“청진서는 국가 안전 보위부에서 별다른 동태 파악 못했나요?”
“저는 먼저 청진을 떠나 여기 중국에 와 있었는데, 어제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니 청진 노모 계신 집으로 국가 안전 보위부 청진 지부 우병우 과장이 자기를 꼭 만나라고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그 말입니다. 이미 안전보위부에서 풍계 생수를 가져간 간첩을 잡았으니 너희 청진은 나뭇잎 담당한 놈들을 체포하라고 명령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럼, 나뭇잎은 이제 필요 없습니까?”
“아니죠. 필요성은 그대로인데, 이민준 선생 동료와 망이 망가졌으니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럼, 20 Kg은 아니고 2-3 Kg만 가져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망이 다 망가졌는데 2-3 Kg을 무슨 수로 가져옵니까?”
“일단 제가 나뭇잎 보관 장소부터 구해 놓고 어머님께 연락해 인원 8명 중에서 3명만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이 가능하겠어요?”
“목숨 걸고서라도 가져오고 현상금도 받아야지요.”
“너무 성급하게 달려들면 다 망합니다. 이미 청진에 이 민준 나타나면 체포하라 명령이 내려진 상태서 덤비면 큰일 납니다.”
“그럼, 전 이제 어떻게 하죠?”
“민준 씨,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풍계 나뭇잎 20 Kg을 다 수집은 무리고 단 2-3 Kg이라도 수집하는데, 지금 당장 말고 청진과 풍계 일대에 보안 지서와 안전부 놈들 활동이 좀 뜸해지기를 기다려서 추진합시다.”
“예, 알겠습니다.”
“하 부장님, 내가 풍계 나뭇잎 수거를 위해 일한다면 자금 지원해 줄 수 있습니까?”
“예, 바로 바로는 안 되고 2-3일 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제가 서울의 유영희 사장님께 보고하고 제가 사용하는 계좌로 활동비 수령 받아 전달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우선 국경 근처의 농가에 나뭇잎 보관할 장소를 구할 수 있게 3일 후 10만 $ 지원해 주세요.”
“예, 사장님께 보고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조심조심 잘해야 합니다. 급하게 일을 추진하다 부식 망이 없어지면 망 하나를 다시 세우는 데 10년 걸려요.”
“예, 조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상황이 긴박한 만큼 20 kg 염두에 두지 말고 2-3 Kg 이라도 신속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수 신 : 행림상사
참 조 : 영업부장(이 시연)
제 목 : 단풍잎 구매 계획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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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십니까? 본사의 발전을 기원하며 단절되었던 단풍잎 사업을 재개할 수 있기에 아래와 같이 보고하니 승인바랍니다.
2. 내 용
가. 단풍잎 담당한 실무자가 최초 20 kg을 도저히 구할 수 없어서 3kg으로 줄여서 구매하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단풍잎 보관 장소를 중국 쪽 농가를 임대할 계획이니 임대로 10 만 $를 본인의 계좌로 3일 이내 입금바랍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99X8. 12. 1.
연변에서 장 영하 드림
나이 40세에 교화소에 들어온 오득철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득철은 7호 방에 수감되었다. 간수는 7 호방 방장에게 이 새끼는 공화국을 배반한 간첩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법대로 하면 원칙은 총살해야 하는데 이놈과 공범인 형 승 득남을 아직 잡지 못해 여기 수용하는 것이니 교양 잘 시키라고 했다. 조선만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 00조 3항 국가모독죄 및 간첩 및 적대 행위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공개총살이다.
꿈에서 어머님이 득철아! 득철아! 하면서 통곡하셨다.
나 때문에 어머니까지 간첩 행위자의 가족이 된 것이다.
형 득남이와 형수 박은경 조카 오혜령이는 국경을 잘 넘었는지 자신은 잡힌 몸이지만 남은 가족만이라도 무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겨울의 교화소는 도시보다 더 춥다. 감방 통로에 난로를 피웠다. 연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고 감방 안으로 들어와 보도가 연기로 자욱했다. 매콤한 냄새가 났다. 득철은 연기 때문에 눈물을 조금 흘렸다. 기침이 나왔다.
교화소는 교화소장이 제일 높고, 부소장, 정치부장, 간부 과장이 있고 제1과부터 5과까지 과장과 보안원, 보안 보조원이 있었다.
교화소 울타리 경계는 지역 군부대에서 경계를 담당했다. 혜산시 제3 교화소는 혜산시 변두리에 있었다. 지나는 차량도 없는 한적한 산촌이다. 교화소 콘크리트 담벼락은 8m 높이였다. 감히 탈출 엄두를 낼 수 없는 높이다. 교화소 간부들은 나이 불문하고 감방의 수감자에게 반말 명령조의 어투였다. 보안과 비서가 득철을 찾는다고 하여 보안과로 출두했다.
“득철, 너는 내 말 잘 들어라. 너 7호 방에서 생활하면서 그 방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잘 기억했다가 내가 호출하면 다 말을 해야 한다. 건너 9번 방 죄수들도 어느 놈이 소란을 피우고 싸우는지 잘 기억했다가 나에게 보고해라.”
“예, 알겠습니다.”
“남의 행동을 보고 일러바치기 싫지?”
“아닙니다. 일없습니다!”
“그래, 그럼 난 득철이 너만 믿는다.”
“예, 알겠습니다.”
보안과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교화소 연병장에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어린 시절은 눈만 오면 마냥 즐겁고 기쁘기만 했는데, 이제는 눈이 지겹고 귀찮다. 저 많은 눈을 치울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교화소 입소한 날부터 하늘도 땅도 득철을 비웃는 것 같았다.
담장에 새겨진 커다란 글씨 <도주자는 쏜다> <도주자는 멸망이다>가 그냥 구호가 아닌 것을 추운 겨울에 목격했다. 비상 사이렌이 엥~~웽~~울렸다. 영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모든 교화소 직원과 죄수들은 연병장에 집합하라고 했다. 겨울철이라 땔감 나무 구하러 산으로 간 벌목공들도 벌목을 조기 중단하고 교화소로 돌아왔다. 교화소 연병장에 2000여 명의 죄수들하고 직원이 모였다.
“사격수 앞으로!”
소대장의 구령에 따라 사격수 4명이 사대 앞에 사격 준비 자세로 섰다.
도주했다가 붙잡힌 죄수 4명이 말뚝에 나란히 묶여 있다.
“우로 돌아!”
구령에 맞춰 사격수가 우로 돌아 도주자가 묶인 말뚝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사격 준비!”
“사격 준비!”
“발사!”
“발사!”
“탕!”
“탕!”
“탕!”
“탕!”
교화소 연병장에 총성이 울려 퍼진다.
사람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4 명의 도주자의 목이 앞으로 푹 수그러졌다.
피를 흘린 4명의 죄수의 시체를 참석한 2000 여명의 죄수와 교화소 직원들이 일렬종대로 견학했다.
보안과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도주자의 말로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라!”
득철은 소름이 돋았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도주자의 옆을 지나갔다.
죄수들은 모두 강당으로 들어갔다.
도주자의 처형 다음에 이어지는 것은 녹음기처럼 반복되는 보안과장의 정신교육이었다. 보안과장의 교육 내용은 매번 똑같다. 도주자의 말로는 총살이다.
이렇게 총살당하고 싶으면 도주하라.
오늘도 똑같은 정신교육이 진행되었다.
보안과장의 특별정신 교육에 이어지는 것은 사상학습이다. 죄수들은 큰 소리로 김정일 장군님은 교시하셨습니다.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나라와 인민 앞에 죄를 짓고 개전 생활을 하는 수용자들에게 있어서 노동은 썩어빠진 자본주의 정신을 몰아내고 번쩍이는 공산주의 사상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를 큰 소리로 복창했다. 하루종일 피곤한 일과를 보내고 취침 구호에 맞춰 침상에 누워도 득철은 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3 일 후 제 정도는 진달래 식당에서 하 부장을 만나 10 만 $를 받았다. 정도는 일부를 중국 위안화로 환전했다. 압록강 너머 중국 땅에 교통이 나빠 중국 공안의 순찰도 별로 오지 않는 한적한 곳에 농가를 임대했다. 겨울 동안만 사용하고 봄에 농사지을 때 주인에게 되돌려주기로 하고 빌린 것이다.
민준은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농가 주택 임대한 곳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어머니에게 지난번 집에 초대했던 8명 중에 어머니가 가장 믿는 3 명에게만 주소를 알려주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아직 정도 소식을 모른다고 하라고 했다. 민준 어머니 노수란 노파는 아들 친구 중에서 어려서부터 민준과 친했고 입이 무거운 친구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을 은밀하게 집으로 초대했다. 저녁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추운 겨울에는 동태찌개가 최고라 생각하고 준비했다. 술도 준비했다.
“어머니, 오늘 무슨 날입니까?”
“날은 무슨 날, 그냥 아들놈 중국서 언제 올지 모르니 아들 친구와 밥 한번 먹는 것이지?”
“그런데, 누구 생일처럼 푸짐하게 준비하셨어요?”
“민준 없이 나 혼자 밥 먹으면 밥맛이 없어 오늘은 아들 친구 3 명이 함께 먹으니 밥맛 참 좋다!”
“예, 민준 없는 동안 저희들이 교대로 아들 노릇하겠습니다.”
“그럼, 고맙지.”
“예, 내일 제가 먼저 집에 땔감 나무 해드리고, 다음 주는 승종이 그 다음 성훈이 순으로 하겠습니다.”
“올 겨울은 나무 걱정 없이 살아도 되겠구나?”
“걱정 마세요.”
아들 친구 3 명과 동태찌개에 소주 한잔씩 주고받자 어머니가 본격적인 말을 했다.
“사실, 친구들이 많지만 3 명만 부른 것은 지난 번 나뭇잎 20 kg 구하기로 한 사업이 잘 못하여 3kg으로 줄었다고 민준이가 3 명만 추려서 농가 주소 알려주라고 해서 너희들 3 명 부른 것이야.”
“예,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 조심하고, 혹시 물으면 정도 소식 모른다고 똑같이 말하고.”
“예”
“어머니, 왜 20에서 3으로 줄었다고 했나요?”
“저쪽 혜산에서 물을 담당한 형제가 물 한말 구해주고 30 만 $를 받았는데, 한 명이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보위부에 잡혀가 고문 받고 실토해 간첩죄로 교화소 입소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나뭇잎 사업은 완전 중단될 판인데, 민준을 도와주는 부장이라는 분이 어렵게 연락이 되어 3 kg으로 줄여서 하기로 한 거니 실수 없게 해라.”
“예, 알겠습니다.”
3 명의 친구들은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들이 돌아간 후 김 채란 노파는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다 마치는 순간 문밖에서 누가 어머니를 불렀다.
“누구세요?”
“보안 지서에서 나왔는데, 아들 민준 동무는 통 소식이 없소?”
“예,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거짓말? 아까 윤성훈, 박영만, 곽승종 등이 이집에서 나가는 것을 내가 밖에서 봤는데, 그렇게 거짓말을 하소?”
“아들 민준이가 없으니 내가 그 3 명 아들 친구 밥 한번 먹이고 땔감 나무 부탁했소. 그 3 명 붙들어 물어 봐요, 나무 해주기로 했나 안 했나?”
노수란 노파의 말을 들은 보안지서 보안원은 알았다고 하고 돌아갔다. 노파는 잠자리에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천장이 온통 민준 얼굴로 채워졌다.
다음 날 3 명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로 향했다. 지나가는 차량이 있으면 얻어 타고 없으면 걷고를 반복하여 풍계에 당도했다. 풍계 일대는 군인들 경계 초소가 주요 목마다 설치되어 있었다.
“어이, 거기 3 명 동무들 이리 오라!”
“부르셨습니까?”
“동무들 공민증 꺼내 봐라!”
“여기 있소.”
“여기.”
“여기.”
“3 명 모두 집이 청진인데, 이곳 풍계까지 여행증명서도 없이 뭐 하러 왔소?”
“군인 동무,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여행증명서는 있으나마나 증명서 된 거 모르오?”
“풍계 온 이유는?”
“어머니가 눈 속에 인동초가 약효가 좋다고 인동 찾다가 청진서 여기까지 온 것이오.”
“풍계는 얼마 동안 머물 작정이오?”
“일주일 있을 것입니다.”
“알았소. 통과하시오.”
오득남 가족 일행은 북경으로 가서 한국 대사관으로 잠입했다. 자신들은 중국 공안과 북한 보위부에 쫓기는 사람들이라고 하고 한국으로 망명 신청을 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중국 대사관에서 보증하는 장소에서 지내다가 승 득남 일행은 북경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입국하게 되었다. 비행기 가장 뒷줄에 탔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다. 기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만감이 교차했다.
“승객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곧 인천 국제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비행기가 완전 정지할 때까지 안전벨트를 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희 대한항공을 이용해주신 승객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가시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가십시오.” 드디어 한국이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오득남, 박은경, 오혜령은 대한민국에 온 것이다.
연변에서 행림상사 하 부장의 말을 듣고 북경으로 가서 대한민국 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하고 한 달 후의 한국행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인천공항은 아름다웠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국가정보원에서 보낸 미니버스를 타고 다른 탈북자들과 같이 이동했다.
국가정보원에서 가족사항과 북에서의 행적을 신문하고 탈북 이유와 경로를 신문했다. 일주일의 기초조사를 마치고 승 득남은 남자 하나원이 있는 양주로 이송되고 박은경과 오혜령은 여자 하나원이 있는 안성으로 이송 되었다.
하나원 선생님 중에는 자신들처럼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 사회에 적응한 사람도 있었다. 하나원에서는 한국인으로 정치 경제 기본지식과 북한과 남한의 다른 점에 대해 집중 교육이 이루어졌다.
곽승종, 박영만, 윤성훈 3 명은 눈 속에서 눈을 헤치고 채취한 나뭇잎을 풍계서 북쪽 방향으로 하산을 했다. 청진에서 풍계로 들어올 때 만났던 군인들을 다시 접촉하자 않기 위해서다. 들어올 때 약초를 구한다고 들어와서 나뭇잎을 가지고 나가면 의심받을 것이 뻔했다. 아예 생소한 길을 택해서 처음 만난 군인에게 집에 퇴비를 하려고 나뭇잎을 가져간다고 변명하려 했다. 산속에서 식량을 미리 준비해 온 것이 없었기에 칡뿌리를 캐서 허기진 배를 달랬다. 걷다가 얼지 않은 물을 발견하면 물을 배불리 마셨다. 그렇게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국경연선에 도달했다. 군인들 초소를 어떻게 통과할 지가 걱정이 되었다. 앞서 가던 박영만이 바위에 걸터앉자 모두 바위 주변에 앉았다.
“야, 저 앞에 군이 초소가 보이는데, 어떻게 통과하지?”
“뭐 솔직하게 집에 나뭇잎 퇴비가 조금 모자라 겨울이지만 채취한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야, 중국에서 아는 사람이 나뭇잎 가져오면 1kg에 1$씩 준다고 해서 겨울이라 뭐 돈벌이 할 곳도 없어 이거라도 해서 식량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믿어 줄까?”
“우리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만약에 압수당하면 어떡하지?”
“왜 압수를 당해?”
“군인들에게 압수당한 것이 한두 건이야?”
“야, 이렇게 하자 우리 셋 중에서 한 명이 먼저 가서 통과하면 통과하고 압수당하면 뒤에 가는 사람은 다른 길로 우회하면 되잖아?”
“누가 먼저 갈 건데?”
“내가 먼저 가서 손짓하면 오고 초소에서 한 시간 이상 지나도 연락 없으면 다른 통로로 이동해 알았지?”
“그래, 영만이 선발대 역할 잘 해?”
“그 대신 내가 압수당해도 정도에게 돈 받으면 우리 3 명이 균등 분할하는 거다.”
“당연하자?”
박영만은 비료마대에 담은 나뭇잎을 들고 군인들이 근무서고 있는 통문으로 갔다. 초소 근무병이 불렀다.
“동무, 동무! 이리 와라!”
“예, 부르셨습니까?”
“공민증들 봅시다.”
“예, 여기 있습니다.”
“청진시라 청진 사람이 국경연선에 왜 왔소?”
“예, 아는 형님이 중국에서 박사이고 비료를 연구하는데, 우리 고향 청진에 딱 맞는 비료를 연구한다고 청진 나뭇잎을 좀 가져오라 해서 가져다주는 길입니다.”
“나뭇잎 속에 마약이나 다른 물건 숨겼으면 동무들은 바로 교화소로 갈 줄 아오.”
“예, 그런 것 없이 순전히 나뭇잎만 들어있습니다. 다 쏟고 다시 담겠습니다. 군관 동지?”
“그래, 다 쏟고 검사 후에 다시 담으시오?”
“예.”
영만은 들고 온 마대의 나뭇잎을 초병이 보는 앞에서 쏟았다. 그리고 다시 담았다.
“확인했으니 통과하시오!”
영만은 손을 흔들어 성훈과 승종을 오라고 했다.
“저 동무들은 뭐요?”
“예, 저 혼자 가져가면 양이 얼마 아니 되어 동무들이 나뭇잎 같이 운반해 준다고 나선 중학 동창입니다.”
“저 동무들 것도 마찬가지요. 여기서 다 쏟고 다시 담으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훈 과 승종이 도착했다.
“성훈이 승종 여기다 가져온 마대 다 쏟고 군관 동무 검사받고 다시 담아라!”
“알았습니다!”
곽승종과 윤성훈이 나뭇잎 검사를 마치고 다시 마대에 담았다.
3 명은 그렇게 국경연선을 통과했다.
민준 어머니가 가르쳐준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오랜 만에 4 명의 친구들이 만났다.
이민준,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 이들 4 명은 모두 청진에서 인민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동무이다. 이렇게 국경연선을 건너 중국 땅에서 재회하였다.
민준은 하 부장에게 전화를 했다.
“예, 하 태성입니다.”
“부장님, 이 민준 입니다..”
“오랜만이야, 연락 없어 궁금했는데. 어디야?”
“여기 잘 모르실텐데, 중요한 건 부장님 요구하신 나뭇잎 3 kg 구했습니다. 여기 압록강 건너 중국인 농가인데 버스도 안 다니는 곳입니다. 부장님 직접 차를 몰고 오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주소지 문자로 보내요. 내가 차 몰고 찾아가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민준은 압록강 건너 단동의 농가주택 주소를 문자로 보냈다. 2 시간 정도 기다리니 하 부장이 도착했다.
“안녕 하세요, 이 민준 선생!”
“하 부장님, 반갑습니다!”
“거의 포기할 번한 단풍잎 사업을 성공시켜 감사드립니다.”
“부장님, 이번 나뭇잎 운반 각 1 Kg 책임지고 운반한 친구들입니다. 왼쪽부터 박 영만, 곽 승종, 윤성훈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하태성 부장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영만 입니다. 민준에게 부장님 좋은 분이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곽승종입니다.”
“반갑습니다. 윤성훈입니다.”
“여기 오래 있으면 위험하니 빨리 이동합시다. 어서 제가 가지고 온 차에 타십시오.”
“예.”
하 태성 부장이 운전석에 이민준이 조수석에 그 위에 3 명이 탔다. 나뭇잎 마대는 트렁크에 실었다. 하 부장은 인원이 타고 나뭇잎 마대가 실리지 바로 출발했다. 차는 전 속력으로 달려 연변 진달래 식당으로 향했다. 하 부장은 진달래 식당에 전화로 예약을 했다.
“예, 진달래 식당입니다.”
“사장님, 저 행림 하 부장입니다. 4 명이 한 30 분 후에 도착 예정입니다. 단고기 전골과 수육 준비해주시고 소주 시원하게 해주세요.”
“예, 알았습니다.”
진달래 식당에 차가 도착했다. 하 부장은 3 명을 내리라고 하고, 인원이 다 내리자 제 정도에게 택배 보낼 곳에 가서 나뭇잎 택배 보내고 올 테니 일단 음식 준비되는 대로 드시라고 했다. 연변에 동북화물에 가서 택배 박스를 구해 3 Kg의 나뭇잎을 수신자 대한민국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 113 번지 행림상사 유영희 사장으로 하고 발신자는 연변의 장영하라고 했다. 장영하는 하태성 부장이 만약을 대비해 연변서 사용하는 위조공민증 이름이었다. 택배를 발송하고 하 부장은 진달래 식당으로 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 미안합니다.”
“일없습니다!”
“힘들게 구해온 나뭇잎을 혹시 중국 공안이나 북한의 국가보위부에 압수당하면 안 되기에 바로 택배부터 보냈습니다.”
“내일이나 모레면 한국서 받겠죠?”
“예, 정말 화물운송은 나날이 발전합니다.”
“자, 음식 앞에 놓고 수다를 떨면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한 잔 듭시다. 우리 모두 <단풍잎> 사업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청진서 풍계 이어서 국경연선 넘는데 고생 많으셨죠?”
“예.”
“정말, 풍계는 완전 산악 계곡이 군사기지처럼 삼엄합니다.”
“그렇겠지요. 가장 극비 중의 극비 핵 실험 장소니 얼마나 보안을 위해 당에서 국가적인 노력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여기 세분의 선생들 덕분에 행림상사는 회사 폐업의 수모를 당했지만 임무 완수를 해서 너무나 기쁩니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가지 박영만이 험난한 군인 초소 통과 이야기를 꺼냈다.
“청진서 비닐 마대만 휴대하고 풍계까지 가기는 갔는데, 진입로에 군인 초소가 너무 많이 있어서 돌아가려 하는 순간 한 군인 초병이 부르더군요. 초소 앞에 가니 우리 3 명 공민증 검사와 여행증명서를 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군인 양반 이미 고난의 행군 시기에 당에서 국가 배급이 중단되어 여행증명서고 뭐고 식량 인민들이 알아서 해결했는데, 무슨 여행증명서요? 했더니 공민증을 자기 초소에 맡기고 풍계서 나올 때 찾으라 하더군요.”
“그래서 공민증 냈습니까?”
“미쳤습니까? 내면 우리가 나뭇잎 채취 후 나오는 길도 그리로 와야 하는데. 제가 대들었지요. 당에서 국가서 식량해결 못해 우리가 겨울에 인동 약초 구하러 왔는데 나가는 길은 이리 갈지 반대로 산을 넘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여기에 공민증 맡기냐고 항변했더니 그냥 공민증 돌려주더군요.”
“나뭇잎 눈을 헤치고 담느라 고생 많았겠습니다.”
“예, 눈이 많이 쌓인 곳은 1 미터 이상 눈이 있어 최대한 양지쪽에 가서 나뭇잎을 채취했습니다.”
“국경 초소는 어떻게 통과했습니까?”
“혜산 팀은 군인 초소에 300 $ 뇌물 고이고 통과했다는데......”
“우리도 안 되면 뇌물 고일 작정으로 1$ 짜리 200 $ 정도 준비하고 떠났습니다.
박 영만 동지가 대담하게 국경 초소 군인들에게 청진 아는 형님이 중국에서 비료 연구하는 과학자인데, 청진 풍토에 가장 적합한 비료 연구해준다고 부탁해 청진 고향의 나뭇잎을 가지고 간다고 말하니 별 의심 없이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미 모든 것이 하 부장님이 그 동안 우리 친구 이 민준을 잘 챙겨주고 뭐든지 가격을 높게 쳐주어 일이 성공한 것입니다.”
“예, 그래서 고생하신 3 명 선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가 택배로 보낸 나뭇잎 받아 보면 사장님이 제 계좌로 돈을 바로 입금할 것입니다. 돈이 들어오면 바로 출금해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리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우리는 나뭇잎이 이런 돈벌이가 되는 줄 몰랐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상부의 명령이니 시키는 대로 수행할 뿐입니다. 저도 생수 지난 번 서울로 보내고 혜산 팀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예, 저희 청진 팀은 각별히 조심 할 것입니다.”
“자, 그럼 전 숙소에 가서 오늘 여러분이 가져온 물목에 대해 서면보고를 해야 하니 이만 먼저 일어서겠습니다. 남은 음식과 소주는 이 민준 선생 주관으로 더 드시고 부족하면 사장님께 요구하세요. 돈은 제가 차후 정산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하 부장이 나가자 이민준이 술을 더 시켰다.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린 시절 청진서 바닷가에서 놀던 이야기, 고난의 행군 시기에 산에 가서 산나물 채취했던 이야기, 먹을 것이 없어 ‘고북’ 이라 불리는 흙덩이를 먹고 피똥을 싸던 이야기, 김일성 사망하고 엉엉 울던 이야기, 군대입대 전 온 동네 쏘다니며 술 마신 이야기 등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것을 진달래 식당 사장이 영업시간 종료를 알리자 끝이 났다.
이민준은 자기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3 명의 친구들을 데려갔다. 들어가면서 가게서 소주 3 병과 오징어채를 사가지고 들어갔다. 여관방에서는 유리컵에 소주를 나누어 마셨다.
“야, 정도야 우리가 가져온 나뭇잎 얼마나 쳐줄까?”
“20 Kg에 70 만 $였으니 3 Kg 면 20 만 $ 이상 주겠지?”
숙소로 돌아온 하 부장은 유영희 사장에게 공문을 작성해 팩스로 보냈다.
수 신 : 행림상사
참 조 : 영업부장(이 시연)
제 목 : 단풍잎 매입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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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십니까? 행림상사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귀사에서 문의한 단풍잎에 대한 매입 보고를 아래와 같이 하오니 결재바랍니다.
2. 내 용
최초 단풍잎을 귀사에서 20 kg 요구하였습니다만 겨울이라 이곳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인부를 구할 수 없어 3 kg만 구했습니다. 단풍잎은 오늘 동북화물 택배로 발송했습니다. 택배 받으시면 단풍잎 대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199X. 1.21.
단동에서 장 영 하 드림
FAX 전문을 받은 이 시연 전무는 유영희 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장님, 하 부장 보고입니다.”
“그래, 뭐라고 왔어?”
“일단 20 Kkg는 아니고 3 Kg 구했습니다!”
“야, 정말 하 부장이나 오득남 밑에 있는 행동대원들 물건이네!”
“예, 거의 혜산 팀 교화소 가고 행림상사 폐업하고 접을 사업을 이 정도 해낸 것은 대단합니다.”
“그래, 방사능 검출 안 되려면 20 Kg도 검출 안 될 것이고 검출되면 3 Kg도 검출 될 것이야.”
“예, 그렇습니다.”
“단풍잎 대금은 얼마나 보낼까요?”
“산술적으로 하면 20 Kg에 70만 $니까 3 Kg 면 나누기 7은 10만 $인데 사장님 좀 더 쓰시죠?”
“그래, 다들 목숨 걸고 한 일들이니 욕 안 먹게 주어야지, 50만 $ 보내서 이민준 선생 20 만 $를 주고 나중에 운반한 3명에게 각 10만 $ 주도록 해. 하 부장은 본인 경비 10만 $에 격려금 5만 $ 추가해 주고.”
“예, 알겠습니다.”
유 사장실에서 나온 이시연 전무는 국제전화를 걸었다.
“예, 장영하입니다.”
“그래, 수고 한다 장영하, 내 전화는 그냥 하태성이라고 받으면 안 되냐?”
“아닙니다. 실수하면 안 되니 아예, 안면 몰수하고 국제전화는 장 영하로 받습니다.”
“그래, 보낸 팩스 사장님 보고 마쳤고, 사장님 기뻐하시면서 50만 $를 보내 이민준은 20만 3명은 각 10만 $ 하 부장은 숙식비 10만 $ <단풍잎 작전> 성공 격려금 5만 $ 총 65만 $ 보낸다. 70만 $에서 5만 $ 남는 것은 행림식구 서울서 회식한다. 이상!”
“예, 감사합니다. 전무님!”
다음 날 아침 9 시가 넘자 하태성 부장은 연변 중심가 은행으로 갔다. 통장을 정리했다. 신규 입금 55만 $가 찍혔다. 50만 $를 인출했다. 진달래 식당으로 이민준 외 3명을 모이라고 했다. 식당에 4명 단고기 전골 주문을 했다. 12 시에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 하자고 했다.
이민준은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이 묵고 있는 장백산 여관으로 갔다.
“야, 일어나!”
“지금 몇 시야?”
“10 시 30 분!”
“할 일도 없는데 좀 더 자자?”
“야 할일 없는 것이 아니라 엄청 중요하다. 너희들 나뭇잎 가지고 온 수고비 남조선 유 사장님이 돈을 보내왔다 12 시 진달래 식당에서 배터지게 먹고 돈도 받는다. 알았지?”
“야! 이게 꿈이야?”
“네 손등을 꼬집어 봐라 아픈가 안 아픈가?”
“아픈걸 보니 꿈은 아니다!”
부지런히 씻고 양치질 하고 면도도 했다. 옷은 허름해도 몸은 때 빼고 광내고 진달래 식당으로 갔다. 진달래 식당 사장이 배시시 웃으면서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이민준 사장님, 박영만 사장님, 곽승종 사장님, 윤성훈 사장님!”
“우리 사장 아닌데?”
“아이고 사장이 별건가요? 우리 진달래 식당 단골이면 사장님이십니다!”
“우리 보고 오늘 매상 많이 올리라 이 말이네~~”
“예, 맞습니다. 오늘 술 좀 많이 팔아 주세요. 헤헤 ”
안방 깊숙한 곳에 전골과 수육이 자려지고 소주도 4 병 올려 있었다.
“어서 오세요, 제 정도 선생!”
“반갑습니다. 하 부장님!”
“반갑습니다. 장 선생님과 두 분 이 선생님!”
“반갑습니다. 부장님!”
모두 자리에 앉자 하 부장이 입을 열었다. 술이 취하면 하고 싶은 말을 하다가 잊을 수 있다고 술을 마시기 전에 다 한다고 말을 했다. 주요 내용은 서울 유영희 사장이 여기서 보낸 택배 나뭇잎을 잘 받았고 여러분 수고비로 50 만 $를 보냈다. 이 민준 선생은 이 사업 최초부터 수고한 노고로 20만 $를 3명의 운반자에게는 10만 $를 보내 여기서 나누어준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번 혜산 팀이 30 만 달러를 받아 각 각 15만 $ 나누어 동생 승 득철이 흥청망청 쓰다가 혜산에서 국가안전 보위부에 잡혀가 조사 받고 최종에는 교화소로 간 사례를 말해주며 정말로 돈 사용 조심조심해서 돈의 출처가 탄로 나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동생 승 득철이 잡혀가자 형 득남은 아내와 딸을 데리고 북경의 대한민국 대사관에 가서 망명요청을 하고 지금 한국으로 망명 대기 중에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탈 없게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자 이제 마음껏 드시기 바랍니다. 먼저 잔을 들어 주세요.”
“우리 모두 단풍잎 작전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득철이가 수감된 교화소는 일반 사회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별천지였다. 계호원의 도움 없이는 외부에서 음식을 넣어줄 수도 없었다.
계호원에 담배 한 보루씩은 뇌물로 괴여야 뭐 하나라도 전달이 되었다. 교화소에 들어온 여자 죄수 중에 얼굴이 반반한 여자는 계호 책임자의 성노리개가 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일반 계호원도 자기가 당직 서는 날 여자 죄수를 자기 사무실로 불러 강간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교화소 내부에서는 누구 하나 이의제기를 못했다.
득철이 교화소에 입소한 지 2 개월이 되는 1999 년 2월 1일은 전날부터 내리던 눈이 이틀 동안 그칠 줄 모르고 내렸다. 아침을 먹고 죄수들이 각자의 일터로 나가야할 시간 계속 눈이 내리자 교화소장은 일터로 가는 것을 중지시키고 대기했다가 전원이 제설 작업을 하라고 명령을 했다.
교화소 죄수들이 만드는 것은 다양했다. 나무로 책상 의자 옷장 등을 짜기도 하고, 벌목반원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왔다. 돼지, 염소를 키우기도 하고, 함석으로 지붕도 만들고 난로 연통을 만들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눈이 그쳤다. 눈은 교화소 연병장에 쌓인 것만 무릎 이상 올라오게 쌓였다. 수감자는 각 호실 별로 1 과 과장이 제설작업 구역을 나누어주었다. 죄수들 전원이 오후 내내 제설작업을 했으나 내린 눈이 워낙 많아 눈에 잘 보이는 곳만 우선 눈을 치웠다. 다음 날도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제설작업을 한다고 공지를 했다. 교화소 본동에서 멀리 있는 강당은 제설작업 손도 못 대고 토끼 사육장과 염소 사육장은 겨우 사료를 나누어 줄 수 있을 만큼 길만 겨우 냈다. 당초 부실한 교화소 급식인데다 하루 종일 제설작업을 하니 저녁을 먹었으나 배가 쉬 꺼졌다.
득철은 형 득남이 잡혀오면 함께 총살시킬 것이라고 7 번 감방에서 밥을 먹고 나면 교화소 간부들의 심부름이나 하던 것을 2 개월 지나도 득남이가 잡혀오지 않자 노동 강도가 높다고 소문난 벌목공에 배치되었다.
교화소에 벌목반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인원이 많다 보니 벌목하다 죽는 사람도 많았고 허약병환자도 가장 많았다. 벌목반장이 득철을 불렀다.
“7 번방 오득철 벌목반장님께 불려왔습니다.”
“야, 득철이 너 간첩이라며?”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이놈아! 내가 다 보안에게 다 들었는데.”
“예, 죄목이 간첩 죄목입니다.”
“어떻게 간첩 노릇했나?”
“예, 우리 형님이가 특별히 바쁜 거 없으면 같이 물이나 뜨러 가자고 해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에 가서 생수를 한 말 떠다가 중국에 내다 주었더니 달러 30만 $ 주어 형과 15만 $ 씩 나누어 쓰다가 보위부에 걸려들어 여기가지 왔습니다.”
“이 새끼 완전 미제 반동분자네! 아주 고약한 간첩이야!”
“북조선 공화국 수령님과 장군님이 강성대국이라고 외치는 것이 핵무기 보유하여 자주권을 지키는 것인데, 핵실험 여부를 확인하는 미제에게 풍계 생수를 떠다 바치는 놈이 완전히 정신 나간 매국노지?”
“전 그 물이 핵실험 여부를 가리는 물인 줄 모르고 했습니다.”
“야, 이 자식아! 그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야? 너처럼 무식하니 돈이 된다면 마약인지 간첩질인지도 모르고 그냥 다 해주는 놈들 때문에 미국 CIA나 남조선 국가정보원이나 공화국 정보를 그런 놈들 달러로 매수해서 야금야금 빼가는 거 아냐?”
벌목반장의 논리적인 말에 득철은 변명할 틈이 없었다. 그런 벌목반장도 돈에 관심이 갔다. 15만 $ 중 얼마를 쓰고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다. 2만 $는 유흥으로 탕진하고 13만 $는 휴대하고 있다가 보위부에 몰수당했다고 했다.
3일 동안의 제설작업이 끝나고 벌목반원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벌목반의 필수품은 도끼와 하산바다. 도끼는 나무 찍어 쓰러뜨리는데 쓰는 것이고, 하산바는 벌목한 나무를 교화소까지 끌고 오는데 쓰이는 것이다.
하산바는 단단한 삼마줄이나 쇠줄 끝에 뾰족한 쇠창살을 부착한 것이다. 득철도 벌목반이라 선임들에게 물어서 하산바를 만들고 도끼는 공구를 담당하는 4 과에 가서 녹이 벌겋게 슬은 도끼 하나를 얻어왔다. 숫돌에 하산바 끝을 예리하게 갈았다. 도끼날도 잘 들게 갈았다. 얼마나 잘 드는 지 머리카락이 잘릴 정도로 갈았다.
벌목공 200 여명이 20명씩 10개 조로 나누어 산으로 나무를 하러 떠났다. 사나흘 전 내린 눈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람이 밟고 올라가도 발자국만 남지 눈이 발목 아래로 내려가자 않았다. 그 만큼 단단하게 굳었다. 벌목에 처음 나선 신입자들은 반장이 벌목공 선임과 일대일로 짝을 맺어주었다.
“오늘 벌목반원 신입은 6 명이었다. 신입들은 반장이 지정해준 선임반원 말을 잘 들어라!”
“예, 알겠습니다!”
“선임들은 신입이 넘어지거나 나무에 깔리거나 넘어져 다치는 일이 없도록 교육을 잘 시키고 벌목해라!”
“예, 알겠습니다.”
오득철의 선임은 정세준이다.
세준은 사회에서 절도와 강간범으로 교화소에 온 인물이었다. 눈 위를 걸어가면서 세준은 득철에게 도끼로 나무 쓰러뜨리는 법을 일러주었다. 산이 비탈이기 때문에 도끼질을 먼저 아래서 위로 절반 정도 하고 나중에 위에서 아래로 도끼질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나무가 쓰러져도 앞으로 산 아래로 쓰러져 뒤에 있는 사람과 도끼질 하는 자신이 안 다친다고 일러주었다. 득철은 그 말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말을 끊으면 선임이 화낼 것 같아 그냥 예 예 하고 눈길을 따라갔다. 산 중턱에 이르자 정 세준은 굵은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득철이 오늘 쓰러뜨려야 할 나무를 일러주었다. 그 나무에서 2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세준은 자신이 쓰러뜨릴 나무를 고르고 도끼질을 했다. 득철도 선임에게 들은 대로 도끼질을 했다. 나무 밑 둥 아래서 위로 도끼로 찍었다.
나무가 탱탱 얼어 도끼가 튕겨나갔다. 그래도 장갑을 고쳐 끼고 다시 도끼질을 했다. 열 번 찍어 안 쓰러질 나무 없다는 각오로 도끼질을 했다. 나무 굵기의 반 쯤 아래서 위로 찍고 쉬었다 땀을 조금 식히고 다시 위에서 아래로 찍었다.
우드득- 우드득 –하더니 정말 나무가 쿵! 하면서 아래로 쓰러졌다. 난생 처음 해보는 통나무 벌목을 득철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정세준도 자신의 나무를 찍다가 말고 득철의 나무 스러지는 것을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며 잘했다는 표시를 해주었다. 득철은 첫날을 흐뭇하게 시작했다.
청진의 이민준 어머니 김채란 노파는 보안지서에 출두했다. 민준이가 여행증명서도 없이 청진을 떠난 후 여러 날 소식이 없자 보위부 청진시 지부에서 정도 어머니를 닦달했다.
“민준 모친 이름이 뭐요?”
“김채란입니다.”
“이민준이가 청진을 언제 떠났소?”
“작년 11월 초입니다.”
“어디로 갔소?”
“중국.”
“중국 어디요? 그 넓은 땅덩어리 다 돌아다니지 않겠지?”
“자세한 지명은 나도 모르오?”
“소문에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 나뭇잎 20 Kg을 제동도가 살 것이라는 소문이 이었는데. 모르오?”
“예, 작년 11월 그런 말을 했으나 도저히 가망 없는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보시오. 나뭇잎 20 Kg 면 부피가 집채만 한 것을 무슨 수로 이동시킨다 말입니까?”
“알았소, 오늘은 이 정도 조사만 하고 돌려보내니 차후 아들이 집에 오면 바로 사회 안전부에 신고하오?”
“예, 알겠습니다.
이민준은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20만 $를 만지작거렸다. 꿈이 아니다. 이 거금을 들고 청진 집에 가서 어머니 좋아한 고깃국에 이밥을 해드리고 싶었다. 지금이야 조선말을 잘 하지만 정도가 어린 시절 어머니는 재일동포 아버지와 결혼한 일본인 여자 아사코다. 서투른 조선말 때문에 설움도 많이 당했다. 그런 어머니에게 20만 $를 들고 바로 어머니께 달려가고 싶었다. 그런데 뭔가 기분이 찜찜했다. 여관방에서 나와 공중전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어머니, 민준 입니다.”
“얘야, 너는 별고 없지?”
“어머니는 요?”
“여긴 말도 마라. 너 없다고 청진 보위부서 동네 분주소서 매일 닦달이다. 엄마는 너만 잘 되면 난 아무래도 좋으니 넌 절대로 다시는 청진 올 생각 말고 한국이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가고 싶은 곳으로 가거라. 특히 일본으로 가면 너의 외가를 찾아가면 많은 도움이 될 거다.”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
이민준이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을 불러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했다. 장소는 역시 진달래 식당으로 했다. 4 명은 만나자 그 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민준이 말문을 열었다.
“내가 오전에 청진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니는 나보고 다시는 청진에 오지 말고 남조선이나 일본 미국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가서 공부도 더 하고 자유롭게 살라 하시더군. 청진은 이미 어머니에게 청진시 보위부 우 병우 과장과 보안지서 놈들이 어머니 괴롭힌다고.”
“야, 그럼, 나도 집에 보안지서에서 찾아왔는지 모르겠는 걸.”
“그래, 세 동무들 나가서 공중전화로 집에 안부 전화하고 들어와라.”
박영만, 곽승종, 윤성훈 3 명의 사정도 민준이와 마찬가지였다. 남자가 여행증명서도 없이 한달 이상을 집을 비웠다고 모두 집에 오는 즉시 보안지서로 신고하고 본인은 바로 출두하라고 했다. 집에서는 어차피 집에 와서 잡혀가면 고문을 당하니 외부에서 돈을 벌어 집으로 중간 수수료를 떼더라도 돈이나 보내지 절대 집으로 오지마라고 어머니가 말했다.
이 민준, 박 영만, 곽 승종, 윤 성훈은 단고기 전골과 소주가 눈앞에 있지만 먹고 마시고 즐길 마음이 사라졌다. 너나없이 4 명의 집에는 사회 안전부와 보안지서에서 중국으로 온 자신들 때문에 집안 식구들이 고초를 격고 있었다.
청진으로 돌아간다면 분명히 그 동안의 행적을 추궁당할 것이고 적당히 거짓말로 얼버무리면 거짓말 한다고 고문을 혹독하게 당할 것이다. 민준이가 입을 열었다.
“야, 우리 어차피 고향에 다시 못갈 신세인데, 우리 달러 가진 것 청진으로 브로커 통해 송금하고 탈북자로 망명할래?”
“어디로?”
“뭐 각자 가고 싶은 나라로 가서 처음 몇 년 고생하고 제일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초청 이미 형식으로 한 나라에 모여 살면 되지?”
“어차피 가려면 남조선으로 가는 것이 정착금 많이 받고 좋은 거 아니야?”
“야, 남조선 좋은 건 김일성 수령님 살아생전이었고 지금은 대우 별로래.”
“왜 그래?”
“한 마디로 탈북자가 너무 많아 희소성이 떨어진 거지. 빼 먹을 정보도 이미 다 뺐다고 보고.”
“남조선 국가정보원서 탈북자 정보만 빼 먹고 더 이상 이용가치 없으면 몰래 처형을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이거 다 탈북자 막으려고 당국에서 조작한 말이고 절대로 남조선서 탈북자 처형하는 일은 없는데, 가서 적응하기 힘들어 탈북에서 다시 탈 남한을 하여 캐나다나 유럽으로 간다고 하더라.”
“왜?”
“남조선서 탈북자는 취업하기가 조선족이나 몽골출신 보다 더 힘들고, 심지어 말투가 이북 사투리면 빨갱이라고 놀리고, 자식이 태어나 학교 가면 어린 학생들이 빨갱이 자식이라고 놀려서 탈북자 자식들은 학교 적응하기도 힘들고 놀림이 심한 곳에서는 애가 학교를 안 간다고 버틴다고 하더라.”
“야, 이거 북남통일이든 남북통일이든 이래가지고 되겠나?”
“그래, 말로만 정치하는 놈들이 햇볕정책이고 뭐고 떠들지 남조선 인민들은 6.25 전쟁을 북조선이 먼저 남침을 한 것이라고 지금도 빨갱이로 미워하는 인민이 많다고 하더라.”
“그럼, 탈북해서 굳이 남조선 갈 필요 없이 차라리 미국이나 영국으로 가는 것이 좋겠네?”
“그래, 그래서 요즘 탈북자가 남조선으로 가는 수와 해외 영국이나 캐나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을 선택하는 수나 반반이래.”
“민준아, 여기서 탈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나도 모르지, 혼자는 가다가 죽기 십상이고, 무조건 브로커를 쓰는 편이 좋다고 하더라.”
“브로커는 어떻게 구해?”
“내가 아는 형님 브로커가 한 명 있거든 언제 한번 같이 보자?”
“그래.”
“승종이 넌 어디로 가고 싶어?”
“난 영국이지.”
“왜?”
“영어를 좀 하니까?”
“성훈?”
“난 노르웨이.”
“왜?”
“노르웨이 숲이 멋있을 거 같아서.”
“영만은?”
“난 뭐 영어도 못하고 일어도 못하니 남조선.”
“민준 너는?”
“나는 일본이다. 우리 아버지 재일 동포 기업가였고, 어머니 일본인 아니니. 너희들이 나 어려서 째포라고 놀렸지? 그래서 간다면 일본으로 가고 싶다.”
“그래, 우리 남조선, 일본, 영국, 노르웨이 각국에서 살다가 제일 먼저 성공한 사람이 우리 모두 초청해서 모여 살자?”
“그런데. 브로커는 어떻게 구하고 나라 흩어진 다음 무슨 수로 연락하지?”
“우리가 피시방 가서 인터넷 우리만의 카페를 하나 만드는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가입 못하게 우리가 초대해야 가입되는 폐쇄형 카페를 만들고, 전 세계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카페 방문하고, 채팅하면 되지.”
“좋은 생각이네.”
“카페 이름은 뭐라고 하지?”
“우리 4 명이니 4 형제로 하자?”
“그래 좋다 4 명의 형제 4 형제.”
“그래 그럼 내가 브로커 알아보고 연락할게.”
“알았어.”
정도는 북경에 아는 브로커에게 전화를 했다.
“안녕 하세요? 저 이 민준 입니다. 형님!”
“그래, 오랜만이야, 별고 없고?”
“예,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웬일이냐?”
“형님, 브로커 일 남조선으로 가는 브로커만 하시지요?”
“그건 왜?”
“제가 아는 동무들이 영국이나 노르웨이 쪽으로 망명을 원하는 친구가 있어서요.”
“그래? 그러면 내가 언제 가서 설명해 줄 테니 약속 잡아 한 곳에 모이게 해.”
“형님, 그럼 이번 주 토요일 6 시 30 분에 연변 진달래 식상서 만나요?”
“그래, 토요일 진달래 식당서 만나.”
“예.”
민준이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강각성이다. 강은 원래 종교단체 <순교자의 소리(V. O. M : Voice Of Martyrs )> 선교사였다.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탈북자에게 도움을 준 것이 문제가 되어 중국 공안에 체포되었다 풀려난 경험이 있다. 미국 영주권 소지자라서 중국에서 큰 처벌 없이 훈방 조치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예 선교활동을 안 하고 전문적인 탈북자를 자유세계로 안내하는 브로커가 되었다. 순교자의 소리는 1967년 루마니아의 리처드 웜 브란트 목사가 설립했다. 리처드 웜 브란트 목사는 13 년 동안 공산국가에서 종교적 신념으로 감옥에서 생활을 했다. 전 세계 50 개 국 이상의 나라에 순교자의 소리가 있다. 한국은 2003 년 에릭 폴리 목사와 현숙 폴리 박사에 의해 설립했다.
토요일 저녁 6 시 30 분에 민준은 진달래 식당으로 박 영만, 곽 승종, 윤 성훈을 불렀다.
북경에서 강 각성 브로커도 왔다. 민준은 양쪽을 소개 인사시켰다.
“형님, 제 동무 박 영만, 곽 승종, 윤 성훈입니다.”
“처음 뵙습니다. 강각성입니다.”
“안녕하세요, 박영만 입니다.”
“형님 말씀 민중에게 많이 들었습니다. 곽승종입니다.”
“윤성훈입니다.”
민준이 오늘 특별한 손님이 오신다고 해서 단고기도 황구로 특별히 준비했다. 상 위에는 단고기 전골이 진한 냄새를 풍기며 끓고 있었다.
“자, 이렇게 만나 것도 큰 인연인데, 자축하는 의미로 한 잔 씩들 듭시다.”
“예.”
“우리 모두 자유세계 정착을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민준이 말을 이었다.
“우리 동무들에게 강 씨 형님을 소개하면 원래 미국국적 가진 한국인 선교사인데, 선교를 하다가 탈북한 사람을 도와준 것이 죄가 되어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고생을 하신 분이야. 미국 시민권자라서 풀려났는데, 지금은 선교는 그만두고 전문적인 탈북자 도와주는 브로커로 활동하고 있어.”
“지금 이 민준 동무가 말한 것처럼 원래 직업은 선교사였는데, 지금은 선교일 보다 탈북자들을 자유세계 여러 나라에 안착시키는 브로커를 전업으로 하고 있어요.”
“형님, 혼자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 보내십니까?”
“아니, 대한민국 여러분 표현으로 남조선으로 보내는 일은 브로커가 너무 많아 나는 손의 떼고 한국 이외의 나라로 가는 것만 담당하고 있어요.”
“그럼, 우리 중에 남조선으로 가려면 어떻게 하죠?”
“내가 믿을 만한 남조선 담당 브로커를 소개시켜주면 그 사람 말을 꼭 따라야 합니다.”
“꼭 브로커를 끼고 탈북을 해야 합니까?”
“혼자 북한을 탈출해 오면 여기 중국 땅에서 말이 통해야 일을 하거나 어디 찾아갈 텐데, 방법이 없어요.”
“그럼, 한국으로 가는 것 이외의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독일 등으로 가는 일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탈북자 개개인을 면담을 해서 그 사람 기술이 어떤 것이 있는지, 외국어 수준은 어느 정도 인지 파악하고 희망하는 나라에 있는 브로커와 미리 짜고 약속된 일시에 비행기 표를 구해 비행기 태워 출국을 시킨 후 해당 나라 브로커에 국제전화를 걸면 그가 공항에 나가 마중하고 은신처 구해 숨겼다가 난민 담당 사무국에 진입을 하게 합니다.”
“난민 사무국에 들어가면 다 난민 지위를 얻나요?”
“아나요, 난민 되기도 하고 보류시키기도 해요. 그래서 해당 국가 브로커가 준비시키는 것을 철저하게 준비해서 답변 잘 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추진합니까?”
“일단 북한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탈출한 사람은 중국에서 만나는 모든 조선족, 한족, 공안이나 브로커나 다 흡혈귀로 봐야합니다.”
“피를 빨아 먹어요?”
“예, 탈북자를 사람으로 대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돈으로 생각하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생각해봐요? 일단 북한을 탈출한 이상 보호해줄 국가가 없는 무국적자가 됩니다. 정당한 취직을 할 수 없어요. 그러니 숨어서 일을 하는데 일만 시키고 노임을 안 주어도 주인에게 크게 항의할 수도 없어요. 항의하면 공안에 신고하면 바로 잡혀가서 북한으로 송환되거든요. 탈북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벌이 북송이거든요.”
“예, 청진서도 그런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여자는 완전 한족 마을 깊은 산골로 팔려가 죽어라 낮에 일하고 밤에는 한족 노리개 된다고.”
“예, 여기 중국에 탈북 여성들은 거의 얼굴 반반하면 다 낮에는 힘들게 일 하고 밤에는 남자들의 성상대로 지낸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억울한 사정을 어디다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난민 지위를 얻을 때까지 은밀하게 행동하고 참는 것입니다.”
“그럼, 강 씨 형님은 어떻게 탈북자를 처리합니까?”
“일단 탈북자를 만나서 중국 공안이 잘 안 오는 곳으로 이동시키고 면담을 합니다.”
“면담 내용은요?”
“탈북을 혼자 했는지, 식구가 같이 했는지? 영어나 다른 외국어는 어느 정도 하는지, 기술은 어떤 기술이 있는지 면담을 합니다.”
“기술은 어떤 것을 말합니까?”
“배관 기술이나 용접 기술 아니면 차량 정비 기술이 있나 확인합니다.”
“그런 기술 있으면 뭐가 좋아요?”
“일단 그런 기술 있으면 유럽에서 대우 받고 일당 도 단순 노동보다 높게 받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그런 면담 후에 최종적으로 어느 나라로 망명을 원하는가 물어봅니다.”
“원 하는 나라로 다 보내 줍니까?”
“가능한 그렇게 해주는데, 난민을 받지 않는 나라거나 난민 심사가 까다로운 나라는 까다로운 내용을 알려주고 그 근처 다른 나라로 가서 상태 봐서 다시 탈출해 난민 심사받으라고 알려줍니다.”
“여기 4 명 중에 누가 남조선 대한민국으로 가고 싶어 해?”
“예, 박 영만 동무입니다!”
“박 영만 동무는 왜 남조선으로 갈 생각이요?”
“예, 저는 외국어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솔직히 기술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남조선이 탈북자 정착금 가장 많이 준다고 해서 남조선으로 가려 합니다.”
“그럼, 박 영만 동무는 내가 남조선 안내하는 브로커를 별도로 소개해 줄 것이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꼭 브로커를 써야 합니까? 나 혼자 그냥 버스 타고 택시 타고 남조선 대사관 쳐들어가면 안 됩니까?”
“그렇게 해도 되는데 중간에 중국 공안에 잡히거나 북한에서 중국에 활동 나온 안전원에 걸리면 바로 북송되어 교화소로 잡혀갑니다.”
“예, 알겠습니다. 안전하게 안내할 브로커 부탁합니다.”
“영국으로 가고 싶어 하는 동무는 누구요?”
“곽승종 동무입니다.”
“곽 동무는 영어 잘해?”
“예, 잘은 아니고 간단한 인사말과 공항에서 표 검사하고 통관하는 말은 할 줄 압니다.”
“그 정도면 아주 훌륭하지, 나도 일하기 편하고.”
“영국은 난민 심사 잘 나옵니까?”
“작년까지는 잘 나왔는데, 요즘 영국으로 다른 나라 난민도 너무 많이 몰리다 보니 요즘은 좀 깐깐하게 심사하지?”
“깐깐하게 하는 것은 어느 정도입니까?”
“영국에 공항에 내리면 영국에 살고 있는 브로커가 나와서 맞이해 안전한 주택으로 이동하여 며칠 동안 먹고 같이 지내며 난민 심사 관청에서 물어 볼 내용을 알려주는데, 일단 북한의 인공기와 남조선의 태극기를 보여주고 어느 국기냐고 고르라고 하거나 백지를 주고 그려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김일성 장군의 노래 불러 보라고 하고, 김일성 생일 언제나? 김일성 생일을 다른 말로 뭐라 부르냐? 정답은 태양절인거 알지?”
“예, 그 정도는 알지요.”
“그래, 그 정도면 이상 없어.”
“일본은 누가 갈 마음 있어?”
“예, 접니다. 민준.”
“민준 일본 가는 이유는?”
“예, 우리 아버지가 재일교포입니다. 어머니는 일본 여자입니다. 저는 일본 가서 외가만 찾으면 적응하는데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래, 그럼 민준은 내가 일본 비행기만 태워주면 이상 없겠구나?”
“아닙니다. 그래도 실패하면 안 되니 일본 브로커 부탁해요.”
“그래, 일본 브로커 붙여주지.”
“윤 성훔은 어디로 가고 싶어?”
“예, 저는 노르웨이로 가고 싶어요.”
“노르웨이는 한 번도 보낸 적이 없는 나라인데, 왜 독일이나 프랑스 아닌 노르웨이야?”
“뭐랄까 노르웨이가 살기 좋을 것 같아서요.”
“그래. 노르웨이가 복지제도 잘 된 나라지.”
“그럼 노르웨이는 공항에 나올 브로커가 없나요?”
“없어. 독일이나 프랑스, 스웨덴 중에 한 나라로 보내주면 거기서 돈 벌어 노르웨이로 들어가 난민 신청해.”
“예, 그러면 스웨덴으로 가게 해 주세요.”
“그래.”
진달래 식당에서 술이 얼큰하게 취해서 헤어진 브로커 강 씨는 북경으로 갈 수가 없어 연변의 장백산 모텔로 들어갔다.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모텔에 들어서 301 호 방으로 들어가니 3 층이 중국 공안이 나와 검문 중에 있었다. 피할 수도 없어 301 호 객실에서 그대로 검문을 당했다.
“강 각성, 주소가 북경으로 되었는데 이곳에 무슨 일로 왔소?”
“예, 아는 사람이 술 한자 하자고 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북경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텔은 왜 왔어요?”
“술도 취했고 늦어서 한숨 자고 북경으로 가려고 모텔로 왔습니다.”
“여기서 만난 사람이 누구요?”
“그건 왜 물어요?”
“여기서 술을 마셨다고 하는데, 상대가 있어야 술 마셨다는 알리바이가 성립하지? 우리는 사실을 확인하는 겁니다.”
“이민준이랑 마셨어요.”
“이민준 한 사람이요?”
“아닙니다. 민준의 친구 3 명과 같이 마셨어요.”
“그럼, 그 3 명은 어디 있소?”
“그건 모르오. 그냥 술 마시고 헤어졌으니 그들이 어디 간줄 어찌 알겠소?”
“어디서 마셨소?”
“진달래 식당입니다.”
“그럼, 이민준이라는 사람 전화 연락해서 이리 오라 하시오.”
“이민준을 왜 부르는 것이오?”
“아까 말했잖아, 강각성 당신 술 마신 알리바이 확인한다고?”
“공안이 모텔 검문하면서 모텔서 만난 사람과 같이 술 마신 사람도 검문하게 공안 규정에 나왔소?”
“거 참 말이 많네?”
“이민준 연락하지요.”
“여보세요? 민준 동무 나 강 각성인데, 내가 장백산 모텔에 묵고 있는데, 여기 공안이 방 호실 점검하다가 내가 주소지가 북경인데 여기 왜 왔냐고 해서 술 마시러 왔다고 하니 같이 마신 사람을 불러오라고 하니 동생이 장백산 모텔로 왔다가 가라.”
“형님, 뭐 잘못한 거는 없고 단순 확인이래요?”
“현재는 그래.”
“현재는 그렇다면 뭐 다른 일도 있다는 거요?”
“아니, 이곳 공안은 지 마음 대로니까.”
“알았어요. 제가 장백산 모텔로 갈 게요. 한 이십 분 정도 걸려요.”
“음, 기다리지.”
전화통화를 마치고 0 분 정도 지나니 제 정도가 장백산 모텔에 나타났다. 정도는 모텔 주인에게 강 각성 투숙객 만나러왔다고 하니 301 호실로 안내해줬다.
“형님, 이게 뭔 일이요?”
“글쎄, 나도 황당해서, 북경으로 바로 가기에 술이 너무 취해 잠 좀 자고 술 깨면 가려고 들어온 모텔서 이 봉변이네.”
“내가 이 민준인데, 왜 찾는 거요?”
“공민증 봅시다.”
“여기 있어요.”
“주소지가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청진인데, 청진 떠나 여기 온 지는 얼마나 되었소?”
“한 달 됩니다.”
“그 한 달 동안 뭐하고 지냈소?”
“돈 벌려고, 여기 저기 다녔습니다.”
“청진 떠나 한 달 이상 중국서 머물러도 이상 없어요?”
“그럼요, 먹을 것이 없어 중국서 뭐라도 해서 돈 벌어 쌀이든 옥수수든 사 갈 것 아니요?”
“이민준 당신은 북한에서 중국 공안으로 체포해서 북송하라는 북송 체포자 명단에 들어 있소.”
“어디 북송 대상자 명단 좀 봅시다.”
“같이 공안 지서로 갑시다.”
연변 공안 지서에서 이민준은 오득남 오득철 형제와 행림상사의 과거 거래에 대한 추궁을 당했다.
청진서 나뭇잎 운반한 친구 윤 성훈, 박 영만, 곽 승종에 대한 추궁도 했다. 바로 박 영만, 곽승종, 윤성훈이 체포되어 왔다.
한심하게 4명은 자신들의 수고비 10 만 $와 20 만 $를 제대로 써보지도 못해보고 공안에 체포되어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넘겨졌다.
4명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적대행위자 쉬운 말로 간첩죄가 적용되었다.
중국 공안에 체포된 4명은 북한 국가 안전부로 인계되었다. 오득철의 형 오득남은 가족 일행이 모두 이미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으로 갔다는 것이 남한 내 활동하는 고정 간첩에 의해 확인되었다.
오득철은 혜산 제 3 교화소에서 이민준, 박영만, 곽승종, 윤 성훈이 수감된 전거리 교화소로 이송했다. 득철이 이송해 오자 총 5 명이 총살형을 당하게 되었다.
전거리 교화소 영내 방송이 흘러 나왔다.
지금 바로 반공화국 적대 행위자에 대한 공개 총살이 있을 예정이니 전거리 교화소 전 직원 및 죄수들은 모두 사형장으로 모이라고 했다.
사형장은 전거리 교화소 후문 쪽에 위치했다.
제방 위에 사형당할 죄수들이 나무기둥에 묶여 있었다.
5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사격수들의 사대가 설치되었고, 사대 뒤 20 미터정도 타원으로 길게 계단식 언덕이 있다. 죄수들과 전거리 교화소 직원들 2 천여 명이 사형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격수 지휘는 경비소대장이 했다. 경비 소대장이 구령을 붙였다.
“사격수 앞에 총!”
“앞에 총!”
“사격수 사격 준비!”
“사격 준비!”
“탄알 일발 장전!”
“탄알 일발 장전!”
“사격!”
“탕! 탕! 탕! 탕! 탕!”
각 일발에 명중된 사형수들의 목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서 전역한 최 대위는 예비역 대위 최재림 신분으로 군무원 시험공부를 하였다.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 근무 시 정보사령관 표창 받은 인연으로 정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근무했다. 정보사령관이 정보사령부 인사처장에게 지시하여 예비역 대위 최재림을 정보 군무원 7급으로 채용하라고 지시를 해서 최재림은 199X 년 6월에 전역을 하고 7월 중순 정보사령부 인사과장 면담을 하러갔다.
“과장님, 대위에서 소령도 진급 못한 놈이 군무원을 해서 뭐합니까?”
“무슨 소리야? 사령관 지시로 최 대위가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서 정말로 창의적인 생각으로 근무해 정보사령부가 북한의 지하 핵실험을 미국이 위성사진으로 찍고 금창리 사찰까지 해도 허탕을 친 것을 조기에 탐지했는데, 그 공을 사령관님은 진급이나 훈장으로 최 대위에게 보상이 가야 마땅한데, 장기 복무자가 아니라 진급도 시킬 수 없었고 공개적으로 하면 안 된다는 햇볕정책으로 간 대위에 대한 조치를 아무 것도 못한 것이 아쉬워 사령관님이 자네를 정보 군무원 만들려는 뜻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지?”
“예, 사령관님 뜻은 고맙지만 이제 전역했으니 민간인 신분으로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무슨 소리야? 사령관님 지시로 최 대위가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서 창의적으로 열심히 근무했는데, 단지 장기 근무자가 아니라고 표창도 밀리고 진급은 기회도 없이 전역한 것이 아까워서 정보사령부에서 군무원으로 채용해 정보 경험을 살려 근무하게 하려는 것인데, 사령관님 뜻을 저버리는 거야?”
“예, 사령관님 뜻은 좋지만 사령관님이 제 인생 전부를 책임져 주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야 그렇지, 사령관님은 최 대위를 군무원 만드는 것만 해주시는 거고 그 다음은 최 대위 인생 최 대위 스스로가 책임이지?”
“그러니까 저는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대위까지 근무한 경험으로 더 이상 군대나 군무원 생활은 싫습니다. 사회서 힘이 들게 돈 벌더라도 어느 정도 벌고 제가 식당을 하거나 청과상의 가게 하나 내서 청과상회를 하더라도 내 사업하지 조직의 일원으로 조직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희생하는 기계 부품 같은 인생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예비역 대위 최재림, 너 정말 고집이 세구나! 남들은 군무원 7급 못해서 난리인데, 노량진 가봐 9급 행정직, 경찰직, 군무원 등등 줄서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거야 알지요?”
“정보사령관이 7급 그것도 정보 직위서 근무한 사람 아니면 풀 수 없는 시험문제 출제하게 하고 응시하라고 하는데도 거부하는 최재림 마음을 모르겠다. 평양 감사도 지가 싫으면 할 수 없는 노릇 나는 사령관님에게 면담했으나 본인이 고사한다고 보고하마. 잘 가라.”
“충성! 안녕히 계십시오. 과장님!”
예비역 대위 최재림은 전역 후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도 해봤고, 방문 판매회사 다단계 판매회사의 일도 해봤다.
대위로 전역하면서 받은 퇴직금 1 천만 원과 자신이 적금으로 모은 돈 1 천만 원 모두 2000 만원을 전역 후 1년 동안 다 까먹었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 하나? 그런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200X년 새로운 각오로 군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7급 군무원 전역 당시 특채로 정보사령부에서 응시하라고 할 때는 안 한다고 하고 이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군무원 시험공부에 임했다.
인사과장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지나 간 버스에 손 흔들어봐야 소용이 없고 엎어진 물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와 후회한 들 무슨 소용 있는가? 사회에서 돈 한 푼 벌어보겠다고 막노동 공사판을 전전하며 모은 돈으로 책사서 공부해 서울대 들어간 그 사람이 얼마나 고생이 뼈저리게 느껴졌으면 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을 하겠는가? 이제 최재림은 장승수군의 말-공주가 제일 쉬웠어요- 뜻을 알게 되었다.
최재림도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목수 10 명이 일하는 곳에 혼자 5 층에서 일 하면서 잡부로 나간 그에게 1 층에 있는 합판 50 장을 5 층으로 올려 달라고 해서 올려주고 나니 옆에 있는 목수가 못이 없다고 1 층 못 박스에서 3인치 못 3 kg을 올려 달라고 했다. 그것이 끝나니 다른 목수가 상승각 50 개와 졸대 30 개를 올려달라고 했다. 하루 종일 그렇게 일해주고 받은 일당은 9 만원이었다. 거기서 인력 사무실서 10% 공제하고 81,000 원을 받고 집으로 오면 정말 몸이 파김치가 된 기분이다.
중위, 대위 시절 군대 상관들이 장기 신청하라고 했을 때 장기를 했거나 전역한 다음 달에 군무원 특채 시험 원서를 내라고 할 때 내고 특채가 되었더라면 이 막노동 안 해도 먹고 사는데 이상이 없었을 것을 고집을 부려 이런 고생하면서 산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때 내가 장기 신청을 했더라면 진급을 해서 비무장 지대 순찰을 돌다가 북한이 설치한 발목지뢰에 부상을 당한 소령이 내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오늘의 최재림을 스스로 합리화시켰다. 200X년 7급 군무원 공채 시험 일정에 맞추어 시험공부를 했다. 시험공부 1 년 하면서 최재림은 나름의 비책을 가지고 공부했다. 노량진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이 즐비한 곳에 가면 일종의 장기 수험 고시생들이 있다. 그들은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그는 생각만 하는 공부, 즉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자기는 돈 한 푼 벌어보지 못하고 부모형제가 보내주는 돈으로 노량진 고시원 월 입주비 37 만원 내고 아침 점심 저녁 돈 아끼느라고 컵 밥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양치질 하고, 스마트 폰으로 음악 들어가면서 시간 되면 공부하고, 밤 10시가 되면 고시원 좁은 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 4시 되면 기상해서 또 공부하고 그런 생활을 3년, 3년, 길게는 10 년 이상 한 사람들을 간 복균은 공부를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간 복균은 7급 군무원 시험에 딱 1년 공부 1회 응시하여 합격을 하였다.
노량진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이 모두 놀랐다. 노량진에서 하루아침에 최재림은 스타가 되었다. 교육방송에서 명문대 합격한 학생, 수능시험 만점 받은 학생을 공부의 신이라고 줄여서 ‘공신’이라는 다큐 프로도 있었지만 그는 노량진 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에게 ‘공신(공무원 시험의 신)’이 되었다.
주변의 39세, 37 세, 34 세 된 장기 수험생들이 최재림을 찾아왔다.
“최재림씨, 7급 군무원 시험 합격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딱 1 년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할 수 있어요?”
“글쎄요, 운이 좋다고 봐야 지요?”
“운도 운이지만 최 씨 나름의 공부의 비결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공부에 비결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요. 합격할 정도로.”
“그 합격할 정도가 어느 정도입니까?”
“그야, 9급 행정직, 7급 행정직, 경찰직, 교육직, 군무원직 다 다르죠? 자기가 목표한 그 직종에 합격할 정도 되려면 각 과목마다 몇 점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격할 정도가 되겠지요.”
“그래도 최재림 씨는 뭔가 나름 공부 비결이 있을 것 같은데, 한 말씀해보세요.”
“글쎄요, 이게 비결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솔직히 군대서 장기 복무하라는 것을 거절하고 제대하였고, 제대 직후에는 정보 군무원 특채한다고 원서 내라고 하는 것도 거부하고 살았어요. 군대 퇴직금 1 천만 원과 제가 모아둔 돈 1 천만 원 도합 2 천만 원을 1 년에 다 날리고 공사판 막노동을 하면서 공사판 막노동이 내가 앞으로 인생 50 년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지요. 그리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합격했습니다.”
“예, 잘 알았습니다.”
찾아왔던 노량진 장기 수험생 공무원 준비생들과의 대화는 그 정도에서 마쳤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잘 된 사람이 잘 된 이야기를 오래 하면 타산지석으로 삼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잘난 척 한다고 비웃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간 복균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 장기 수험생들에게는 그런 깊은 말을 안 한 것이다. 어차피 장기 수험생들은 내년에도 도 시험을 볼 것이고 떨어지면 또 술 한 잔 마시고 속상해 하고 며칠 후 마음잡고 다시 공부한다. 그리고 도 떨어지고 반복을. 그래서 최재림은 주변의 공무원 시험공부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혹독하게 단련하고 공부하면 꼭 합격할 수밖에 없는 간 복균 나름의 한 칼이 있었다. 그 한 칼은 바로 블랙 북이었다. 원래 블랙 북은 정보 장교들이 자신의 보고서가 비밀에 속하는 것이면 제목부터 가장 명칭을 사용하고 보고서를 담은 결재판도 검은 색, 그것을 담아 운반하는 가방도 자물쇠가 달린 검은 색 가방으로 해서 다른 곳으로 비밀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명칭을 블랙 북(Black Book)이라고 명명했다.
최재림의 블랙 북은 검은 색 대학생 노트였다.
첫 장을 넘기면 나의 다짐이 나온다.
<나의 다짐>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한다. 단지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한다. 나 간 복균은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다. 아니 이런 공부 자체가 허영이고 사치다. 나는 군대서 장기 복무 권유를 받았는데 거절했다. 내가 그때 조금만 고개 숙이고 장기 복무했더라면 이 고생 이 순간에 하지 않아도 된다. 또 전역 후 정보사령부에서 정보 군무원 7 급을 특채한다고 원서를 내라고 한 것도 거절했다. 이유는 내 인생 내가 살아가야지 정보 사령관이 내 인생 책임져 주지 않는다고 거절했다. 그리고 군대의 퇴직금 1 천만 원과 내가 군대생활 동안 모은 돈 1 천만 원 모두 2 천만 원을 달렸다. 그 뼈저린 후회를 담아 아래와 같이 다짐한다.
1. 나는 7급 군무원 시험 1회 응시하고 1회에 합격한다. 합격 못하면 다시 공사판 막노동으로 돌아간다.
2. 나는 군무원 10 명 뽑으면 3등 이내에 합격하고 100 명을 뽑으면 20 등 이내에 합격하도록 공부한다.
3. 나는 공부를 하되 7급 군무원을 쳐다보고 공부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7 급 군무원 시험을 출제하는 4 급 서기관 위치에서 공부한다.
그가 7급 군무원으로 합격 한 후 신임 군무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과 직무 연수가 서울 삼각지의 국방부와 정보학교에서 이루어졌다. 정보학교는 정보장교라서 소위 시절 초급 정보교육을 받기도 했고 대위 때 고급 정보 교육도 받았다. 하지만 국방부는 처음이다. 국방부 국방회관에서 접수를 하고 교육기간 동안 숙소를 국방회관 객실을 배정해주었다.
모두 정보 직능이라 다들 전직이 정보 병과 예비역 소령도 있었고 예비역 대위는 다수파고, 예비역 중위 예비역 중사, 그리고 병장으로 제대하고 복학하여 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이수한 자도 더러 있었다.
여기서도 자신이 만든 블랙 북 ‘나의 다짐’을 되새기며 공부했다. 정보 직능 군무원 오리엔테이션 및 직무교육에서 1 등을 했다. 국방부 장관 표창과 부상으로 국방부 로고가 새겨진 시계를 부상으로 받았다. 200X 년 7월 1일 부로 최재림 주사보는 정보본부 정보 분석실의 보직 명령을 받았다.
세월이 지나 200X년 1월 2일 부로 7급 주사보에서 6급 주사로 승진되었다. 승진과 동시에 보직 명령이 국방과학연구소 핵실험 탐지부서로 났다. 이곳은 한국의 지질자원 연구소와 미국의 U. C. L. A 대학 지질연구소와 연계하여 한반도 및 아시아권의 지질 연구와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지하 핵실험 탐지를 하는 곳이다. 인공지진이라고 하는 지하 핵실험을 탐지 추적하는 부서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업무 파악이 끝나자 부서장에게 출장 계획을 올렸다. 부서장은 최 주사를 불렀다.
“출장계획서에 정보사령부 방문하겠다고 했는데, 우리 부서 업무와 무슨 연관이 있는가?”
“예, 제가 군무원이 되기 전 현역 복무시절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뭘 모르기도 했고, 어차피 장기 근무자가 아니라고 타성에 젖어 제대하는 날까지 사고만 없이 지내자 그런 맘으로 근무해서 시추공을 통해 수집한 지하 음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정보사령부에 보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당시 수집 자료에도 차이 나는 날이 더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출장에 한번 확인하고 출장보고서 올리겠습니다.”
화가의 그림도 만큼 보인다고 했든가 정말 정보 업무도 아는 만큼 분석이 가능하다. 최 주사가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해서 새로운 보직이 지진과 핵실험 분석업무다 보니 업무 수행을 위해 지질학 박사로부터 지진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자연의 지진과 인공지진 핵실험에 대한 차이를 공부하고 나니 과거 현역시절 땅굴시추부대에서 지하의 미상 소리를 수집한 데이터가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출장 일자는 8월 첫 째 주 월, 화, 수 3일간을 출장이로 잡았다. 그렇게 기안해서 국방과학연구소장 명으로 공문이 정보사령부에 도착하게 7월 마지막 주에 보냈다.
최재림을 아껴주던 조필원 정보사령관은 임기를 마치고 200X 년 4월 정보본부장으로 영전했다. 최 주사가 정보사령부를 방문할 때는 정보사령관 조필원 소장에서 남동신 소장을 지나 박윤희 소장이 정보사령관을 하고 있었다. 외부 방문자의 공문 결재는 참모장 전결사항이었으나 과거 조필원 사령관과 최재림 대위의 인연을 생각해 인사과장 이태우 중령은 정보사령관에게 공문 결재를 받았다.
“사령관님, 다음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 일간 국방과학연구소 최 주사가 우리 사령부를 방문합니다.”
“외부 방문자의 공문 결재는 참모장 전결사항 아니야?”
“예, 맞습니다. 참모장 전결로 처리하려고 했는데, 공문을 보신 참모장님이 최재림 주사를 알고 과거 조필원 사령관님이 서부전선 땅굴탐지부대 방문하신 것을 기억하고 이 공문은 사령관님께 결재 받고 손님 오면 사령관님 접견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사령관님 결재 올린 것입니다.”
“그래? 참모장은 그걸 어떻게 알지?”
“참모장이 그 당시 6 사단 정보참모였다고 합니다. 5 군단 후방 검문 초소에서 전방 사단으로 정보사령관 전방 간다고 상황 전파를 했는데, 차량이 군용 지프차가 아닌 서울 번호판 승용차라 중간서 잘못된 보고라고 하고, 아니다 정보사령관은 원래 군용 지프차가 아닌 승용차가 관용차라고 해서 6 사단 헌병들과 정보처 근무자들이 애를 먹었다고 하시더군요.”
“허참, 그런 인연이 있구나?”
“예, 그 사건 후에 우리 사령부에도 전방 방문용 1/4톤 지프차 한 대를 다음해 예산에 반영해 군수계통에서 수령했습니다.”
“그런데, 조필원 사령관 시절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야?”
“예, 원래 동부전선이나 서부전선이나 땅굴시추부대는 부대장이 공병 대령이고 땅이 얼면 시추를 할 수 없어 개나리 피면 활동하고 낙엽이 우수수 지면 동면에 들어간다고 ‘개나리부대’라는 별명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서 그 부대를 쉬운 말로 개나리 부대라고 불렀지?”
“그 개나리 부대를 겨울철에도 바쁘게 만든 장교가 최재림 대위였습니다. 겨울철 신규로 시추를 할 수는 없지만 이미 시추한 시추공에 뭔가 투하하여 집음 자료를 주마다 회수하여 정보사령부로 제출했거든요.”
“야.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네?”
“예, 그런데, 그 기록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 못했고 조필원 사령관 다음 김영철 사령관이 실효성 없다고 사업에서 제외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번 최재림 대위가 6 급 군무원이 되어 과거 자료 다시 한 번 검토해 보겠다고 방문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런 문제의식 있는 장교라면 군무원이 되어서도 뭔가 느낌이 오니까 방문하는 것 일거야. 비서실장에게 말해 내 시간계획에 반영시켜.”
“예, 시간계획 반영하겠습니다.”
8 월의 뜨거운 날씨에 최 주사는 서초동 정보사령부를 방문했다. 여전히 정문 초병은 청원경찰 같은 복장으로 근무를 서고 있었다. 과거 최재림 대위 시절 정보사령부 방문 했을 때도 위병근무자들은 청원 경찰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정문에서 군무원 신분증을 위병조장에게 제출했다.
“최 주사님, 방문 장소는 어디십니까?”
“수집부서요.”
“여기 위병소에 지시된 것은 사령관실로 되었습니다.”
“나는 사령관님 하고는 일면식도 없고 수집부서에 과거 자료나 확인하러 온 것입니다.”
“그럼, 잠시 기다리십시오. 비서실에 확인 하고 통과시켜 드리겠습니다.”
“예, 기다리지요.”
위병조장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했다.
“예, 비서실장입니다.”
“충성! 위병조장 장재길 하사입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최재림이라는 분이 오셨는데, 위병소 지시 공문은 사령관실로 되어있고 최 주사는 수집부서로 간다고 하는데 어디로 안내해드립니까?”
“그 분 계셔?”
“예, 바로 옆에 있습니다.”
“전화 바꿔봐.”
“예.”
“최 주사님 전화 받아 보십시오.”
“예, 최 주사입니다.”
“안녕하세요? 비서실장 장동건 소령입니다. 과거 조필원 사령관님과 최 주사님이 긴밀한 관계를 아시고 사령관님이 접견 후 수집부서로 가라고 해서 사령관님 시간 계획에 반영했으니 일단 비서실로 오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위병조장은 친절하게 사령관실로 안내해주었다. 비서실서 5 분 정도 대기하니 안에서 인터폰으로 손님 모시고 오라고 연락이 왔다. 간 주사는 조심스럽게 정보사령관 집무실로 들어갔다.
“충성! 최재림 주사입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이리 앉으세요.”
“예.”
“차는 커피, 녹차, 홍차, 인삼차 중에서 무엇으로 하겠소?”
“예, 커피로 주십시오.”
“당번 병, 여기 손님은 커피 난 홍차.”
“예, 커피 한잔 홍차 한잔 준비하겠습니다.”
“인사과장에게 최 주사와 전임 조필원 사령관과의 근무 인연은 보고 받았소.”
“예, 그 당시 인사과장이 이태우 중령인데, 예하 부대장 갔다가 다시 인사과장 한다고 들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우리 부대 과거 자료가 필요하다고 온 거요?”
“예, 공문에 올린대로 제가 서부전선 시추부대 근무할 때는 뭘 모르니까 그냥 데이터를 한 주 한 주 모아서 정보사령부 제출만 했는데, 전혀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질학 박사들로부터 지진과 인공지진이라고 하는 핵실험을 배우고 나니 과거 땅굴시추부대서 정보사령부로 보낸 자료를 다시 확인한다면 차이점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왔어요. 정보는 그런 문제의식 있는 사람이 그야말로 정보다운 정보를 수집하는 것입니다. 수집과장에게 미리 지시했으니 최 주사에게 자료 협조 잘 해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인사를 마치고 간 주사는 사령관 집무실을 나왔다. 비서실장이 수집과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알려준 대로 본청 현관을 지나 우측으로 철조망을 따라가니 수집부서가 나왔다. 그곳에 도 초병이 있었다. 방문 증을 보여주며 수집과 방문한다고 했더니 안내 장교가 나왔다.
“충성! 최재림 주사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학군 2X 기 김학민 대위입니다.”
“반갑다. 2X기다.”
“우리 과장님이 학군 19기 문홍은 중령입니다. 아침 회의 때 국방과학연구원에서 학군출신 군무원 한분 방문 오시는데, 저 보고 일일 안내장교 맡으라고 했습니다.”
“문홍은 선배가 수집과장님이야?”
“예, 그렇습니다. 과장님 잘 아세요?”
“그럼 정보장교가 더군다나 학군출신이 문홍은 중령을 모르면 간첩이지. 우리나라 역대 터키에 무관과 무관 보좌관 죄다 육사 출신만 갔었는데, 문 선배가 기록 갱신 했다는 거 아니야?”
“무슨 기록입니까?”
“정보학교 어학 시험에서 터키어 육사 출신 제치고 만점을 받고 시험 문제 오류까지 지적하고 나왔다는 거 아니야?”
“세상에.”
“시험문제 정답이 2 개로 써도 할 말이 없는 문제에 정답을 하나만 고르라고 해서 3 번에 마킹 했지만 1 번도 답이 된다고 한 거야.”
“세상에?”
“그래서 시험 출제한 교관이 나중에 무관 보좌관 마치고 돌아오면 문 소령 당신이 터키어 교관해 그랬다는 거야.”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무관 보좌관 3 년 마치고 교관하면서 중령 진급하고 전방 5 사단 정보참모 마치고 정보사령부 간다고 소식 들었는데, 문홍은 소령은 터기 무관 보좌관 하면서 터키로 무기 수출도 많이 했어 그런 점들이 모두 고려되어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되었을 텐데, 오늘 만나게 되는군!”
최 대위의 안내를 받은 최 주사는 수집과장 문홍은 중령에게 인사를 했다.
“충성! 2X 기 최 주사입니다!”
“어서와, 반갑다.”
“예, 저도 반갑습니다. 늦었지만 중령 진급 축하드리고 수집과장 된 것도 축하드립니다.”
“참 세월 빠르다. 개나리 부대 최 대위, 최 대위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5 년 이나 흘렀다.”
“그럼요, 선배님은 소령에서 중령 진급해 사단 참모 마치고 정보사령부 다시 근무하시는데요.”
“그래 내가 소령 수집 장교 하면서 터키 무관 보좌관 나가려고 시험도 보고 해서 좀 쉬려고 했는데, 최 대위가 기발한 아이디어로 나를 귀찮게 했지?”
“예, 오늘 다시 한 번 귀찮게 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얼마든지 귀찮게 해도 좋은데, 국방과학연구소에서 공문으로 정보사령부 괴롭히지는 마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과장님 말씀이 얼마든지 귀찮게 하라 이놈아 하는 걸로 들리는데요?”
“하여튼 최재림, 한국적 정서에 안 맞는 성격은 여전하구만?”
“예, 제가 초등학교 때 우리 선생님이 어머니를 학교로 오라고 하시더니, 재림이는 한국 교육제도에 안 맞는 애입니다. 여력 되시면 캐나다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로 유학을 보내세요. 하더랍니다.”
“그래서 유학 보냈어?”
“아니요. 강원도 촌에서 소 키우고 논 20 마지기 농사짓는 집 아들을 유학 보낼 돈이 어디 있습니까?”
“최 대위?”
“예?”
“뭐 하냐?”
“과장님 지시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시는 뭔 지시를 기다려 손님 안내장교가 알아서 손님 모시고 왔으면 커피나 녹차도 책임져야지?”
“예, 알겠습니다.”
김 대위는 커피, 녹차, 홍차를 준비해서 수집 3 과장실로 갔다.
“커피, 녹차, 홍차 세 가지입니다. 취향에 맞게 드십시오.”
“최 주사 뭘 로?”
“예, 커피로 하겠습니다.”
“그럼 난 홍차.”
“저는 녹차로 마시겠습니다.”
“김 대위 최 주사 커피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어제 결산 때 과장님이 일일 안내장교 지시하셨기에 전속부관 김학원 중위에게 미리 부탁을 했습니다. 비서실에 손님 최 주사 무얼 마시는지 알려달라고,”
“야, 김학민 넌 정보장교 하지 말고 보병 가서 인사과 근무나 해라. 완전 인사 주특기 딱 이네?”
“정보장교는 주특기가 없다. 북한군 병종별 주특기 불문하고 육군, 해군, 공군 군별 무기 다 알아야 정보장교라고 과장님이 말씀하시고 이제 저 보고 인사 주특기 하라고 하시면 섭섭합니다.”
“그래, 김학민 대위처럼 닥치는 대로 일하는 장교가 정보 떠나면 정보 병과에 손실이지?”
“감사합니다. 좋게 봐 주셔서.”
“그래, 김 대위는 나가 네 일 해.”
“예, 알겠습니다.”
김학민 대위가 나가자 수집과장 문홍은 중령이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최 주사, 방문 목적이 서부전선 땅굴탐지부대에서 정보사령부로 보낸 과거 자료 열람으로 되어 있는데, 그거 정보 분석에서 이미 정보가치 없다고 ‘D급’ 판정 내려 거의 파기 수준인데 다시 볼 이유 있어?”
“과장님, 솔직히 저는 서부전선 땅굴탐지부대 시절에는 말이 정보장교지 장기 신청이 안 된 상태라 전역 일자만 달력에 하루하루 X표를 치면서 지냈거든요. 그래서 땅굴 탐지부대 자료를 단순하게 문서 연락 장교 수준으로 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직책이 국방과학 연구소에서 지진과 인공지진 지하 핵실험을 담당하고 보니 과거 그 자료도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불조심 표어처럼 의심이 가는 곳이 있어서 왔습니다.”
“의심이란?”
“매주 금요일 마감해서 정보사령부에 토요일 제출하고 돌아가 다시 다음 주 토요일부터 금요일 마감하고 제출하고 반복하다 보니 정말로 타성에 젖은 문서 연락 장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예, 선배님.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후회도 되곤 합니다만 제가 장기 근무자가 아니라 땅굴 시추공에서 소리가 잡혀 봐야 뭐가 정보 가치 있겠나?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예, 미술 평론하는 사람의 글에 아는 만큼 보인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만 정말 제가 7 급 주사보에서 6 급 주사로 승진하고 보직이 지진과 인공지진이라는 핵실험 추적 분석을 담당하고 보니 전에 그냥 흘려버린 것도 새롭게 보입니다.”
“그래, 그럼 그 많은 자료 이리 가져오면 우리 과 사무실 사람들 일을 못하니 내가 특수자료 열람증명서를 해 줄 테니 바로 전산실 별관 보존 문서 창고에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
“감사합니다. 과장님!”
“그 대신 오늘 저녁은 간 주사가 사는 거야?”
“예, 알겠습니다. 과장님과 김 대위 저 3 명의 저녁 해결하겠습니다.”
문홍은 과장은 자신의 실인이 찍힌 특수자료 열람 증명서를 발급했다. 정보사령부는 전국에서 자료 요청이 많이 오는 곳이라 그 때마다 보존 자료를 이동하다 보면 분실 우려가 있어 대량의 자료를 검토하는 지원자에 대해서는 특수 자료실에 아예 들어가서 일을 볼 수 있게 별도의 출입증을 해주었다. 전산실 옆에 별도의 철조망으로 울타리 친 곳이 특수자료 보관실이었다. 이곳에 출입하는 사람은 일체의 카메라나 스마트 폰 녹음기 등은 물품 보관소에 보관하고 빈 몸으로 들어가서 자료 열람만 하고 복사는 반드시 복사 대장에 복사자의 인적사항 자료명과 쪽수를 기재하고 복사를 했다.
그렇게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 일간을 하고 나니 서부전선 땅굴탐지부대에서 정보사령부에 보고했던 2 년간의 자료를 다 검토하고 간 주사 느낌으로 평소와 다른 감이 오는 것만 복사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출장의 목적 달성은 했다. 일을 다 마치고 마지막에 정보사령관 조 보근 소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기 위해 비서실로 갔다. 박윤희 정보사령관이 말문을 열었다.
“그래 3일간의 출장 목적은 달성했소?”
“예, 사령관님이 지시 해주신 덕분에 수집과장이나 그 과의 김학민 대위 그리고 특수 자료실의 여자 군무원까지 친절하게 도와주어 의심나는 자료 다 복사했습니다.”
“복사한 자료를 어떻게 이용할 것이오?”
“예, 대덕 연구단지에 한국지질연구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100 년 동안의 일제 강점기부터 지진 관측 기록을 모두 유지하는 곳인데, 제가 의심 가는 일자를 그곳의 자료와 대조하면 뭔가 가치 있는 정보가 나올 것 같습니다.”
“음, 알았어요. 그러면 그것이 북한이 비공식적으로 국제 사회에 알리지 않고 실시한 비밀 핵실험 일 수 있다 이거지요?”
“예, 그렇습니다. 아울러 국제사회에 신고하고 실험한 것도 당일의 지진과 2-3일 후의 여진 등도 찾을 수 있겠습니다.”
“그럼, 우리 정보사령부는 조필원 사령관 떠나고 그 인프라 사운드 사업이 사라졌는데,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보나요?”
“그건 제가 지금 말씀드릴 수 없고 이 자료와 지질연구소의 자료를 비교한 후에 국방과학연구소의 다른 박사님들 의견과 소장님의 의견을 모아 필요성 있으면 공문으로 협조요청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요. 잘 가시오.”
“예, 사령관님, 정말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정보사령부에서 자료를 복사해 온 최 주사는 한국자원연구소의 일일 지진파 기록 보존 문서와 자신이 보가한 문건을 대조했다. 조금이라도 지진파의 기록이 남은 날은 O, 아닌 날은 X표를 하면서 정리를 했다. 특히 북쪽이 진원지로 표시된 날은 별표를 그리고 빨간 펜으로 기록했다.
9.11 테러 이후 북미관계는 경색되었다. 북한이 미국에 직접적인 테러를 가한 일은 없지만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동급으로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명명했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에서 핵개발 계획과 관련해서 북·미간에 합의를 했던 것에 반해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 능력과 관련한 북미 핵합의의 확실한 이행을 요구했다. 미국은 경수로 완공을 위한 핵심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국제원자력기구(I. A. E. 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단계의 검증 조치를 북한이 완전히 수락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계획에 관한 확인 조치와 미사일 수출 금지를 역설했다. 어떠한 미사일 협약에 있어서도 강력한 검증을 요구했다. 대량 살상 무기의 확산 문제는 물론이고 비무장지대 내에 배치된 북한의 재래식 무기의 감축도 요구했다.
미국은 자신들의 요구가 북한이 진정성 있게 반응한다면 미국이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를 해제하겠다고 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경수로 사업으로 지원된 중유, 금강산 관광의 수익금,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았다는 투명성 검증도 요구했다.
미국은 정보 및 핵 추적 전문가를 한국에 파견했다. 이유는 한국의 국방부, 안전기획부, 외교부 등의 고위 관리들에게 용산 미군기지 지하 벙커 정보 분석실에 초청하여 북한의 핵 시설과 위성사진 분석결과를 브리핑했다. 영변의 원자로와 냉각탑은 물론이고 구룡강 옆의 모래사장에 넓은 씨름장처럼 둥글게 표시된 고폭 실험 흔적을 보여주었다. 고폭 실험이 실제 핵무기를 연구하고 완성체로 결합하기 직전에 실시하는 실험임을 고지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유훈통치를 3 년 동안 하고 어느 날부터인가 ‘강성대국’을 들고 나왔다.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기 위해 김정일의 현지지도도 많아졌다. 대미 협상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려고 하다 보니 핵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한의 주요 외화획득 장소인 이란 등 중동지역에서 미사일 수출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 하루에도 몇 차례 북한 내부를 위성으로 촬영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도 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평안북도 금창리 지하 시설에 대한 핵 의혹이 증폭된 것도 이 ‘강성대국’ 구호가 자주 등장할 때부터였다. 미국은 위성으로 지하 동굴의 입구, 저수지, 차량 진입로 등을 촬영해서 주석을 달고 지하 핵실험 시설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금창리 위성사진을 가지고 한국에 와서 대북 제재를 설득했다. 미·북 간 협상을 통해 미국 조사단이 금창리에 방문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60만 톤의 식량을 현물로 제공했다.
금창리 위성사진으로 동굴로 의심받은 지역을 조사단이 갔더니 동굴은 동굴인데 군사시설이나 핵시설이 아닌 단순 동굴이었다. 동굴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인위적으로 치운 흔적도 없었다. 텅 빈 동굴 견학 대금으로 60만 톤의 식량을 미국은 제공했고 북한은 봉이 김 선달처럼 돈벌이를 한 것이다.
최 주사가 정보사령부에서 복사해온 자료를 다 분석한 결과 북한은 최소한 6 회 이상 지하 핵실험을 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간 주사 혼자의 의견이면 공신력이 덜어지기에 국방과학연구소의 각 부장들과 핵심 분석실의 실무자들을 모두 모이게 하고 자신의 연구 자료를 발표하기로 했다. 장소는 국방과학연구소의 소회의실로 하고 일시는 10월 12일 오후 2 시로 했다.
최 주사는 자신이 발표 준비한 자료를 시간이 되기 전에 참석자 자리에 모두 배부했다. 그는 목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발표를 했다.
“안녕 하십니까? 분석실의 최재림 주사입니다. 바쁜 가운데 이렇게 시간을 내 주신 국방과학연구소의 소장님과 각 부장님, 과장님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과거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서 지하 소리음 청취했던 ‘인프라 사운드’자료를 정보사령부를 방문해서 묵은 자료 창고에서 특이한 것만 복사를 해서 한국 자원연구소의 지진파 기록 일지와 비교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전 세계에 핵 실험을 하겠다고 공고하기 전 최소한 3-4 년 전에 이미 소형 핵폭발 시험을 마친 것으로 일지 상에 특이 사항을 발견했습니다.
먼저 2 월 10 일은 김정일 생일 2 월 16 일의 6 일 전입니다. 이날 정보사령부서 복사한 자료에 평소 보다 3 배 정도의 인프라 사운드가 청취되었고, 한국 자원연구소의 지진 일지에도 대덕 연구단지 기준 북동쪽 약 500 km 지점에서 강도 2.1의 지진이 관측되었습니다.
4월 15일 김일성 생일 이틀 전인 4월 13일에도 정보사령부 인프라 사운드 일지 역시 미상 지하 소리음 청취 30 여 개 북동 방향 강도 1.9의 지진이 탐지되었습니다. 진원지 추정 역시 대덕에서 북동 방향 600 km 떨어진 곳입니다.
4월 20일은 당 창군기념일 4.25의 5 일 앞서는 날로 이날도 지진 강도 1.8이 탐지되고, 인프라 사운드 소리 청취도 30 회 이상입니다. 10월 9 일도 마찬가지로 지진 강도 2.9이고 인프라 사운드 30 회 관측되었습니다.”
최 주사의 발표가 끝나자 참석자 모두가 수고했다고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이로써 간 주사는 북한의 극소량 핵실험이 5 회 이상 실시한 것으로 결론을 냈고 연구소 내 공감대도 확산되었다. 이 일로 인해 간 주사는 연구소 내 핵 추적에 대한 집념이 강한 군무원의 인상을 확실하게 남겼다. 아울러 정보사령부의 과거 자료를 수집했던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나 동부전선 땅굴시추부대나 공병감으로부터 거의 해체 일정만 기다리던 애물단지 부대라는 것을 언급하자 국방과학연구소장과 각 부장들은 바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하여 시추부대 해체를 막고 오히려 예산 배정을 더 많이 하여 과거 그가 현역시절 수집하던 ‘인프라 사운드’를 확대하도록 건의했다.
국방과학연구소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정보사령부와 국가정보원에 북한 핵 탐지 및 지진파 탐지업무가 활성화 되었다. 정보사령부에 협조공문을 국방과학연구소장 명의로 동부전선,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 지하 저음 수집 장비 ‘인프라 사운드’ 집음 시스템을 갖추도록 했다. 그 자료는 정보사령부와 국방과학연구소 한국 지질자원연구소 3 개 국방부 직할부대 및 기관이 공유하도록 했다.
하나원에 입소했던 오득남과 박은경, 오혜령은 소정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발행하는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었다. 은행거래를 위한 통장도 개설했다. 휴대폰도 국정원서 임시로 대여해준 전화를 반납하고 자기 명의로 후불 요금제 휴대폰을 준비했다.
오득남, 박은경은 각기 남녀 하나원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하나원의 선생님들에게 배운 것도 많지만 탈북자끼리의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 오득남 박은경은 북한에서 고생 많이 했지만 자신들보다 더 고생을 많이 하고 두만강을 건너 한국에 오기까지 험난한 과정의 이야기는 말하는 이는 물론 듣는 사람까지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경험담을 이야기하는 본인은 설움에 복받쳐 울고. 듣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 힘든 기억이 떠올라 울게 만들었다.
오득남, 박은경, 오혜령 3 명은 일가족이 탈북을 하여 통일부에서 새터민 정착을 위해 임대아파트 배정하는 것에 서울 금천구 벽산 아파트 단지 6단지 602 동 1602 호를 배정받았다. 16 층이라 멀리 안양천이 보였다.
하나원에서 가르치는 국가정보원 소속의 선생님들도 먼저 탈북을 하여 한국에 정착한 선배 탈북자들도 똑같이 하는 말이 빨리 북한 억양 어투를 버리고 억양이 별로 없는 서울말을 익히라고 했다. 북한 억양이 살아 있으면 학교나 회사에서 차별당하고 따돌림 받을 수 있으니까 서울말 공부를 열심히 하고 한국 드라마를 많이 보라고 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40 년 이상을 살아온 사람이 북한 억양을 버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원의 교육 한 두 달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승 득남과 아내 박 은경은 집에서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면서 서울말을 익혔다. 오혜령은 나이가 12 살이라 고민이 되었다. 북한에서 남한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를 마쳤기 때문에 중학교에 입학시켜야 했지만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혜령, 너 학교에 편입학 할래? 아니면 학원 공부해서 검정고시 볼래?”
“학교.”
“학교면 중학교?”
“아니, 초등학교 6 학년.”
“왜?”
“하나원 있을 때 우리 청소년 담당 선생님이 남조선은 출신학교, 출신 집안, 아는 인맥 없으면 살 수 없는 나라래.”
“중학교 바로 들어가면 출신 초등학교 없어서 왕따 당하니, 일단 초등학교 6 학년에 가서 공부하고 중학교 올라가면 중학교서 왕따 당할 일이 없어.”
“초등 6 학년에서 왕따 당하면?”
“선생님이 그러는데, 나이가 어릴수록 왕따가 덜하고 학년이 높아질수록 왕따가 심하다고 했어. 제일 심한 것이 대학이고, 그 다음 고등학교, 중학교 순이고 초등학교가 그래도 왕따가 덜하다고 했어.”
오혜령이 하나원에서 있을 때, 어린 학생 17세 이하 청소년을 지도한 선생이 황 가연 선생이다. 황 선생은 올해 나이 28 세로 그녀는 20 세에 북한 두만강을 건너 브로커를 통해 남한에 왔다고 했다. 북한에서 그녀는 여군 군악대 악대 지휘자였다. 어려서 피아노와 25 현 가야금을 배웠으나 군대서는 주로 타악기와 금관악기 위주로 악대가 편성되어 특별히 그녀에게 맡길 악기가 없어 고민하던 군악대장이 167cm의 훤칠한 키에 상체보다 하체가 긴 조선족 후손이라기보다 서구적으로 생긴 황 가연이 군악대 고적대 지휘자를 시키면 키 작고 통통한 자신 보다 멋있겠다고 생각해 커다란 군악대 지휘봉을 황 가연에게 맡겼다고 한다. 거리를 행진하고 방향을 바꿀 때 호각을 불어 전체 대원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주지시켰다.
황가연은 아버지 황철성과 어머니 이미정이 이혼을 했다.
아버지는 요업공장의 작업반장이었다. 요업기업소에서 한 여인과 눈이 맞아 어머니와 이혼을 했다. 부모가 이혼을 하면 자식들은 어머니나 아버지 재판소에서 정해주는 곳을 따라가야 했다. 황가연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따라가지 않고 군대를 지원했다. 그리고 군대서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북한에서 남한으로 탈출을 도와주는 브로커에게 300 만원을 주고 탈북을 했다.
두만강 주변의 가장 큰 브로커 집단인 문광태 벼락 바위에게 돈을 주고 두만강 건너 몽고를 지나고 동남아시아를 돌아 미얀마와 필리핀을 경유하여 한국에 왔다. 탈북만이 살 길이라고 북한에 부모가 이혼한 마당에 정붙일 곳이 없다고 이판사판으로 탈북을 하였다. 목숨 걸고 도망을 쳤다. 그런 그녀가 남한에서 국가정보원의 조사를 받고 하나원 마치고 사회에 나와 검정고시로 한국의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명문대는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K 대학교 부동산 학과에 진학해 공부하고 부동산 중개 자격증을 취득하고, 평택에 부동산 사무실도 마련했다.
평택에 사무실 낸 이유는 미군기지가 용산 있던 것을 평택으로 이사를 했다. 부대 이동은 했으나 군인 간부들 숙소가 일부는 완공되었지만 아직 상당수가 공사 중이라 전세나 월세 수요가 많을 것을 예측하고 평택에 사무실을 차렸다.
미군을 상대하느라 영어 잘하는 직원을 한명 채용했다. 황가연의 예측은 적중해 서울의 경기 침체로 월세 내기도 힘든 서울의 많은 부동산 중개소와 달리 황가연의 사무소는 문정성시였다. 하나원에서 탈북한 사람들 중에 수소문 결과 젊은 나이에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하나원 선배로 선정되었다. 처음에는 한 기수에 4시간 선배와의 대화에 초청되어 질문 답변만 했는데, 이제는 하나원 남자, 여자 모두 10 시간 씩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되었다.
탈북 한 청소년 대상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10 세에서 17 세 사이의 탈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어떻게 학교를 선택하고 공부하고 사회에 적응할 것인가를 주제로 10 시간 강의를 했다. 교육 후 하나원의 수료자 평가에도 황 가연 선생의 과목 평가는 항상 1등에서 3 등 안에 드는 명강사가 되었다. 강의 마지막 시간에는 여기 하나원을 수료하고 전국 어디에 살 곳을 배정받아 살든지 살면서 판단하기 곤란한 일을 만나면 전화하라고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다. 전화번호 010-2385- XXX6을 칠판에 쓰고 그녀의 강의는 마쳤다. 오혜령은 황가연 선생의 그 마지막 수업을 기억하고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하나원 19X 기 오혜령이예요!”
“그래, 혜령이 잘 지내지?”
“예, 그런데, 선생님이 하나원 나가서 판단하기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해서 전화 드렸어요.”
“그래, 전화 잘 했어. 무슨 일이야?”
“제가 학교를 가야하는데, 엄마는 바로 중학교 가라고 하고 아버지는 학교가면 북한 출신이라고 왕따를 당한다고 학원 공부해 검정고시 보라고 하는데, 저는 초등학교 6 학년에 편입하겠다고 말했거든요.”
“그래, 엄마 말씀, 아빠 말씀 다 맞고, 난 검정고시 봐서 대학 갔거든, 혜령이는 왜 6 학년 편입하려고 했어?”
“선생님이 말씀 하셨잖아요? 남한은 출신학교 없으면 왕따 당한다고.”
“그래, 잘 선택했어. 바로 중학 가면 1 년 먼저 중학생이 되나 출신 초등학교 없어 왕따 당하거든 6 학년 편입해 졸업 후 중학교 가면 일없어.”
“선생님, 그런데, 6 학년 가서 북한 출신이라고 왕따 당하면 학교 그만둬요?”
“아니야, 혜란이 수업 시간에 보니 계산 빠르던데, 북한에서도 수학 잘 했지?”
“예.”
“그래, 남한 학생들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왕따 시키는데, 수학 잘 하면 왕따가 아니라 모셔가서 수학 좀 가르쳐달라고 대접 받아.”
“정말로요?”
“그럼, 난 대학생 되어 처음 남한 학생들과 만났는데, 처음 북한 출신 탈북자라고 하니 왕따 시켰는데, 내가 공부한 과가 부동산 학과거든 이거 아파트 값, 평수를 제곱미터로 바꾸기 반대로 제곱미터를 평수로 바꾸기, 세금 아파트 금액이 6 억 넘느냐 아니냐에 따라 세율 다르거든 그거 수학 못하는 사람 세금 계산하라면 머리 쥐나겠지?”
“예.”
“내가 대학 1 년부터 4 학년 졸업까지 계산문제 시험은 교수 답안지가 필요 없는 거 황 가연 답이 교수님 답이다 소문났거든.”
“야, 짱 이다 !”
“가연이 짱! 알아?”
“그럼요. 잘 한다. 좋다. 최고다 그런 말이 아니 예요?”
“그래, 가연이도 초등 6 학년에서 수학 짱! 되면 왕따 없어.”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가연이 북에서 인민학교 마치고 와서 여기 초등 수학은 수학도 아니야.”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래, 열심히 하고 또 전화해라.”
“예, 선생님 안녕히 계셔요.”
“응, 안녕!”
혜령이는 서울시 금천구 시흥동 S 초등학교 6 학년 2 반에 편입되었다. 학기 초라 학급 반장 선거가 있었다. 5 학년 때 1 반 출신이 12 명으로 가장 많았고 3 반 출신이 7 명 1 반 출신이 5 명이고 편입한 혜란 까지 25 명이었다. 선거 결과도 1 반 출신 강 종우가 반장에 3 반 출신 이 미정이 부반장에 당선되었다.
오득남은 하나원을 나와 여러 곳에 취직을 알아봤으나 탈북자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어렵게 취직 한 곳이 ‘새로운 세포(New Cell)’라는 회사였다. 이름이 새로운 세포 일종의 건강 기능성 식품을 한 상자에 36만 8 천원에 팔았다. 처음은 그렇게 팔고 새로운 사람을 데리고 오면 후임자가 사가는 36 만 8 천원 중에서 5 만원을 소개한 사람에게 추천수당이라고 지급했다. 그러다 보니 늘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것이 하나원 교육에 절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교육한 다단계 사업인 줄 승 득남은 ‘새로운 세포(New Cell)’ 회사대표가 검찰에 구속되고 뉴스에 나고서야 다단계인 줄 알았다.
승 득남은 새로운 사람을 보충하기 위해 하나원 수료 일자만 되면 한 번은 양주 남자 하나원을 한번은 안성 여자 하나원을 방문했다.
‘새로운 세포’ 회사대표가 구속되고 다단계 상층부 상당수도 같이 구속되었다. 승 득남처럼 하급 조직원은 벌금 100 만원에 약식 기소되었다. 돈을 벌어 와도 시원치 않을 판에 벌금형 100 만원 고지서가 집으로 배달되자 박 은경은 승 득남을 구박했다. 은경은 금천구 새마을 식당에 아침 10 시에 나가 밤 10시에 일을 마치는 주방 보조를 하면서 월 110 만 원을 벌고 있었다. 정말 시급으로 치면 최저 임금도 못 미치는 급여지만 탈북자라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고 조선족도 수두룩한 데 써주는 사장이 고마울 뿐이다.
“아니, 하나원서 그렇게 다단계는 가담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했는데, 갈 데가 없어 다단계를 갔소?”
“처음부터 다단계인 줄 알았으면 내가 갔겠어? 건강식품 판매회사라고 설명이나 들어보라고 해서 들었지?”
“그럼, 거기 갔다고 처음에 왜 나에게 말 안 했어요?”
승 득남은 대답을 못했다.
“당신 북한에서 용접했었으니까 여기 남한에 용접하는 일꾼은 노임도 비싸게 준다고 해요. 가서 용접 일이나 해요.”
“노임 많이 받는 거는 용접 기능사 자격증 있는 사람이고 자격증 없으면 많이 못 번다.”
“그래도 집에서 빈둥거리지 말고 나가요.”
“알았소.”
오득남은 아내 박은경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알았다고 내일부터 시흥사거리 대우 인력에 나가 일한다고 했다. 새벽 4 시에 일어나 담배 한가치 피우고 대우 인력으로 나갔다. 안전화와 각반을 챙겨 작업복 가방에 넣고 터덜터덜 금빛공원을 지나 시흥사거리 대우인력 4 층 사무실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해서 대우인력 김채영 부장에게 신분증을 맡기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김채영 부장이 오득남을 보더니 오늘 처음 왔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하니 신분증을 내라고 했다.
“오득남씨?”
“조선족입니까?”
“아니요, 탈북 해 한국 국적 취득한 한국 사람입니다.”
“예, 새터민?”
“그렇소, 그럼 여기 한국 분들은 헌터민이요?”
오득남의 그 말에 대우인력 새벽에 나온 사람들이 다 웃었다.
“새터민은 있는데 헌터민이란 말은 없어요.”
“그냥 탈북자라고 하지 뭐 쓸데없이 ‘새터민’이라고 말을 만들어 듣는 사람 더 헷갈리게 만드는 게 남조선 정부요.”
“정부에서 한 것을 우리가 뭐 할 말이 있나요?”
“남이나 북이나 통일되면 말을 정부가 건드리는 것이 문제요. 그냥 인민 대중들이 쓰는 말 내버려두어야 하는데 정부가 좋은 말이라고 만드는 것이 더 개악을 한단 말이오.”
“그런 말을 왜 여기서 해요? 국가정보원 신문 받을 때나 하나원 교육받을 때 했어야지?”
“그러게 말입니다. 왜 그 때는 그런 생각이 안 났는지.”
“그 때야 뭐 생각이 있었겠어요? 목숨 걸고 도망 와서 북송될까 그 걱정이지?”
“득남씨 북에서 어떤 일 해봤어요?”
“예, 용접해봤습니다.”
“남한에 와서 용접 자격증 취득했어요?”
“아닙니다.”
“그럼, 당분간은 잡부로 보낼 테니 잡부 일 하고 용접일 들어오면 그 때 용접공으로 일하고 오늘은 정리로 보냅니다.”
“예, 알겠습니다.”
“시간 되면 서점에 가서 용접 기능사 준비서적 사서 공부해 용접 기능사 시험 일정에 맞게 원서 내고 시험 보기 바랍니다. 같은 용접 일을 해도 자격증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차이는 커요.”
“예, 알겠습니다.”
김채영 부장은 대우 인력 정리팀장 중에 조 건진 팀장을 소개했다. 조건진 팀장은 스타렉스 승합차에 인부 11 명을 태우고 김포 한강 신도시 공사 현장 한신공영이 시행하는 아파트 공사장으로 갔다. 현장은 해체 기공들이 통으로 해체하여 슬라브 전체가 통으로 내려져 있었다. 정리 인부들은 합판은 합판끼리 나무는 나무끼리 철재는 철재끼리 분리하고 목수들이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다발로 쌓고 묶음까지 하는 일이었다. 조 건진 팀장은 처음 나온 오득남을 차 행선과 둘이 화목 쌓는 일을 시켰다. 쌓는 일은 베테랑 차 행선이 하고 승 득남은 리어카를 구해 다른 인부들이 정리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을 화목 다이에 보기 좋게 쌓는 일을 시켰다. 그야말로 태워 없애야할 것을 리어카로 운반해 주었다. 점심 먹고 오후 일을 하자마자 승 득남이 못에 발이 찔렸다. 안전화를 명품은 아니지만 5 만원은 주고 사야하는 것을 아내 박 은경이 5 만원 준 것을 2 만원은 술을 마시고 3 만 원짜리 싸구려를 샀더니 바로 후과가 나타난 것이다. 못이 안전화 옆구리를 뚫고 오득남 새끼발가락 위를 찔렀다.
“아야!”
“왜 그래?”
“발에 못이!”
“득남씨, 파상풍 주사 맞았어요?”
“아니요.”
조건진 팀장은 직영 반장에게 인부 한명이 못에 찔려 파상풍 주사 맞으러 병원에 간다고 말하고 오득남을 데리고 김포 한강 의원에 갔다. 한강의원 원장이 승 득남 발을 살펴보고 발가락을 움직여 보라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신경 다치거나 뼈는 이상이 없다고 파상풍 주사만 맞으면 될 것이라고 했다. 오후 일은 병원 갔다 오니 오후 참을 먹은 후라 곧 끝이 났다. 김포 한강 신도시에서 일을 마치고 시흥사거리 대우인력에 오자 조건진 팀장이 일당 9 만원에서 10% 사무실서 공제하고 81,000 원에서 차비 3,000 원 제하고 78,000원을 일당으로 나누어 주었다. 승 득남은 일당으로 받은 78,000 원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고생 했어요.”
“말도 마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힘든 것도 힘들고 안 하던 일을 하다 보니 못에 발이 찔려 파상풍 주사까지 맞았다.”
“그거 비싸지요?”
“파상풍 주사, 비싸지 한 5 만원 들었는데, 한신 공영에서 처리하였다.”
“다행이네요, 78,000 원 받은 것에서 5만원 파상풍 주사비용 내면 당신 오늘 고생하고 28,000 원 버는 건데.”
“정말 남조선 살기 힘들다.”
“그럼,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요?”
“아니, 그건 아닌데, 하나원서 선생님들이 한국서 적응하기 제대로 뿌리 내려 정착하기 쉬운 일 아니라더니 정말 벌어먹고 살기 힘들다.”
“힘들어도 여기 온 이상 다른 생각 말고 열심히 일해 딸 대학 보내고 시집보내고 잘 살아야 지요.”
“잘 못했어. 처음 탈북해서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중 한 곳으로 갔으면 여기 보다 좋았을 것을......”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뭘 해요? 다시 탈남 해서 유럽으로 갈 것이 아니면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알았어요.”
“그런 잡생각 말고 용접 공부해서 용접 자격증이나 취득해요.”
“알았소.”
오득남은 이렇게 일당으로 정리일이나 하면서 어느 세월에 용접공 시험에 합격할까? 아찔했다. 그렇다고 지은 죄가 있으니 다른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간 복균 주사가 국방과학 연구소에서 공론화시킨 ‘인프라 사운드’는 국가정보원까지 보고가 되어 정보사령부 예산이 크게 증액되었다. 서부전선 6,000 개 동부전선 4,000 개의 시추공 중에서 동부전선에 200 개 서부전선에 300 개 시추공에 고감도 지하 저음파 청취 및 집음 장치를 부착했다. 그 센서에서 발생하는 신호는 동부전선 춘천 부근에 있는 동부전선 땅굴시추부대 상황실 대형 컴퓨터에 접속되었다. 서부전선은 철원에 위치한 서부전선 땅굴시추부대에 자료가 모아졌다.
동서의 시추부대 정보장교와 작전장교 대위는 교대로 주간 수집사항을 정보사령부 수집 3 과에 제출했다. ‘인프라 사운드 사업’의 확대로 정보사령부와 국방과학연구소는 2006년 10월 9일 오전 10시 35 분 동경 129도 10 분 북위 41.28에 1 kt 이상의 폭발력으로 추정되는 지하 핵실험을 탐지했다. 규모는 3.9였다.
북한의 조선중앙 TV에서 공식 발표하기 전에 이미 정보사령부와 국방과학연구소는 국가정보원에 위 내용을 통보했다. 대 성공이었다. 시추공이야 이미 70, 80 년대에 뚫어 놓은 시추공이고 500 여개의 센서 부착으로 미국이 인공위성 사진으로 무인항공기로 일본 오키나와 기지에서 출격하는 정보수집 비행기로 청취하고 알아내려 해도 비밀에 쌓여있던 핵 실험의 증거를 포착한 것이다. 정보사령부의 수집 분석 장교들과 국방과학연구소의 해당 부서 직원들은 특진의 영광이 있었다.
최 주사는 6 급 주사에서 5 급 사무관으로 특진되었다. 사무관이 된 만큼 직급에 맞게 보직이동이 있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특진했어도 그냥 국방과학연구소에 남게 해달라고 했으나 국방부 인사처에서 형평성에 위반된다고 무조건 직급에 맞게 보직 명령을 냈다.
최 사무관은 국방부 합동참모부 민사심리전부의 심리전 계획과로 명령이 났다. 민사심리전부장 육군 소장 문 상옥에게 전입신고를 했다.
“충성! 신고합니다. 사무관 최재림은 200X년 1월 2 일부로 민사심리전부로 전입 및 보직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최 사무관은 과거 장교시절 소위부터 대위까지 군복을 입고 신고하는 것이 지겨워 전역 후에는 정말 신고하는 일은 없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나이 35 세의 노총각 사무관은 오늘도 신고를 했다. 민사심리전부는 과거에는 북한으로 보내는 전단도 만들고 대북 확성기 방송도 하고 전광판을 설치하여 전광판으로 알려주는 내용이 내일 눈 온다고 하면 눈이 오고, 비 온다고 하면 비가 오고, 정말 북한에서 조선중앙 TV 방송으로 알려주는 일기예보보다 남한의 전광판이 더 정확하던 시기에는 인기가 높았다.
태풍을 예고하면 어김없이 태풍이 쓰고 지나갔다.
대북 확성기 방송으로 흘러나오는 가요는 북한군 병사들의 가슴을 뛰게 했었다.
그러던 것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이 6.15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서로 비방하지 말고, 비방을 위해 설치했던 선전수단을 모두 철거하기로 해서 지금은 다 철거했다. 그러다 보니 민사심리전 자체가 필요 없어 장군자리 민사심리전부장이 없어질 위기에 몰렸다. 그때 최 사무관의 전임인 박상민 사무관이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통일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일을 민사심리전부에서 해보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했다. 이 제안을 민사심리전부장 문 상옥 소장이 합참의장에게 보고하고 국방부 장관까지 보고를 해서 민사심리전부가 국가정보원 심리전처와 통일부의 탈북주민 담당부서와 하나원, 정보사령부의 대성공사로 불리는 합동신문부서 등과 연계하여 탈북주민에 대한 정착과정을 점검하고 통일에 대비한 연구 과제를 선정하게 했다.
그 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민사심리전부에서 전·후반기 새터민(탈북주민) 정착 세미나를 실시했다. 이 사업에 세미나 발표자는 K 대학교 통일 인문학 연구단의 김 석 교수, 국가 정보원의 탈북자 담당 오 현득 서기관, 민사심리전부의 홍 우덕 서기관, 박 상도 사무관, 하나원에서 여자 황가연 선생, 남자는 허원제 선생이 발표자로 선정되었다.
20 년 동안 간첩 및 탈북자 신문을 담당하였던 신문 담당 서기관 간용태는 대성공사는 자료를 외부에 발표할 수 없다고 해서 자료 없이 경험담 이야기만 30 분 배정했다. 발표 자료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40 컷 이내로 했다.
최 사무관은 이 세미나의 총괄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전입오기 전에 박 상도 사무관이 하던 일을 박상도 사무관은 발표자가 되고 총괄업무를 후임에게 인계하였다. 정말 바쁜 날의 연속이었다. 각 기관과 부서에 협조 공문을 보내고 발표자 선정된 제목의 발표 자료를 먼저 받아서 발표 순서에 맞게 출력해 참석자 인원수에 맞게 제본을 해야 했다.
세미나 시간은 3 시간으로 90 분의 발표와 10 분 휴식 80 분의 토의가 진행되었다.
2007 년 4월 15 일에 전반기 새터민 정착 관련 세미나를 하게 되었다. 발표 자료는 4월 10 일 이전에 보내달라고 공문을 보냈다. 제일 먼저 발표 자료를 제출한 사람은 여자 하나원의 황 가연 선생이었다. 제목이 탈북 청소년의 한국 정착 실태와 문제점이었다. 황 가연 선생을 본 순간 간 복균 사무관은 심장이 터질 듯 했다. 연두색 원피스를 입고 흰색 하이힐을 신고 서 있는 모습이 영화배우 김 하늘보다 더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최재림 사무관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제가 최재림입니다.”
“처음 뵙겠어요. 전반기 새터민 세미나 여자 하나원 발표자 황가연입니다. 발표자료 가지고 왔습니다.”
“이렇게 일찍 제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어차피 제출할 거 빨리 제출해야 저도 다른 일 할 수 있고 맘도 편하지요.”
“황 선생님, 차는 커피와 녹차 두 가지 있는데 무슨 차로 드시겠습니까?‘
“커피, 블랙 있나요?”
“그럼요, 블랙 있지요.”
“사무실이 참 넓고 좋습니다.”
“예, 국방부 건물 신축하고 구관에서 신관으로 작년 12 월에 이사를 왔습니다.”
“민사심리전부가 과거 북한으로 전단 보내고 대북 확성기 방송하던 부서지요?”
“예, 전단도 보내고 물품 살포 작전이라고 라면, 쌀 1 kg 소형포장, 여자 화장품, 팬티, 스타킹등도 넣어서 바람에 띄워 보냈습니다.”
“제가 청진 근처에서 군대생활 할 때 우리 부대 안에 그 고무풍선이 통째로 떨어진 것입니다. 부대가 완전 난리난 적 있어요. 그 물건 만지면 독약이 들었다고 해서 쌀을 닭에게 먹이니 닭이 안 죽어요. 그래서 쌀 가져다가 밥 몰래 해먹었어요.”
“아니, 황 가연 선생 탈북자였어요?”
“예, 20 세에 넘어와 지금 28 세니 8년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원 선생이 되셨어요?”
“하나원 수료하고 사회에서 공인중개사 자격 따서 돈 열심히 벌고 있는데, 통일원 도우미 선생님이 면담을 하자 그러더군요. 갔더니 공문을 하나 보여주는 것입니다. 탈북자 새터민 중에서 한국 사회에 모범적으로 적응 잘한 사례를 찾아 보고하라고 각 지역별 한명 씩 하라는데, 천안 평택 지역에서는 저를 이름 올린다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죠. 그것이 인연이 되어 하나원 탈북자들 교육 마치기 직 전주에 선배와의 대화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모범사례로 선정되어 처음에는 2 시간, 4 시간 질의응답만 참석했는데, 다음 년도부터는 아예 8 시간 반영하고 4 시간은 강의 4 시간은 질의응답으로 진행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올해부터는 10 시간으로 제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정말 황 선생이 입소한 탈북자들의 눈에 잘 적응한 선배 탈북자로 보인 모양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에 감사하고, 국정원이나 대성공사 다 고마운 분들이고 제가 졸업한 K 대학교 부동산학과에도 감사할 뿐입니다.”
“발표할 자료 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공문대로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39 판으로 하고 표지까지 딱 40 장 만들었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자료 이상 없지요?”
“예, 정말 흠잡을 곳 없이 깔끔하게 잘 되었습니다. 4월 15 일 발표만 20 분 안에 끝내주시면 되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예, 멀리 안 나가겠습니다.”
민사심리전부 심리전계획과 사무실을 나서서 국방부 민원실 쪽으로 나가는 황 가연을 간 복균 사무관은 넋을 놓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봄이라 초록빛 싱싱한 새싹처럼 연두색 바탕에 하얀색 물방울 땡땡이 무늬가 사선으로 떨어지듯 한 원피스에 하얀색 하이힐을 신은 황 가연의 모습은 완전히 영화배우 김 하늘이 걸어가는 듯 경쾌하고 힘이 있었다.
전임자 박 상민 사무관이 최 사무관을 불렀다.
“최 사무관?”
“예?”
“뭘 그리 넋 놓고 있어?”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 아- 아닙니다.”
“어쭈구리 이제는 말까지 더듬어라?”
“아이 정말 왜 그러십니까?”
“내가 처음 그 황 가연인가 하는 하나원 탈북자 선생 사무실 들어올 때부터 봤거든 간 복균 사무관 완전 입이 귀에 걸리더라? 그 여자 완전 김 하늘같더군. 몸매가?”
“김하늘 보다 더 예쁘지요?”
“거봐 처음 본 여자 김 하늘보다 예쁘다고 하는 거 보니 완전 눈이 멀었다.”
“예, 제가 보기에 확실히 김 하늘 보다 예쁜 것 같습니다.”
“거봐, 완전히 노총각 사무관 탈북자 하나원 선생에 혼이 비정상 되었다. 야, 간 복균 사무관 올 가을에 국방회관에서 국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겨?”
“에이 탈북 여자가 한국에 온 지 8 년 되었는데, 결혼했거나 약속한 남자 있겠지요?”
“4월 15 일 세미나 오면 물어봐.”
“에이 어떻게 실례되게 그런 걸 물어봐요?”
“그렇게 용기 없으면 너 정말 나이 40까지 노총각 신세 못 면한다.”
“악담을 하세요?”
“악담이 아니라 남자고 여자고 결혼 잘 하려면 용기를 내야 해.”
“알았습니다. 그런데, 박 사무관님 우리 방에 왜 오신 겁니까?”
“원래, 전입 1 개월에 업무보고 부장님께 드려야 하는데, 언제 보고 하라는 지시 없었지?”
“예.”
“다른 공문 결재 받을 때 부장님께 여쭈어 봐.”
“예, 알겠습니다.”
5급 사무관에서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할 자리를 알아보는 박 상민 사무관이었다. 원래는 법과대학을 졸업해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법시험에 1 차는 합격했으나 2 차 가서 3 번 떨어지자 사법시험은 나의 길이 아니구나? 단념하고 7 급 군무원 공채가 있어 공고 보고 시험 응시해 한 번에 합격한 수재다.
7급에서 6급 6급에서 5급 사무관까지 한 번의 누락 없이 승진해온 박 사무관이다. 이곳 민사심리전부는 4급 자리가 1 개 밖에 없는 부서라 정흥재 서기관이 서기관 된 지 얼마 안 되어 서기관 공석이 생기려면 몇 년 걸려야 했다. 정흥재 서기관이 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해야 민사심리전 부에 4 급 공석이 생긴다. 아니면 정보참모부나 작전참모부처럼 3,4급이 많은 부서에 가서 근무해야 4급 승진하기가 좋은데 민사심리전부장 문 상옥 소장이 박 상민 사무관을 자기 임기 끝나기 전에는 타부서 전출에 동의해줄 것 같지 않았다. 공직사회는 어디가나 부서장의 욕심이 하급자의 승진을 막는다.
4월 15일이 되었다. 2007 년 민사심리전부의 연간사업 중에서 전반기 사업 중에서 주요사업의 하나인 <2007년 전반기 새터민 정착 세미나>를 개최했다. 참석자는 국방회관 로비에서 참석자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자기 명찰과 회의록을 받았다. 세미나 실은 붐볐다. 민사심리전부장 육군 소장 문상옥은 인사말을 했다.
전국 각지에서 바쁘신 가운데 2007 년 전반기 새터민 정착 세미나에 참석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 순서에 따라 발표를 했다. 하나원 발표 차례가 되었다. 황 가연 선생은 또박 또박 하이힐 소리를 내며 단상으로 갔다.
“안녕 하십니까? 하나원에서 청소년 교육 담당하는 황 가연입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별판만 보면 함성을 지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대를 방문하면 눈물을 흘리면서 환호했는데, 여기 민사심리전부장 문 상옥 소장님의 별판 앞에서도 제가 떨지 않는 것을 보면 제가 탈북해서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물을 많이 먹은 모양입니다.
저는 하나원에서 탈북 청소년의 자아 찾기 프로그램 <나는 누구 인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진행해온 프로그램서 만난 청소년의 반응을 이 자리에서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청소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왕따 입니다. 솔직히 왕따 현상은 우리 대한민국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도 흑백 인종의 차별이 있고, 이미 초기 우리 한국인도 미국에서 흑인 보다 더 못한 대우를 즉 차별을 극복하고 오늘의 이민자 집단을 만들고 한류 열풍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이지매 현상으로 왕따의 원격이지요? 집단 따돌림 왕따는 왕따를 시키는 주변의 청소년과 왕따를 당하는 ‘왕따 청소년’의 거리감이 문제입니다. 사실 다를 것이 별로 없는데, 태어나고 자란 장소의 다름을 우리와 틀렸다고 인식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가 만나 본 탈북 청소년 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도 북한에서는 그래도 다 같이 어렵지만 왕따 같은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탈북 학생 한명을 남한 학교에서 잘 받아주지 못하는 나라가 무슨 통일을 말하고 통일 대박이라는 천박한 말을 유행시키나 하더군요.
저도 탈북 해 대학 진학 하자마자 왕따를 당할 뻔 했는데, 저는 제 자랑이지만 남한의 대학 신입생을 제가 수학 실력으로 눌러버렸습니다. 20 세에 탈북 국정원 조사 마치고 하나원을 수료하고 나니 참 막막하더군요. 일단 마트에 가서 단순 노동 계산원을 하면서 시급 5 천 원 정도 받으며 일했습니다. 숙소 와서는 대학 가기 위한 공부를 했습니다.
북한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했지만 여기 내용과 다른 것이 많아서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 신입생 전형에 새터민 특별전형으로 수시에 응시했습니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서강대 사회복지학과 건국대 부동산학과 3 곳 모두 합격통지서가 온 것입니다.
한곳을 정해야 하는데 참 고민되더군요. 한국 사람들에게 물으면 한국은 무조건 학벌사회라고 서강 대학교를 추천했고, 국가정보원 선생님에게 물으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중요한데, 노후 준비 잘하려면 부동산학과 가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직 결혼도 못한 처녀지만 언젠가 결혼하고 자식 낳아 살고 늙어 노후 준비에 부동산학과가 사회복지학과 보다는 좋겠다고 생각해 부동산학과로 결정했습니다. 입학 오리엔테이션, 입학식, 과 야유회를 청평 유원지로 갔습니다.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는 탈북자다. 북한군 고사포부대에서 고사포 대신 여군 군악대 악대장 노릇하다 2000 년에 탈북 했다고 했더니 다들 놀라더군요. 탈북자라고 밝히기 전에는 말도 걸고 농담도 했는데, 제가 탈북자를 밝히고 나니 말 걸어오는 학생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중간고사 시험 문제에 계산 문제가 교수님이 작정하고 냈는지 정말 어려운 계산 문제가 나왔습니다. 시험에 전자계산기를 휴대하고 푸는 시험인데도 정말 시간 부족에 쩔쩔매는 시험 문제였어요. 수학하면 제가 함경북도 도 대표로 전국 수학경연대회 참석했거든요. 거기서 금, 은, 동에 들면 평양에 남아 수학 영재학교에서 공부하는데, 거기에 들지는 못했지만 수학은 정말 제가 잘 했어요. 채점이 다 끝난 후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칭찬하시더군요.
내가 부동산학과 15 년 동안 교수하면서 계산 문제 이렇게 명쾌하게 답을 쓴 학생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황 가연! 부르는 것입니다.
예! 하고 벌떡 일어났더니 모두 박수로 격려하라고 하셔서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반에서 학생들이 계산 문제 모르는 것은 죄다 저에게 물어오는 겁니다. 왕따가 아니라 오히려 귀찮을 정도로 많이 말을 걸어 온 것입니다. 제가 우리 학번 계산 문제 조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2월 12 살 승 혜란 학생이 상담할 일이 있다고 해서 약속 장소를 정하고 나가서 만났습니다. 혜란이 하는 말이 자기는 북한에서 인민학교를 마치고 왔는데, 여기서 아버지는 학교가면 왕따 당하니 학원 공부하고 검정고시로 대학을 가라고 하시고, 어머니는 중학교에 입학하라고 하고, 저는 여기 6 학년에 편입해 초등학교 동창을 만들어놓고 중학교에 가면 초등 동창이 있으니 중학생 되어 왕따 당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더니 부모님은 6 학년에 가서 왕따 당하면 어떻게 할 거냐? 하시는데 선생님 조언 좀 해 달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혜란이 어떻게 그렇게 기막힌 생각을 했냐고 하고 나도 6 학년에 한 표! 했습니다. 팁으로 북에서 이미 인민학교를 마쳤으니 6 학년 편입하면 국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여기 학생보다 잘 할 수 없는데, 여기 학생들 어려워하는 수학을 네가 1 등 하면 왕따 사라지고 오히려 너와 친구하려는 학생 많아진다고 저의 대학생 경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금천구 시흥 초등학교에서 승 혜란이 수학 점수가 제일 높게 나왔고 선생님 말처럼 친구들이 수학 문제 풀다가 안 풀리면 모두 가지고 온다고 정말 왕따 없다고 자랑했습니다. 저와 혜란이는 아주 특별난 경우이고 그 반대의 왕따는 전국적으로 수없이 많습니다.
국가에서 탈북자 대신 ‘새터민’ 단어까지 새롭게 만들어 국가적으로 탈북자에 대한 관심과 정책을 펴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국가적인 그런 지원도 옆에서 같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학교에서 왕따를 해결하지 못하면 북한 이탈주민 정책은 공허한 정책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으면 똑같은 국민이라는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 주는 것이 <새터민>이라는 단어 만드는 일 보다 더 앞서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황가연 선생의 발표시간은 조는 사람 한명 없이 진지하게 몰입되었다. 모두 큰 박수로 황 가연 선생의 발표에 호응했다. 참석자 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제 1 부 주제 발표가 끝나자 10 분간의 휴식 시간이 부여되었다. 화장실 가는 사람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 인사하는 사람 껐던 휴대폰 켜고 부재중 전화에 통화하는 사람 국방회관은 순식간 도깨비 시장이 되었다.
제 2 부는 1 부 발표자들에 대한 일 대 일 지명 질문과 답변 사회자에 의한 토의가 진행되었다. 역시 가장 질문을 많이 받는 사람은 하나원의 허원제 선생과 황가연 선생이었다. 탈북 전 경험 가족 이야기 탈북 경로 등 거의 대성공사 신문관 수준의 질문이 있었지만 허 원제 선생과 황가연 선생은 싫은 내색 없이 답변했다. 한국에 왜 왔나? 내가 이러려고 한국에 왔나 그런 자괴감이 들은 적은 없었나? 등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사회자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고 중간에서 제지하지 않았다면 질문 공세는 계속될 판이었다. 허원제 선생이나 황가연 선생이나 가장 힘든 것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인이면서 화성에서 온 사람 취급받는 것이 가장 힘이 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럼, 탈북자들의 남한 정책에 더 바라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제 생각에는 탈북자 3만 명 시대에 탈북자 천 명 이천 명 시대의 탈북자 관련 국가조직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줄 수 있나요?”
“예, 탈북자 관련 정책 부서는 국가정보원, 통일부, 정보사령부, 민사심리전부, 대성공사, 경찰청 등 여러 개의 국방부 직할부대 및 기관이 조금씩 물려있는데, UN의 난민청 같은 탈북주민관리청 뭐 그런 명칭으로 한 곳에서 다 처리하면 국가예산 중복도 방지되고 탈북자 입장에서도 여기 저기 국방부 직할부대 및 기관 헤매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여기 통일원과 국가정보원 참석자도 계시니 돌아가시면 잘 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탈북자들의 한국에서의 잘못은 없나요? 있다면 어떤 것인지와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예, 탈북자들은 자신들이 돈을 주고 브로커를 통해 들어왔든 혼자 고생하면 왔든 목숨 걸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에서 통제되고 남을 의식하면서 내가 맘에 없는 말이라도 당성을 보이기 위해 하던 말을 이제 자유세계 왔다고 자유를 잘못 해석해서 방종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로에 횡단보도 초록 불이면 건너가고 적색이면 대기해야 하는데, 적색인데도 건너요, 왜 그랬냐? 물으면 여기는 자유세계다고 엉뚱한 말을 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절대로 건드리지 않아야 할 것이 3 개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용의 역린과 잠자는 사자의 코털, 아버지의 퇴직금인데, 북한에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북한 체제 즉 백두혈통이고 자신들의 존엄이라고 지칭하는 김일성-김정일 가계에 대한 흠집을 내는 언행은 절대로 용서를 못합니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민사심리전부장 문 상옥 소장이 끝인사를 하였다.
“오늘 <새터민>에 대한 정책을 담당하는 여러 기관이 모여 좋은 발표와 참석자의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여러분이 발표를 발표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책에 반영할 것은 반영이 되게 각자의 자기 위치에서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부에서는 통일이 되면 통일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통일을 반대하고, 통일을 하면 당분간은 남이나 북이나 다 같이 못 살게 된다고 동서독 통일 시기의 물가 불안과 평균 소득의 감소를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이 세미나는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에서 통일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지금까지 탈북 한국에 정착한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적응도 중간 평가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의 각자가 일하는 국방부 직할부대 및 기관에서 ‘새터민’에 대한 차별을 완화시키는 것이 작은 통일이라는 마음으로 임해주시기 바라며 오늘 세미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국가정보원 사이트에 보면 국가정보원의 10 가지 주요 업무가 나온다. <대공수사>, <대북정보>, <해외정보>, <방첩>, <산업보안>, <대테러>, <사이버안보>, <국제범죄>, <국가보안>, <북한이탈주민 보호>로 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 북한이탈 주민 보호 항목은 탈북자가 3 만 명이 넘는 시대에 과거 탈북자가 천 명 단위 시대의 마인드와 조직으로 일하고 있다면 문제다.
국가정보원이 숨기고 있는 사실 하나가 탈북자를 가장한 간첩을 잡아내는 일이다.
실제로 탈북자 속에서 간첩행위를 한 자를 잡은 사례도 있고, 간첩으로 몰린 사람이 법원에 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례도 있다.
국가 정보원은 북한 이탈 주민이 국내 들어오면 약 3 개월 동안 북한이탈 주민 보호 센터에 보호하면서 대한민국 법률 상식부터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초 소양교육을 실시한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탈출하여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탈북자의 법률적 명칭은 북한 이탈 주민이다.
정부에서 ‘새터민’ 용어를 만들었는데, 그 말을 쓰는 사람은 군대서 정보사령부에서 근무했거나 국방부 민사심리전부나 통일부에 근무하는 사람 빼고는 ‘새터민’을 쓰는 사람이 없다. 말은 언중들이 쓰는 대로 맡겨야지 국가기관이 통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한 가지 본보기가 되었다. 북에서 온 사람이 ‘새터민’이면 남한에서 태어난 사람은 ‘헌터민’ 이냐는 조롱까지 한다.
세미나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이 세미나를 계획했던 박 상민 사무관과 인수받아 진행한 간 복균 사무관이 참석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회의실에 남았다.
“세미나 끝나고 텅 빈 회의실 보니 무슨 생각이 들어, 간 사무관?”
“꼭, 어린 시절 가을 운동회 끝나고 텅 빈 운동장에 낙엽만 나뒹구는 모습?”
“그래, 준비가 어렵지 준비하고 난 세미나 당일은 가을 운동회처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나간다.”
“박 사무관님은 이런 세미나 많이 했을 거 아닙니까?”
“많이 했지 7급부터 6급, 5 급 올라오면서 일 년에 서너 번 세미나 해야 일 년이 갔으니까. 그러다 보니 나이 40 넘기고 50을 바라본다.”
“10 년 후의 제 모습이 오늘 박 사무관님 모습이겠지요?”
“무슨 소리야? 간 사무관은 군대 대위까지 지낸 사람이니 군무원 들어오기 힘들어 그렇지 군무원 온 이상 10년이면 서기관 지나서 부이사관까지는 가야지?”
“이거 세미나 후속조치 어떻게 하죠?”
“어려울 거 없어. 기안지에 부장님 전결로 ‘2007년도 전반기 <새터민> 정책 세미나 자료 존안을 건의’ 합니다. 하고 내가 만들었던 최초 기안문부터 중간 협조 공문 자료 수집, 발표자료, 오늘 종합자료 모두 망라해서 존안처리 하고 토의 및 질의응답에 나온 것 중에서 핵심 내용 정리해 추가하면 된다. 국가정보원이나 정보사령부, 경찰청 등 대외 기관에서 할 일은 협조 공문 보내고 그 협조 공문 처리하는 부서에 가끔 전화해 어느 정도 진행 했나 부장님께 중간보고 드리고.”
“예, 박 사무관님 옆 사무실에 있으니 일하다 궁금한 거 물어보고 했는데, 후반기는 걱정입니다.”
“걱정을 말아요, 그대.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내가 가더라도 어디 대전 부산 가는 것도 아니고 여기 국방부에서 다른 부처에서 일 할 텐데, 뭔 걱정이야?”
“예, 일 하면서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락드리지요.”
“그건 그렇고, 아까 발표할 때 보니, 하나원 황 가연 선생 정말 똑 소리 나더라.
너 맘에 있으면 한번 시도해 봐?”
“에이 그런 여자가 남자 있거나 결혼했겠지요?”
“너 그 여자 발표시간에 딴 생각했어?”
“아뇨!”
“척, 하면 삼천리지? 그 여자가 자기 입으로 탈북 8 년차인데 처녀라고 말한 것은 남자 중에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해주거나 본인 스스로 나에게 찔러보라는 뜻이야.”
“에이, 무슨?”
“무슨 아니라 생각해 봐. 이런 딱딱한 공식회의에서 자기가 유부녀인지 처녀인지가 무슨 세미나와 관련이 있어. 그렇게 슬며시 자기를 노출시켜 총각의 귀에 울림을 주는 거야. 여자가 아주 고단수 공개 청혼을 한 거지? 여자가 먼저 말하기에는 그렇고 이 넓은 회의장 많은 참석자 여러분 중에 주변 좋은 총각 있으면 소개해주세요를 간접적으로 말한 거야.”
“정말 처음 황 가연 선생이 자료 제출하러 왔을 때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늘은?”
“오늘은 세미나 진행에 온 정신을 쏟아서인지 처음 봤을 때처럼 눈부시진 않았어요.”
“여자고 남자고 모두 자기 짝을 잘 만나려면 약간의 용기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해. 황가연 맘에 들었으면 흥분과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그 여자에게 연락해.”
“뭐라고 말을 하지요?”
“연락처는 있어?”
“예, 발표자들은 전화번호와 이 메일 주소 다 받았습니다.”
“그러면 일단 E-mail 편지를 보내고 다음 날 전화를 해.”
“무슨 말로 이 메일을 보내면 거부감 없이 읽어볼까요?”
“일단 민사심리전부 세미나에 좋은 발표 감사한다고 하고 언제 시간되면 식사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해봐.”
“거절당하면 어쩌죠?”
“일단 시도해 보고 걱정은 그 다음에 해. 시도도 안 하고 걱정하거나 맘에 있는데 표현도 못하고 그 여자 시집 간 후에 후회하지 말고.”
“예, 오늘 퇴근하면 시도하겠습니다.”
간 복균 사무관은 황 가연에게 이 메일을 썼다가 지우고 반복했다. 나이 34 세 노총각이 28 세 여자에게 이 메일 한통 쓰는 것이 대학 논술시험보다 더 어려웠다.
황 가연 선생님 했다가 ‘님’자는 뺐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선생과 선생님의 차이를 확실히 수업시간에 설명해주어 고등학교 졸업한 지 18 년이 지났어도 기억이 생생하다. 선생님은 나의 스승과 확실한 공적이 있어 존경의 대상이 되는 분에게만 선생님이고 순전한 호칭으로 선생 할 때는 절대로 ‘님’을 넣는 것이 잘못이라고 했다.
<황가연 선생>
안녕하세요? 민사심리전부 최재림입니다.
세미나에 좋은 발표와 생생한 북한 경험을 들려주어 감사드립니다.
황 가연 선생과 허원제 선생 두 분 덕분에 우리 세미나가 더욱 빛났고 마친 후에도 우리 부장님이 국방부 장관 통일부장관으로부터 칭찬의 말을 들었다고 기분 좋아 하십니다.
세미나는 끝났는데, 그날의 연두색 바탕에 흰 물방울무늬의 원피스 차림의 황 가연 선생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나의 이 불면증을 치료해준다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시간되시면 언제 국방부 다시 한 번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200X. 4. 30
삼각지에서 최 재 림 드림
이 한 장의 메일 편지를 쓰기 위해 최 사무관은 99번을 썼다가 지우고 100 번째 완성을 했다. 이것도 완전히 맘에 드는 것이 아니지만 자신의 머리로 더 고쳐봐야 특별히 좋아질 것이 없다고 판단해 여기서 마친 것이다. 중요한 것은 황가연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간 사무관에 호감이 있으면 성사될 것이고 호감이 없으면 아무리 이 메일을 잘 써서 명문장이 된다 해도 소용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이 메일을 보내고 다음 날 퇴근길에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예, 황가연입니다.”
“안-녕-하-세-요-저-어 최재림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메일 때문에 서울 가면 전화드릴 생각이었어요.”
“아, 메일 보셨군요?”
“예, 그런 메일 세미나 발표자 모두에게 보내신 겁니까? 아님 저만 보내신 겁니까?”
“메일 읽어보고도 눈치 못 채셨어요?”
“제가 어른거려 잠이 안 온다는 표현 보면 저에게만 보낸 거 같긴 한데.”
“그럼요, 황가연 선생에게만 보냈습니다.”
“정말 저 때문에 잠을 못 자요?”
“예.”
“어머나? 어쩌면 좋아?”
“잠 못 잔다는 것이 거짓말로 보여요?”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남한 남자들은 여자에게 처음 환심을 사려고 하는 말이 똑같이 잠 못 이룬다고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저 말고도 황 가연 선생에게 잠 못 잔다고 한 사람이 또 있어요?”
“그럼요, 다 합치면 아마 한 트럭은 되지요?”
“세상에?”
“저는 안성에 교육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버스입니다.”
“내일도 안성 가십니까?”
“예, 내일도 교육인데, 내일은 마지막 수업이라 오전에 끝나요.”
“그럼, 내일 오후 저녁이나 같이 하시죠?”
“어디서 만날까요?”
“여기 국방회관으로 오후 6 시 30 분에 오세요.”
“국방회관에 뭐 좋은 것 있나요?”
“예, 저렴하고 육질 좋은 한우 맛볼 수 있습니다.”
“예, 서울 시내 식당 많이 있지만 횡성한우 큰 글씨로 써 붙였지만 비싼 돈만 내고 원산지 속은 느낌인데 국방회관은 국가기관이니 원산지 속이는 일은 없겠지요?”
“예, 그래서 시내 좋은 식당도 많지만 저는 국방회관 많이 이용합니다.”
“예,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이만 안녕히 ~~”
“예, 안전하게 귀가하세요.”
“예.”
통화를 끝내고 간 사무관은 야호! 소리를 질렀다. 이메일 한 통으로 여자의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낸 것은 분명 그녀도 최 사무관에게 호감이 있다는 뜻이다.
‘야호! 야호~~야~호~호~호~ ’
CIA는 미국이 초강대국이고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이라는 점에서 실적에 비해 과대평가 되었다. CIA가 전 세계 구석구석 누비면서 첩보 수집을 잘 해도 도저히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 딱 한군데 있다. 그곳이 북한이다. 이유는 외형상 인간정보를 북한에 침투하면 외형상 차이로 바로 잡힌다. 그래서 CIA는 직접침투가 못하니 돈으로 때우고 한국의 인간정보를 이용한다. 한국의 정보요원도 북한은 식량 때문에 직접 침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북한 주민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중국 국적이면서 한국말을 잘 하는 사람을 고용하여 중국서 북한을 오가면서 사업과 병행하여 첩보 수집을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CIA가 요구한 사항은 100 만 $에 풍계 생수 20 리터와 나뭇잎 20 kg이었다. 생수는 목표량을 확보했으나 나뭇잎은 1/7 분량인 3 kg를 겨우 확보했다. 행림상사 유 사장은 고민이 되었다. 사실대로 조필원 정보사령관에게 보고를 했다. 유 사장은 서조산업으로 향했다.
“충성! 행림상사 사장입니다.”
“들어오시오.”
“사령관님 문서로 어제 보고 드렸는데, <은행잎> <단풍잎> 보고 받으셨죠?”
“나도 그 고민하고 있었소만.”
“물은 한국과 미국이 반반 나누면 되는데, 나뭇잎을 미국은 전량 미국으로 보내라고 하고, 우리나라 원자력 연구소에서도 나뭇잎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고 하니 고민 아주 큰 고민입니다.”
“솔직한 내 심정은 생수는 반반 나누어 미국으로 보내고 나뭇잎 구하러 간 사람들 다 체포되어 끌려갔다고 하고 나뭇잎은 전량 우리나라 원자력연구소로 보내고 싶은데.”
“사령관님 그게 안 되는 것이 이미 미 501 정보여단 한국 담당관 로버트 최가 3 kg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국이면 그 로버트 최를 없애버리고 나뭇잎 한국원자력연구소로 보내는데, 참 나라 국력이 약한 나라의 정보인의 설움이구먼.”
“나뭇잎 3kg를 반반 나누면 양쪽 모두 실험 유용한 데이터 분석이 불가하니 미국으로 보내주겠습니다.”
“내가 정보사령관 하면서 오늘처럼 무기력에 빠진 날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별 두 개 떼버리고 어디 한적한 호수에 가서 낚시나 하고 싶소.”
“저도 자괴감이 들어 대방동서 여기 오는 길이 천리 길로 느껴졌습니다.”
“그래, 아주 먼 후일 우리나라가 정보 강국이 되는 날 후배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이 정도 선에서 우리 일을 처리합시다. 미 501 정보여단 로버트 최에게 생수 20 리터와 나뭇잎 3 kg를 인계하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충성! 돌아 가갰습니다.”
행림상사에 돌아온 유 사장은 이 시연 전무를 불렀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음, 방금 회장님 뵙고 왔는데, <은행잎>, <단풍잎>건은 미국 요구대로 해주라는 것이 회장님 지침이야.”
“예, 저도 우리나라 원자력연구소에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리라 생각하고 미스터 최 오후에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소리 못하게 확실히 중량 보는 앞에서 달고, 사진 촬영하고 인수인계서 서명 받고 넘겨줘.”
“예, 알겠습니다. 지침대로 시행하겠습니다.”
이사연 전무는 미 501 정보여단의 한국 담당관 로버트 최(한국명 : 최 상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로버트 최!”
“전무님, 그냥 상호라고 부르세요. 우리 한국 사람끼리.”
“상호 한국사람 맞아?”
“예.”
“그럼, 나뭇잎 반반 나누자?”
“예?”
“야, 어차피 생수와 나뭇잎서 방사능 검출이 목적이면 나뭇잎이나 물 둘 중 하나만 나와도 방사능 검출로 인정하니 나뭇잎 반반 나누고 그냥 아무산 나뭇잎 반반 섞어서 3 kg 만들어 주마.”
“전무님? 정보인 맞아요?”
“맞지 군대생활 24년 중 소대장 1 년 중대장 18 개월 빼고는 다 정보처서 일했는데.”
“그런데, 어떻게 정보 조작을 시키십니까?”
“야, 이건 정보조작이 아니야. 어차피 정답 뻔히 보이는 정보라 비유하자면 쌀밥으로 둘이 못 먹으니 죽으로 양을 불려 둘이 먹자 이 말이야.”
“그럼, 저는 모르는 일이니 전무님이 나중에 문제되면 혼자 독박 쓰고, 처벌받아도 받는다면 저는 모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래, 절대로 이 말은 나도 우리 사장님만 알고 그 윗선 보고 안할 것이니 그리 알고 내일 다시 와.”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 11시 30 분에 오겠습니다.”
“왜 11시 30 분이야?”
“점심 전무님이 내시라는 뜻이지요?”
“알았다.”
로버트 최를 돌려보낸 이 시연 전무는 유 사장에게 잠시 외출을 하겠다고 전화를 하고 철물점에서 공사용 마대를 구했다.
택시를 탔다.
우이동 화계사 계곡으로 갔다.
반쯤 썩은 나뭇잎을 마대에 담았다.
택시를 타고 돌아와 행림상사 창고로 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나뭇잎을 반반 섞어 3Kg 나뭇잎 마대 2개를 만들었다.
물도 10리터 씩 2 통 나뭇잎도 3 Kg 마대 2개가 되었다.
다음 날 정확히 11시 30 분에 미 501 정보여단 담당관 로버트 최가 왔다. 이시연 전무는 로버트 최를 데리고 창고로 갔다.
저울로 물을 달았다.
정확히 10 Kg이다.
나뭇잎 마대를 저울에 올렸다.
눈금이 3 Kg 을 가리켰다.
사진을 찍고 인수인계서에 각각 서명을 하고 여의도 초원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미국으로 보내고 남은 생수 10리터와 나뭇잎 3 Kg은 한국 원자력연구소로 보냈다. 전문가의 분석에 의해 한·미 양쪽 모두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이것을 근거로 한·미 합동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의 고삐를 강도 높게 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