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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 뭐시기한 이야기

인요한과 백양화

by 함문평

인요한이 혁신 위원장이라고?


그렇게 사람이 없는거야 용산 뭐시기 아니면 거시기 안 되는거야.


인요한이 꼬마시절 아마도 유치원 다닐 정도 나이에 그 시절 순천에는 유치원도 없어서 아주 가난한 집 아이를 데려다 인요한 부모가 백양화라는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


백양화는 그 집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대신에 인요한 꼬마를 돌봐주었다.


부모가 없는 동안 집안 청소나 어린 나이지만 공짜밥 먹는 것 니니라는 것을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


양화가 성장해서 공장에서 일할 정도 나이가 되어 순천을 떠나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서 뱃사람들 심부름을 해주고 돌을 모아 배에 필요한 물건을 팔았다.


돈을 어느 정도 잘 벌리자 부산 양아치 깡패들이 백병화에게 돈을 뜯었다.


그냥 뜯길 수없어 그들과 일 대 다로 죽기 살기로 싸웠다. 그 패거리의 일본말로 두목이 백양화가 일 대 다로 깡패와 싸우는 기백이 놀랍다고 자기 중간 보스를 하라고 했다. 그가 칠성파 두목이었다. 하지만 양화는 나의길을 가겠다고 했다.


자기는 현재 하는 배에 납품하는 일 해서 돈을 벌고 니들이 돈이 필요하면 돈을 내 몸이 필요하면 가끔 도울테니 내 사업 건들지만 마라고 했다.


사업이 잘되었다.

40년 전 월 매출 팔백에서 천이 면 지금 월 매출 1억 정도 이상이었다.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태어났다.

그런데 부도를 맞아 몰락했다.


백양화는 힘들어 인요한을 찾았다.

그래도 어린 시절 돌봐준 인연으로 은행 대출받는 인보라도 요청하려고 갔다.


하지만 모른다고 안면몰수했다.


그래서 여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민족적 DNA가 다르고 정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을 용산 뭐시기와 인연 하나로 거시기를 맡는다 정말 거시기하다. 이건 백양화 의견과 전혀 상관없는 함문평 생각이다. 이글 독자 중에 기자 양반 있으면 인요한에게 백양화 아냐고 물어보기 바랍니다. 요즘 이재명에게 기자들이 성남시청 공무원 누구 아냐고 물어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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