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 돌아간다

귀염둥이 내 동생

by 함문평

―내 동생 귀염둥이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하는 동요를 배울 때 동요 속 동생은 왕자님인데, 현실의 동생은 왕자님이 아니다. 태어나기도 3.4 kg 우량아로 태어났고 먹는 것도 엄마 젖, 분유 안 가리고 잘 먹었다.


동생이 군대를 갔다. 부모가 이혼하고 유일한 남자인 동생 우종이 군대가 있는 20개월은 우리 집은 여자 둘이 지냈다. 표현하기 어려운 허전함이 있었다.


여자나이 계란 한 판 채우면 맞선도 안 들어온다고 엄마는 걱정이다. 그녀는 스물여섯에 나른 낳았다고 한다. 그러니 서른이면 이미 네 살배기 아기의 엄마가 되었다. 아직 남자 하나 제대로 인사 한번 못하고 계란 한 판 나이가 되었다.


양주군 가납 비행장에 살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무인항공기 중대장으로 근무하게 되어 양주군 가납에 있는 가납초등학교 5 학년에 전학을 했다. 네 살 차이 동생 천명이는 1 학년으로 전학을 갔다. 여름방학에 전학을 했기 때문에 나와 동생은 9 월 2 학기 개학 때 새 친구들에게 첫인사를 했다.


5 학년이지만 거쳐 간 학교는 6개나 되었다. 전학을 할 때 서무실에서 학교행정공무원이 어머나? 학년은 5 학년인데 학교는 6개나 되네요? 하였을 때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예, 애들 아빠가 직업이 군인이라서 여기저기 떠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학년은 5 학년 학교는 6 개인 것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전학 한번 할 때마다 기존의 학생들의 텃세에 시달려야 했고, 어떤 애와는 싸우고, 도저히 싸울 상대가 안 되는 애에게는 서울서 구입한 미키마우스나 곰돌이 캐릭터가 들어간 공책, 지우개, 연필 등으로 환심을 샀다.

전학을 많이 한 것이 아빠가 정보장교라서 그런 것처럼 말을 둘러댔다.

―애 아버지가 군인이면서도 하필이면 정보장교라서 예고 없는 전출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딸 학년 숫자보다 학교 수가 많아졌네요.

―어머나 정보장교는 진급도 힘들다고 하던데, 소령이시면 정말 미아 아버님 대단하신 모양입니다.

―예, 무인항공 중대장도 정보학교 교육도 다 마치기 전에 수료증은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하고 부랴부랴 온 거예요.

―아, 그러시군요. 나중에 학생들 비행장 견학이나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예, 애들 아빠에게 한번 말해보겠어요.

군인가족 세계에서 남편이 대위면 여자는 소령이고, 남편이 소령이면 여자는 중령, 남편이 대령이면 여자는 장군이라는 말이 있다.

어려서 그 말뜻을 몰랐다. 계란 한 판 나이가 되다 보니 사회생활도 별반 차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일만 죽어라고 하는 사람보다 한 직급 높은 사람과 술도 마시고 영화도 같이 보고 골프도 함께하는 사람이 죽어라 일만 하는 사람보다 승진을 잘하는 것을 목격했다.

아마 전학을 가본 사람만이 전학생의 심정을 알 것이다. 과부가 되어야 과부 심정을 알고 홀 아비 되어야 홀 아비 심정 알 듯, 처음 단체생활을 한 것은 경기도 포천 신읍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때이다. 아빠가 포천군단 정보처에 근무를 했기 때문에 포천의 진군아파트에 살면서 신읍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추첨을 하느라 엄마와 경화 이모가 전날 밤부터 신읍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라면박스를 깔고 밤을 새우고 병설유치원생이 되었다.

신읍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1 학년은 병설유치원 출신들이 급장과 부장 등을 다 맡았다.

여름방학이 지나 가을 추수 무렵 아버지는 군단 정보처에서 대전 육군대학의 학생장교가 되었다. 나도 대전 신봉 초등학교 1 학년으로 전학을 갔다.

6 군단 마크를 떼고 육군대학 마크를 달고, 나는 신읍 초등학교 이름을 지우고 신봉 초등학교 1 학년 2 반이라고 공책마다 수정을 했다. 내가 조금 일찍 끝나서 그렇지 우린 비슷한 신세가 되었다.


신봉 초등학교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하였고, 아버지는 육군대학의 교관이 내준 숙제를 하느라 밤늦게 지도에 비닐을 붙이고 이상한 기호를 지도 위에 그리고 또 노트에 기록도 했다. 엄마는 동생 우는 소리가 아빠와 나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동생을 업고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다가 밤 10시가 넘어서야 들어왔다.

이듬해 육군대학을 수료하고 경기도 장호원의 00군단 정보처로 근무지가 결정되었다. 나래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학년은 2 학년인데 학교는 3 개가 되었다. 전학을 갔을 때 나래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9 명이었다. 전교생의 숫자가 20 명 이하면 학교를 폐쇄하고 교육청에서 노랑 통학버스를 운영한다고 했다.


남매가 전학을 가서 학교가 폐교되는 것을 막아 타의에 의해 나래초등학교 폐교 위기를 구해낸 구원투수가 되었다.


모든 선생님과 학생들이 반갑게 맞이하고

―네가 전학생 황보미냐?

하고 언니들이 물으면 ‘예’ 하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1 년 후 아빠는 XX군단에서 정보사령부 본부로 발령이 났다. 정보사령부는 군인아파트 대기번호가 2 년이 지나야 아빠 대기번호 20번으로 군인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다고 했다. 2 년 후 면 아빠는 또 다른 부대로 전출 갈 것이기 때문에 군인아파트 입주를 포기하고 외가가 있는 영등포구 신길 5 동에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XX고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XX초등학교를 1 년 다니고 다음 해 아빠는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보병 XX사단 전방연대 정보과장이 되었다. 대광 초등학교로 전학을 했고, 1 년 후 양주군 가납 비행장의 무인항공 중대장이 되었다.

전학을 가면 둘 중 하나의 노선을 바르게 선택을 해야 한다. 그 반의 ‘일 짱’이라는 애를 누르거나 아니면 그 애의 마음에 들 선물을 준비해서 다른 애들이 나를 건들지 못하게 해야 편하게 학교생활을 한다.

엄마는 그럴 때 쓰라고 우리 집은 공책, 연필, 지우개는 항상 차고도 넘쳤고 일반 문구점에서 구입한 것이 아니라 남대문 알파문구 본점에서 대량으로 구입한 것이라 품질도 좋고 그림도 예뻐 문구로 가는 곳마다 일장의 환심을 샀다.

문제는 동생 우종이었다. 전학 후 며칠이 지난 후 담임 선생님이 가정 통신문에 ―우종 어머니 학교 방문 바랍니다. 담임 송미정― 메모가 있었다.


그녀는 우종을 불렀다.

―우종아?!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아니요?

―그런데, 왜 엄말 오라지?

―선생님이 엄마 보고 싶은 모양이지?

엄마 박 여사는 옷장에서 검은색 투피스를 꺼냈다. 명동의 모 백화점에서 아빠의 눈총을 받으면서 구입한 샤넬 검은색 핸드백을 걸쳤다. 핸드백을 사던 날 아빠는 아빠 몇 달치 봉급이 핸드백 하나 값이냐? 고 놀랐고 명품 핸드백을 걸친 여자를 아빠는 ‘된장녀’로 불렀는데 그런 ‘된장녀’가 내 마누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고, 엄마는 군인 봉급 쥐꼬리만 한 걸로 이 만큼 살림 살고 서울에 아파트 하나 마련한 여자 있으면 군인 마누라 중에 나와 보라 그래? 하고 맞서 싸웠다.

우종과 난 어느 편도 들지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빨리 휴전이나 종전되기를 기다렸다.


박 여사는 금색 쇠줄이 치렁치렁한 핸드백을 매고 가납 초등학교를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1학년 2 반 송미정 선생님을 찾아왔다고 했다. 송 선생님 앞자리 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1 학년 어느 학생 학부모신가요?

―예, 황우종 엄마입니다.

―아! 우종이 참 영특한 아이입니다.

―아니, 뭐........ 애가 좀 개구쟁이라서.

―2 반 송미정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우종이 2 반 교실의 금붕어를 학교 뒷동산에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네?

―자세히 좀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건 좀 있으면 송 선생님이 종례 마치고 오시면 들어보세요.

―예.

학교 종이 울리자 운동장으로 애들이 뛰어나왔다. 1 학년 2 반 송 미정 선생님이 교무실로 들어섰다.

―송 선생, 여기 우종 어머님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알림장 보고 이렇게.......

―예, 사실은 제가 직접 천 명 네 집을 방문하려고 했는데, 군부대 관사라서 들어가려면 신분증도 정문에 맡겨야 하고, 출입일지 기록 남으면 오해할 수도 있어 오시라고 했습니다.

―천명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어머님, 천명이 가요 어린이가 아니고 완전 애늙은이예요.

―네에?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집중해서 빨리 하는데, 싫은 것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선생님이 좀 잘 지도해 주세요.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경지를 넘었어요. 유럽이나 미국 같은 선진국은 학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나만 잘해도 대학을 가는데, 한국은 골고루 잘해야 내신 등급 잘 받고 좋은 대학 들어가는데 천명은 도저히 한국 교육제도에 맞지 않는 아이 같아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경제적 여유되시면 노르웨이나 스위스, 캐나다 아니면 중국의 국제학교라도 유학을 보내시는 것이 좋겠어요.

―유학 보낼 돈이 있었으면 이런 시골 군인관사에 살겠어요? 군인이라 여기저기 전학을 많이 다녀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담임인 저도 처음에는 천명이를 학습지진아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통의 아이 이상의 두뇌 소유자입니다. 수학은 1 학년이 3,4 학년 언니들의 과정을 이해하고 있고 일부러 관심 갖게 남들 안 하는 행동도 하고 있어요.

―무슨 일 있었나요?

―어머님, 놀라지 마세요. 며칠 전에는 교실에 금붕어 4 마리를 종우가 교실 뒷동산에 묻고 나무젓가락을 고무줄로 묶어 십자가를 만들어 무덤에 세웠더군요.


―세상에?

―어린애가 잔인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무덤에 십자가를 해준 걸 보면 생명을 경시하는 애는 아니고 정말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애입니다.

―어머나, 어머나!

―더구나 애가 왼손잡이라서 오른손에 연필을 쥐어주면 힘이 없어요. 왼손으로 쓰라고 하면 모양은 형편없는데 빨리 쓰거든요.

―저도 집에서 왼손잡이 고치려고 했는데, 서울에 살 때 S 대학교 심리학과 정신의학과에 가서 상담받으니 그냥 왼손잡이는 왼손을 쓰게 하라고 해서 그냥 두었거든요. 애 아버지는 어려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왼손에 붕대를 감아 오른손잡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은 잘하는데 음악, 미술, 체육은 완전히 배를 째라 식입니다.

―선생님, 제가 금붕어는 4 마리 교실에 사서 다시 원상 복구하겠습니다. 천명을 선생님이 좀 잘 지도해 주세요. 정말 유학 보낼 형편 안 됩니다.

―예, 저도 노력은 하겠지만 어머님도 그 점 아시고 집에서 창의력은 유지하되 일반적 학생과 보통의 공감을 같이하는 연습을 시켜주세요.


엄마가 학교에 다녀온 다음 날 저녁 식사를 엄마는 비행장 안에 있는 1 호 관사에서 삼겹살 파티를 했다. 엄마가 부대와 연결된 직통 전화로 아빠를 야간 비행이 있더라도 식사는 집에서 같이 하고 다시 나가 비행하라고 했다.

아빠가 지휘관으로 있는 무인정찰기 부대는 1 주일에 2 회는 야간비행을 하도록 상급부대서 훈련지침이 내려와 있었다.

전쟁은 밤에도 할 수 있기에 야간비행은 필수라고 했다. 아빠는 야간비행 준비 지시를 하고 식사를 하러 관사로 왔다. 항공부대 안에 있는 육군항공의 다른 조종사들과 정비사 그리고 육군항공 중대장도 함께 식사에 초대되었다. 관사는 넓은 잔디밭과 통신선을 감는 방통을 이용한 원형 식탁이 있기 때문에 외부 식당으로 외식을 안 가고 집에서 준비해 먹어도 외식 분위기가 났다. 엄마가 씻어주는 야채와 소금, 후추, 김치, 풋고추, 마늘, 기름장 등을 종우와 나는 주방에서 원형 식탁으로 운반했다. 아버지와 운전병 광재 아저씨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광재 아저씨!

―아니 광재 형!

―그래, 미아, 천명 잘 있었니?

―예

부대 운전병인 광재 아저씨는 아빠의 군용 차량 7080 부대 501 차량의 운전병이었다. 군대 입대하기 전직이 모 음료회사의 2.5 톤 박스차량 운전을 했다고 한다. 정말 운전의 귀재라고 할 정도로 부대 차량과 부대의 대형 트럭에 트레일러를 달고 운전하는 것도 잘했다.

그것보다 더 잘하는 것이 인형 뽑기였다. 아저씨가 뽑아준 펭귄, 곰, 인형을 가방에 달고 다니면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어쩌다 인형을 도둑을 맞으면 우리는 엄마에게 일렀고, 엄마는 아빠에게 전화하여 아저씨를 보내 엄마에게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들고 문구점에 가면 새로 보충된 인형 중에 몇 개를 뽑았다. 문구점 아저씨는 광재 아저씨의 실력을 알기에 빨리 나가기를 바라지만 우리와 광재 아저씨는 엄마가 준 천 원 지폐를 다 소모할 때까지 뽑기를 했고 우리는 인형을 가슴에 안고 즐겁게 문구점을 나섰다.

어쩌다 아빠도 인형 뽑기에 도전했지만 돈만 날리고 천 원짜리 몇 장을 아저씨에게 주어 뽑게 했다.

―야간 비행인데 꼭 관사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한 이유가 뭐야?

―오늘 천명 학교에 다녀왔어요?

―왜?

―어제 알림장을 봤더니 담임선생이 학교 방문해 달라고 적혀있어서 다녀왔어요?

―이유가 뭐야?

―유학을 보내라고 하더군요.

―왜, 우리나라 학교가 어때서?

―천명은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맞지 않는 아이 같아요.

―뭐야?

―아들이 어때서?

―자식이라고 편견을 가지지 말고 담임 이야기 그대로 전달할 게 당신 화내지 말아요.

―말해봐?

―교실의 금붕어를 4 마리 학교 뒷동산에 묻고 나무젓가락으로 십자가를 만들어 세워주었다고 해요.

―뭐야?

―아들 말을 좀 들어 보세요.

―너 왜 금붕어를 죽였어?

―애들이 담임 보는 앞에서는 금붕어 예쁘다고 하고, 선생님만 나가면 금붕어를 나무젓가락으로 머리나 꼬리를 건드리고 심지어 낚시로 붕어 낚시를 하고 다시 풀어주고 또 낚시를 하고 반복해서 금붕어 아가리가 다 찢어졌어요. 생각해 보세요? 아빠 엄마가 금붕어라면 얼마나 스트레스받겠어요. 금붕어가 사람처럼 자살할 수 있다면 자살했을 겁니다.

―그래서 네가 금붕어를 뒷동산에 묻었어?

―예, 차라리 그런 고통 속에서 사느니 안락사시켜 주자고 제가 그렇게 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붕어 4 마리를 살아있는 생물을 생매장하니?

―엄마, 아빠는 횟집에서 회를 왜 드시는데요?

―회야, 식용이야 식용으로 먹는 것이지?

―생선회 먹는 것보다 제가 묻어주고 십자가 세워준 것이 더 인간적이지 않아요?

동생 말에 엄마와 아빠는 할 말을 잊었다.

동생이 어려서부터 개구쟁이고 잘 때는 꼭 나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잠을 잤다. 아주 어려 젖을 먹을 때는 엄마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잠이 들었는데 돌이 지나고 말을 배워 나를 누나로 부르고부터는 내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잠들었다. 작은 손가락으로 나의 긴 머리카락 끝을 마치 화가가 색칠하기 전 붓끝을 비비듯이 머리카락을 좌우로 비비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 꼬맹이가 이제는 식탁에서 엄마, 아빠와 당당하게 자기의 금붕어 4 마리 장사 지낸 사건의 전말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다. 동생의 저런 자신감 당당함이 부러웠다.

나는 한 번도 내 의견을 부모님에게 표현한 적이 없다. 옷이든 공책이든 연필이든 모두 엄마가 골라준 것을 사용했다.

―천명아, 내일 엄마가 금붕어 파는 곳에 가서 금붕어 4 마리와 어항 수초까지 새로 준비해 교실에 가져다줄 텐데, 다시는 금붕어 다른 애들이 못살게 굴어도 너는 모른 체하고 지내 알았지?

―엄마 담임에게 내가 왜 4 마리 금붕어를 안락사시켰는지를 말해주세요.

―그래, 말씀드리지.

―안 돼요, 엄마?

―뭐야, 넌 또?

―엄마, 내가 전학을 다닐 적마다 얼마나 왕 따 스트레스받았는지를 아세요?

―어머, 미아 너도 왕 따를?

―그럼요, 제가 집에 와서 다 엄마 아빠에게 말을 안 해 그렇지 가는 곳마다 텃세 심해서 적응하느라 애 먹었어요. 천명도 금붕어 장사 지낸 이야기 하면 담임은 전체 학생들을 벌을 줄 것이 뻔하고 엄마가 담임에게 일러 단체 벌을 받는 거 알게 되면 정말 왕 따 중에서 최상으로 왕 따 당해요. 그러니 죽은 4 마리 원상복구만 하고 사연을 말씀하지 마세요.

―그래, 그 말은 미아 말이 일리 있으니 당신 금붕어만 사서 교실에 두고 담임에게는 금붕어 사놓았다고만 하고 천명 말은 하지 말아요.

―뭔 소리예요? 우리 아들 억울함 풀어주어야지?

―그러다 아들 정말 왕 따 당하면?

―걱정 말아요. 매일 자가용으로 학교 태워 보내고 태워 오면 왕 따 당할 틈이 없어요.

우리 남매는 엄마, 아빠 두 분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두 분 사이에 태어났다. 엄마 성격을 뻔히 알기에 천명이가 엄마가 교실에 금붕어 다시 사다 주고 담임 만나고 나면 동생은 왕 따 당할 것을 직감했다.

동생은 처음이지만 나는 다섯 번의 전학 경험으로 텃세를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전학을 가서 텃세들과 싸워보기도 했고 공책이나 노트 지우개 등을 주어 환심을 사기도 했다. 선물로 텃새들의 환심을 사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 나는 가납 초등학교에서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해서 검도를 배우게 해달라고 했다.

―아니, 남자도 아닌 여자가 웬 검도야?

―배우나 탤런트들 여자가 칼 휘두르는 것 멋있지?

―그래서 배우려고?

―검도 배운다고 소문나면 텃새들이 우리 남매를 함부로 못하거든.

―알았다. 그럼 천명이랑 같이 배워.

엄마는 우리 남매를 <파랑새 검도도장>에 등록을 했다. 아빠는 부대의 폐타이어 2 개를 가져다 관사 뒤뜰에 세워서 죽도로 검도 연습을 하는 허수아비 대항군을 만들어 주셨다. 남매는 폐타이어를 시간만 나면 죽도로 힘껏 내리쳤다. 당연히 실력이 향상되었고 집에 이런 개인 훈련 시설이 없는 학생들보다 남매의 실력은 날로 발전했다. 학교 전체에 검도 배운다는 소문과 사범이 공개적으로 실력이 향상된다고 말을 해서 소문은 눈덩이처럼 퍼졌다.

그 소문을 증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5 학년 남자 한 명이 청소 시간에 청소를 안 하고 까불어 내가 마포걸레 자루를 한 번 휘두른 것이 그 남학생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담임선생이 남학생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그날 밤에 엄마와 난 과일 바구니를 사서 그 학생 부모에게 사과를 했다. 학생 집에서는 나를 몰아붙이더니 돌아오는 길에서는 나에게 잘했다고 맞는 것보다는 까부는 놈은 혼내주라고 했다.

금붕어만 사다 주고 목격담은 말하지 마라 했지만 함 여사는 송미정 선생에게 미주알고주알 다 말해버렸다.

―선생님, 교실에 금붕어 4 마리 사다 놓았습니다.

―어머, 고맙습니다, 어머님!

―아들이 금붕어 죽인 것은 잘못입니다만 말을 들어보니 담임선생님만 안 계시면 금붕어를 나무젓가락으로 못살게 굴고 낚시를 하는 애도 있다고 합니다.

―예?

―선생님은 그걸 모르셨군요?

―금시초문입니다.

―금붕어가 스트레스로 정신병 금붕어 될까 봐 안락사시킨 거라 하더군요.

―어머머, 어쩜?

―천명은 거짓말을 할애가 아니거든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엄마가 학교를 다녀간 후 송 미정 선생님은 1 학년 2 반 전체를 운동장에 집합시켰다.

―천명 어머니가 우리 반에 죽은 금붕어보다 더 크고 예쁜 금붕어 4 마리를 기증해 주셨다. 이 붕어는 잘 키울 수 있지?

―예에!

―금붕어를 죽이기 전에 나무젓가락으로 못살게 했던 사람 앞으로 나와?

―없어?

―좋아 그럼 금붕어 낚시했던 사람 나와!

―없어?

―모두 그 자리에 무릎 꿇고 눈 감고 두 손을 든다.

―지금부터 선생님이 스물을 센다. 그동안 금붕어 건드렸거나 낚시한 사람은 조용히 교무실로 가서 선생님 책상 앞에 서 있어라.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

―열아홉!

―스물!

송미정 선생이 스물을 셀 동안 교무실로 간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천명, 네가 말해 봐?

―선생님, 친구를 밀고하면 나쁜 사람이라고 선생님이 하셨는데.......

―이건 밀고가 아니다. 당당하게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밀고가 아니고 선생님이 알고 있는 사항을 너에게 확인하는 거야?

―그래도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천명 너 왜 선생님 말을 무시하는 거야?

―무시가 아닙니다.

―너 그럼 왜 말 안 하는데?

―선생님은 제가 우리 반에서 왕 따를 당하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왜 왕 따를 당하는데?

―금붕어 괴롭히고 낚시 이야기를 선생님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선생님이 몰래 순찰을 돌아서 발견한 것도 아니고 엄마가 선생님께 말해서 알고 있는 거라면 엄마는 또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요? 제가 집에 가서 학교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말한 것으로 생각할 거 아닙니까? 그러면 저는 정말 미주알고주알 되는 겁니다.

―좋다. 아무도 입을 안 열고 자수하는 사람도 없으니 모두 운동장에 2 열 종대 집합!

반 아이들 26 명이 2 열 종대로 섰다. 송미정 선생은 호각을 불었다.

―지금부터 운동장을 구보한다. 삑! 한번 불면 앞으로 달리고 삑! 삑~~ 한번 짧게 한번 길게 불면 돌던 방향에서 반대로 돌아 선생님 있는 곳으로 선착순 달려온다. 삑!”

아이들이 운동장을 반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선생님이 삑! 삐~~~ 익! 하고 불었다. 아이들은 달리던 대형을 무시하고 반대 방향으로 달려서 선생님을 향해 왔다. 아이들은 다시 2 열 종대로 정열을 했다. 선생님이 삑! 하고 호각을 불자 반 시계 방향으로 구보를 했다.

한참을 돌다가 선생님은 다시 삐~~ 익! 하고 한 번은 길게 한 번은 짤게 불었다. 역시 달리던 방향을 무시하고 운동장 원둘레를 따라 선생님 있는 곳으로 각자도생의 길로 달렸다. 이번에는 순서에 무관하게 종우를 불렀다.

―천명 이리 나와!

―너는 잘못한 것이 없으니 더 이상 돌 필요 없다.

학교 뒷산으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땅거미가 어둑어둑할 때까지 선생님은 아이들을 운동장에서 구보와 선착순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때 승종이 선생님 제가 다 말할 것이니 더 이상 구보 중지시켜 주세요. 했다.

―누구야?

―나무젓가락으로 금붕어 못살게 한 애는 영만, 순용이고, 낚시한 사람은 서구입니다.

―알았다, 영만, 순용, 서구 네 명만 남고 나머지는 집으로 가거라.

송 선생은 영만, 규일, 일동, 서구 네 명을 축구골대 좌측에서 오리걸음을 시켜 반대 골대까지 선착순을 시켰다.

동생과 4 살 차이가 된 것은 중간에 한 명이 엄마가 임신 중에 유산이 되었다고 한다. 나의 출생의 비밀을 밝힌다. 출생 이야기를 하자면 아빠, 엄마의 결혼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함 여사 말에 의하면 아빠 우근호 씨는 그녀를 만나기 전에 4 명의 여자와 연애를 하다가 그녀들에게 차이고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첫사랑은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여자 심현정이라고 했다. 치악산 아래 강림 초등학교를 5 학년까지 다니고 6 학년이 되자 서울 D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강림 초등학교에서는 우근호와 심현정이 전교 1,2 등을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서울로 전학을 간 후로는 현정이가 졸업 때까지 계속 1 등을 했다. D초등학교에 전학을 와서 고향이 그리워 강림 초등학교 6 학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50여 명의 친구가 답장을 보내왔는데 차츰 줄어들고 중학생에 되어도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현정이 뿐이었다.

그녀는 강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강림 중학교를 마치고 원주여자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원주여고를 졸업하고 S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나와 수학교사가 되었다. 19XX 년 2 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하기 전인 2 월 어는 날 현정은 근호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왔다.

서울이 초행이라 현정은 서울이 집이고 강림 중학교 미술교사였던 이유나 선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이 서울에서의 며칠을 선생님 집에서 현정의 숙식을 해결해 주고 그를 만나는 대방 전철역까지 동행을 한 것이다.

197X 년 2 월 16 일 서울 대방 전철역 건너편은 청기와 주유소였다. 지금은 V. I. P. S라는 음식점으로 바뀌었지만 청기와 주유소는 팔각정자 형태로 지어서 이 지역의 명물이었다. 팔각정 주유소 덕분에 주변의 다방은 팔각정 다방 혹은 청기와 다방이 장사가 잘 되었다. 그는 미리 전철역 개찰구에서 기다렸다. 교복을 벗어던지고 핑크색 바지와 하얀 상의 블라우스에 학생교복 외투였던 검은색의 반코트를 걸치고 현정은 나타났다.

―근호야, 인사해. 우리 미술 가르치신 이유나 선생님이셔!

―안녕하세요? 우근호입니다.

―현정이가 근호를 많이 좋아하나 봐, 어제오늘 만난다고 잠 한숨도 못 잤어.

―저도 현정이 만난다는 생각에 어제 잠이 안 왔습니다.

―그럼 둘 다 서로 엄청 좋아하는 거지?

―예.

―그는 현정의 손목이라도 잡고 싶은데 선생님이 옆에 계시니 그럴 수도 없고 난감한 순간에 현정아, 뭐 하니 오랜만에 남자 친구 만나 손목도 안 내주고 얼마나 근호는 현정이 손목 잡고 싶은데 선생님이 옆에 있으니 말도 못 하고 그렇지?

―아. 아 아닙니다.

―뭐가 아니야? 말을 더듬는 걸 보니 딱 걸렸네!

―나도 근호 손 만져보고 싶었다.

―그럼, 잡는다.

―어머, 남자 손이 뭐 이렇게 보드랍고 예쁘니?

―난 촌에 살면서도 나가서 풀 뽑으면 부모님이 넌 가서 공부나 하라고 못하게 하셨고 서울 와서는 풀을 뽑을 일이 없고, 그러니 손이 보드라울 수밖에 없지.

―손목 이하만 나랑 바꾸었으면 좋겠다.

―대방은 데이트 코스가 못되고 우리 여의도로 가자?

―여의도가 멀어?

―여기 대방에서 지하차도 국회의사당 방향으로 가면 여의도야.

―어머나 위로는 전철이 다니고 지하로는 버스가 다니네?

―음, 여기 대방지하차도를 만든 이유가 전쟁 나면 국회의원들을 수원 이남으로 빨리 가기 위해 대방지하차도를 건설했다고 해.

―정말 대방 지하차도만 빠져나오면 안양, 수원은 금방 가겠네?

―여러모로 필요하니까 지하도 만들었지 설마 국회의원들 도망 빨리 가라고 했겠어?

―여기가 샛강이야.

―왜 샛강이야?

―왜는? 옛날 사람들이 샛강이라 부르니 샛강이지.

이때 선생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샛강은 사이에 있는 강이라고 샛강이야. 저기 한강 큰 강이 흐르고 있는 노량진 대방 천변에서 흐르는 사이의 강이라고 샛강이라 부르는 거야.

―예, 그렇군요.

―선생님은 왜 서울이 댁이신데 강림 중학교 교사가 되셨어요?

―교사 임용 시기에 서울에 미술 선생님 자리는 5 명이고 강원도는 10 명이나 부족해서 내가 지원을 강원도로 해서 처음에는 춘천, 원주에 근무하다 대도시 근무 4 년 하고 나면 벽지 근무도 해야 하는데 강림 중학교가 벽지에 포함되고 서울 오기도 좋아서 그리 보내달라고 했지.

―예에.

―선생님은 여기서 벤치에 앉아 있을 테니 둘이 샛강, 여의도 한 바퀴 돌고 이리로 와.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은 둘만의 시간을 배려했다. 현정과 근호는 손을 손가락을 깍지 끼듯 잡았다.

2월의 샛강은 아직 물이 오르기 전의 앙상한 나뭇가지와 누런 갈대가 바짝 말라 있었다. 샛강의 버드나무 아래서 현정에게 키스를 했다. 현정도 내심 바라고 있었다는 듯이 더욱 깊게 혀와 혀를 엉키게 했다. 지나가는 새들이 끼룩끼룩 울었다.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를 봤다.

―야, 선생님 기다리시겠다. 빨리 가자.

―다음부터 우리 만날 때는 선생님 없이 너 혼자와 알았지?

―그래. 내가 촌뜨기라 서울 길을 몰라 선생님 도움을 청한 거야. 이제 여기 샛강, 여의도에 약속 일시 정하면 혼자 올 수 있다.

―알았어, 다음 만날 약속은 편지로 하자?

―응.

그렇게 만났고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원주로 내려간 현정에게 편지를 썼으나 부차자는 못했다. 원주여자고등학교 몇 반인지도 모르는데 심현정 앞 편지를 쓸 용기가 없었다.

두 번째 사랑은 미숙이다. XX대학교의 국어교육과 1 학년 때 같은 과에 미숙이라는 학생이 있었다. 둘이 서로 첫눈에 불꽃이 튀어 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교양 법학개론 시간에 국어교육과와 무용교육과 학생이 법학개론을 주로 신청했다. 교재가 국한문 혼용으로 편집되었다. 첫 시간에 정 용찬 교수가 출석을 불렀다.

‘김 미숙!’ 하고 부르니 4명이 동시에 ‘예~’하고 대답을 했다.

국어교육과에도 김 미숙이 2명 무용 교육과도 김 미숙이 2명인 것이다. 법학 교수는 법학 개론 시간에 김 미숙은 국어교육과 키 작은 미숙이 1번 김 미숙 키 큰 학생이 2번 김 미숙, 무용교육과 키 작은 미숙이 3번 키 큰 미숙이 4번으로 불렀다.

그는 첫 시간에 4번 김 미숙이 옆에 앉았다.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법학 개론 교재를 이름을 무작위로 부르면 강독을 시켰다. 한자실력이 부족한 학생은 읽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첫 시간이 끝나자 옆의 4번 미숙이가 영수에게 법학 개론 책을 주면서 한자음을 달아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시간 만날 때까지 연필로 한자에 한글 음을 모두 달아주었다. 한주가 흘러 법학 개론 시간이 되었다. 그는 4번 미숙에게 한자에 음을 달은 법학개론 전해주었다.

―어머나, 이 많은 것을 끝까지 다 달아주셨네요. 고마워요.

―신입생끼리 다 상부상조하며 공부하는 거지요.

―저기요, 부탁드리고 미안해서 제가 근호 씨 몸매 대략 짐작으로 짠 조끼거든요, 집에 가서 입어보시고 크면 그냥 입고 작으면 말하세요. 늘이는 것은 쉬우니까.

―예, 잘 입겠습니다.

발 없는 말 천리 간다고 누가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가 조끼를 입교 교실에 나타나자 여학생들의 질투 섞인 야유가 쏟아졌다.

―야, 우근호? 4번 미숙이가 짜준 조끼 입으니 하늘로 날아갈 듯 기쁘지?

―왜 그래? 내가 4번 미숙이랑 어떤 사이도 아니고 그냥 음을 달아달라고 해서 음 달아주고 그것에 고맙다고 준 선물인데 거절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잘났다, 우근호!

―미숙아, 왜 너까지?

―됐어, 난 손재주 없어 뜨개질도 못하니 조끼도 못 뜨고, 무용과 4번처럼 키도 안 크고 얼굴도 4번만큼 안 예뻐서 내가 물러나니 4번 미숙과 잘해봐라!

―야, 그럼 이 조끼 안 입으면 다시 사귀냐?

―아니, 끝났어!

두 번째 사랑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는 대학 3 학년부터 R. O. T. C 훈련을 받았다. 1 주일에 8 시간의 군사 훈련을 받고 대학 졸업 후 장교로 군대 복무를 하게 되었다.

XX대학교 학군단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때 우희진, 00 대학교 과학교육과 여학생과 소개팅을 했다. 정말로 예쁘고 영리한 여자였다.

그런데, R. O. T. C를 ‘바-보-티-씨-’라고 놀렸다. 그는 더 이상 그녀와 사귀는 것을 중단했다. 셋째 여자도 어정쩡하게 떠났다. 그는 헤어진 것은 헤어진 것이지만 그녀가 과학교육과라는 것에 착안하여 우희진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그것이 XX대학교 교지에 당선작 없는 가작으로 뽑혔다.

네 번째 여자는 치악산 아래 강림 농협의 창구 직원이었다. 그의 아버지이자 나의 할아버지인 우학선 옹은 농협에 돈을 맡기거나 찾을 때면 창구 직원 장영희 양에게 우리 며느리 우리 며느리 했다. 더구나 증조할아버지인 우재석 옹과 장영희의 아버지 장근식 옹은 어린 시절 서당의 동문이었고, 노인정에서 장기와 바둑 쌍벽이었다.

증조부와 우재석 옹은 장기로 내기를 걸어 노인정 그날 나온 노인이 20 명이면 20 명분의 자장면 내기를 걸었다. 항상 승패는 반복되었고, 노인정 노인들은 누가 이기더라도 자장면 공짜로 먹는 즐거움으로 두 사람의 대국을 즐겼다. 우 중위가 서울 북한산 아래 모 부대에서 근무하던 198X 년 9 월 부대에 관보가 도착했다.

―조부 위독 급래요망(祖父危毒 急來要望)―

그는 휴가증을 받아 들고 급한 마음으로 강림을 향해 달려갔다. 서울서 원주까지는 고속버스로 원주서 강림 시외버스로 갔다. 강림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위독하다고 하시던 할아버지가 정류장에 나와 계셨다.

―할아버지 위독하다고 관보가 와서 이렇게 휴가 나왔는데, 여기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위독하지만 손자가 온다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나온 거다! 이놈아 왜?

―어디가 아프신데요?

―온몸이 다 아프다. 특히 내 맘이 맘이 아니다!

―왜요?

―왜 긴, 내가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거 아는데 우리 손자가 손 며느리 인사도 안 시키니 내가 맘 편히 눈 감을 수 있겠냐, 그래서 내일 나랑 횡성에 좀 다녀오자.

―횡성은 왜요?

―가 보면 안다.

우 옹과 우 중위는 횡성 터미널 근처의 <초우>라는 다방으로 들어갔다. 약속시간이 되자 장 옹과 손녀 장영희 양이 들어왔다. 두 노인은 손자 손녀에게 상대방을 인사시켰다.

―처음 뵙겠습니다. 우근호 중위입니다.

―반갑습니다. 장영희입니다. 우 중위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제가 중학교 강림 중학교 우상신과 동창이라서 오빠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다방 마담에게 주문을 했다.

장 노인은 쌍화차를 우 노인은 칡차를 장영희와 우근호 커피를 주문했다. 주문한 차를 마시고 노인들은 젊은이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우리는 횡성 경로회관 가서 바둑 두면서 시간 보낼 테니 둘이 재미있게 시간 보내고 부곡 들어가는 막차 시간에 터미널서 만나자.

―예, 알겠습니다.

노인들이 자리를 비우자 영희는 본격적인 대화를 진행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농협에서 우리 며느리라고 세뇌교육을 시켜서 그런지 영희는 그와 이변이 없으면 결혼할 작정으로 대화를 진행했다.

―근호 씨는 언제쯤 결혼하실 생각인가요?

―예, 중위는 봉급이 작아서 대위 진급이나 하고 결혼할 생각입니다.

―지금 중위신데, 대위는 언제 진급되나요?

―진급 탈락 안 되면 2 년 후 4 월 1일에 대위 진급합니다.

―평소 어떤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상형으로 생각한 여인상은 있으세요?

―뭐,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 요즘 그런 여자 구하기 힘들겠지만.......

―어머나! 요즘 신사임당 같은 여자가 어디 있어요?

―신사임당 없으면 헌사임당이라도?

―어머나, 유머 감가도 좋으시네요. 저는 유머 있는 남자가 좋아요. 헤헤.

초우 다방에서 수다를 떨다가 횡성극장에서 영화를 한편 보았다. 영화를 보고 횡성 터미널 근처의 숲 속의 언덕이라는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고 강림 막차 시간에 터미널로 나왔다.

영화를 볼 때까지는 몰랐는데,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하다 보니 그녀 치아 상태를 보게 되었다. 앞 이빨 두 개가 반쯤 깨어진 것을 교묘하게 치과에서 인공 치아로 이어 붙인 것을 발견했다. 초면에 여자에게 치아에 대한 질문하는 것이 실례로 생각되어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다만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모두 다 맡 며느리 감으로 좋다고 하는 여자에 대한 거절의 명분 하나를 발견한 것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빨 깨진 것을 발견하고는 더욱 재미난 이야기를 했다.

―영희 씨 물고기 I. Q 가 얼마인지 아세요?

―에이 물고기가 아이큐가 어디 있어요?

―왜요? 돌고래는 70 정도의 I. Q라고 하는데, 물고기는 얼마나 될까?

―한 10 정도?

―물고기 I. Q 가 10 이면 전 세계 어부들과 참치회사 알거지 됩니다.

―왜요?

―음, 물고기 아이큐가 1 이거든요. 1 이 뭐야 하면 직진입니다. 10이 후진인데 소도 뒷걸음질 치거든요. 그런데, 물고기도 닭도 후진을 못해요. 그래서 머리가 나쁜 사람보고 닭대가리라고 하는데. 닭 보다 더 머리 나쁜 것이 물고기입니다. 물고기 아이큐가 10 만 되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후진으로 다 도망가요. 도망 못 가고 유선형 몸을 계속 앞으로 전진만 하다 보니 그물망에 몸이 꽉 끼어 꼼짝 못 하게 되는 겁니다.

―하-하-하

막차를 타고 두 노인과 손자 손녀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횡성에서 강림으로 부곡으로 돌아왔다. 우 중위는 허가된 5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부대로 복귀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께는 영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부대서 좀 생각해 보고 편지로 알리겠다고 했다.

그녀는 우 옹이 농협 들를 때마다 우리 며느리, 우리 며느리 하다 보니 그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 있었는데, 횡성에서의 하루 데이트 동안 물고기 아이큐가 1이라는 농담이 머리에 새겨져 늘 싱글벙글 지내고 있었다.

농협의 다른 직원이 ‘장 양! 뭐 좋은 일 있어 항상 웃음이야?’ 하면, ‘그럼요, 인상 쓰는 것보다 즐겁게 지내는 것이 좋지요.’라고 응수했다. 그녀 어머니는 우 중위와 하루 데이트 한 이후 싱글벙글 지내는 것을 보고 할머니만 만나면 결혼시키자고 졸라 댔다. 그때마다 어떻게 한번 보고 결혼 진행을 하냐고 좀 기다려 보자고 했다. 열흘쯤 지나서 우 영수 중위는 고향의 부모님께 편지 한 통을 썼다.

부모님 전 상서

지난번 관보 덕분에 휴가 참으로 잘 다녀왔습니다. 다시는 그런 관보로 저를 놀라게 하시면 정말로 조부 위독할 때 관보가 와도 부대서 휴가 안 내보낼 수 있습니다. 횡성서 만나 본 장 영희 양은 참으로 가정교육이 잘 된 처자였습니다. 곱게 자랐고, 기품 있었는데, 옆에서 보니 앞이 두 개가 제 이가 아니더군요.

초면에 여자에게 치아가 왜 깨져 본인가 아니냐고 물어볼 수 없어서 그냥 왔습니다만 제가 장양과 결혼하기에는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그녀 어머니에게 그냥 우리 아들이 아직 중위라서 봉급이 작아 결혼할 마음이 없고 대위나 되어서 결혼할 것이라고, 영희 양은 더 나이 들기 전에 좋은 배필 만나 결혼하기 바란다고 전해주세요.

저는 여기 북한산 아래 군부대서 성실히 근무하고 2 년 후 대위 진급하면 맞선을 보던 연애를 하던 결혼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198X. 11. 17.

아들 올림.

우 중위는 198X 년 9 월 1일 중위에서 대위로 진급을 했다. 10월 2 일 대위 필수 보직인 고등군사 학교에 입교했다. 광주 전투병과 학교 내의 보병학부 고등군사반 제310 기로 입교했다. 수료식은 1990 년 1 월 13 일 토요일이다. 수료식 1 주일 전인 1 월 8 일 22 사단 고성군에 하숙집 짐을 옮기기 위해 담임교관 이 대원 소령에게 결석계를 제출하고 방을 구하러 떠났다.

광주서 서울역까지 기차로 서울역에서 상봉동 터미널까지 새벽에 택시로 갔다. 상봉터미널 새벽을 전방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택시에서 내리니 뒤에 따라온 택시에서 중년의 부부가 내리는데 짐이 5개나 되었다. 2개는 아저씨가 2개는 아주머니가 들고 하나가 남았다. 어쩔 줄을 몰라하는 순간에 강 영수 대위가 짐 보따리 하나를 번쩍 들었다.

―제가 들어다 드리지요.

―아니, 대위 양반이 어떻게 이런 짐 보따리를 다 드시나?

―예, 장교는 양손에 물건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말은 하급자가 인사하면 인사 잘 받고 상급자에게 경례 잘하라고 양손에 물건을 들지 않습니다만 여기 새벽에 저 보다 높은 사람도 없고 저 보다 낮은 사람도 없으니 짐 들어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짐을 들어주고 서로 가야 할 곳의 차표를 사고 나니 시간이 5시 10 분이었다. 우 대위는 강원도 간성 행 5시 40분, 아저씨 아주머니는 화천행 5 시 45 분 차였다.

차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우 대위 차나 한잔 하자고 했다.

터미널 다방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대화를 했다.

―우 대위 초면에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전 영수의 아비 전 찬용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내 내자 신 난숙이오.

―우근호 대위입니다. 광주서 교육 마치고 다음 주면 00 사단으로 배속되는데, 사전에 방을 구하러 간성에 가는 길입니다.

―그러시군요. 우린 아들 영수가 화천 27 사단 신병교육대 수료라서 가는 길입니다.

―우 대위 결혼했소?

―아니요. 아직.......

―아니, 대위면 나이도 꽤 있을 텐데, 사귀는 여자는 있소?

―없습니다. 대학 때 사귀던 여자는 모두 연애 상대로는 98 점인데 결혼상대로는 59 점이라고 떠나고, 맞선은 군인이라 정말 시간 내기 힘들어 맞선 약속만 하면 돌발 상황이 발행해 못 했습니다.

―그럼, 내가 나중에 기회 되면 중매 서게 자리가 잡히면 연락 바라오. 내 전화는 02-835-73**입니다.

―예, 어르신 감사합니다. 중요한 훈련 끝나고 한가해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메모를 주고받은 후에 시간이 되자 각자 간성, 화천 버스를 탔다.

199X 년 1월 13일 광주보병학교 고등군사반 제310 기를 수료하고 22 사단 56 연대 9 중대장이 되었다. 1월 17일 중대장 취임식을 했다.

다음 날 18일에 고성 간성 일대에 눈이 150 cm가 내렸다. 간성읍 대대리에 위치한 7396 부대의 연병장에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부대는 완전 ‘설국(雪國)’이 되었다.

부대일지에는 기본적인 일보상황을 적고 교육훈련 칸에는 <제설작업> 네 글자만 큼직하게 썼다. 제설작업을 일주일 내내 하고서야 대대가 탄약고와 고가초소 병사식당 가는 곳의 길이 열렸다. 부식 차량운행이 중단된 동안은 긴급 식량으로 비축한 전투식량과 염장 미역과 멸치 김장김치로 연명했다. 제설작업이 끝나자마자 연대 전투단 훈련, 사단기동훈련, 대대 전술훈련, 중대전술훈련을 하고 나니 4월 1일이 되었다. 4월 1일 만우절이라 거짓말로 세상 사람들이 즐겁게 보내는 날 문득 상봉터미널에서 보따리를 들어주고 연락처 주고받은 일이 떠올랐다. 수첩을 뒤져 연락처를 찾았다. 02-832-73** 전화를 걸었다.

―예, 독산동입니다.

―안녕하세요? 상봉터미널애서 인사드린 강 대윕니다!

―아, 우 대위 반갑소! 왜 이제야 전화하는 거요?

―제가 1월 17일 취임한 다음날 폭설이 내려 제설작업하고 부대 큰 훈련, 작은 훈련, 검열을 받다 보니 이제야 연락드립니다. 어르신 중매 약속 지키셔야지요?

―그럼요, 내일 우리가 신길동에서 친목계 하는 날인데, 그날 계원 중에 딸 가진 부모에게 물어서 군인을 사위로 할 의향이 있는 집 처자를 소개할 걸세.

―예, 감사합니다!

신길 5 동 새마을금고 뒷골목의 최 재석 씨 집에서 친목계가 열렸다. 최 재석 씨의 부인 조윤선 여사가 공개적으로 사윗감 구한다고 말을 했다.

―누구 젊은 남자 직장 반듯하고 성격 좋은 남자 있으면 우리 성현이 저년 시집 좀 보내게 중매 바랍니다!

전영수의 엄마 신난숙 여사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내가 군인 대위 한 명 알고 있는데, 군인도 되나? 그럼요. 군인이면 어떻고 경찰이면 어때요? 남자 성실하고 착하면 되지요. 내가 우리 저 양반에게 하도 눌려 지내서 우리 성현이 짝은 착한 남자 맺어주고 싶어요. 그럼 내가 우 영수대위 한번 연락해 볼게.

―영수 엄마는 그 대위를 어떻게 알았어?

―참 기막힌 인연이지. 우리 아들이 겨울에 군대 갔지 뭐야. 신병교육대 수료하는 날 먹을 거 잔뜩 준비해서 택시를 타고 상봉동 터미널에 내렸는데, 짐이 5 개인 거야. 내가 두 개 들고 두 개 영수 아버지가 들고 그래도 하나 남아 난감했는데, 웬 대위가 오더니 짐을 번쩍 들어주는 거야.

―모르는 대윈데?

―그럼, 그래서 저 양반이 아니 대위가 어떻게 이런 물건을 들어주시냐고 했더니, 장교가 양손에 물건을 들지 않는 것은 하급자가 인사하면 인사 잘 받아 주고 높은 사람 나타나면 인사 잘하라고 양손에 물건을 안 드는 것인데, 이 새벽에는 인사할 사람도 인사받을 사람도 없다고 하면서 들어준 거 있지. 요즘 그런 착한 사람이 어디 있어?

―야, 그 대위 정말 진국이네!

―생판 모르는데 손이 모자라는 것 보고 바로 짐을 들어주는 것 보면 정말 반듯하게 큰 사람 같더군.

―영수 엄마, 영수 아버지 그 대위 꼭 한번 만나게 해 줘요?

―알았어. 친목계 마치면 전화해 보고 연락드리지요.

―고마워, 영수 엄마!

전영수 이병의 아버지 전 용찬 씨와 그 부인 신 난숙의 중매로 그는 함경희 양과 결혼했다. 19XX 년 4월 5일 식목일이 들어있는 주 일요일에 처음으로 간성 우체국 앞 우체통 옆에서 만났다. 외할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조수석에 외할머니가 타고 뒷자리에 엄마가 탔다. 간성 우체국 앞에서 픽업한 우 대위가 뒷자리에 탔다. 차는 간성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속초로 내려갔다.

속초에서 여명식당이라는 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두 분은 꼼꼼하게 물었다.

―고향은 어디입니까?

―강원도 횡성군 강림입니다.

―부모형제는요?

―예, 할머니는 제가 소위 되기 직전인 85년에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금년 90 세시고, 아버지 72 세, 어머니 68 세입니다.

―형제는?

―3남 2 녀의 제가 장남인데, 여동생 둘 결혼해서 한 명은 부산에 한 명은 울산에 살고 있고, 가운데 동생 영대는 결혼해서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근처에 살고, 막내 영주만 고향에서 부모님과 농사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자들 만났는데 왜 아직 결혼 못했나요?

―예, 대학시절 연애하던 여자들은 제가 연애상대는 98 점인데, 결혼상대로는 59 점이라고 떠났고 군인으로 중매하려니 이거 5공 청문회로 군인들 인기가 떨어져 중매가 안 들어와 아직 결혼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위 월급이 얼마나 되나요?

―예, 그건 2 급 군사비밀이라 말씀드릴 수 없고, 국가공무원 9급은 군대의 하사와 비슷하고 상사는 6 급, 대위는 6 급과 5 급 사이로 보시면 됩니다.

―우리 딸 경희가 우 대위와 결혼하면 먹고사는 것에 걱정은 없겠지요?

―예, 걱정 마세요. 결혼해서 아내 생기면 배우자 수당 나오고요, 아기 태어나면 아이도 출생 신고와 동시에 가족이 늘어 가족수당이 나옵니다. 그러니 먹고사는 걱정은 마세요. 전국 어디를 가도 군인 아파트나 군인 관사가 이미 다 건축되어 집 걱정도 할 필요 없어요. 재산으로 내 집은 아니지만 거주 공간으로 집은 전국 어디 근무해도 다 있습니다.

―그렇군요.

식사를 마치고 어른들은 우 대위와 함경희에게 금은방에 가서 금 3 돈의 실반지 2 개를 만들었다. 각자의 손에 반지를 꼈다. 차를 몰아 속초에서 간성우체국 앞에 우 대위를 내려주고 세 사람은 진부령을 넘어 서울로 갔다.

금수리 3반 이선훈 씨 댁에 우 대위 월세 방에 오니 난리가 났다. 이선훈 씨와 부인 김 선애 씨가 영수에게 물었다.

―아가씨 만나 본 소감이 어때요?

―착한 거 같았어요.

―이 반지는 뭐예요?

―식당서 식사를 마치고 어른들이 중앙시장 정신당 금은방에 데려가더니 금반지 3 돈으로 저하고 아가씨에게 해주셨어요.

―아니, 아가씨 잘 살펴보지도 않고 반지를 덥석 받으면 어떻게 해요? 정말 강 대위 아저씨 몰라도 너무 모르네?

―왜 잘못했나요?

―아니 뭐 꼭 잘못은 아니겠지만 웬 지.......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우 대위 위해서 하는 말이니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요. 여자가 오죽 급하면 부모가 딸을 차에 태워 산골에 와서 사윗감을 찾겠어요? 혹시 아가씨가 무슨 흠결이 있거나 아니면 이미 결혼했다 실패한 경우인지 주민등록 초본으로 확인해 봐야지요?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아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일단 반지를 받았어도, 양가 부모님 인사 전이니 우리가 한 번 점검하게 다음 주 아가씨와 부모님이 간성에 오면 여관서 자지 말고 우리 집 방에 재워드린다고 저녁도 우리가 집에서 대접한다고 모시고 와요. 하룻밤만 묵으면서 대화하면 다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금수리로 모시고 오겠습니다.

금수리 아주머니 말을 들으니 강 영수 대위는 반지를 너무 성급하게 받은 거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4월 마지막 주 토요일 금수리 3 반 이선훈 씨 댁으로 서울서 내려온 우재석, 전선옥, 함경희릉 데리고 우 대위는 주인집 어른에게 인사를 시켰다.

―제가 신세를 지고 있는 주인아저씨 아주머니입니다. 아저씨는 고성군청 산림과 공무원이십니다.

―아이고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최 재석입니다. 여기는 내자이고 이쪽은 딸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선훈입니다. 군인 우 대위가 아가씨를 만난다고 해서 집주인으로 한번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엌에서는 주인아주머니, 전선옥 여사가 저녁을 준비하고, 거실에서는 우재석, 이선훈 두 분이 바둑을 두 면서 맥주를 마시고, 최 성현은 양쪽을 오가며 상차림을 하였다.

우 대위는 면세 소주 면세 맥주를 한 박스 씩 들고 왔다. 저녁 준비가 다 되었다. 커다란 원형 둘레 상에 앉았다.

―아가씨 이름이 함경희오?

―주인댁은 자식들 어떻게 됩니까?

―우리는 아들만 둘인데, 큰 아들은 강원대학교 수학교육과 2 학년 마치고 군대를 가서 신남 13 화학대대에 있어요. 작은 아들은 고3으로 속초고등학교 다니고.

―고 3 이면 한참 고생이네요?

―공부 지가 알아서 하고 우리는 하숙비만 잘 보내주면 됩니다. 하하.

―경희 양 밑으론 아들입니까?

―아닙니다. 딸만 내리 셋을 낳았어요. 경희 아래 경환, 경순까지 딸을 낳으니 강릉 함 씨 대가 끊어진다고 여자를 소실을 얻겠다는 것을 제가 말리고 애를 낳았는데 아들이라 얼마나 내가 아들 낳고 울었는지 몰라요.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막내도 아들이라 2 남 3 녀가 위로 셋이 딸 아래로 아들 둘입니다.

―우 대위는 3 남 2 녀라고 하던데.

―예, 부대서 휴가 얻으면 횡성 우 대위 부모님께 인사도 갈 예정입니다.

―아니 정말 인연도 이런 인연 없을 겁니다. 생전 처음 본 사람 물건이 손이 부족하거나 말거나 신경 안 쓰는 세상에 물건을 들어준 인연으로 우리가 친목계 회원이라 소개받았는데, 정말 삼신할머니가 맺어준 인연 아니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우 대위가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해 봐라 여자가 서울에도 남자가 많은데 뭣 하러 이 강원도 촌구석에서 사윗감 찾겠냐고? 여자가 흠결 있는 여자 아니냐고 의심해 보라고 했는데 정말 이렇게 만나 보니 천생연분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주인댁 부부와 최 재석 부부는 밤늦게 까지 이야기를 하면서 맥주를 마시고 포도와 옥수수를 먹었다. 잠은 주인댁에서 어른들은 주무시고 자연스럽게 우 대위와 함 경희는 그의 방으로 왔다. 말로는 결혼식 전에는 성관계 안 한다고 했지만 둘만이 작은 방에 들어오니 생각이 달라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포옹을 했다.

방에 이불을 폈다. 불을 껐다. 불을 끈 상태에서 둘은 옷을 벗었다. 그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이불 위에 눕혔다. 심장 뛰는 소리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졌다. 그녀 몸 위로 우 대위가 천천히 올라갔다. 불을 껐어도 얼굴의 이목구비가 구분이 되었다. 두 손으로 뒷목을 감싸고 입술과 입술을 맞댔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암묵의 신호였다. 그녀 아랫도리에 손을 넣었다. 이미 아래가 축축해 있었다. 손가락을 넣자 허벅지가 파르르 덜렸다. 손가락을 조금 깊이 넣었다. 그녀는 신음 소리를 참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의 것을 성현의 그곳에 넣었다. 매끄럽고 시원하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흥이 일었다. 그녀는 다리를 그의 하반신을 휘어 감았다. 더 깊숙하게 자신의 것을 넣었다. 한참 동안 구름 위의 떠다니는 듯 착각 속에 시간이 흘렀다. 밤이 왜 그리 짧은 지 아침 해가 떴다. 어른들이 아침을 다 준비하고 둘을 깨웠다.

―경희 일어났니?

―예. 잠시 후 건너갈게요.

둘은 옷을 서둘러 입고 주인댁으로 갔다.

―잘 주무셨어요?

―주인댁에서 아주 좋은 잠자리 마련해 주셔서 잘 잤지. 성현이도 잘 잤어?

―예, 방이 조용하고 좋았어요.

―새벽에 피아노 소리에 깼어요.

―우리 뒷집 간성고등학교 윤리 담당 장수란 선생님인데, 아마 함양이 여기 우 대위하고 결혼할 거라는 소문 돌고 돌면 피아노 소리도 끊어질 것입니다.

―왜요?

―왜긴 피아노 소리 듣고 우 대위 자기 좀 데려가 불러달라는 뜻인데 이미 우양이 찜했으니....... 하하

우 대위 부모님과 함 양 부모님 사이에 19XX 년 10 월 2일에 결혼식을 올리자고 약속을 했지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199X 년 10 월 동해안 22 사단 우 대위가 근무하는 XX연대 3 대대 9 중대는 대대에서 교육훈련 중이었다. 1 대대가 철책선 경계 근무를 마치고 10월 초에 철수하기로 되어있었다. 탑동 2 대대가 철책 경계근무를 투입해야 하는데 2 대대장 장 근호 중령이 임기가 10월 중순이 끝이 났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사단장 조성복 소장은 철책선 경계근무 순서를 2 대대가 아닌 3 대대가 먼저 근무하고 다음 해 4 월 철수하면 2 대대를 투입한다고 명령을 하달했다.

우 대위는 이 사실을 횡성군 강림의 아버지 우재석 옹에게 알렸다. 서울의 함 양에게도 알렸다. 전화로 알리고 성현에게는 편지도 썼다.

사랑하는 경희에게

지난 주말에 만났는데, 편지를 쓰려고 볼펜을 잡으니 더 보고 싶다.

양가 어른들에게 인가를 하고 10 월 중에 길일을 택해 결혼식을 올리자고 했는데 오늘 속상할 소식을 전한다.

철책선 경계 근무는 1.2.3 대대 순으로 돌아가는데, 2 대대장이 임기가 거의 끝나 10 월 중순에 이·취임식을 해야 한다고 이번 철책근무를 2 대대가 아닌 우리 3 대대가 들어가고 내년 4월 철수하면 2 대대가 들어가라고 사단장의 명령이 하달되었어.

그래서 우리 결혼식은 10 월에 할 수 없고 내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해야겠다고 강림 부모님과 신길동 어른들에게 전화를 하였어.

너무 마음 많이 상하지 않기를~~ 안녕!

199X. 9. 23.

간성에서 근호 씀

편지를 받고 경희도 답장을 썼다.

보고 싶은 근호 씨

오늘 편지를 읽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몰라요.

엄마 아빠 친목계원 중에서 딸을 군인에게 시집보내려는 사람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리고 싶다고 말한 아주머니 한분이 계시는데 왜 그런지 이해가 가네요.

어느 하나 개인의 의지로 하는 것 없이 부대일이 우선이니 그런 말씀을 하신 것 같아요.

그러나 이미 영수 씨의 아내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으니 아무 걱정 마시고 철책선 경계근무 잘하고 내년 철수해서 결혼해요.

이 편지가 당도할 때면 이미 영수 씨는 철책에 올라가 있겠지요?

저는 내년 4 월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신부수업이나 잘하겠어요.

사랑하는 영수 씨!

다치지 말고, 아프지도 말고 철책근무 마치고

몸 건강하게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안녕히~~

199X. 9. 29.

그는 소령은 중령으로 진급에 3 회 누락되어 만 45 세에 계급정년으로 전역을 했다.

전역증서에는 이름과 혈액형이 B 형인 것과 군번과 전역일일 20XX. 5. 31. 찍혀있었다.

군에 있을 때는 술만 한잔 하면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30 년 하는 양 희은의 <늙은 군인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겠다고 연대 군수과장 시절에 엄마는 연대장 공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오히려 연대장 사모님 보다 연대장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다. 연대장 가사도우미 수준으로 연대장 공관에서 공관 병이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김치를 담그는 것은 기본이고 계절마다 지역 특산품을 몸에 좋다고 구해서 연대장 입맛을 돋게 했다.

더 심한 것은 한때 혼인 외 자식 사건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었던 채성욱 검찰총장과 같은 채 씨 문중이라는 채 대령을 매개로 아빠를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고 채 대령도 장군으로 진급하는 일을 도모했다.

대전 육군본부의 고위 장군에게 채 대령이 보내는 선물을 채 대령 부인이 아닌 함경희 여사가 대전까지 운전해 다녀오기도 했다.

그걸 어떻게 내가 아냐고? 나는 초등학생으로 엄마의 보디가드였거든. 항상 엄마는 운전할 때 나를 뒷좌석에 베이비 시트를 설치하고 나를 태워 장거리 운행을 했다. 만약에 교통사고가 나더라도 나는 살려야 한다는 엄마의 투철한 모성애가 차에 장착된 에어백으론 부족하다고 초등학생인 나에게 어린이용 시트를 착용시켰다.

꽉 끼는 시트가 나는 답답했지만 엄마의 성질을 알기에 항변도 못하고 꾹 참고 차에 타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반경을 신출귀몰했다. 전국의 특산품은 모두 사서 수송 배달했다.

아마 엄마는 아직도 내가 엄마와 채 대령과의 관계를 모를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이미 초등학교 5,6 학년과 중 1 시기에 엄마와 채 대령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눈치를 채고 있었다.

다만 모른 척할 뿐이었고 아버지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절대 어른이 되면 내 남편은 아버지처럼 무능한 남자, 엄마처럼 출세를 위해서는 도덕이고 양심이고 다 버리는 여자처럼은 절대로 안 된다고 다짐했다.

한 번은 이런 꿈도 꾸었다. 내가 미팅을 갔는데, 세상에 나의 파트너가 우리 아빠와 너무 비슷한 남자를 만났다.

대머리에 큰 눈 174 정도의 중간키, 뚱보도 날씬한 것도 아닌 몸매, 어눌한 말투까지 꿈에 미팅 파트너를 정하자 내가 먹은 커피 값만 주선한 친구에게 던져주고 미팅 장소를 나왔다.

만약 내가 남자였고 아빠 입장이었으면 진급하겠다고 엄마가 그렇게 많은 돈을 써가면서 채 대령과 붙어 다니는 것을 용납 못했을 것이다.

중 3에서 고 1이 될 무렵 아빠는 전방에서 군수과장을 마치고 정보과장을 하고 있었다. 사실 병과가 정보라서 군수과장은 해봐야 손해를 보는 보직이었다. 정보과장 빈자리가 없다고 그 부대서 정보과장이 떠날 때까지 군수과장일을 하다가 정보과장이 떠나면 이어받으라고 한 것이다.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의 00 사단 전방연대는 그는 눈 감고도 지프차 선탑하면서 여기는 신병교육대 다리 여기는 대광리 보신탕집 앞 여기는 독서당리 저기는 대마리를 다 알 정도였다.

그가 전방 연대 정보과장 시절 북한의 G. P와 우리 G. P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처럼 북한이 먼저 도발을 했으나 북한 G. P를 정말 초토화시켜 그날의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아빠의 후배 구본학 중위는 한순간 영웅이 되었다.

군에서는 훈장도 수여하고 장기 복무를 유도하느라 학군 선배인 아빠가 구 중위 장기 복무 유도 작전에 투입했다. 구 중위의 대답이 10 년 후의 모습이 정보과장님 우 소령님 모습이 되는 것이 두려워 장기 안 합니다 했다. 구 중위는 2 년 3 개월의 의무 복무만 마치고 전역했다. 그날 아빠는 야 요즘 젊은 후배 놈들은 선배 말을 하느님 말씀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동네 개 짖는 소리로 들어하면서 혼자 소주를 3 병이나 마셨다.

엄마는 나랑 천명을 서울에서 공부하고 엄마는 우리 뒷바라지한다고 아빠의 퇴직금을 담보로 5 천만 원을 대출해서 서울서 전세로 이사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전역해서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아버지와 엄마는 한집에 살지만 각자 방을 쓰고 남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채 대령은 내가 중간고사 기간인데도 우리 집에 와서 아버지가 있어야 할 안방을 엄마랑 사용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고 엄마에게 말해줘도 엄마는 응 알았어. 하고는 채 대령과 은밀한 행위를 하는 소리와 샤워소리가 공부방에 다 들릴 정도로 둘은 조심하는 법이 없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은 탐사보도에 제보하고 싶다. 내 나이 서른이라서 하는 말인데, 시험 공부하는 학생 바로 옆방에서 엄마와 채 대령의 이상야릇한 소리가 들리고 샤워하는 물소리가 들리는데 내가 아무리 천부적으로 아빠에게 물려받은 좋은 DNA 소유자라 해도 공부에 집중이 되었겠냐고?

그 중간고사서 난 수학만 제대로 90 점을 받고 나머지 과목은 다 70-80 점대를 받았다.

문과반인데 문과 중요 과목보다 수학 점수가 더 좋다고 수학 선생님 최영수 선생님은 야, 우미아 넌 지금이라도 이과반(理科班)으로 가거라! 가서 이과반 애들에게 수학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좀 보여줘라 말씀하셨다.

사실 내가 수학을 하는 것은 잘하는 축에도 못 든다.

내 동생 천명은 내가 초등학교 5 학년 때 1 학년 입학을 했는데, 수학 문제로 고민하면 동생이 옆에서 훈수를 들었다.

―누나 한쪽은 완전 0이 되게 몰아봐?

정말 함수의 개념도 설명도 누가 해준 것도 아닌데 천명은 5 학년 수학책의 문제를 풀었다.

엄마가 우리에게 육군본부의 채 대령과 친한 장군들에게 로비를 잘해서 우소령은 우 중령으로 진급하고 채 대령도 채 준장으로 진급하게 한다는 그녀 말은 아버지가 예비역 소령이 되고 채 대령도 장군이 못 되고 대령으로 한직인 후방부대의 부사단장으로 전출을 가서 부도수표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전역한 아빠의 첫 직업은 보험설계사였다. 아버지의 R. O. T. C. 선배 한 명이 모 보험사의 지점장으로 있고 그 밑에 세일즈 매니저로 선배들이 몇 명 있어서 완전히 지점 전체가 R. O. T. C. 동문으로 만든다고 들어갔다. 하지만 보험설계사의 직업이 계속 신규 계약을 늘려가야 하는데 아버지의 알고 있는 지인의 풀이 떨어지자 아빠의 계약 건수도 줄고 정비례하여 수입도 점점 줄어 서서히 고사목이 되었다. 아빠의 수입이 줄어들면 엄마는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엄마는 아빠에게 돈 많이 벌어오라고 닦달만 했지 가정의 지출을 줄이는 노력은 안 했다. 드디어 아빠는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곳으로 직업을 바꾸었다.

다단계라면 치를 떨던 아버지가 다단계에 빠졌다.

아니 빠진 것이 아니라 다단계의 전도사가 되었다. 다단계에 가담한 것은 승 득남이라는 탈북자 때문이었다. 아빠가 정보장교라 한 때 대성공사라고 하는 탈북자를 신문하는 기관에서 근무했는데 그러다 보니 탈북자에 대해 잘 알아본다. 탈북자의 외모는 남한 사람과 별 차이 없다 표가 나는 것은 억양이야. 투박한 함경도 억양이거나 따발총을 연상하는 평안도 억양이나 어투로 표시 나고 행태로는 지하철 노선도를 성경책 이상으로 아낀다. 노선도 없이는 어디 행차를 못하기에 항상 지하철 노선도를 지갑에 잘 접어 찾기 쉽게 하고 다닌다. 아버지가 승 득남을 만난 것은 지하철역 목도에서다. 목동 근처에 탈북자들이나 중국 교포의 출입을 관리하는 출입국관리 분소가 있다. 지하철 노선도를 살피더니 시흥역이 없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시흥역 가시려고요?

―예, 제가 중국서 설명 듣기로 시흥역에서 마을버스 1번을 타면 벽산아파트 간다는데 여기 시흥역이 안 보입니다.

―예, 원래 시흥역을 새 청사를 지으면서 역 이름을 금천구청 역으로 변경했어요.

―남조선은 역 이름을 그렇게 막 바꿉니까?

―남조선?

―그럼 아저씨는 북조선서 왔어요?

―예, 본디 혜산 사람인데, 딸 하고 2 년 전에 탈북했고, 이번에 마누라가 탈북을 해 지금 하나원서 교육 중이래요.

―아, 그런데 벽산 아파트에 누가 살아요?

―예, 중국서 신세 진 분의 아들이 살고 있다기에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럼, 저랑 같이 가시지요. 저도 집이 벽산아파트 가기 전이라 그쪽으로 갑니다. 저는 두산 아파트에 살아 가산디지털 단지 역에서 내리는데 아저씨는 금천구청역이라고 방송 나오면 거기서 내리세요. 그럼 마을버스 1번 탈 수 있어요. 오늘은 초행이니 그냥 금천구청 역에서 내리고 다음에 갈 때는 독산역에 내리세요. 그럼 거기가 1번 버스 출발지라 앉아서 갈 수 있어요.

아버지는 엄마가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지 마라 했지만 그는 늘 처음 본 사람에게 길만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다음 방문에 마을버스 앉아서 가는 팁까지 알려주었다. 그러니 엄마와 아버지는 처음부터 맞지 앉는 상대였다. 사실 엄마 아버지 결혼한 것도 생전 처음 본 분들의 짐을 들어준 인연으로 결혼했으니 아버지의 친절은 타고난 거였다.

―당신은 아직도 내 말을 안 들어요? 탈북자에게 길만 알려주지 뭐 그런 친절을 베풀고 전화번호까지 주고받아요?

―탈북자는 일단 한국 국적 획득해도 보험은 없을 거 아니야? 내가 하나원을 어떻게 방문해 이런 식으로 탈북자 알아서 보험계약 탈북자 일 년에 3000 명 정도 오면 그중 200 명만 내가 계약해도 난 지점에서 최고 신규계약 잘하는 설계사 될 거 아냐?

―당신 TV도 안 봐요? 요즘 탈북자 보험 설계사가 탈북자들과 짜고 보험 고액으로 가입해서 별거 아닌 것으로 병원에 드러누워 보험금 타서 나눠가지다 적발되었다고. 당신이 하나원 가서 탈북자 하나 계약하기 전에 이미 탈북자 출신 보험설계사가 하나원 퇴소하면 누구 만나라고 예약한다고 합디다.

탈북자 한 사람을 계약하고 나면 줄줄이 탈북자의 소개로 계약이 연속될 거라는 아빠의 소박한 꿈은 엄마의 속사포 한 발에 아빠의 기가 죽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승득남이 아빠에게 접근했다.

―형님 사람들이 핸드폰 가입자만 늘려나가도 돈벌이가 된다고 하는데, 좀 오시겠어요?

―야, 그거 다 다단계야!

―다단계가 뭡니까?

―그거 전화로 설명 못해. 만나서 직접 그림 그려가면서 해야 된다.

―그럼, 제가 형님 사시는 가산동 두산 아파트로 가겠습니다.

―그래, 오후 7 시 각자 저녁 먹고 두산 아파트 앞에 좋은 공간이라는 카페로 와라.

―예, 그럼 형님 그때 봐요.

좋은 공간은 원래 사장님이 서점이던 곳을 서점이 수입이 줄어들자 카페로 바꾼 것이다. 팔던 책 중에서 아끼던 것을 카페에 비치해서 커피도 마시고 노트북 가져온 사람은 문서작업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둘이 만났다.

―형님, 반갑소이다!

―그래, 벽산 아파트 만나려던 사람은 잘 만났고?

―예, 형님 덕분에 잘 찾아갔습니다.

―독산역에서 1번 타봤어?

―예, 형님 말대로 독산역에 내리니 1번 앉아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 마을버스 1번은 사람이 많이 타고 다니는데, 금천구청 역에서 타려면 거의

앉아 갈 확률이 희박하다.

―예, 저는 형님 덕분에 남조선에 빨리 적응하는 중입니다.

―그래, 만나자고 한건부터 말해봐.

―가산 디지털단지 역에 4번 출구로 나오면 우림 오피스텔이 있는데, 203 호에 한솔이노베이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 거기서 뭐라고 하더니?

―제가 가입하고 탈북자로 몇 명을 가입시켰는데, 탈북자 아닌 사람으로 한쪽 라인을 만들라고 합니다.

―그래, 그래서 한 100 명 만들면 평생 돈 걱정 없이 산다고 하지?

―예.

―그거 다 사기다. 사기!

―사기가 다 뭡니까?

―너 왜 탈북했어?

―북조선에서 밥 먹고 살 수 없어 탈북한 거 아닙니까?

―그래 밥 먹고 살 수 없어 탈북했지? 다단계 해도 밥 못 먹고 나중에 겨우 벌어 모은 돈도 다 날리고 교도소 간다.

―그럼 왜 남조선은 그런 다단계를 법으로 금지 안 하는 겁니까?

―그게 민주주의고 자본주의야.

―왜 그럽니까?

―결적정인 피해 근거가 나와야 법으로 단속하고 처벌하거든 그러니 문제가 표면에 나타나 피해자 생기기 전에는 경찰도 검찰도 그냥 두는 거야.

―그래도 형님이 우리 회사 교육 한번 들어보고 확실히 다단계면 저도 그만둘 테니 형님 가서 강의 한 번만 들어주겠어요?

―그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살아있는 의형제 동생 소원 들어주지.

―고맙습니다, 형님!

―그래, 교육이 언제야?

―매주 화요일 오전 10 시, 목요일 오후 2 시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 10 시 가마.

―고맙습니다, 형님!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로 가듯이 다단계 잡으러 강의를 들으러 갔던 아빠는 완전히 동화되어 다단계사업자가 되어 승득남은 탈북자를 신규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아빠는 내국인을 가입시켜 나갔다.

과도한 부채와 아버지 핸드폰 다단계 사업이 검찰 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엄마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이혼소송을 했다.

TV 드라마에서 보던 아파트 내부에 스티커 부착하고 압류표시를 하는 것을 나와 동생은 작은 방에서 숨죽이며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엄마는 남매에게 가정법원 판사가 엄마 아빠 이혼하게 되면 누구와 살고 싶냐 물으면 엄마라고 대답하라고 일러주었다. 도저히 너희 아빠랑 계속 살면 우리 집안 모두 거덜이 난다고 했다.

며칠 후 네 식구는 가정법원에 출두했다. 가정법원 판사는 여자였다. 판사가

―피고인 우근호 씨는 아내를 폭행했습니까?

―아닙니다.

―우근호 씨는 마약을 했습니까?

―아닙니다.

―우근호 씨는 배우자 이외의 여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졌습니까?

―아닙니다.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자 판사는 동생과 나에게 만약에 아빠와 엄마가 이혼을 하게 되면 누구와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엄마에게 교육받은 대로 ―엄마랑 살고 싶어요― 했다.

판사는 피고인 우근호 씨가 즉각 이혼 대상의 질문에 부정을 하였기에 2 개월 간 숙려기간을 준다고 했다. 2 개월 후에 다시 법정에 나오기 바랍니다. 한쪽이 안 나오면 없는 대로 궐석재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2 개월 후 아빠 없이 엄마 혼자서 이혼확정 판결을 받고 판결문은 아빠에게 등기로 보내졌다.

20XX 년 5월 51 일 아빠가 군대에서 전역한 2 년 후인 바로 그날 이혼 확정판결을 받았다. 며칠 후 우리 식구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살던 우리 별 아파트는 경매로 넘어가고 은행부채와 경매와의 차익금 1500 만원을 들고 엄마, 나, 동생 셋은 부천의 오피스텔로 이사를 했고 아빠는 그냥 집을 나갔다.

그날 이후 아빠는 시흥사거리 은행나무에 있는 24 시 불가마 사우나에서 밤을 보내고 새벽이면 대우인력으로 나가서 그날그날 건설 일용직 근로자가 되었다. 주민등록 주소지를 우리 별 아파트에 둘 수 없어 가평의 아빠 초등학교 친구의 집으로 동거인으로 옮겼다.

아빠가 금융 신용불량자와 통신 불량자에 모두 걸려 이혼하는 아빠를 위해 내 이름으로 입출금 통장과 휴대폰을 개통해서 아빠에게 주었다.

아빠와 나는 암호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핸드폰 문자로 ‘신 15’ 하면 신한은행에 15 만원 보냈다는 뜻이다.

전화번호 저장도 아버지, 아빠가 아닌 ‘은사님’으로 저장했다. 왜냐하면 내 핸드폰을 이모나 외삼촌 엄마가 보면 아버지와 만나는 것을 알게 되기에 나는 엄마나 외가 어느 누구에도 아빠와의 연락을 안 하고 행방을 모르는 것으로 했다.

실제로 다단계 수배자로 아빠를 찾는 경찰도 있었고 법원 송달들도 다녀갔다. 엄마는 이혼 후로는 왕래가 없다고 했다. 나도 아빠 행방 모른다고 대답했다. 핸드폰 문자 메시지만 주고받았다.

―은사님, 오늘 비 오는데 뭐 하세요?

―비 와도 우리는 지하에서 일한다.

―돌아오는 일요일 충무로 대한극장 12:00

―오케이

그것으로 아빠와 나의 의사소통은 되었고 둘 다 정확히 12시 5 분 전에 충무로역 지하 대한극장 들어가는 유리문 앞에서 우리는 만났다. 겨울이면

―은사님 눈이 내려요. 지금 어디신가요?

―제주도

―그 멀리?

―건설일용직 근로자는 지구 끝이라도 일감 있으면 가서 하는 거야.

제주에서 건설 일용직을 하면서도 아빠는 한 달에 아빠의 고시원 방세와 동료와의 소주 값 정도만 남기고 나에게 보내주었다. 많은 때는 130 보통은 70, 80 만 원 정도를 보내고 문자로 신 70이라고 보내왔다. 제주도로 일하러 간 아빠 동료 간에 불화가 생겨 1 년 약속으로 간 것이 고작 4 개월하고 다시 서울로 왔다. 그때가 2016 년 5 월이다.

5 월부터 아빠는 건설일용직 잡부가 아닌 고단가의 일을 한다고 해체를 하러 다녔다. 시흥사거리를 벗어나 남구로 한성인력으로 나갔다. 새벽 4 시 50 분 인력 사무소 안이나 밖이나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강 영수라고 이름이 선명한 주민등록증을 인력사무소 부장에게 제출했다.

―우근호 씨 내국인이죠?

―예.

―그동안 경험한 직종은?

―정리도 하고 해체 조공도 했습니다.

―예, 마침 잘 되었군요. 한국인만으로 편성된 해체 팀에 조공이 한 명 부족한데 그리로 보내드리죠.

―감사합니다.

인력시장의 90 %는 외국인이다. 중국이 가장 많고 몽골, 베트남,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등 다양한 곳에서 단지 돈 벌기 위해 이렇게 말도 안 통하지만 나온 것이다. 그러니 일하는 현장에서는 한국인은 눈에 보기 드물고 최소한 외국인이라도 한국말 알아듣는 사람이 금값이 되었다.

―우근호 씨?

―예?

―반갑습니다. 해체팀장 공승현입니다.

―반갑습니다. 강각성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봉희입니다.

―반갑습니다. 강철구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한국인 찾기 힘든데 형님 오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인사를 하고 공 승현 해체 팀의 일원이 되었다. 김포 한강 신도시 건설공사장, 송도 신도시, 위례 신도시 여기저기 해체가 필요한 공사장이면 어디든지 다녔다. 시흥시 정왕동 무지개 지역방송 신축공사장에서 해체를 하다 거푸집에 깔려 대퇴부 골절이 되었다. 119에 실려 시화병원으로 이동했다. 시화병원 응급실 당직의사가 물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우근호!

―이거 몇 개로 보여요?

―3 개!

―어떻게 다쳤어요?

―해체하다 거푸집에 깔렸어요.

―예,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할 겁니다. 그리 아세요.

―예.

―지금부터 마취를 하니까 하나, 둘 , 셋, 스물아홉까지 세세요.

―하나.

―둘.

―셋.

―넷.

일곱을 세자 완전마취가 되어 여덟을 세기 전에 잠이 들었다. 시화병원 제1 정형외과 과장 김청야 과장은 신속히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을 경유하여 마취가 다 풀릴 즈음 706 병동으로 이동했다. 간호사가 입원서류 서명을 받아갔다.

―우근호 환자님, 혼자 식사는 하지만 화장실 갈 수 없으니 가족 중에 병원에 나와 간병할 분 있어요?

―없어요.

―아드님 없어요?

―군대에 갔어요.

―따님은?

―저작권 관련 회사 다니는데 일이 많아 매일 야근입니다.

―그러시면 어차피 간병인 써야 하니 간병인 있는 병실로 하겠습니다.

―예.

201X 년 8 월 21 일부터 간병인이 공동 간병하는 707 병동으로 이동했다.

나는 혼자 시화병원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따라나섰다. 아니 이혼한 엄마가 병원 가면 다쳐서 신경 날카로운 아빠에게 도움이 될 일 없다고 했으나 엄마는 따라나섰다. 난 엄마 고집을 이길 수 없었다.

간병인 석경희 여사는 중국 교포 조선족 여자였다. 젊어서 중국에서 간호사를 했으나 나이 들어 간호사 할 수 없어 한국으로 와서 간병인 10년 차라고 했다. 전직이 간호사라 아빠에 대한 간병을 잘했다. 그런데 따라온 엄마 때문에 사단이 생겼다. 예고 없이 나타난 아빠의 이혼녀이고 나의 엄마는 침대 시트에 오줌지도 모양의 무늬를 보고 간병인을 야단쳤다.

―간병인이 간병을 제대로 해야지, 침대 시트가 이게 뭐예요? 오줌인지 물인지 모르지만 지도가 그려지고?

―얼음주머니 방수가 잘 안 되어 그런 겁니다.

―환자 수염도 산적처럼 좀 깎아주어야지?

―아주머니! 면도기는 보호자가 사주어야지 남의 면도기 빌려 사용 후 감염되면 누가 책임지라고 그런 소릴 하세요?

그 말에 엄마는 아무 대꾸도 못했다. 더구나 잠에서 깬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함경희! 여길 왜 왔어? 미아는 내 딸이니 이혼해도 가족관계증명서에 이름 등장하니 와도 되는데 넌 이혼녀라 이름 없어. 그런데 무슨 자격으로 병실에 들어와?

―이혼한 마누라는 병문안도 못 와요?

―문안 같은 소리 하네? 이혼했으면 그만이지 남 다리 얼마나 다쳤나 확인하러 왔니?

―그래, 얼마나 다쳤나 확인하러 왔다!

―빨리 나가!

―간호사 불러! 여기요, 저 여자는 환자 가족 아니니 병실 밖으로 내보내요!

아빠의 불호령에 엄마는 황급히 시화병원 707 병동을 빠져나왔다. 엄마가 나가자 간병인 석 미경은 아빠에게 말을 걸었다.

―우 사장님, 저런 여자와 결혼해 몇 년 사셨어요?

―20 년.

―세상에 내가 남자라면 저런 여자와 3 일도 못 살 거야.

―에이 20 년 산 사람도 있는데.

―20 년 동안 사장님이 지고만 살았죠?

―어떻게 알았어요?

―안 봐도 훤해요. 간병인 10 년이면 관상쟁이 다 됩니다. 아무리 돈 만은 척 자랑해도 간병인비 제대로 못 내는 환자 보호자들 자식 자랑해도 병원 한번 못 오는 잘난 자식 10 명이면 뭐해요?

―그렇지요. 돈 많이 못 벌어도 환자 병원 와주는 사람이 고맙지.

―병원 환자와 환자 가족 환자 퇴원 때면 그네들 집안 수준 다 드러나죠. 서로 모시려는 집안 서로 네가 모시라고 공 떠넘기는 집안 환자가 부자면 자식들이 서로 모시려 하고 환자 돈 없고 자식들도 그저 그럭저럭 사는 형편이면 서로 안 모셔요.

―그럼요. 이 세상에 문제없는 잡이 어디 있어요? 다 그런 문제는 가족 간에 적당한 선에서 묻고 사는 가정과 서로 책임 전가하고 캐고 따지는 차이지요.

정형외과과장이 보호자인 나를 불렀다.

―과장님 부르셨어요?

―예, 우근호 님의 수술은 아주 잘 되었고, 환자분이 식사도 잘하시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물로 하루 2 리터 이상 꼭 드셨기 때문에 상당히 호전되었습니다. 우리 병원은 수술하는 병원원이라 규정상 수술 환자는 4 주 정도만 여기서 입원하고 구 후는 환자의 집 가까이 있는 정형 와 과로 가도록 합니다. 시흥 사거리 정형외과로 이송하시지요?

―예, 저도 직장이 서울이라 아빠 병문안 한번 오려면 3 시간 걸리니 힘들었어요.

―어디 평소 이용하던 정형외가 있나요?

―아니, 처음입니다.

―그러시면 시흥사거리 내 고등학교 동창이 00 의과대학 졸업하고 저보다 실력이 좋은 친구인데 고든정형외과 병원으로 이송하세요. 내가 미리 전화해 두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XX정형외과로 이송된 다음 날 동생 천명이 포상휴가를 나왔다. 군대 갈 때는 일반 병 00 군번으로 갔는데, 사단 신병교육대 수료하고 주특기를 통신으로 받았다. 00사단 포병연대 낙석대대 통신병으로 배치된 종우는 이등병 때 사단 음어경연대회에서 1 등을 했다. 초등학교부터 한국교육제도에 맞지 않는 아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나와 나이 차이가 4 살이 나지만 학년은 3 학년 차이인데,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내가 수학책을 들고 문제풀이가 안되어 머리를 쥐어짤 때면 동생이 누나 X를 한쪽으로 몰아봐라고 힌트를 줄 정도로 수학의 귀재였다.

하지만 한창 공부할 중학 시기에 부모가 이혼을 하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서 그 이상의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푼 두 푼 모아 고입 검정고시 대입검정고시 학원을 다니고 학점은행 공부를 하다가 군대를 갔다.

군대 입대해서 신병교육대 신체검사에서 군의관이 과체중이라고 귀향조치를 내렸는데 신병교육 기간에 현역 몸무게를 맞추겠다고 우겨서 스스로 현역이 된 것이다.

남들은 돈으로 권력으로 군대를 면제하거나 기피하려고 하는데 이 녀석은 스스로 현역이 되었다. 이등병이 사단 음어대회 1 등을 하는 낙석부대의 역사를 새로 쓰고 나온 것이다.

―아버지 많이 다치셨는데 너무 좌절하지 마세요. 내년 8월이면 전역하니까 그때는 아버지 돈벌이 하러 새벽에 인력시장 나가시지 않아도 될 겁니다.

―좌절?

―예, 제가 아버지 성격 닮아서 하는 소리예요.

―그래, 나 시화병원서 간병인이 소·대변받아낼 때는 이렇게 사느니 병원 7 층서 그냥 뛰어내릴까 생각했었다.

―에이, 아빠 그건 오버다.

―오버 아니야. 이런 다리로 세상에 뭔 일을 하겠니? 일을 못하면 돈이 없고 천박한 자본주의에서는 돈 없으면 죽어야 한다.

―아버지, 일단은 누나가 있고 내년 8 월이면 저도 전역해 돈 벌면 잘 살지는 못해도 먹고사는 데는 이상이 없어요. 그러니 아버지는 재활에만 신경을 쓰세요.

―그래, 알았다. 아들!

―아빠?

―왜?

―남녀차별 안 한다더니?

―내가 무슨 차별이야 딸은 딸이라 예쁘고, 아들은 아들이라 믿음직한데?

―그거 알아?

―뭘?

―강림 할아버지가 난 한 번도 안아주지 않고 도식이 우식이 종우만 안아준 거?

―야, 돌아가신 분 이야기는 왜 새삼?

―아니야, 난 정말 영원히 할아버지에게 여자라고 손자들만 안아주고 난 한 번도 안아주지 않고 돌아가신 거 잊을 수가 없어?

―너나 시집가서 애 태어나면 남녀차별 없이 잘 키워?

―응, 그럴 거야.

―아버지 제가 군대 가서 느낀 것인데 아버지가 예비역 소령이라서 소령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군대 가서 신병교육받으니 소령 높은 줄 알았어요.

―그럼 이병부터 치면 이병, 일병, 상병, 병장, 하사, 중사, 상사, 원사, 준위, 소위 중위, 대위 그다음이 소령이니 높지? 하지만 장교 중에서는 중령, 대령들의 밥이다 밥!

―아버지 죄송해요.

―뭐가?

―서울 가정법원에 이혼할 때 아빠랑 살겠다고 안 한고 엄마랑 살겠다고 말한 거 정말 죄송해요. 그리는 그때 엄마 말만 듣고 정말 아버지가 잘못해서 이혼하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누나에게 들으니 엄마 잘못도 크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어요.

―다 지난 일인데, 이제 뭐가 죄송해? 잘 자라 이렇게 군대서 포상휴가도 나왔는데. 역사에 가정법이 없듯이 인생에도 가정법은 없다. 이미 지나간 일을 그때 왜 그렇게 했을까?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러니 후회할 필요 없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새로 오는 인생에 대해 준비를 잘해 도 다른 후회거리를 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빠?

―왜?

―난 여자지만 엄마도 이해가 안 되고 아빠도 이해 못 하겠어?

―왜?

―채 대령하고 엄마가 그렇게 붙어 다니는 것을 왜 아빠는 말리지 않고 묵인했어?

―엄마가 채 대령을 만나는 것은 나의 진급을 위한 노력이라고 하니까 묵인한 거지?

―그래서 아빠가 진급을 했어?

―못했지?

―왜 진급 못하고 전역 얼마 안 남은 상태서 채 대령 만나러 나가는 것을 묵인했어?

―만나지 마라 하면 엄마가 안 만날 여자니?

―그래도 만나지 마라 아빠는 말을 했어야지?

―만난 지 여러 해 되는 남녀에게 그만두라는 말을 하는 것이 더 이상해지고, 일단 엄마와 부부의 연은 여기 까지는구나 했어도 너희들 대학 마칠 때까지는 이혼 안 하고 지내려 했지.

―그런데 왜 이혼했어요?

―엄마가 이혼 소송을 가정법원에 제출했고, 출두하라고 해서 출두한 거야. 엄마는 변호사 도움을 받아 서류 작성하고 나는 혼자 작성했어.

―난 여자지만 내가 아빠 입장이라면 엄마 그렇게 놀아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야.

―나라고 엄마 나돌아 다니는 거 마음이 편했겠니?

―엄마 아빠 이혼하고 경화 이모가 나보고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하든?

―미아 너, 엄마랑 대령 아저씨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거 언제 알았느냐 물었어?

―그래서?

―나 초등학교 5 학년 때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한 거라고 했지.

―이모 반응은?

―미치겠다. 너는 완전 애늙은이구나! 초등학생이 알면서 모른 척하고 몇 년을 지냈다니. 형부도 바보 멍청이고, 언니는 인간도 아니야 했어.

그렇다. 이모는 엄마가 대학 다닐 때 그냥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김포공항의 물류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여고 졸업자라고 대졸 사원들 사이에서 임금 차별받으면서 일하다가 외할머니의 등살에 맞선을 봤다. 남자는 서울의 명문대를 나오고 남자의 언니와 여동생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

이모는 학력 열등의식으로 그 남자와 더 이상의 만남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모부도 당시 고졸 출신으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이 남자 자면 평생 같이 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했다. 외가에서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다 반대하고 엄마 아빠도 반대 외삼촌 두 명도 반대를 했다.

결국 이모는 집을 나가 이모부와 동거에 들어갔다.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어른들이 결혼식을 올려주었지만 지금도 이모는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한다. 결혼식 올려주든 안 올려주는 사는데 아무 문제는 없다.

―나 채 대령 만났다.

―어디서?

―삼성동 회사 옆에 봉은사 있고 코엑스 건물 식당서 점심 먹고 회사로 걸어오는데 누가 우보영! 하는 거야. 이름을 보영에서 미아로 개명을 했는데 개명 전 이름을 누가 부르나 쳐다봤더니 채 대령이었어.

―뭐라고 하든?

―엄마 전화번호 가르쳐달라고 자기가 전화하니 없는 번호라고 안내 음성 나온다고.

―그래서?

―싫어요. 더 이상 우리에게 관여하지 마세요. 다시 만나도 부르지 말고 모른 척하세요!

―그랬더니?

―알았다. 자기는 방배동 궁전아파트 팔아서 용인 동백지구로 이사를 갔다고. 그런데, 대령 때보다 완전 할아버지야. 얼굴도 쪼글쪼글하고 키도 더 작아진 느낌?

―딸 보기보다 냉정하네?

―나 아빠 딸이야!

―난 냉정 아닌데?

―아니야, 엄마가 이혼 후에 하는 말인데 아빠 찬 사람이래. 뱀처럼!

―하긴 고향 어머니도 아버지보고 맨 날 찬 인간이라고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이라고 했어.

―천명도 차니?

―아니, 정이 많아, 동물도 좋아하고.

―그래, 세상에 둘 남은 남매니 잘 지내.

―엄마는 커 갈수록 내 얼굴에서 아빠 모습 보여 놀란다고 해.

―천명은 엄마 닮아서 동그란 형이지?

―그래 천명은 외할아버지, 엄마, 작은 외삼촌 비슷한 형이야.

201X 년 3 월 XX 일 근로복지공단에서 아빠의 산재치료를 종료시켰다. 근로복지공단 서울 남부지사에서 등급 판정을 받았다. 14 등급이었다. 722 만원의 일시금이 나왔다. 그것으로 끝이다. 산재환자의 재활 운동 지원도 없고, 취업을 위한 무료교육도 12 등급 이내 받아야 혜택이 있지 14 등급은 아빠가 스스로 취업활동을 해야 했다. 지팡이를 짚고 금천노인복지회관 취업훈련을 받았다. 서울시 어르신 취업센터에도 등록을 해서 취업훈련을 받았다.

취업사이트에 이력서를 작성해서 올렸다. 이력서에 자신을 알리는 한 줄 칸에 아빠는 ‘학교생활 16 년 군대생활 21 년 3 개월 동안 지각 한번 안 한 시간을 칼처럼 지키는 사람’

그는 어렸을 때 아빠의 할아버지 나에게 증조부의 회갑 잔치로 결석 한번 해서 개근상을 못 받고 정근 상 받았다고 했다.

우리 남매에게도 학교 지각하면 안 된다고 항상 일찍 등교를 시켰다. 한 가지 웃기는 일은 아빠가 대학시절 연애를 했는데 여자가 10 분 늦었는데 그 10 분을 못 참고 아빠는 메모지에 ‘00 씨 기다리다 갑니다. 우근호’라고 써서 알림판에 붙였다.

그것을 본 00이라는 여학생이 뭔 남자가 그렇게 인내력이 없냐고 10 분도 못 기다리느냐? 고 따지더란다. 여기에 아빠는 여자에게 치명적인 말을 했다. 10 분이면 수원 전투비행단 전투기가 평양 폭격하고도 남을 시간이고 강릉비행단 전투기가 원산을 폭격하고 담배 한 대 물고 있을 시간이라고 했다.

한 줄 자신의 소개가 인사 담당자의 눈에 들었는지 세한통산이라는 곳에서 면접 제의가 왔다. 세한통산에서 경비직으로 가산동에 있는 맥슨전자라는 곳에 경비원으로 취직이 되었다. 24 시간 근무 24 시간 휴무라는 근로기준법에 어긋나는 고용형태지만 아빠는 대퇴부 골절 환자를 고용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24 시간 경비 24 시간 휴무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가고 있다.

걱정을 많이 했다. 군대서 소령에서 중령으로 진급하지 못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굽힐 때는 굽힐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아빠는 그놈의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의(義)’하나 때문에 진급을 못했다.

요즘 한국항공우주산업이라는 회사가 방산비리가 발각되어 검찰의 수사를 받는 중인데, 그는 소령 시절 그 항공우주산업이 만드는 무인항공기의 운용 부대장이었다.

상관은 정품의 부속을 사용하면 하나에 10 만원 하는 것을 B급으로 2-3 만원에 구입해 사용하고 영수증 정리는 정품으로 한 것처럼 해서 차이 나는 돈을 위로 상납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걸 거부하고 무조건 정품으로 사용해서 1 년 배정된 정비예산이 불용액도 없고 차익금도 없게 한 것이 상관에게 유용할 자금을 0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상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지휘관의 인사 평점에 최하 점수를 받고 예비역 소령이 되었다. 술 한 잔만 들어가면 아버지는 양희은 노래 <늙은 군인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이십 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을 흘러간 내 청춘~~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왜 육사를 못 갔느냐

R. O. T. C. 가 무얼 바라느냐

나 태어난 이 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아빠의 자조적인 개사한 늙은 군인의 노래를 수없이 들었다. 아빠가 그토록 진급 못하는 한이 있어도 지키려고 애썼던 ‘의(義)’는 아빠가 졸업한 대방동의 S중학교의 교훈이 ‘의(義)에 살고 의에 죽자’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추첨번호 14번을 받고 들어간 검은 돌 고등학교의 건학이념이 ‘참에 살고 의(義)에 죽자’였다.

아빠는 00 사단 전방연대 정보과장이라 자리를 한시라도 비울 수가 없었다. 거의 휴가 외박은 명목상 인사행정 검열용으로 명령을 내고 실제로는 계속 근무했다. 한마디로 월, 화, 수, 목, 금, 금, 금이었다. 딱 한번 아빠가 외박을 나온 경우가 있다. 내가 대영 초등학교 6학년에서 대영 중학교로 올라가는 첫 번째 학부모 회의에 참석했다. 그리고는 전방에서 우리가 살고 잇는 서울에는 나타나질 않았다. 아빠 대신 엄마가 오빠로 호칭하는 채 대령이 수시로 집 근처에 나타났다. 외할아버지가 채 대령과 언 어떤 사이냐고 물으면 엄마는 천연덕스럽게 가영이 아빠를 진급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분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대영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영 중학교에 진학했다. 영등포역에 있는 교복 판매장으로 갔다. 교복을 입혀놓고 교복 얼짱 콘테스트를 한다고 사진을 찍었다. 내 사진과 다른 여러 명의 학생 사진을 매장 입구에 세워놓고 스티커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붙이게 했다. 실제로는 나에게 스티커가 가장 많이 붙었으나 여의도 고등학교 배순선 언니가 금상을 내가 은상을 받았다. 동상은 여의도 고등학교 최미선이 받았다.

내가 교복 얼짱 콘테스트에 뽑혀 교복 값 26 만원을 내고 50 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금상은 100 동상은 30 만원이었다. 엄마는 기분이 좋다고 백악관 뷔페에 예약을 하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외삼촌 2 명, 이모 2 명, 그리고 채 대령을 초대했다.

모두들 나의 교복 얼짱을 축하해 주었다. 엄마는 기분 내느라 술도 여러 병 시켰다. 그날은 좋게 헤어졌다. 교복 매장에 붙어있는 문화강좌 포스터를 보고 L 백화점 문화강좌에서 최 성현 여사는 사진반에 가입했다. 원래 엄마는 대방여중과 서울여고 시절 사진반 활동을 했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진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나서 엄마가 찍은 사진이 문화강좌 사진반 야외촬영 후 자체 강평에서 최고 좋은 작품에 선정되었다. 그 사건으로 엄마는 육군 소령 우근호의 아내에서 사진작가 최성연으로 변했다.

집안일보다는 여기저기 사진전시회에서 초청이 오고 엄마도 그런 초청을 즐겼다. 더 열심히 찍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도 자랑을 했다. 외가의 친목계 모임에서 외할아버지는 자랑을 했다. 우리 성현이가 이번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사진으로 입상을 했다고. 더구나 연세대학교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어 교사 양성반도 수강을 했다.

전방 00 사단 전방연대 정보과장인 아빠 강 영수 소령의 봉급으로 애 둘의 학비도 빠듯한데 엄마는 아빠에게 생활비 부족하다고 돈을 더 보내라고 요구했다. 아빠는 뭔 소리야 봉급 통장을 당신이 가지고 있는데 돈을 더 보내라면 나보고 봉급 외에 도둑질을 하라는 소리냐? 고 항변했다. 그 후로 전방 근무 중에 휴가가 있어도 아예 서울에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채 대령을 만나러 갈 때마다 승용차에 나를 태우고 나갔다. 나는 짐작했다. 나이가 어리지만 내가 있음으로 채 대령이 엄마에게 어떤 행위를 약간은 방어해 줄 거라는 생각으로 나를 대동했지만 나가서 하는 짓은 그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옆트임 치마를 입었고 채 대령은 그 트인 사이로 손을 넣어 엄마의 은밀한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커서 절대로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드디어 외할아버지가 화가 나서 엄마를 추궁했다.

―미아야, 너 내 딸이니?

―그럼 아빠 딸이지?

―그 채 대령이라는 사람과 너는 어떤 사이냐?

―뭔 어떤 사이야? 강 서방 진급 위해 내가 알고 지내는 오빠지?

―최가 하고 채가하고 어떻게 오빠야?

―왜 아는 사람끼리 친하게 오빠 동생 하는 거 말이야.

―내가 보기엔 네가 채 대령과 어울려 돌아다닌 것이 강 소령 진급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무부대 동향에 올라 마이너스될 것 같구나?

―아버지 정말 왜 그래?

―왜 그래? 채 대령과 너 만남은 오늘로 끝내라!

―아버지? 강 서방 성격 알지요. 너무 순하고 남에게 절대 아쉬운 소리 못하는 성격, 지 밥그릇도 똑바로 못 지키는 바보.

―진급 못하면 사회 나와 딴일 하면 되지 쓸데없이 로비한다고 돈 펑펑 쓰지 말고 절약해 돈 모아 전역시켜라!

―아버지, 그게 자식에게 할 소리예요?

―그럼, 자식이니까 살길을 도모하는 거야.

―소령과 중령은 연봉차이가 얼마인지 아세요? 소령은 45 세 전역하고 중령은 57 세야 중령 봉급 57 세까지 합하면 억이 넘어요.

―그래도 로비해서 진급은 난 반대다. 강 소령 속마음도 네가 치맛바람으로 진급하는 것은 원치 않을 거야.

― 아버지 대위에서 소령 진급도 얼마나 마음고생 했어요? 맨 날 남 뒤치다꺼리나 하는 사람이에요.

― 그럼 네가 채 대령과 어울려 다니면 강 소령 강 중령이 되는 거야?

― 된다는 보장은 몰라도 최대한의 노력은 다 해보는 겁니다. 채 대령이 육본 장군 인맥이 많다고 하니.......

외할아버지도 더 이상 엄마 추궁을 그 이상 하지 않았다. 엄마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령진급에 탈락되어 내가 중 3에서 고1이 되던 해에 전역을 했고 나는 XX 중학교가 있는 영등포구에서 아파트가 있는 금천구로 배정되어 산기슭 고교에 입학했다.

우리 반 35 명 중에 대부분 가산, 한울, 독상, 문성 출신인데 나만 XX 중이었다. 친구들은 XX 중이 어디야? 하는 애도 있고 XX 중이 여길 왜와? 하는 애들도 있었다.

산기슭 고교는 금천구라서 엄마가 신길 5동 외가 근처에서 가산동 두산 아파트로 전입하고 주민등록 등본을 학교 배정 전에 제출해 여기로 배정받게 한 것이다.

우리가 입주한 아파트는 호빵으로 유명한 S 제과 공장을 이전하면서 공장 부지에 아파트를 1400 세대나 지은 대단지 아파트였다. 108 동 401 호가 우리 집인데 엄마가 아빠의 군대 퇴직금을 담보로 5000 만원을 대출받아 103 동 1113 호를 구입했다. 108 동 401 호는 38 평인데 103 동 1113 호는 45 평이었다.

이사하던 날은 축제였다. 아빠는 중령진급이 못된 상태로 만 45세가 되던 20XX 년 5월 31 일 전역을 했다. 문제는 전역을 하면서 5 천만 원문제가 수면 위에 떠올랐다. 엄마가 대출받아 아파트를 구입한 5 천만 원을 갚아야 아버지 퇴직 후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그 5 천을 못 갚으면 퇴직금을 잔액만 일시금으로 받는다고 했다.

결국 5 천만 원을 엄마가 마련 못해 연금 대신 퇴직금 1억 4 천 5백만 원을 받고 아버지의 평생 180 만원 씩 받는 연금은 사라졌다. 아빠의 생각은 연금 180 만원에 사회 나가 최저시급 받으면서 월 120 만 원 이상만 벌면 되겠다고 생각한 아빠에게 엄마는 350 만 원 이상의 돈벌이를 요구했다. 이곳저곳 이력서를 넣다가 안 되자 아빠는 P 생명보험사 설계사가 되었다. 다음 S 생명, 다시 D 생명을 전전하면서 아파트 원리금을 납부하지 못해 경매에 아파트 두 곳이 모두 넘어갔다.

집안의 장롱과 TV, 전축, 엄마의 샤넬 핸드백, 프라다 구두 등 명품에 대해서는 모두 압류 스티커가 부착되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압류를 숨죽이며 눈앞에서 목격했다. 아버지는 도피를 했다. 남부 가정법원에 가서 엄마 아빠의 이혼 재판에 동참을 하고 판결을 봐야 했다. 동생 천명과 나는 두 분이 이혼을 해서 우리가 어디서 살든지 엄마가 재혼을 해서 새아빠가 생기면 우리는 무조건 집을 나가자고 약속을 했다. 채 대령 부인이 우리 안방에 와서 엄마 머리채를 휘저으면서 너 죽고 나죽자고 싸울 때 아빠는 아무 편도 못 들고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아니, 그날로 아예 집을 나가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새벽이면 건설일용직 근로자들이 가는 인력시장에 가서 일을 나가면 한 공수(工手)해서 돈을 벌고 없으면 금빛 공원 근처의 벤치에서 편의점에서 막걸리 한 병과 추억의 꽈배기를 안주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다.

대낮부터 찜질방에 들어가면 거기 매표원이나 청소하는 아줌마가 직업도 없는 놈이라고 무시당한다고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날이 어둑해지면 찜질방으로 들어갔다.

꿈에 가정법원의 재판이 재생되었다.

―피고인 우근호는 아내 최성현을 구타한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없습니다.

―마약을 복용한 적 있습니까?

―아니오.

―알코올 중독자입니까?

―아닙니다.

―두 자녀에게 묻습니다. 먼저 우미아 양, 엄마 아빠 이혼하면 누구와 살고 싶어요?

―엄마요.

―우천명 군은?

―저도요.

―예, 여기 이혼청구서에도 그동안 우근호는 전방에서 군인의 일만 하고 서울 가정은 몇 번 안 온 걸로 봐서 자녀 양육을 최 성현이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는 이혼 후에도 두 자녀 중 막내가 만 20 세 되는 12 월 31 일까지는 양육비를 보내기 바랍니다. 만약 양육비를 고의로 안 보내면 계좌 동결도 가능하니 그 점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때 내가 고 3이고 개구쟁이 천명은 중 2 다.

엄마로부터 아빠가 야무지지 못하고 마음만 여려서 맨 날 남에게 치여서 이 모양 이 꼴로 산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어서 가정법원 판사의 질문에 서슴없이 엄마하고 산다고 대답했다. 내 나이 이제 스물아홉. 금년만 지나면 내 나이도 계란 한 판이다. 솔직히 엄마가 25 세 결혼해서 26 세에 나를 낳았고 스물아홉이면 내 나이 당당한 4 살이다.

동생은 20XX 년 11월 3일 군에 갔다. 내가 고3에서 대학 진학할 무렵 우리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엄마 아빠는 부부지만 형식상 부부고 거의 하루 종일 서로 말 한마디 없이 지냈다. 나는 학교에서 편집부장도 했고, 공부도 상위 1% 안에 들었고, 대외 봉사로 국회의장 상도 받은 경험이 있어 수시로 S 대학교에 합격했다. 하지만 입학금이 없어서 외가에 부탁해도 안 되고 친가는 이미 남보다 더 먼 사이가 된 지 오래였다. 동생 종우는 중 2에서 학업을 포기했다. 나는 대학을 못 가더라도 종우는 대학을 보내려고 나는 고졸 사회 초년병이 되었다. 처음 취직한 곳은 의류회사였다. 동대문 시장에 가서 원단을 시장조사하고 남자직원과 원단을 사 오는 일을 했다. 대졸은 대졸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일을 하고 월급 230 만원을 받을 때 나는 130 만원을 받았다. 그것도 4 대 보험 공제하고 나면 내가 수령하는 금액은 120 만원 정도였다. 돌아다니다 보니 구두가 불편해 운동화를 신었더니 왜 운동화 신고 출근하느냐고 지적을 받았다. 시장조사를 하는데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발이 아파 운동화 신었다고 하니 운동화를 회사에 하나 두고 출퇴근은 정장으로 구두로 하라고 했다. 의류회사를 11 개월 다니고 나니 재계약을 하면 퇴직금을 주어야 한다고 해고를 했다. 나는 11 개월 일하고 백수가 되었다.

두 번째 찾은 직업은 신발회사였다. 회사가 아니라 신발 판매 매장이었다. 여기도 11 개월 일하고 또 해고되었다. 그다음 간 곳은 00 건설 회사였다. 건설회사 경리직원인데 총무를 봐야 했다. 어떤 때는 먹줄 작업하는 공사과장의 조수가 되어 줄자와 먹줄 시작점을 잡아주는 일을 했다. 먹줄 잡아주어 일 빨리 끝났다고 소장이 과장과 일찍 나가라고 했다. 좋다고 나왔는데 그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김포 공사 현장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소장이 벤츠 중고차량을 몰고 와서 타라고 했다. 차는 한강변을 한참 달려 산속의 흑염소, 토종닭을 하는 음식점으로 왔다. 소장과 공사과장, 나, 소장의 애인이라는 조선족 여자가 일행이었다. 소장과 애인이 나란히 앉자 나는 과장 옆에 앉게 되었다. 공사과장은 나이 40 이 넘은 노총각이었다. 토종닭이 나오고 소주 한잔 두 잔 마시자 남자 본색을 드러냈다. 소장이 지 옆에 앉은 애인을 젖가슴을 주무르자 과장도 내 허락도 없이 손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일하러 회사 취직했지 술시중 들러 온 거 아닙니다. 내가 스마트 폰으로 현장 사진을 찍었더라면 고발할 수도 있었는데 그걸로 끝이었다. 건설 현장서 며칠 경험이 돈은 못 받아도 소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안전화가 그렇게 무거운 것인 줄 미처 몰랐다. 그는 그 무거운 안전화를 9 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고 일당벌이를 하면서 우리 남매에게 돈을 보내주었다.

세 번째 찾은 회사는 약품관리 회사였다. 300 여 개 약품 이름과 같은 이름이라도 용량 크기에 따라 박스처리 해서 병원이나 약국으로 납품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내가 일이 아닌 구청 위생과의 검열 나온다고 나보고 검열관 안내를 하라는 것이었다. 말이 안 내지 접대라는 것을 나는 짐작했다. 여기서도 나는 한 달을 못 넘기고 그만두었다.

현재 근무하는 곳은 상표와 저작권 업무를 하는 곳이다. 회사 대표 겸 사장, 부장, 과장, 대표의 여동생 기옥 언니가 대리 나머지 나처럼 평사원은 여자 3 명, 남자 2 명이다. 기옥 언니가 회사일 마치면 가영 씨는 바로 퇴근하지 말고 남으라고 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은사님, 기옥 언니가 오늘 퇴근 말고 남으라는데 왜일까요?

―글쎄, 너 최근 회사 일 잘 못한 거 있거나 곧 1 년이 되어가니 퇴직금 안 주려고 11 개월 차에 해고 통지하는 건지 모르겠다.

―웬 지 좋은 일은 아닌 느낌 임.

―남의 회사서 돈 벌기 쉬운 일 아니다. 하지만 해고되어도 거기 부장, 과장, 대리 보다 네가 경제적 어려움 빼고는 훌륭하고 나이 젊은것이 너의 재산이라 여기고 회사 나와.

―내가 뭐 훌륭해?

―야, 병원침대에 누워있는 이 건희 회장이 누가 제일 부러울 거 같아?

―아하, 건강?

―그래 건강한 청춘은 돈으로 1 조원으로도 살 수 없는 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기옥언니 뭐라 해도 생긋 웃으면서 대해.

―예.

저작권 관련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버지의 짐작대로 나에게 퇴직금 주는 것 아끼느라 11 개월에 나를 해고한 것이다. 다시 백수가 되었다. 고용노동부의 워크 넷, 사람 인, 잡 코리아, 알바 몬 등에 이력서를 다시 작성해 올렸다. 총무사원 한 곳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왜 이 회사를 지원했어요?

―제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원했습니다.

―세금관계 잘 알고 액셀 잘 다루어야 하는데 가능해요?

―예, 제가 이력서에 구질구질 다 기록 안 했는데, 법무사 사무소에도 일했었고, 약품 도매상에서 재고관리도 해서 엑셀 잘 다룹니다.

―만약 우리 회사 합격 후 2 개월 후에 우리 회사보다 월급 20 만원 더 준다는 회사 나타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없는 사람에게 월 20만 원이면 큰돈인데, 20 만원에 회사 바꿀 만큼 천박한 사람은 아닙니다.

―왜 천박해요?

―돈 20 만원에 회사 이동하는 것은 천박한 자본주의 정신입니다.

―20 만원을 너무 우습게 아는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20 만원이면 자장면 40 그릇입니다. 큰돈이지만 어려서 부모님으로부터 돈은 소중하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으로 되는 것이 있고 돈으로 안 되는 것을 구분 잘하라고 교육받고 자랐습니다.

―예, 돌아가시면 합격여부는 내일 문자로 알려드립니다.

다음 날 문자가 왔다. 합격을 축하하며 주민등록 등본, 초본, 사진 1 매, 급여통장 사본을 지참해서 출근하라고 했다. 내가 다니던 저작권 관련 회사를 그만두고 새롭게 총무사원이 된 것은 두 남자 때문이다. 내 나이 29 세에 띠 동갑인 41 세 남자와 사귀고 있다. 그런데 똑같은 띠 동갑 박 영귀 부장이라는 사람이 회사 내에서 노골적으로 내 책상에 꽃도 놓아주고 외근 때는 꼭 동행자를 나를 지명했다. 회사에서 외근이라는 것은 위험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상표위반 저작권 위반을 인터넷에서 걸러낸 것을 실제 시장에서 위반하는 증거를 잡아내는 것이기에 내 얼굴을 알 수 없게 선글라스를 쓰고 모자도 하나 헐렁한 것을 푹 눌러쓰고 가격이 비싸지 않은 것은 현금으로 구매하고 현금 영수증을 받으면서 시간을 끌고 스마트 폰으로 현장 배경을 촬영했다. 그러니 어설프게 하다가 걸리는 날에는 현장에서 욕을 먹고 심한 경우는 멱살을 잡히는 일도 있다. 당신이 단속 경찰이냐? 공무원이냐? 신분증 제시하라고 하면 꼼짝없이 죄송하다고 하고 현장을 빨리 이탈해야 했다. 박 부장이 나를 외근 파트너로 데리고 가는 이유는 외근 단속 증거를 확보하고 나서 수고했다고 저녁 식사를 하고 술도 한잔 하면서 나를 한번 데리고 놀고 싶어 하는 것임을 뻔히 알지만 그놈의 돈 때문에 나는 꾹 참으면서 일했다.

한 번은 단속이 아니라 회사 대 회사의 미팅에 나를 대동했다. 우리 회사에게 많은 일감을 주는 14 K 귀금속제품 회사 사장을 만나는 자리에 동행했다. 그 회사 미팅 룸에서 공식적인 미팅을 마치고 회사 근처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암소 한 마리를 저녁 식사로 하고 소주도 마셨다. 2 차로 노래방을 가자고 했다. 나는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회사일로 여기 회사에 와서 미팅을 하고 저녁을 먹은 것으로 말단 평사원의 책임은 다한 것이다. 나는 퇴근을 하겠다고 퇴근을 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을 하니 대표이사의 얼굴이 표정이 늙은 호박처럼 푸석푸석했다.

―우미아 씨?

―예?

―어제 미팅 잘했어요?

―잘했습니다. 암소 한 마리 사줘서 잘 먹었습니다.

―잘했는데 들어왔던 오더가 취소되었어요?

―아닌데, 미팅에서 분명히 다음 달도 자기들 상표 도용하는 거 계속 추적해서 통보해 달라고 했습니다. 박 부장님도 들었습니다.

―여기 메일을 읽어봐요. 그동안 단속 감사합니다. 회사에 사정이 생겨서 다음 달은 귀사의 의뢰한 것을 취소합니다. 미안합니다. 보여요?

―예, 하지만 낮에 회사에서 미팅할 대는 분명히 거절의사 없었습니다.

―하여튼 박 부장하고 우미아 씨가 미팅 가서 들어왔던 오더를 물거품 만들었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각오하세요.

―책임이라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단속 나가면 내 얼굴 알아보고 나가라고 하는 회사도 있는데, 이 회사 오래 다닐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잘 되었군요. 내일 제 개인사물 다 빼겠습니다. 이번 달 월급 오늘 근무까지만 시급으로 정산해 주세요.

여자 직원을 노래방 도우미로 착각하는 일부 남자들 때문에 회사를 1 년 이상 다니기 힘들었다. 회사에서 교묘하게 퇴직금을 나 주려고 11 개월 부려먹고 12 개월 차에 해고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내가 노래방 도우미가 싫어서 그만둔 경우도 있었다.

사귀는 남자 김인환은 나와 디 동갑이었다. 인환 씨는 나에게 회사의 박 부장을 어떻게 알고 박 부장 조심하라고 했다. 김 인환을 처음 만난 곳은 여의도 KBS 방송국 근처의 무지개 스튜디오다. 당시 나는 주식회사 한복나라에서 주최하는 한복 홍보대사 선발에 출전했다. 내가 다니던 연기 학원에서 3 명이 한복 홍보대사에 출전했다. 그대 김 인환은 공익 광고 촬영감독이었다. 우리 연기 학원에서 남녀 2 명이 여의도 무지개 스튜디오서 촬영을 했다. 나는 감독이 하라는 대로 남자와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김 인환은 촬영을 했다. 촬영을 마치고 나 혼자 갈 수가 없어 다른 사람들 촬영이 끝날 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조감독이 메모를 가지고 나에게 왔다.

―우미아 씨 감독님이 보자고 합니다.

―예?

메모를 들고 감독에게 갔다.

―감독님 찾으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강 하영입니다.

―반가워요 우미아 양!

―무슨 일이신지요?

―무슨 일은 아니고 저녁시간 되었으니 식사나 하자고 불렀어요.

―예. 감사합니다.

여의도 ‘일송정’이라는 한식집은 방과 방 사이에 파티션 작업을 해서 방에서 식사하는 일행이 다른 일행을 볼 수 없게 꾸몄다. 김인환 감독과 나는 맥주와 소주를 시켜서 소맥을 만들었다. 김인환 감독과 초면인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이었다. 자세히 보니 개구쟁이 내 동생 천명 얼굴이 비슷했다. 앞니가 토끼 이빨처럼 넓적한 것도 비슷했다.

―미아 씨, 촬영 처음이죠?

―예, 그렇습니다.

―처음 치고는 너무 차분하게 앵글에 비치는데, 얼굴이 자연 미인이더군요.

―예, 저는 쌍꺼풀도 아빠, 엄마 두 분 다 쌍꺼풀이라 자연산입니다.

―예, 요즘은 성형수술 안 한 사람 찾기가 힘들어요.

―정말 미아 양은 그 몸 그대로 자연으로 유지 잘해요.

―예, 감사합니다.

―자, 식사합시다.

―예, 감사히 먹겠습니다.

―훌륭한 촬영을 위해 축배 한잔 소맥으로 합시다.

―예.

―우미아 양 좋은 촬영을 위하여!

―위하여!

소맥 한잔을 하고 밥을 먹다가 중간에 예고 없이 허리를 끌어안았다. 비명소리도 지를 수 없었고 숨만 할딱할딱 쉬었다. 이어 네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개더니 내 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내 젖꼭지를 만지작거렸고 내 꼭지는 탱탱해졌다.

식당을 나가 바로 여의도 한강이 잘 보이는 모델의 반 하나를 잡았다. 첫 만남에서 그는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갔다. 아니, 내가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했어도 첫 만남인데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고, 끌리는 이 남자 뭐지? 내 나이 이제 서른 여자나이 계란 한 판 서른이다. 엄마에게 넌 어떻게 된 애가 이 나이 되도록 남자 하나 변변히 만나는 일 없냐? 핀잔의 소리를 들었는데, 이 남자 나에게 청혼을 해 오면 엄마에게 인사시켜야지. 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천명은 20XX 년 11 월 3 일 입대하여 20XX 년 8 월 2 일 전역했다. 남들 다 가는 군대 뭐 동생 군대 이야기냐? 하는 사란도 있겠지만 아버지 직업이 군인이라 나나 종우나 어린 시절을 군인 아파트, 군대 관사에서 보냈기에 우리는 엄마 아빠라는 단아 다음으로 배운 말이 충성!이다.

군인 아저씨들이 아침마다 구보를 하고 군가를 부르고 우리 집에 오면 아빠에게 충성! 하면 아빠도 충성! 하거나 손만 올렸다. 가끔 장관 후보자 국회 청문회에서 군대 미필이거나 꽃보직 이동 등의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아빠는 저런 놈을 공직에 그것도 장관에 앉힐 만큼 이 놈의 나라에는 그렇게 인물이 없냐? 한탄했다.

가수 유승준처럼 병역 기피 목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사람은 영원히 한국 입국을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천명은 과체중이다, 키는 185 cm인데, 몸무게가 100 kg이었다. 00 사단신병교육대에 11 월 3일 입소하고 군의관이 체중초과니 귀향 조치한다고 하자 군의관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흐리면서 신병교육 기간에 체중 줄여 현역 규정에 맞게 하겠다고 그때도 체중이 안 줄면 귀향하겠다고 해서 신병 훈련을 받았다.

신병 훈련 600 여 명 중에 사격 훈련에 20 발 명중한 사람은 5 명인데, 그중 한 명이 종우였다. 초등학교 시절 한국교육에 맞지 않는 아이라는 소리 들었는데 그 거구가 사격 만점이라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지만 사실이었다. 그 증거가 신병교육 수료식에 가니 엄마와 나에게 신병교육 우수수료 표창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표창장이 근거가 되어 표상휴가를 이등병 때 나왔다. 종우는 주특기 통신을 받았다. 00사단 포병연대 낙석대대 본부중대 통신병이었다. 제주도에서 건설일용직으로 일하는 아버지에게 종우가 메신저로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 예비역 소령인데 군대 오니 소령이 높은 계급인 줄 알게 되었어요.

―이병이 보면 높지만 예비역 소령들 대부분은 불만이 많다.

―주특기 통신입니다.

―통신이면 자대 가면 무조건 시간 날 때 음어 미리 외워라. 음어 못 외우면 고역이다.

―음어 아무나 볼 수 없어요.

―그러니까 상황 근무 때 장교에게 부탁해 한부 꺼내서 상황을 보면서 음어 써 보고 외우고 음어 쓴 종이는 반드시 세 절하 거나 태워 흔적을 없게 해.

―예, 잘 알겠어요.

아버지 조언대로 이등병 시절에 음어를 외웠다. 이등병에서 일병이 될 무렵 사단 음어대회가 개최되었다. 사단 음어 대회에 낙석부대에 대표로 이등병 우천명이 뽑혀 사단 대회에 갔다. 다들 병장이거나 상병이 수두룩한 상태에서 이등병이 당당하게 1 등을 했다. 사단 창설 이래 이등병이 음어대회 1 등은 처음이라고 사단장이 표창수여는 직접 수여했다. 또한 우수자 금, 은, 동상 수상자는 점심시간에 사단장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는 영광을 얻었다. 부상으로 시계를 받았다. 휴가 나와서 엄마와 누나에게 시계 자랑을 했다.

―엄마 이게 사단 음어대회 1 등 해서 받은 부상이야.

―어머나, 어떻게 음어 이등병이 1 등 했어?

―건설현장 일하는 아버지에게 메시지로 코치를 받았지.

―어떻게?

―처음 통신병이라고 문자 보내니 미리 음어 외우라고 해서 상황 근무 때 상황장교에게 부탁해 음어 꺼내 연습해 음어 외우고 다 외웠다고 문자 보내니 그럼 아버지, 어머니 음어로 보내봐 하시더군.

―그다음은?

―애국가를 음어로 보내라고 하셔서 그건 어렵다고 하니 음어 조립 분야 해역 분야 다 외우고 나면 군가를 음어로 써보라고 하시더군. 군가를 백지에 음어로 썼어.

―그래서?

―음어로 군가 6 곡을 음어로 쓸 수 있어요 했더니 네가 쓴 음어를 네 토막 내서 토막토막 한글로 고쳐봐 하시더군.

―그랬더니?

―애국가 1 절부터 4 절까지 음어로 해보라고 해서 그것도 연습해서 해봤다고 했어.

―그다음은?

―마지막 난코스라고 하면서 괄호 ( ), < > &, *, $ 특수 문자와 역괄호 ) (

> <, 단어도 아닌 말 문장이 이어지다 끊어진 말을 연습해 보라고.

―그다음은?

―그 정도면 입상은 한다. 1 등을 하려면 실력이 아니라 강심장이 필용해 하면서, 강심장이란 내가 외운 실력에 대한 믿음이야. 사단대회 선수쯤 되면 각자 부대서는 다 한가락하는데 사단 대회 나오면 떨려 아는 음어도 맞았는지 손가락으로 짚어가면서 답을 쓴다. 넌 손가락 일체 사용 한하고 답 쓰면 1 등을 한다고 하시더군.

―그다음은?

―더 연습할 거 없어요? 했더니 국방일보에 난 대통령 연설문이나 음어로 연습해 봐. 통으로 다하진 말고 100 단어 씩 끊어서 해봐.

아빠의 문자 조언을 그대로 연습했다. 사단 음어대회에 정말 국방일보 대통령 연설문 연습을 한 것이 효과만점이었다. 음어 시험에 김정은, 핵 포기, THAAD, 평화통일, 남북의 공동발전, 대륙간탄도미사일, 잠수함 등등 연습한 것이 음어시험 절반이나 출제되었다.

그는 속으로 좋아한다는 것이 하마터면 아 싸! 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사단 음어대회에서 1 등은 낙석부대 창설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부대장과 주임원사 대대 전 장병의 축하를 받았다. 아울러 부대에서 부대장을 포함한 간부들이 종우를 부사관 지원하게 아니 지원을 강요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엄마도, 혼자 사시는 아빠도 나도 천명을 부사관을 해서 군대에 머물게 하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결국 부사관 권유를 거절하고 병장으로 만기 전역의 길을 택했다. 5일간의 포상휴가를 나왔다. 일병, 상병, 병장을 달고 20XX 년 8원 2일 전역을 20 여일 앞두고 마지막 휴가를 나왔다.

―누나? 나 휴가 나왔다.

―어서 와 동생!

―누나, 군대 부사관 지원 안 하길 천만다행이야.

―왜?

―나 이번 휴가 마치고 복귀하면 징계위원회 회부할 거래.

―왜?

―나보다 한 달 선임병이 있었어. 그런데, 전역하기 전에 전역 빵을 한다고 나보다 후임들이 모포를 뒤집어씌우고 때렸거든. 그걸 전역해서 부모들이 국가인권위원회와 청와대 민원실로 민원을 올린 거야. 사단 헌병대서 실사조사 나오고 조사결과에 내 후임 병 가담자는 바로 헌병대 구속이고 나는 자대 징계할 것 지시 내려왔어.

―아니 네가 왜?

―최고선임으로 방조 죄래.

―그래서 아빠가 군대는 내 잘못으로 처벌받는 경우보다 다른 사람 잘못으로 처벌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나 봐?

―군대 가기 전에는 아빠 말을 이해 못 했는데, 가끔씩 던진 아빠 말이 군대서는 진리야.”

―그래서 아빠가 너 부사관 지원을 말했을 때 반대하신 거지.

―난 군대서 철이 들었는지 전역할 때 군대 충성마트에서 통신소대장 명의 빌어 양주 한 병 사가려고.

―술은 왜?

―아빠 맨 싸구려 소주, 막걸리만 마시는데, 아주 고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급의 술 한번 마시게 하려고. 군대 가서 느낀 건데 우리 가정법원에서 엄마 아빠 이혼하면 누구랑 살고 싶냐? 판사가 물은 거 기억나?

―너랑 나랑 모두 엄마하고 살고 싶다고 했지?

―그거 잘한 말일까?

―잘하고 못하고 가 어디 있어? 우리는 어렸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한 건데. 그게 왜?

―요즘, 아니 군대 입대하고 훈련받는 기간에 우리가 가정법원 간 일이 꿈에 나타났어. 가정법원 판사가 엄마 아빠 이혼하면 누구와 살고 싶어요? 하는 질문에 누나는 엄마, 나는 아빠라고 대답했어.

―그건 네가 아빠 그리워하는 생각이 꿈에 그렇게 나타난 거야.

―나 전역하는 날 아빠 근무 마치고 쉬는 날 택해 우리 집에서 수산시장에서 횟감 사다가 회와 매운탕으로 오랜만에 4 명이 식사했으면 좋겠다.

―아빠가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하면 오시겠어? 차라리 밖에 음식점서 먹자고 하지?

―그래, 나도 그게 걱정이야. 아빠가 이혼당하고 엄마랑 다시 마주 앉아 식사하자면 오실까. 안 오시면 따로 엄마랑 전역 축하 식사하고 날 잡아 밖에서 아빠랑 식사해야지 뭐.

―어머, 내 동생 개구쟁이가 어른 다 되었네?

―그럼, 나도 이제 8월 2일이면 예비역 병장 강 종우다.

―정말 군대가 사람 철이 들게 한다더니 널 보니 그 말은 맞는 거 같다.

―뭔 소리야? 난 군대 가기 전에도 철이 들었어.

8 월 2 일 낙석부대 우천명 외 3 명의 병장들은 대대장 신고를 마치고 문산 역에서 양평까지 가는 경의 중앙선 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종우는 용산 내려 파란색 506번 시내버스를 타고 신림동 집에 도착했다.

의무복무 군대생활도 지겨워 죽겠는데 아버지는 21 년을 아버지는 어떻게 참고 지내셨나? 아버지의 인내심을 존경한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엄마 함경희 여사는 양재동의 모 한의원에 간호조무사로 출근했고, 나는 취직 상담을 하러 고용노동부 관악지사에 왔다. 텅 빈 집에 천명은 무거운 군화를 벗어 검은 비닐에 넣어서 신발장 맨 위에 놓았다. 올해는 전역 1년 차라 동원이 면제되니 내년 동원예비군 훈련통지서 올 때까지는 군화 신을 일이 없다. 군복과 러닝 팬티를 세탁기에 넣고 전원 버튼 누르고 잠시 후 동작 버튼을 눌렀다.

윙 철썩하는 세탁기 소리를 들으면서 방청소를 했다. 그러고 보니 누나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빨래 한번 안 하던 녀석이 제대하고 자기 군복과 속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세탁기 돌아가는 시간에 방청소를 한다는 것은 그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가 텅 비어 있고, 밥은 언제 해 먹었었는지 밥솥에 밥이 누렇게 굳어 있었다. 일단 밥솥을 꺼내 개수대에서 물을 가득 받아 밥알을 물에 불게 했다. 청소를 마치고 세이브 마트에 가서 라면과 반찬거리 몇 종류를 샀다. 엄마가 퇴근하기 전에 밥을 하고 반찬도 준비했다. 나도 고용노동부 관악지사서 상담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엄마도 한의원서 퇴근을 했다.

―천명, 전역 축하해.

―아들, 전역 축하해.

―누나, 아빠는 오신다고 했어?

―전화하니 아빠 근무 마치는 시간에 근무교대 들어오는 아저씨가 장염으로 병원을 가서 오늘이 아빠 근무일이 아닌데 계속 근무 서는 중이래.

―그럼, 아들 전역하는 날 술 한잔 약속 못 지키는 거네?

―아니야, 장염 치료하면 바로 근무 교대 해주고 아빠 오실 거야.

―누나, 그런데 24 시간 근무 24 시간 휴무 노동법 위반 아냐?

―엄격히 말하면 8 시간 근로규정 위반이지, 경비직 3 교대하면 인건비 너무 나간다고 24 시간 맞교대로 뽑고 경비들은 약자니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그냥 근무를 하는 거야.

―오늘은 엄마, 나랑 누나 셋이서 내 전역 축하주 마시고 아빠 쉬는 날 다시 하지 뭐.

―그래. 그렇게 하자. 엄마, 뭐 해? 아들 전역 축하 한 말씀해야지?

―자, 잔을 들어주세요. 아버지가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사정상 못 오는 양반은 빼고 우리끼리 우근호 전역을 위하여!

―위하여!

―우리는 4 식구 밥 한번 먹기 정말 힘드네!

―다 운명이라고 생각해.

―아쭈구리~~ 군대 제대했다고 어른스럽게 말하는데.

―누나 원래 내가 좀 생각이 깊고 항상 파닥거리며 앙앙거렸어.

―야, 너 기억나니 가납 초등학교 금붕어 사건?

―기억나지, 아이 끔찍해.

―엄마 학교 불려 가서 담임에게 천명은 한국교육제도에 맞자 않는 아이 소리 들었지?

―아이 지금 생각해도 끔찍해. 담임 송미정 선생 얼마나 독종인지 우리 초등학생을 완전 군인 다루듯 선착순 시키고 오리걸음까지 시켰어.

―너 그런 거 초등학교서 마스터해서 군대 신병교육 잘 받은 거 아녀? 선생님께 고맙다고 해야겠다.

―누나 군대 한 번은 의무니 가지 두 번 가라고 하면 유승준처럼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천명아, 너 말년에 영창을 간다는 소리 듣고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영창 안 가고 전역한 것은 고맙지만 나는 낙석부대 불 질러버리고 싶다니까.

왜?

―내가 그 부대에 기여한 것이 얼마인데, 선임 제대한다고 후임들이 모포 씌워 놓고 몇 대 두들긴 것이 뭐 그리 큰 죄라고 나를 영창을 보내려고 해?

―군대 규정이 그러니 그렇지?

―규정? 계급 높은 인간들이 규정을 더 어겨, 봐봐 국방부 장관 후보자도 중령시절 음주운전 무마하고 대장까지 진급하고 국방장관 한다고 나왔지? 지들이 더 규율 어기고 아랫놈들만 잡는 게 군대야.

―야 다 잊고 이제 전역했으니 사회생활 잘해.

―그래, 이 좋은 날 좋은 말만 하자. 아들 전역 축하한다. 위하여!

―위하여!

엄마, 천명, 나 셋이 건배를 몇 번 외치고 나니 문밖에서 가영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대문에 나가니 아빠였다. 대퇴부 골절로 다리를 쩔뚝거리면서 양손에 물건을 들고 오신 것이다. 미리 전화를 했다면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 나가는데 전화도 없이 바로 오신 것이다.

―천명아, 엄마 아빠 오셨어!

―아버지 전역인사 드려요.

―그래, 군대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

―뭐 똑같이 하는 건데요?

―말년에 영창가게 되었다고 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이때 엄마가 끼어들었다.

―우근호 씨 인사나 합시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냈소? 함경희!

―나 이제 함경희 아니거든요, 함예은?

―하 암 예은

―함경희라는 이름이 여자 이름으로 너무 무거워서 내가 힘들게 살아온 거래요. 이제 예은으로 바꾸어 잘 풀린다고 해요. 미아도 미정으로 개명했어요. 곧 결정 나면 모든 통장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다 미영으로 할 겁니다.

―그래, 이름 중요하지.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심성이야.

―엄마, 아빠 오늘은 전역 축하하는 날이니까 천명을 주목해 주세요.

―그래, 아들 군대생활 얼마나 힘들었니?

―군대생활 힘든 것은 다 같이 겪는 거라 참을 만했지만 마지막 전역 직전의 징계위원회 회부는 정말 분했어요.

―징계위원들이 뭐라고 하든?

―방관자라고 영창 5 일 결정을 대대장이 결재과정에서 근신으로 경감시켜 주었어요.

― 야, 종우야 너 내 아들이지만 너무 한다. 너는 잘못이 없고 부대 간부들이 멍청하다고 하는데, 내가 행정보급관에게 전화통화 할 때는 대대장은 이미 너를 8월 2일 전역하는데 문제없게 하려고 마음을 굳혔는데 네가 엄마에게 아빠에게 메신저를 날려 문제가 커진 거래.

―엄만 행정보급관 말을 믿어?

―믿지?

― 부대 간부 놈들은 훈련 때 컵라면이 아니라 봉지라면 안 먹은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지들은 몰래 배낭에 버너 준비해서 라면 끓여 먹고 나는 충성마트서 컵라면 먹은 것도 문제 삼고 그게 규정준수야?

―너 라면뿐만 아니라 휴가 나와서 독립기념관 다녀온다고 휴가 더 쓰고 독립기념관도 안 갔다고 하더라.

―갔어!

―간 건 병장 때 간 거고 그전 상병 때 안 갔다고 하더라.

―나참, 독립기념관 갔는데, 차가 막혀 도착하니 개방시간 끝나서 천안까지 전철 영수증, 천안에서 독립기념관 버스 영수증 그날 거 냈으면 된 거지 뭐가 문제야?

―독립기념관 안에 들어가야 간 거지?

―그럼 나보고 다음 날 독립기념관 구경하고 휴가 복귀 하루 늦게 하라고?

―아니, 시간 활용 잘해서 문을 닫기 전에 독립기념관 갔어야지 하는 소리야.

―정말 너무 하네! 에이 씨 내가 이래서 군대 전역 안 하고 말뚝이나 박는 건데.......

―천명, 넌 병장도 힘들게 전역한 놈이 무슨 말뚝이야?

천명 8 월 2 일 전역인데 7 월 26 일 대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징계위원장은 부대대장 문 상옥 소령이고 위원들은 대대의 상사, 원사들 5 명으로 구성했다. 표결결과 영창 5 일로 결정이 났다.

―비행인 병장 우천명 선임인 배철수 병장의 전역을 앞두고 후임 병사들이 배 병장을 모포로 씌우고 무차별 폭행을 묵인했지요?

―예.

―비행인은 복도로 나가 대기하기 바랍니다. 위원들은 무기명 징계 형량을 기입하여 함에 넣기 바랍니다.

―징계 결과는 영창 5일이 최다 득표로 결정되었습니다.

엄마와 동생의 말다툼에 아버지가 끼어들어 중재를 했다.

―됐다. 천명 병장 전역했으면 되었고 더 이상 군대 징계위원회 말은 하지 말거라. 군대는 군대야. 한번 다녀왔으면 끝나는 거야. 이제는 사회에서 제대로 취직하고 의, 식, 주 해결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난 이만 가겠다. 잘 있어.

아버지는 성급히 자리를 떴다. 대문을 쾅! 닫고 나갔다.

10년 전에 남부가정법원에서 어쩔 수 없이 엄마 아빠 이혼하는 자리에서 엄마를 선택해서 아버지와 떨어져 살아온 아쉬움을 달래보고자 아빠를 동생 전역을 빌미로 오게 한 것인데 아버지의 정을 느끼기 전에 아빠는 떠났다. 이혼 이후의 살아온 이야기를 남매는 조곤조곤 말해보자고 했던 소박한 희망사항은 그렇게 끝이 났다. 떠나는 아버지 뒷모습에 시나브로 눈물이 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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