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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문학의 시원지를 찾아서

032. 김시습기념관

by 바이크 타는 집사

<김시습 문학관>

- https://visitgangneung.net/pub/ruins.do?mode=v&seq=184

관람시간: 09:00~18:00(점심시간: 12:00~13: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화요일, 명절 당일
문의전화: 033) 644-4600





여름 휴가철이 지나고 더위가 좀 누그러지면 강릉 지역의 문학관을 둘러볼 계획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 휴가는 문학관 투어 같이 가자는 아내의 제안에 코스를 짜고 라이딩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무더위 속 강원도로 떠났다. 7월 22일부터 시작된 5일간의 바이크 투어는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정말 더웠다. 연일 최고기온 34도를 기록하고, 바이크의 엔진 열은(둘 다 공랭식 엔진이다) 사정없이 올라오고...


단순히 바이크 여행을 떠난 거라면, 적당히 달리고 너무 더운 낮에는 쉬고 했겠지만 문학관을 정해두고 경로를 따라 움직여야 해서 한낮에도 달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다음 숙소와 다음 문학관, 또 다음 문학관과 다음 숙소를 옮겨 다니며 하루에 6시간 이상을 달렸던 것 같다.


결국 좀 더 여유 있게 쉬어가며 다니기 위해 일정을 조금 조정했다. 서울 경기권 투어 올라갈 때 들를 수 있을 만한 문학관 두어 곳은 남겨 두었고, 강원도의 라이딩 코스들도 몇 군데를 빼고 나니 조금 더 여유롭게 쉬어가며 다녀올 수 있었지만, 그래도 견딜 수 없이 더웠다.


어쨌든, 무더위 속에 문학관을 다녀왔고 강원도를 원 없이 달렸다. 강원도 투어의 첫 번째 문학관이 매월당 김시습 기념관이다.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서른두 번째, 매월당김시습 기념관이다.


여기는 정말 기념관이다. 문학관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다. 강릉 경포도립공원(경포해수욕장)과 오죽헌 사이에 있다. 어쨌든 관광지에 세워진 작은 기념관으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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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은 1453년(세종 17년)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났다. 본관이 강릉이라 아마도 강릉에 기념관이 있는 듯하다. 그는 신라 무열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당시 한양에서 유명한 신동이었다고 한다.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태어난 지 여덟 달만에 글을 읽었다고 한다. 세 살에 한시를 배워 짓기 시작하며 신동이라는 소문이 퍼져 그 소문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70세의 노정승이 어린 김시습을 찾아와 그의 실력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섯 살에는 세종이 어린 김시습을 불러 승정원에서 시험을 보게 하였다고도 한다. 장차 크게 될 재목이라며 세종이 선물을 내렸다고 하여 '오세(다섯 살)'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단종이 즉위한 후 과거를 보았으나 낙방하고, 절에 들어가 과거공부에 매진하던 중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폐위되자 충격을 받아 방문을 걸어 잠그고 사흘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가지고 있던 모든 책을 불태우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그후 사육신으로 불리는 성삼문, 박팽년 등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발각되어 사형에 처해졌으나 세조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을 때, 김시습이 나서 그들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벼슬에 한 번도 오르지 않았으나 섬기던 임금에 대한 , 옳고 그름을 알고 옳음을 행하는 그에게서 강직한 선비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살았던 김시습을 우리는 그를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꼽는다.


유배가 있던 단종이 사육신 사건으로 인해 결국 죽임을 당하였고, 단종의 제사를 지낸 김시습은 승려 차림으로 유랑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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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전시가 시작되는데, 김시습의 서적과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관련 유물이나 필사본, 김시습이 즐겨 보았다던 서적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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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기념관은 크게 네 개의 방(한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인물소개', '이생규장전 포토존', '금오신화 애니메이션', '유물전시관'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김시습과 금오신화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담고 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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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인물소개는 여섯 개의 연표로 끝이다. 깨알 같은 글씨의 연표만으로 인물 소개를 끝내기에는 김시습의 삶이 너무 아깝다. 앞서 소개한 김시습의 일화만 해도 '신동'으로 소문나 세종에게 비단을 선물 받은 내용,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한 내용, 단종 폐위 이후 유랑에 나섰던 내용 등 주목할 만한 일화들이 있다. 일일이 일화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모친을 여읜 후 힘겹게 지낸 유년시절에 대한 내용도 있고 불교에 심취하여 출가하기도 했던 일화들도 있다. 그런 일화들을 그림이나 혹은 그런 일화들이 적혀 있는 서적 등과 함께 전시를 꾸민다면 방문객들이 김시습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시습은 무엇보다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금오신화는 경주에 있는 금오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계유정난 이후 김시습이 금오산에 있는 용장사에서 은거하며 지었다고 전해진다. 금오신화는 소설집으로 현재 원본은 전하지 않고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용궁부연록', '남염부주지'. 이 다섯 편이 전한다.


그중 '이생규장전'이 유명하다.


이생이 길을 가다 담장 너머로 최랑이라는 여인을 보게 되는데 그래서 '이생이 담장을 엿보다'하여 제목이 '이생규장전'이다.그렇게 둘은 담장 너머로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가다 부모의 허락을 받아 결혼하게 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중, 홍건적의 난으로 최랑이 죽게 되었는데 최랑이 귀신으로 나타나 이생과 사랑을 나누게 된다. 최랑은 자신이 이승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때가 되지 자신의 유골을 거두어 달라고 부탁하고 사라진다. 이 생은 최랑의 유골을 수습해 제사를 지내고, 최랑을 그리워하다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사랑을 다룬 소설을 명혼 소설이라고 하는데, 금오신화 다섯 편 중에서 '이생규장전'과 함께 '취유부벽정기'가 명혼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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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혼소설인 이생규장전은 '죽음을 초월한 애절한 사랑'을 다룬 소설일 뿐 아니라, 이 작품을 우의적으로 접근하여 홍건적의 난을 계유정난으로, 죽은 최랑을 단종 혹은 사육신으로 해석할 수 있어 다양한 상징성을 가진 작품으로도 평가 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생규장전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이생규장전에 대한 설명이 없다. 포토존은 있으나 이생규장전이 정작 어떤 내용이고 왜 선녀 옷을 입은 여인선비가 함께 있는지 설명이 없었다.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포토존이 있으나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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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한시로도 유명하다. 방랑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들을 한시로도 적었는데, 후대에 그의 작품을 엮어 '매월당집'으로 세상에 나오기도 했다. 그런 그의 한시들이 액자로 전시되어 있는데, 쉽게 읽히지 않았다. 아쉬움 투성이다. 한자만 크게 되어 있어 한문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무슨 말인지 읽을 수도 없었고, 한글 해석은 작은 글씨로 되어 있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야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금오신화 애니메이션이 있다고 하는데 기억에 남아 있질 않다. 역시 금오신화에 대한 설명도 없다. 아마 영상이 나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유물전시관은 김시습과 관련된 책들이나 문서인데, 대부분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다. 매월당이 좋아했다던 시집도 있고, 뭔가를 많이 가져다 놓았는데 연관성을 찾기 힘든 것들이 많았다. 무슨 의미가 있는 책인지 모르겠지만 '선비들의 이름을 실어 놓은 책', 동방도통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10m에 달하는 동방도통 인물을 설명한 필사축'이라는 유물도 있었다. 설명이 없으니 이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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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의 '매월당집 1927년, 동활자본'(좌), '10m에 달하는 동방도통 인물을 설명한 필사축(우)'


김시습의 시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매월당집'을 디지털화해서 화면을 넘겨가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코너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매월당집도 워낙에 중요한 서책이라 디지털화해서 볼 수 있게 한 점을 상당히 좋았던것 같다. 하지만 매월당집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설명이 역시 없다. 그냥 그가 쓴 책이려니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검색해 보니 이는 김시습이 남긴 시와 산문을 모아 엮은 책인데 유고 문집 같은 것이었다. 김시습이 죽고 난 후, 중종의 명에 따라 그의 작품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10년에 걸쳐 3권을 수집하였고 하며, 당시에는 김시습의 친필을 찾아서 모았다고 한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수집을 하였고 선조 16년에 '매월당집'이 간행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왕이 직접 명하여 그의 작품을 엮으라고 한 것만 보아도 그의 글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 매월당집에 대한 설명은 적어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김시습 기념관'에서 가장 의미 있게 보았던 전시가 '매월당 친필 글씨' 액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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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관광지 한쪽에 구색 맞춰 세워 놓은 기념관 느낌이었다. 크게 실망했고, 강원도의 첫 문학관 투어였는데 아쉬웠다. 날씨가 덥고 거리가 멀어 창원에서 삼척까지 올라가 삼척에서 1박 하고 이튿날부터 투어를 시작했다. 이날 아침 8시 조금 넘어 출발했다. 출발할 때부터 27도였다. 더위를 뚫고 하루 종일 달리고, 하루를 넘겨 쉬고 아침부터 달려 도착한 곳이었다. 시간을 내서 '김시습 기념관'을 위해 먼 길 온 관람객 입장에서는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김시습은 '방랑자', '시대의 천재' 단종에 대한 절개를 끝까지 지킨 '생육신의 한 사람', 금오신화라는 '최초의 한문소설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소설 뿐 아니라 한시, 산문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깨알 같이 정리한 6칸의 '연표'를 제외하면 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조금 더 관람객의 입장에서 김시습과 금오신화를 알리기 위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한 줄 느낌

- 관람객의 입장에서 어떻게 김시습과 금오신화를 잘 알릴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한 줄 평

- 유명 관광지 내에 차려진 작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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