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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030. 구상문학관

by 바이크 타는 집사

<구상문학관>

- https://www.chilgok.go.kr/portal/contents.do?mId=0806010000

관람시간: 09:00~18:00 (토: 09:00~17:00 / 일: 10:00~18: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법정공휴일
문의전화: 054) 979-6447


#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구상 문학관 라이딩 영상

https://youtu.be/M1QbHRyVcAE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서른 번째, 구상 문학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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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째 문학관. 그런데 사실 문학관 탐방기 연재로는 서른 번째이지만, 방문한 문학관 순서로는 서른다섯 번째다. 지금까지 방문한 문학관 중 방문기를 쓰지 않은 문학관은 다섯 개 있다.


경남 진주에 있는 한국시조문학관, 대구의 한국수필문학관, 충북 영동의 농민문학기념관, 전남 해남의 땅끝순례문학관, 경북 안동의 김연대문학관이다.


이 중 한국시조문학관, 농민문학기념관은 방문할 수 없어서 탐방기를 쓸 수 없다. 이 문학관들은 문학관으로 등록은 되어 있지만 개인이 관리하고 외부에 관람을 받지 않는 듯하다. 농민문학관은 문이 잠겨 있어 아예 운영하지 않는 듯하고, 한국시조문학관은 관리인을 만났는데 관람을 할 수 있는 문학관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땅끝순례문학관'은 문학관 내부 수리 중이라 문학관 입구까지 가서는 돌아와야 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방문해 탐방기를 남길 예정이다.


대구의 '한국수필문학관'은 개인이 설립한 문학관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데, 관람을 위한 문학관은 아니고, 한국수필문학을 수집하고 자료를 연구하고 집대성하는 공간, 수필 작가들을 지원하고 작가들의 소통을 위한 공간이어서 관람하기는 적절치 않은 듯하다.


반면 안동의 '김연대문학관'은 시인의 자택의 정원 한편에 작은 개인 문학관을 지어 각종 작품과 일기, 개인 물품 등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여러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이런 소규모 개인 전시관처럼 운영되는 문학관이 또 있을지 모르겠지만, 좀 더 문학관을 다녀본 후 나중에 별도로 탐방기를 정리하려고 한다.




구상문학관은 칠곡 왜관에 위치해 있다. 구상 시인은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전쟁 이후 1953년부터 20여 년 왜관에 정착해서 왕성한 문학활동을 했다고 한다. 2002년에 칠곡군에서 구상 문학관을 개관했다고 하는데, 시인이 2004년에 작고하셨으니 생전에 문학관을 개관했는 걸 알 수 있다.


시인 '구상'하면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초토의 시, 구상'하면 아마 모두가 알지 않을까 싶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고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면
가로막히고
무인공산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의 무덤 앞에
목 노아 버린다.

- 구상, <초토의 시 : 적군 묘지 앞에서>


우리 전후 문학의 대표시로 꼽는 작품이다. 고등학교 때 한국 문학사를 배우면 전후문학에서 늘 거론되는 작품이 '초토의 시'다.


구상문학관은 낙동강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위치해 있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요즘 유명한 '가실성당'이 있고 그 아래로 배롱나무가 유명한 '하목정'이 있어 종종 라이딩 가는 곳이이다. 구상 시인은 '강의 시인'으로 불릴 정도로 '강' 연작시를 많이 발표했는데, 강은 구상 시의 원천이라고 한다.


IMG_8007.jpeg 문학관 마당 낙동강 쪽으로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리스도 폴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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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은 20년의 세월이 느껴졌지만,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다. 문학관 'ㄷ자'형태로 되어 있다. 'ㄷ자' 가운데는 넓은 데크가 깔려 있고 안쪽 끝에는 작은 정원이 있어 바깥 풍경이 좋았다. 로비에 들어서면 왼쪽은 북카페와 사무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바로 직진하면서 나머지 'ㄷ'에서 하나가 빠진 'ㄴ자' 형태로 전시실이 구성되어 있다. 입구에서부터 시인의 시를 만날 수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 행사나 교육이 있었는지 북카페에 초등학생들이 인사를 하며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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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전시는 작가 연보 '일대기'부터 시작한다. 서울 출생이고 왜관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길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왜관에 그를 기념하는 문학관을 세운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그는 1919년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늦둥이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구상준인데 집에서 '상아, 상아'하고 부르다 보니 외자 이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울산 부사, 큰아버지들은 현감, 군수 등을 지냈다고 하며 외가는 전통적인 천주교 집안이었다고 한다. 구상 시인의 큰 형님은 가톨릭 신부가 되었다고 하며, 구상 시인 역시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도 포기했다고 한다.


언론인으로 활동을 하며 이승만 독재 반대 운동에 적극 참여했는데, 무기를 북한에 밀반출하려 했다는 거짓 혐의를 씌워 반공법 위반으로 검찰이 15년을 구형하였으나 6개월 만에 무죄로 풀려났다. 이 사건 후 현실에서 손을 떼고 문학만 하겠다는 결심을 하여 사회적인 직책을 전혀 맡지 않고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수많은 정계 입문의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박정희와 개인적으로 막역한 사이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대통령을 각하라 불렀는데, 구상은 한 번도 '각하'라고 부르지 않았고, 관직에 있다고 해서 '박 첨지'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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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구상에게 있어서 종교와 강이 어떤 의미였는지 정리되어 있다. 조금 늦은 시간에 방문해서 인지 '감상의 방'은 작동하지 않아 보질 못했다.


구상은 신학교에서 나와 중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하면서 '주의자'로 낙인이 찍혔다고 하는데, '폐인이 되었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통했다고 한다. 일본으로 밀항하여 일급 노동자, 공장 등을 전전하다 일본대 종교과에 진학하였다고 한다. 당시 명치대학 문예과에도 합격했는데, 훗날 시인이 된 그는 문예과가 아닌 종교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구상은 산보다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어린 시절 마을 앞에 흐르는 적선강을 바라보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해방감을 맛보곤' 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여의도에 살면서는 한강을, 왜관에서는 낙동강을 접하며 강을 연작시의 소재로 삼아 '강' 65편을 완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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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그의 '작품세계'와 '세계문인 200인', 반대쪽에는 '응향 필화사건'에 대한 소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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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시인은 4살 무렵, 함경도 원산으로 이사를 하여 그곳에서 자라게 된다. 일본으로 건너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원산 집에서 글만 읽으며 시 쓰기에 매달렸다고 한다. 그러다 1946년 원산문학가 동맹의 광복 1주년 기념 시집 '응향'에 실린 구상의 시가 문제가 되어 '퇴폐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이고 반인민적이다'라는 지판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검색해 보니, <노정이 강가에 이르면 / 나는 안개를 생식하는 짐승이 된다>는 구절이 특히 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사람이 밥을 먹지 안개를 먹고산다는 것은 부르주아적 퇴폐성을 가진 반동적(노동자와 농민을 배반하는 것) 문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응향'에 같이 작품을 실은 작가들도 비판을 받아 한 사람씩 비판대에 올라 자기비판을 하는데, 구상이 자신의 차례가 오기 직전 화장실을 간다고 나와 곧바로 탈출을 감행, 38선을 넘어 월남했다고 한다.


또한 구상 시인은 우리나라 문인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올랐고, 프랑스 문인협회에서 선정한 '세계 200인 문인'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다만, 바로 위에 있는 '작가연보'에 노벨상 후보에 오른 시기와 '세계 200인 문인'에 선정된 해도 함께 기록해 두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1980년대부터 프랑스, 독일, 스웨덴, 미국, 영국 등에 그의 시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면서 어찌 보면 외국에서 더 유명한 문인이 되었다.



이어 왜관과 구상, 그리고 그와 얽힌 일화들이 소개된 전시가 이어진다. 그의 수집품인 도자기, 각종 상장과 훈장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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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의 지인들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소설가 이무영, 시인 오상순, 아동문학가 마해송, 시인 김광균, 화가 이중섭이 소개되어 있다. 특히 화가 이중섭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고 하는데, 이중섭의 후견인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중섭이 그린 '구상의 가족' 그림도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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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나올 때는 작은 복도처럼 구성된, 전시대가 분리해 놓은 공간으로 돌아 나오면 된다. 그의 시가 세워져 있고 아래 전시대에는 영인본 원고들,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사진,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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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의 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시인 '구상', 하지만 사실 '초토의 시' 이외의 다른 작품들은 읽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작가인지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그는 깊은 삶의 성찰을 담아낸 시를 쓰는 <삶을 노래하는 구도자>로 불리고 있었다.


문학관에서는 구상에 대해, 자기 고백적 성찰의 시 '근황'의 일부를 소개하며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보며 걸레처럼 더럽고 추레한 내 마음을 그 물에 헹구고 씻고 빨아 보지만 절고 찌들은 때들은 빠지지 않는다
- 구상, <근황> 중에서

다음과 같이 시인을 정의하고 있었다.


기독교적 존재관을 바탕으로, 한국의 건국신화와 선불교적 명상, 노장사상까지 포용하는 사상적 기반을 바탕에 두고 시를 써 왔다. 맑고 투명한, 거기에다 사상적 통합을 시로써 이루어낸 시인으로 '삶을 노래하는 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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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 여러 곳에 그의 시가 걸려 있다. 그중 하나 '구상무상'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세월처럼 흘러가는
남의 세상 속에서
가쁘던 숨결은 식어가고
뉘우침마저 희미해 가는 가슴.

나보다도 진해진 그림자를 밟고 서면
꿈결 속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그저 심심해 서 있으면
해어진 호주머지 구멍으로부터
바램과 추억이 새어나가고
꽁초도 사랑도 흘러나가고
무엇도 무엇도 떨어져 버리면

나를 취하게 할 아편도 술도 없어
홀로 깨어 있노라.
아무렇지도 않노라.

- 구상, <구상무상(具常無常)>


나이가 들어가면서 오래된 바지의 호주머니처럼 사랑과 추억이 하나씩 잊혀가도 무감해지는, 내가 조금씩 비워지다 결국 그림자 나보다 더 진해지는 그때가 되면 정말 인생무상을 느끼고, 세상의 덧없음을 깨닫게 될까? 나만 홀로, 나 이외에 아무것도 없이도 아무렇지도 않을까?


이 시는 나오는 쪽의 전시실 끝부분 정도에 있었던 시인데,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시였다.

그의 여러 시를 읽으며 사색하기에 좋은 문학관이었다.





한 줄 느낌

- 전시 정보가 간결하고 그의 삶과 작품이 잘 어우러져 깔끔한 느낌을 준다.


한 줄 평

- 여러 시를 읽으며 사색하기 좋은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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