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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Dec 20. 2023

세월이 잇는 향기는 참으로 고풍스럽고도 구수하다

- 제주의 세월에 물들어가다, '고소리술'을 음주해보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우리나라에는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유형문화재는 형태가 있는 문화재를 의미하며, 무형문화재는 형태가 없는 문화재를 의미한다. 오늘 이야기할 것은 이 중 무형문화재, 그것도 제주도의 무형문화재이다.


제주도의 무형문화재는 노래, 놀이, 소리, 민요, 축제 등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여러 개의 종류 중에는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전통주도 몇몇 존재하는데, 오늘 여러분에게 소개하기 위해 준비한 술이 바로 이 제주도의 무형문화재 중 하나이다. '고소리술', 1995년부터 제주도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로 남게 된 이 작품은 과연 어떠한 맛과 향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제주의 세월에 물들어가다, 고소리술

눈으로 보기에 술을 담고 있는 병은 비교적 평범한 모습을 띄고 있다. 이 용량을 구매하면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주의 외관으로서, 병을 두르고 있는 띠지에서나 그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전면부에 보이는 띠지 자체는 그래도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느낌이다. 흙색 배경을 필두로 하여 주조사와 술의 이름이 금색으로 새겨져 있는데, 이 자체는 확실히 다른 술들에 비하여 전통의 미를 잘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배경과 세련된 금빛 글씨들이 참 멋들어지게 어우러진다. 다만.. 확실히 그 부분을 제외하면 심심한 감이 있어서, 그래도 무형문화재라는 술의 이름값이 있기에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참고로 오해가 있을까 싶어서 말하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375ML에 한하여 약간 아쉽다는 것이다. '고소리술'의 경우 용량에 따라 디자인이 천차만별적으로 달라지는데, 500ML는 한눈에 보아도 고풍스러운 전통의 술병 그 자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혹여나 나처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닌 선물용으로 구매할 계획이 있다면, 돈을 조금 더 주고 도자기로 된 500ML를 구매하길 바란다. 물론 가격이 조금, 아니 꽤 비싸긴 하나, 잔부터 도자기 술병까지 알찬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소리술'은 '제주샘영농조합법인'이 제주암반수와 농산물로만 빚어 태어난 증류주로서,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지속적으로 발전하며 최고의 전통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고려시대에 몽골 군의 침략으로 주둔지화 되었던 제주에서 당시 몽골인들의 증류기법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증류주를 생산하였고, 그 최초의 증류주가 바로 이 작품, '고소리술'이다. '고소리술'이라는 이름은 제주도 사람들이 소줏고리를 고소리라고 부르는데에서 유래하였으며, 맛과 향의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우리 술 품평회에서 장려상 1회, 최우수상 1회, 대상 3회를 수상하였다.


작품의 용량은 375ML, 도수는 40%, 가격은 32,000원. 일반적인 증류주에서 자주 보이는 용량에 고도수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알코올함유량, 그리고 엔트리급 위스키가 생각나게 만드는 값이다. 어느 정도 비싼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 이겠지만, 수상이력이나 전통에 대한 값어치를 따져보면 지나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잔에 따른 술은 여타 증류주와 같이 투명하고 매끄러운 모습을 선보인다. 맑아도 너무 맑게 다가와 잔과 혼연일체가 된 듯한 모습이다. 어찌 술이 이렇게 깨끗할 수 있는지.


얼굴을 가까이 하니 곡식의 구수한 향이 잔으로부터 올라와 코를 사로잡는다. 잠깐 향을 맡아본 것에 불과함에도 감탄사를 내뱉게 만든다. 고도수 특유의 쏘는듯한 알코올향이 처음에 살짝 튀어나오긴 하나, 그 끝을 누룽지, 강냉이, 구운 보리 등을 연상시키는 냄새가 마무리하며 확실한 매력을 선사한다. 잔을 여러 번 올렸다 내려도 같은 느낌, 이 구운 곡식의 향은 반복할수록 인상적이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향보다도 진한 구수함이 입 안에서 퍼진다. 강한 알코올이 주는 맛매가 처음 혀를 탁 치자마자 고급스러운 구수함이 곧바로 혀와 코에 동시에 퍼지는데, 이 향미가 참으로 예술적이다.  

Qㅜ

부드러운 주감과 구운 곡식의 구수한 풍미, 약간의 알코올과 미세한 단 맛으로 이루어져 있는 작품이다. 40도라는 높은 도수를 보유하고 있으나 혀에 닿기 시작한 시점에 약하게 느껴지는 정도이며, 이후 미미한 감미와 섞인 구수함이 퍼지며 마치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물처럼 코와 혀를 그윽한 풍미로 물들여준다.


목 넘김 이후에는 미세한 알코올과 고소한 향이 코에 남아 머무는데, 맛의 여운은 그리 길지 않은 편이나 향의 여운이 길어 그 맛매를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코에서 퍼져가는 특유의 운치는 속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시간과 맞물러져 가만히 눈을 감고 집중할 수밖에 없다.


흠을 잡을래야 잡을 곳이 없는 술이다. 알콜의 맛이 지나치게 강한 것도 아니며, 고유의 풍미를 간직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목 넘김이 불편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잔의 향을 맡고 마신 것에 불과함에도 왜 이 술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었는지 알 것 같다.


살짝 가벼운 무게감과 구수한 향미를 중심으로 하여 퍼지는 이 형태가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아름다운을 보여준다. 한 잔을 마시든 두 잔을 마시든 눈을 감고 음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며,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만족스럽게 취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고도수의 전통주를 원하는 사람 있다면 가장 먼저 추천하고픈 술이다.


안주는 정말 담백한 음식을 권하고 싶다. 나물이나 간이 덜된 사골 곰탕 등 술의 맛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곁들여 음주하는 것이 아마 좀 더 행복한 시간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싶다.


'고소리술', 만족스럽다란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술이었다. 고유의 풍미와 부드러운 질감, 고도수임에도 비교적 연한 알콜까지 모든 박자가 조화롭게 떨어진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약간씩 상이하다. 10%, 혹은 그 이상 차이나는 곳도 있기 때문에 잘 살펴보고 구매하는 게 좋을 것이다.


눈을 감게 만드는 '고소리술'의 주간 평가는 4.5/5.0이다. 세월이 잇는 향기에 물든듯 하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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