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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Mar 07. 2024

꽃나무 아래에서 나도 신선이 되련다

- 신선이 탐할 수 밖에 없는 술, '호산춘'를 음주해보았다.

오늘은 아주 예전부터 유명세를 날린 술 한 병을 가지고 왔다. '호산춘', 아직 마시지 못했지만 이름은 너무 자주 들었던 술인데, 어떤 술을 마실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눈에 띄어 곧바로 장바구니에 담아 들고 오게 되었다. 과연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난 이 작품은 어떠한 맛과 향을 나에게 선사할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신선이 탐할 수 밖에 없는 술, 호산춘

술은 상당히 멋들어진 패키지로 그 시작을 알린다. '호산춘'이라고 유려하게 적힌 이름과 묵으로 그린 간단한 산수화, 윗부분에 쓰인 장인의 마음을 담은 문구는 마시기 전임에도 이 술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상자를 열어 술을 꺼내면 일반적으로 청주에서 주로 사용되는 병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 기다란 곡선의 끝을 술의 명칭과 함께 금박으로 꾸며진 뚜껑이 장식하고 있어 참 깔끔하게 전통의 미를 살렸다는 생각이 든다. 


시선을 아래로 내려보니 이번엔 흰색 배경의 라벨이 눈에 들어온다. 푸른색으로 쓰인 '문경 호산춘'과 '신선이 즐기는 곡차'라는 작품에 대한 한 줄평. 짧은 한 마디였으나, 혼산춘이라는 약주를 설명하기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전통주에 있어서 신선이 즐긴다는 말보다 더 훌륭한 표현이 몇이나 될까.    

'문경 호산춘 약주'는 '문경 호산춘'에서 태어난 술로서, 약 200년 전부터 제조되기 시작하였다. 장수황 씨 집안이 향기롭고 맛있는 술을 빚어내 시작된 작품이며, 풍류객 황의민이 자신의 집에서 빚은 술에 본인의 시호인 호산과 술에 취했을 때 흥취를 느끼게 만드는 춘색의 춘자를 넣어 '호산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전해진다.


1991년 3월 25일 부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18호로 지정되었고, 술을 마시면 코에서는 그윽한 솔향을 혀에서는 단 맛과 산미의 빼어난 조화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참고로 조상님께 제사를 지낼 때도 사용했던 호산춘은 '신선이 탐할 만한 술'이라 불려 '호선주'라고 일컫기도 했다.


제품의 용량은 700ML, 도수는 18도, 가격은 29,000원. 둘이서 먹기에도 충분한 양과 일반 소주에 비견될만한 약주치고는 높은 알콜 함유량,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구매하기에 부담되는 값을 지녔다. 지갑이 지금도 아파하는 중이지만 어찌 이런 명주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쩔 수 없다. 견뎌라, 그리고 힘내라. 내 지갑아.

잔에 따른 술은 꽤나 밝은 색의 노란 빛깔을 띤다. 색깔이 상당히 영롱하고 깔끔한 것이 초승달을 물에 띄어놓으면 이러한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보통의 약주에 비해서 맑고 연한 느낌을 지니고 있으며, 안으로 비추는 형태 역시 투명한 편이다.


코를 가져다 대니 약간의 산기를 띄는 솔잎향이 은은하게 잔으로부터 흘러나온다. 백설기, 간장, 밀, 솔잎 등이 산뜻하게 자리 잡은 상태이고, 소주와 비슷한 도수를 지니고 있지만 알코올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약주라고 하였을 때 생각나는 건강한 냄새보다는 갓 지은 하얀 백설기가 떠오르는 향으로서, 미미한 달콤함과 산기, 코 끝에서 느껴지는 솔잎향이 정말 조화롭게 얼굴을 드러낸다. 코를 아무리 대고 있어도 뭐하나 튀는 게 없는 것이, 참 만족스러운 향이다.


이어서 잔을 몇 번 흔든 뒤 한 모금 머금으면 상큼한 산미와 함께 부드러운 술이 혀를 감싸 안는다. 감미가 슬며시 얼굴을 비추려는 듯하다 곧바로 산미가 찾아와 자신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리며, 특유의 향과 함께 감칠맛이 혀와 코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주감자체가 고운 편이고, 향과 마찬가지로 맛에 있어서도 알코올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에 참으로 거리낌 없이 혀에서부터 목구멍까지의 과정이 이어진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약주치고는 도수가 높은 편이라 조금 걱정하는 부분도 없지 않게 있었으나, 술을 한 잔 들이켜지 마자 그러한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적당한 바디감에 새콤한 과실의 산미가 주는 풍미를 지닌 친구이다. 부드러운 목 넘김을 거친 후에는 향과 산미, 미미한 알코올감을 남기고 사라지며, 이때 느껴지는 후미의 길이는 5~6초 정도이다. 여운의 대부분은 산미가 담당한 듯하고, 거의 느껴지지 않던 알코올은 몸 속에 촛불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만든다. 산미가 톡 튀어나와 있기 때문인지 확실히 입에 침이 약간 고이는 듯한 느낌이 있다.


조화롭다. 모난 곳이 없다. 왜 이 약주가 그 오랜 시간 동안 이름을 날려 왔는지 알 수 있는 향미이다. 깔끔하게 입 안에서 감도는 산미와 거기 어울려지는 감미와 감칠맛, 시원하게 코에서 퍼지는 산뜻한 향은 꽃나무를 타고 내려오는 술을 그대로 마시는 듯하다. 약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나 큰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이며, 알딸딸한지도 모르게 취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실제로 나 역시 술이 부드러워 잔을 반복하였는데, 반쯤 비우고 나니 눈앞이 살짝 흐려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곁들일 안주로는 떡갈비, 새우구이 등을 추천한다. 잘 구워진 떡갈비 한 점에 호산춘 한 잔은, 술을 즐기는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호산춘', 꽃나무 아래의 정자에서 마시고 싶은 술이었다. 꽃전과 함께 곁들이면 얼마나 운치가 살련지.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약간씩 상이하다. 거의 20% 가까이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으니, 잘 보고 구매하는 걸 권한다.


신선의 술, '호산춘'의 주간평가는 4.2/5.0이다. 앉은뱅이 술이란 이런 것이지.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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