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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일기 Mar 07. 2024

눈 내린 설경을 입으로 마주하다

- 강 위에 소복하게 쌓인 백설, '설하담'을 음주해보았다.

눈 내린 설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롯이 그 풍경에 집중하게 된다.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잊게 만드는 힘을 설경은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에 사람들은 눈이 내린 뒤 그 풍경을 가만히 감상하곤 한다.


오늘은 이 설경을 꼭 빼닮은 술을 한 병 가지고 왔다. '설하담', 그 새하얀 얼굴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빼앗긴 작품이다. 이름부터 정결한 이 막걸리는 과연 어떠한 맛과 향을 보여줄지, 기대와 함께 뚜껑을 열어보도록 하자.


강 위에 소복하게 쌓인 백설, 설하담

겉으로 보이는 외관부터 고급스러운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친구이다. 새하얀 술이 가득 담겨 있는 병은 유려한 곡선을 뽐내며, 마개 부분은 곱게 한지로 감싸져 있어 술을 마시기 전임에도 기대감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저 가지런히 정리된 끈을 풀어보면 '설하담(雪河湛)'이라는 술의 이름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게 되는데, 눈 설(雪), 물 하(河), 괼 담(湛)이 합쳐져 '눈이 담긴 물을 사랑하다'라는 문장을 의미하고 있다. 물론 각각의 한자가 가진 뜻은 하나가 아니기에 조금 더 술과 어울리게 바꿔보면, '눈이 가득한 강에 빠지다', 혹은 '눈 내린 강을 사랑하다'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설하담'은 '(주)리큐랩'에서 오랜 시간 저온숙성하여 빚어낸 막걸리이다. 2023년 대한민국 주류대상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023년 대한민국 주재 VIP 외국공관원 200명 초청 오페라 갈라쇼에서 답례품으로 자리 잡았던 이력을 지니고 있다.


오랜 시간 저온숙성으로 빚어내 농밀하고 크리미한 텍스쳐를 가졌고, 일체의 감미료도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원액의 비율이 월등의 높기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설하담'만의 향미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제품의 용량은 475ML, 도수는 7도, 가격은 6500원. 혼자 마시기 적당한 양에 일반적인 막걸리와 비슷한 수준의 도수, 살짝 비싼 금액을 선보인다. 물론 살짝 비싸다고 해봤자 지역막걸리 기준이고, 최근 출시되는 전통주와 비교하면 양반 수준이다.

잔에 따른 술은 이름과 같이 새하얀 눈을 담아놓은 듯하다. 보통 막걸리보단 우유를 따랐을 때나 볼 수 있는 빛깔로서, 단순히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참으로 고요하면서도 깨끗한 것이 설산 속에서 눈에 뒤덮인 강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코를 가져다 대니 달콤한 곡식향이 잔을 타고 흘러나온다. 약간의 우유와 꿀, 바나나, 당도 높은 잘 익은 사과 조금, 거기에 깨끗한 쌀의 향이 더해져 있으며 여기서 다가오는 단 향은 인위적인 느낌 하나 없이 달콤함을 내뿜는다. 은은하게 피어나는 향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알코올의 냄새는 당연하게도 일절 느껴지지 않은 채로 코를 감싸 안고,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는 매혹적인 단아함을 지녔다.


이어서 한 모금 머금으면 눈처럼 부드러운 막걸리가 입 안을 채워간다. 달콤함이 중심이 되었던 향과는 달리 감미와 산미, 고소함이 두루 나타나는 듯하다. 처음엔 곡식의 은은한 단 맛이 혀를 건드리고, 그 뒤에 조금의 입자감과 함께 고소함이 찾아오며, 마지막으로 약한 산미가 슬쩍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각각의 맛들이 모두 강하지 않고 그윽하게 입 안에서 퍼지니 잔을 조금 비웠을 뿐인데도 이 술이 조화롭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적당한 바디감에 구름같이 몽글한 질감을 입 안에서 퍼뜨리는 작품이다. 단순히 저렴한 막걸리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향미가 아닌, 이름처럼 눈을 적신 강이 풍부한 쌀의 풍미와 함께 혀와 코에 스며들어온다. 목넘김 이후에는 감미와 산미, 입자감을 남겨놓고 사라지고, 이 때 느껴지는 후미의 길이는 약 3~4초로서 여운 역시 눈과 같이 깔끔하게 녹아간다.


혀에서부터 목넘김까지의 과정에 일체 불편함이 없다. 맛이나 향이 강렬하게 다가오기보단 설산을 밟아가는 신발처럼 몸을 적시는 면모를 보이며, 감미와 산미, 고소함과 크리미한 질감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술이다. 각각의 어우러짐 역시 크게 나무랄데 없이 좋기에 큰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막걸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이 술에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풍부한 질감이다. 부드러운 맛과 은은한 향에 가볍기만한 주감이 깃들어 있었다면 이 술이 이렇게까지 눈 같다는 감상을 내놓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하담'의 경우 그윽한 향미에 눈에 파묻힌 강의 질감이 더해져 있어 막걸리가 혀에서 넘어가자마자 술과 이름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여나 백설(白雪)의 향과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음주해 보길 바란다.


곁들일 음식으로는 파전이나 수육 등 기존의 막걸리 안주를 권하고 싶다. 술을 중심으로 마실 예정이라면 조금 더 연한 맛을, 안주를 중심으로 즐길 예정이라면 조금 더 강한 맛을 선택하면 된다. 사실 어디에 놔두어도 다 괜찮게 잘 어울릴만한 맛이니 너무 크게 고민하진 않아도 될 듯 하다.


'설하담', 소복이 쌓인 눈을 마시는 듯한 막걸리였다. 인상적인 질감을 지니고 있었으며, 곱게 흘러들어오는 풍미는 어디에서 쉬이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판매처에 따라 가격이 상이하니 잘 보고 구매하는 게 좋을 것이다. 10%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눈 내린 강, 설하담의 주간 평가는 4.0/5.0이다. 백설(白雪)의 풍미였다.


         주간일기의 모든 내용은 개인적인 평가임을 명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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