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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 Jun 17. 2024

마이쭈와 비트코인

엄마가 잘라주는 미용을 아이들이 졸업해야 할 때쯤 우리 동네에는 1인 작은 미용실이 생겼다.

인자한 얼굴을 하신 미용사분이 어린아이부터 엄마 아빠 더 나아가 할머니 할아버지 마음까지 헤아려 주시며 머리를 잘라주셨다.

특히 엄마들 마음을 잘 다독여 주셔서 개원하자마자 꽤 인기가 좋아졌다.

미용실이면 머리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곳은 동네 심리상담소 그 이상의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들에게 있어서는 꽤 괜찮은 머리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었고 가격도 비싸지 않은 편이었다. 그렇게 당골로 십여 년을 지난 어느 날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미용실을 다닌 막내는 하교를 할 때면 미용실에 항상 들른다.

열린 문에 대고 얼굴을 빼꼼 넣어 미용사선생님께 인사를 하곤 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인사할 때마다 마이쭈를 한두 개씩 주시면서 인사를 받아주셨다.

그 덕인지 우리 동네 아이들은 미용실 선생님께 인사를 잘하고 마이쭈를 하나 두 개 받아서 즐겁게 먹곤 했다.

어느 날부터 막내는 입에 넣던 마이쭈를 간식통에 모으기 시작했다.

하나 둘 차근히 모았다.

인사를 꾸준히 해서 간식 상자에 마이쭈가 가득했다.

둘째는 수줍음이 많은 친구다.

그래서 인사하는걸 쭈뼛주뼛대고 못했는데 셋째가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인사를 했다.

그 덕에 마이쭈를 받으면 꼭 입에 넣고 오물오물 거리며 하교했다.

둘째는 마이쭈를 모으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둘째 현장체험 학습을 가기 전날이었다.

하교하면서 셋째가 없는 상황에서 무슨 일인지 둘째는 평소에 안 하던 인사를 했던 모양이다.

열린 문을 보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하고 지나가려고 하던 차에 미용실 선생님께서는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면서

“내일 현장학습 간다며… 친구들이랑 나눠먹어.”

어떻게 아신건지 현장체험 학습을 가는 둘째에게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으라고 마이쭈를 봉지에 가득 담아주셨다.

둘째는 신이 나서 봉지를 들고 룰루라라 흔들며 왔다.

집에 와서 당연히 셋째에게 마이쭈 봉지를 내 비추면서 자랑을 했다.

“이것 봐라. 미용실 선생님께서 이만큼 주셨어. 내가 너보다 많지? “

지금까지 모아놓은 간식통에서 마이쭈를 쏟아내면서 셋째는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안 먹고 모았는데… 어떻게 나보다 많을 수가 있지? “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어린이판 비트코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꾸준히 저축한 사람과

갑자기 운이 좋게 생긴 사람.

둘째가 갑자기 받은 마이쭈를 어떻게 사용할지 무척 궁금했다.

과연 현장학습 가서 다 나눠주려나.

현장학습을 다녀온 후, 둘째에게 물었다.

“마이쭈 어떻게 했어?”

“응! 아이들에게 충분히 나눠줘도 여전히 많이 남았어.”

옆에서 듣던 셋째가 말했다.

“그렇게 나눠줘도 내 거보다 더 많을걸.”

아쉬운 건 나눠줬는데도 여전히 많다니…

흥청망청 나눠주면 남는 게 없어야 하는 게 세상 이치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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