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다는 것에 대한 정의
약속 시간에 맞춰 가거나 십분 전에 도착하는 걸 선호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약속 시간에 맞춰 가지 않는 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 땐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다 나와 같고 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줄 알았었다. 그렇지 않을 때마다
“왜 저러지?” 의문을 갖았고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르다는 걸 몸소 깨닫게 된다.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약속 시간에 십분 전에 오는 사람부터, 정시에 초까지 맞춰 오는 사람, 일 분 늦는 사람, 이 분 늦는 사람, 십분 늦는 사람, 삼십 분 늦는 사람, 약속장소까지 나왔지만 너무 늦어서 다시 돌아간다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했다.
그런 걸 여러 회 겪다 보니 어느 날은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소중했지만 약속에 늦게 오는 상대방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어느 날인가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나는 상대방을 기다리는 마지노선 시간을 갖기로 했고 거기에 넉넉한 마음을 품기로 했다.
“천천히 와.”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의 기다림의 마지노선과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메시지였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자신만의 시계를 갖고 있었다.
나와 시간 속도가 맞지 않으면 되도록 그 사람과 약속을 ‘굳이’ 만들지 않았다.
내 편한 대로 환경을 테트리스화 하며 사회생활을 이어가던 와중에 나는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를 이루어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만 골라 만드는 (배스킨라빈스 31) 하프겔론이 아니었다. 사회를 구성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카테고리화해서 만들 수 없다.
어쩌다 보니 다섯 명의 작은 사회를 만들었는데
그들이 엄마라 부르는 나의 시계는 정시보다 빠르게 돌아간다.
등교 준비를 일찍 했으면 하는 마음이 커서...
“아들 일어나!”
“엄마, 몇 시예요?”
“(7시 15분을 보고는) 응 7시 30분. “
”아 진짜? 빨리 일어나야겠다. “
시계를 보고 7시 15분이라는 걸 알고는...
”엄마 5분만 더 잘게요. “
다음 날부터는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나에게 시간을 물어보고 대답한 시간에 십분 정도
더하는 고도의 잔머리를 굴려서 기상하더라.
그렇게 아들과 나의 시간은, 시간 속도는 다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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