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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 Jun 03. 2024

그들 세상 속 이방인

라떼란 단어는 우리를 이어주는 소도구


라떼라고 말하면 촌스럽다 말하겠지만

라떼라는 단어를 나쁘게만 볼 수 없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중학생 아들 녀석의 청소년기를 이해할 수 없지 아니한가.


라떼란 단어는 말이다.

분명히 세대와 세대가 다르다 해도

같은 나이대의 시간을 살아본 사람을 공감하려는 최소한의 언어 아닐까.


그래, 라떼는 말이다. 나의 중학생 시절 말이다.

커튼 머리와 깻잎머리가 유행을 했다.

그 당시 나는 그 머리들이 유행인지 몰랐다.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니깐 친구들이 한 머리가 깻잎 머리인지 알았고

학교에 가보면 그런 머리들이 많아서

우리들이 어른들이 말하는 깻잎머리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건 하지 않고 나름 바른생활을 하던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다.

학창 시절 나의 머리는 가르마를 정 가운데로 갈라서 앞 머리를 이마 양옆으로 가지런히 놓은 단발 머리었다

나름의 단정함을 추구했는데 바람이 불 때면 앞머리들이 내 콧잔등을 가릴 정도로 내려왔다.

어른들은 이 머리를 커튼머리라 불렀다.


커튼머리가 불편한 건 없었다.

머리로 인해 더위를 느껴보지 않아 머리를 묶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 머리가 편했다.

반항하려고 일부로 한 머리는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그 머리가 편했다.

불편함의 일도 느낄 수 없었다.

반항을 하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엄마는 달랐던 모양이다.

엄마는 내 머리를 볼 때마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머리만 보면 답답해 죽겠어. 앞 머리를 뒤로 넘겨서 핀으로 꼽아라.”

“이마가 예쁜데 왜 그렇게 다니는거니. 앞은 보이니?”

“요즘 애들은….”

으로 시작해서 머리 지적했다.

그런 언어를 들을 때마다 불편했다.


엄마는 나를 보면 학교 생활을 물어보기보단 머리 지적하기 바빴다.

그 상황이 싫었다.

바쁜 엄마와 잠깐 만나는 그 순간에 싸우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는 나만 보면 온통 내 머리에 대한 불만만 이야기했다.

그렇다 보니 나도 말을 예쁘게 하지 않았다.

엄마가 그럴수록 내 머리는 더 옆으로 붙였던 거 같다.

라떼는 그랬다.


그런 라떼 시절이 있었기에

아들의 머리 스타일에 대한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아마 그 머리가 편할 테니 그럴 거야.’

그런 생각을 나의 라떼 시절을 곱씹으며 이해하곤 한다.


역시나 아들에게 물어보면

불편하게 없어서 장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음 같아선 단정했으면 하지만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오래전 나만의 라떼 세계를 살짝 들쳐 꺼내본다.

있는 그대로의 아들을 받아들이는 내가 되자고 다짐했는데

아들만 보면 오래전 내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다 보니 아들과의 대화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지난 화에 썼듯이 아들은 더운 날에도 두꺼운 옷을 입고 다닌다.

땀을 많이 흘렸을 테니 씻었으면 하는 바람을 넌지시 비춘다.

불편한 게 없다는 아들은 내 말을 듣고 미동하지 않는다.

그들의 세계에선 난 이방인이다.


‘씻어라.’

‘갈아입어라.’

정말 별 거 아닌 일로 다른 세계 사람과 실랑이를 하기 시작한다.


더벅머리, 장발 그들 세계가 추구하고 있는 평범한 머리라 생각하며

눈을 질끈 감아주고  참겠는데

더럽고 냄새나는 건 못 참겠다.


백 날을 씻으라고 말해도 말 안 듣던 어느 날,

아이가 학교 가기 전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샤워하고 나오는 아들을 붙잡고

“웬일로 씻니?”

물었더니 친구들끼리 서로 냄새난다고 이야기를 했단다.

그들의 세계 사람들끼리 서로 냄새난다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그날부터 잘 씻기 시작한다.

며칠을 말해도 말 안 듣던 아들은 친구들과 나눈 대화로 씻기 시작했다.



사춘기는 그렇다.

친구들의 말 한마디가 나의 백번의 말보다 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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