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활하다 보면 선거철이 가까워 온 것을 피부로 느낀다. 수시로 걸려오는 여론조사 전화와 문자, 출근 시 대로변에서 인사하는 후보자들 인사, 실현가능성을 의심케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각종 현수막 정치문구부터 뉴스를 도배하는 공천 파동까지... 빼앗긴 들에 찾아오는 봄기운이 아닌, 따스한 봄날에 북풍한파가 몰아치는 기분이다. 보고 싶지 않아도, 듣고 싶지 않아도 대한민국은 국회의원 총선거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중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이 정당의 후보자 공천소식이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에 명시된 것처럼 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 되어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체제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와 같이 전문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급속하게 변화하며 다양한 생각이 공존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국민 전체가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처럼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국가는 찾아볼 수 없으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는 의회제도인 간접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간접 민주주의의 핵심인 의회제도는 헌법제정권력인 국민이 국민주권에 기초하여 직접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고,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국민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의회민주주의 기본정신이자 핵심원리이다. 또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 등 국민의 대표는 정견과 정책을 같이하는 정치세력이 정당을 구성하는 정당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헌법과 법률에서도 정당제도를 보장하며 선거공영제 등 정당에 보조금 지급 등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의회제도와 정당제도의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정치후진국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정당 공천제도에 있음을 2024년 2월 작금의 현실을 보고 확실히 깨닫는다. 각설하고, 보수정당은 공천의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역의원 유임 등 감동 없는 공천을, 진보정당은 혁신을 내세우며 계파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뿐 국민 눈높이에서는 정당 공천제도의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듯 보인다
보수정당에서는 정권창출에 기여한 정치인이 최고권력자에게 "속았다"라고 소속정당을 탈당하며 제3지대로 합류하고, 야당에서는 정당 대표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여성의원이 공천심사에서 탈락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법리스크 등 작심발언을 하며 탈당하는 사태까지 보면서 현재 대한민국의 정당 공천제도가 과연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 공천제도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이 알고 싶어 진다.
그렇다면 정당의 공천제도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개인적으로 판단하건대 공천의 가장 큰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 그리고 '절차적 공정성'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공천제도의 현실에서는 2가지 기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의 눈높이는 정당 최고의사결정권자 눈높이로 대체되고, 절차적 공정성은 내부에서조차 담보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즉, 명분도, 감동도, 실리도 없는 엉터리 공천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각 정당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오직 '시스템 공천' 등 허울 좋은 단어로 국민들을 기망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정당의 아수라 공천상황을 보며 비교되는 TV프로그램이 있다. 미스트롯 3, 현역가왕 등 트롯 경연프로그램이다. 본래 트로트를 좋아서 즐겨보기도 하지만 두 프로그램은 경연 프로그램 취지에 맞게 다양한 평가과정을 통해 최고의 실력자들을 검증하는 쫄깃한 긴장감이 프로그램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면 참가자들의 노래 실력은 대동소이하다. 내가 잘했다고 PICK 한 참가자는 이길 때도 있지만 질 때도 있다. 왜? 내가 응원한 사람이 더 잘했는데 졌을까? 의심이 드는 상황이면 전문가 마스터 군단이 음정, 박자, 표정, 퍼포먼스 등 디테일한 평가를 하며 최종 합계를 내어 그 자리에서 공개한다. 경쟁자들은 전문가평가를 듣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평가결과에 수긍하며 상대를 격려하며 웃으며 퇴장한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응원한 참가자는 석패했지만 결과에 승복하며 상대를 축하하는 마지막 모습에 저 사람을 또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전문가인 마스터 군단의 평가에 수긍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방송사에서도 그런 상황을 예측했는지 관객점수를 도입하였다. 흥미로운 부분은 전문가인 마스터 군단과 일반 관객의 점수방향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특정참가자는 마스터 군단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관객점수에서 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문가와 국민이 참가자를 평가하는 관점과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가와 관객의 합산점수로 최종순위가 결정된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무조건 내 의견만을 관철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트롯 경연시스템이 정당공천시스템보다 합리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또한 절차적 공정성에 있다. 경연에 참가한 참가자는 누구든지 자신의 끼와 능력을 정해진 무대에서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다. 현역가수에게는 고품질 음량이 신인가수에게는 노래방 기계가 동원되지 않는다. 동일한 조건, 동일한 기준으로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고 평가받는다. 사회자는 경연 시작 전 프로그램 경연방식과 평가기준을 사전에 공지한다. 참가자 모두는 경연의 룰을 사전 숙지한 상황에서 경연에 참가하고 평가결과는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공개하므로 평가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트롯 경연프로그램의 이와 같은 객관적이고 합리적 평가시스템 덕분에 시청률은 20% 가까이 상승하고 있다. 내 기억으로는 대한민국 정치권 전당대회 소식이 시청률 3%를 넘은 적이 있을까?.
가수의 끼와 재능도 관람포인트지만 짜릿하고 긴장감 있는 평가로 누가 어떤 과정으로 어느 순위까지 오르게 될까? 심리적으로 기대하게 되는 것이 트롯 경연 프로그램의 대중화에 성공한 핵심요소라 평가하고 싶다. 구태의연한 정당의 공천제도, 이제는 참신한 트롯 경연프로그램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플레이어들도 공감하지 않고 외부에서는 더더욱 모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는 경기는 선수가 이겨도 감동이 없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적용되는 공천을,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대리인 입장에서 주인의 심정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흔적이라도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