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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욱 May 28. 2024

브런치 1주년, 50번째 글을 쓰다

직장인에게는 1주일 중 가장 무기력한 날이 화요일이다. 구내식당에서 점심 먹고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려니 졸음이 쏟아진다. 참으려고 노력하지만 50 후반 중년남성이 책상 앞에서 잠을 이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광교호수는 '나하고 놀자'라고 손짓하며 유혹한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5월의 날씨는 회색빛 빌딩으로 가득한 수원 광교신도시를 마치 네덜란드 화가 랭브란트의 풍경화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환각작용을 불러 일으킨다.




희미해진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인터넷 '즐겨찾기'에서 마우스를 위아래 스크롤한다. 네이버, 유튜브, 페이스북, 밴드, 강의사이트, 브런치스토리 중 '브런치스토리'에 눈길이 간다. 마우스를 클릭한다. 그간 내가 작성한 글들을 살펴본다. 우연일까? 오늘이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 지 정확히 1년 되는 날이다. 사람으로 보면 첫 생일이다. 돌잔치 날이다. 지난 1년 내가 작성한 글의 제목을 살펴본다. 지난 1년 총 49건의 글을 업로드하였다. 지금 쓰는 이 글은 브런치 1년째 되는 날 쓰는 50번째 글이 될 것이다. 독자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숫자이지만 브런치작가로서 활동한 지난 1년, 50번째 글이라는 흔적은 그냥 가볍게 지나치기엔 아까운 지표이다.


구독자 61명, 총 49건 중 조회수 1,000회 이상이 총 6건이다. 최다 조회 글은 2023년 6월 25일 작성한 '베트남 3박 4일 가족여행 기행문'이 70,691회, 최소 조회 글은 '의대정원 등 의료개혁과 관련한 글'이 40회를 기록하고 있다. 초라한 성적표이다. 객관적인 통계 등 외형으로만 보면 작가로서 미흡한 활동 수준이다.




그러나 초라한 외형적 성과와는 다르게 지난 1년 간 브런치를 하면서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족과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대되고 통찰력이 배가된 것은 브런치 1년이 나에게 선물한 소중한 경험이다. 기존에는 일상생활에서 보고 들으며 느낀 것에 대하여 '좋다', '나쁘다'라는 단편적인 사고체계를 유지한 반면 브런치를 시작하고 특정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 전에 자료를 찾아보고 분석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족관계도 내 관점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글을 쓰게 되니 자연스럽게 가족 간 갈등해소에 도움이 되었다. 브런치에 작성한 글을 가족 단톡방에 공유함으로 남편의 마음을, 아빠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표현하는 것은 직접 얼굴을 보고 설득하며 이해시키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인 분쟁조정 수단이었다.




무엇보다도 공무원이라는 직업적 특수성으로 정치적 이슈 등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한 '표현의 자유'가 제한을 받는 벙어리, 귀머거리 인생이지만 브런치는 내 마음속 오물과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씻겨주는 장맛비와 같았다. 2023년 7월 해병대 채수근 상병의 죽음과 권력기관의 해병대수사단 수사 외압 의혹, 이상민 행안부장관 탄핵소추,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의대정원 증원 관련 의정갈등, 네이버-라인 경영권 분쟁 등 사회적 휘발성이 큰 이슈에 대해 공무원이 개인적 의견을 공적공간에 표현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변 지인들은 주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고 쓰더라도 수위조절을 하라고 만류하기도 하며 심지어 글 쓰는 것을 하지 말 것을 권유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적 사실과 내가 느끼는 감정의 편린을 정확히 기록함으로 공무원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날 현재의 진실을 정확히 기억하고 싶었다. 아마도 돌이켜보니 그것이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때로는 채 상병 사건 뉴스를 들으며 술 한잔 거하게 취해 소파에 누워서, 홍범도 장군 흉상이전 등 역사적 고증이 필요한 부분은 매주 주말 집 근처 스터디카페에서 머릿속에 저장한 글의 소재들을 쏟아부으며 브런치 공간에서 친구와 대화하듯 자유롭게 글을 써 내려갔다. 하얀 모니터 화면 위에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는 글은 멋진 활자와 이미지로 재편집되었고 나의 글을 읽는 독자들의 반응을 볼 때 쾌감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브런치에 글을 쓴 지 1년이 지났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총 50건의 글을 썼다.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4년 후 퇴직 후에 지난 시간들을 반추하는 마음으로 솔직 담백한 마음과 생각들을 과감하게 표현하였다. 돌이켜 보니 브런치에 그를 쓰는 순간은 나 자신이 세상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시간이었다.


꿈이 있다면 다른 작가들처럼 내 이름으로 멋지게 책을 출간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용기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용기보다는 능력이 없다. 또한, 출간이라는 목적으로 글을 쓰게 되면 언제부터인가 글쓰기 작업은 노동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금은 그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글로 쓰고 표현하는 작업이 너무 행복하다. 그 행복감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현재의 순간과 감정을 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작업이 반복되면 나에게도 언젠가 행운의 여신이 미소를 보낼 것이다.




무기력한 화요일 오후를 극복하기 위해 우연히 찾은 브런치 덕분에 남은 1주일이 행복감으로 다가온다. 브런치스토리 1주년과 50번째 글을 자축하며 브런치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을 다짐한다.


브런치스토리!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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