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역사는 누가 쓰는가>
“History is written by the ones who stayed visible.”
(역사는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쓰인다.)
- Jimmy Soni, The Founders: The Story of PayPal and the Entrepreneurs Who Shaped Silicon Valley (2022)
세상에 알려진 스타트업의 역사 대부분은 ‘창업자 신화’입니다. 하지만 실제 초창기 팀의 구성도를 들여다보면, 그 신화는 몇 명의 이름만 남긴 채 나머지를 지워버린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수많은 “첫 번째 팀 멤버”들이 있었는데요.
Slack의 시스템을 만든 엔지니어, PayPal의 첫 거래를 처리한 개발자, Tesla의 초창기 로드스터 엔지니어, Airbnb의 첫 호스트 커뮤니티 매니저. 이들은 회사를 움직였지만, 검색창에 이름이 남지 않않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코드 저장소와 문서의 주석에만 기록되어 있다고 하네요.
<Tesla - Martin Eberhard, 진짜 창업자였지만 잊힌 이름>
대부분의 사람들은 Tesla의 창업자를 Elon Musk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Tesla Motors를 설립한 사람은 Martin Eberhard와 Marc Tarpenning이었습니다. Musk는 2004년 투자자로 합류했다고 하죠.
Eberhard는 2003년, “고성능 전기차를 상업화할 수 있다”는 비전을 세웠고, 실제 Tesla Roadster의 초기 설계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2007년, 회사의 내부 경영 충돌로 그는 CEO 자리에서 해임되었다고 하죠.
“I started the company, but I’m not in the story anymore.”
(나는 회사를 만들었지만, 이제 그 이야기 속엔 없다.)
- Martin Eberhard, Business Insider Interview, 2019
이후 Tesla의 모든 공식 보도자료에서 Eberhard의 이름은 빠졌습니다. 그의 기여는 사라졌고, ‘창업자’의 자리는 Musk에게 완전히 넘어갔죠. Eberhard는 훗날 법적 분쟁에서 “Tesla 공동창업자 중 한 명으로 표기될 권리”를 인정받았지만, 세상은 이미 그를 잊은 뒤였다고 합니다.
<Twitter — Noah Glass, 존재했지만 언급되지 않는 사람>
Twitter의 공동창업자는 Jack Dorsey, Biz Stone, Evan Williams…
하지만 Noah Glass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는 사실 “Twitter”라는 이름을 처음 제안한 인물이기도 한데요. 2006년, 팟캐스트 플랫폼 Odeo 팀이 해체될 때 Glass가 제안한 아이디어가 바로 “단문 상태 공유 서비스”였습니다. 그는 첫 시제품을 직접 테스트했고, 초기 팀에서 실시간 알림 기능을 설계했다고 하죠. 하지만 회사의 방향 전환 과정에서 Williams와 Dorsey가 경영권을 재편했고, Glass는 회사를 떠났다고 합니다.
“It was like being erased from something you helped create.”
(내가 함께 만든 것에서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 Noah Glass, Vanity Fair Interview, 2013
이후 Twitter의 역사에서 그의 이름은 삭제되었다고 합니다. 10년이 지난 후, Dorsey는 인터뷰에서 짧게 이렇게 말했죠.
“Noah had a big role early on. I should have acknowledged that."
(노아는 초기에 큰 역할을 했다. 그걸 인정했어야 했다.)
그 짧은 한 문장이 그의 존재에 대한 유일한 공식 기록이 되었습니다.
<PayPal - Yu Pan, 코드를 쓴 사람,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사람>
PayPal의 창업 멤버 중에는 Elon Musk, Peter Thiel, Max Levchin, Reid Hoffman 같은 이름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첫 결제 코드를 작성한 엔지니어 Yu Pan의 이름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데요.
Yu Pan은 Confinity 시절부터 참여한 6번째 직원으로, PayPal의 첫 거래 시스템과 보안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그는 인수 후에도 Google로 이직해 Google Checkout을 개발했죠.
“I wrote code that moved millions of dollars a day, but my name moved nowhere.”
(나는 매일 수백만 달러를 움직이는 코드를 썼지만, 내 이름은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 Yu Pan, Stanford Oral History Project, 2017
PayPal이 상장하던 날, 그의 이름은 IPO 문서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것은 단지 코드 주석 한 줄이었던 것이죠.
<스타트업의 ‘보이지 않는 주어들’>
위의 사람들은 모두 “회사를 실제로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던 것이죠.
이들의 공통점은 “회사를 만들었지만, 서사에 남지 않았다.” 였습니다. 스타트업의 역사는 종종 기술적 기여보다 서사적 존재감을 기준으로 정리된다고 보여집니다. 결국 이름이 남는 건, 가장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죠.
<이름이 사라지는 구조>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실리콘밸리 연구자들은 이를 ‘Narrative Ownership(서사 소유권)’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회사의 이야기와 언론 노출, 투자자 피치, 브랜드 스토리텔링은 항상 “대표 서사” 중심으로 재편되기 때문이죠.
• 경영권 구조 : CEO만이 법적 서명을 갖는다.
• 브랜드 구조 : 언론은 ‘하나의 얼굴’을 원한다.
• 내부 정치 : 갈등이 생기면 이름이 지워진다.
그 결과, ‘실행자’는 기록되지 않는 리스크를 안고 일하며, 그들은 회사를 만드는 동안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치며 - 그러나 이름이 사라져도 남는 것들>
Yu Pan은 후일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The code remembers. Even if the world doesn’t.”
(세상이 기억하지 않아도, 코드는 기억한다.)
Eberhard는 Tesla를 떠난 뒤 전기차 배터리 스타트업 Tiveni를 설립했습니다. Glass는 Twitter와의 갈등 이후에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을 만들었죠.
그들은 이름은 잃었지만, 다음 세대의 창업자들에게 “존재의 이유”를 남겼습니다. 스타트업의 지속 가능성은 ‘누가 유명한가’가 아니라, ‘누가 구조를 만들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