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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가의 번아웃’ - 책임은 있지만 권한은 없는 구조

by dionysos

<두 번째 엔진이 먼저 닳는다>


“Responsibility without authority is the fastest path to burnout.”

(권한이 없는 책임은 번아웃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 Harvard Business Review, 2021


스타트업의 엔진은 둘입니다. 비전을 점화하는 창업자, 그리고 그 비전을 매일 굴리는 실행가, 그런데 실제로는 후자가 더 빨리 닳습니다. 왜냐면 책임은 내려오지만, 권한은 올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정은 위에서 늦게 내려오고, 결과는 아래에서 즉시 요구되죠. 이건 피로가 아니라 구조적 번아웃(structural burnout) 입니다.



<Atlassian - 의사결정이 늦을수록 실행가는 더 빨리 지친다>


공동창업자 Scott Farquhar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하죠.


“We hired people to think, not to wait.”

(“우리는 생각하기 위해 사람을 뽑았다. 기다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 Atlassian Team Playbook, 2018


하지만 내부 리포트(Team Health Report, 2022)에 따르면 PM과 매니저층의 피로도는 엔지니어보다 1.8배 높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단순했는데요.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해,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길었기 때문이었다고 하네요.


결국 Atlassian은 결정을 기다리는 대신 “실험을 우선 실행하고 나중에 승인받는 구조(Experiment First)”로 개편했습니다. 그제서야 피로 지표가 완만히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Basecamp - 가장 신경 쓰는 사람이 가장 빨리 지친다>


Basecamp 공동창업자 Jason Fried는 그 유명한 책 It Doesn’t Have to Be Crazy at Work(2018)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The person who cares the most often pays the most.”

(“가장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이, 가장 많이 지불하게 된다.”)

- Jason Fried, 2018


그 ‘지불’은 감정, 시간, 관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행가가 팀의 분위기를 챙기고, 프로젝트를 감싸고, 결국 자기 에너지를 태워 팀을 굴리게 되죠. 그런데 리소스는 보상되지 않습니다.


Basecamp 내부 블로그(2021)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팀에서 가장 책임감 있는 사람이, 가장 빨리 사라진다.", 책임감은 미덕이 아니라, 불균형 구조가 만든 착각된 덕목이었던 것 입니다.



<Shopify - 속도 중심 문화가 만든 피로>


팬데믹 때 Shopify는 “모든 중소상공인의 온라인 전환”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속도 피로(speed fatigue)’가 터져버렸죠. CEO Tobi Lütke는 2022년 내부 메일에서 이렇게 인정했다고 합니다.


“We placed too much weight on speed, and too little on clarity.”

(“우리는 속도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명확성에는 너무 적게 두었다.”)

- Shopify Internal Memo, 2022


그 뒤에 이어진 문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Our operators ran blind — and we noticed too late.”

(“실행가들은 방향 없이 달렸고, 우리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아챘다.”)


그 시기, Shopify의 Operations Manager 이직률은 27% 증가했습니다. 실행가들이 ‘빠름’을 책임지다 먼저 닳아버린 것입니다.



<Klarna - 결정을 대신하는 피로>


핀테크 유니콘 Klarna는 2022년 구조조정 이후, 중간 리더의 42%가 “내가 맡은 KPI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CEO Sebastian Siemiatkowski는 이후 Financial Times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We built a culture of speed, not clarity — and it broke people.”

(“우리는 명확성보다 속도의 문화를 만들었고, 그것이 사람을 망가뜨렸다.”)

- Financial Times, 2023


실행가들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어떤 KPI를 기준으로 판단받는지 모른 채 일했던 것 입니다. 그건 ‘성장’이 아니라 방향 없는 전력 질주였던 겁니다.



<Stripe - 시스템이 복잡할수록 사람은 빨리 닳는다>


결제 인프라 기업 Stripe의 COO Claire Hughes Johnson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 기고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Execution fatigue comes not from overwork, but from under-clarity.”

(“실행 피로는 과로가 아니라, 명확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 Claire Hughes Johnson, Harvard Business Review, 2022


Stripe는 내부적으로 ‘context load(맥락 부하)’라는 개념을 쓴다고 합니다.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가 너무 많고, 그걸 모으는 책임은 중간 리더가 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정권은 여전히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실행가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만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판단하지 않은 결정을 대신 판단하고, 승인되지 않은 일을 대신 승인한다.” 이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심리적 과열(mental overheat) 을 만들어낸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마치며 - 권한 없는 책임은 가장 느린 죽음과도 같다.>


Atlassian의 지연된 결정, Basecamp의 책임 과잉, Shopify의 속도 피로, Klarna의 명확성 결핍, Stripe의 구조 피로, 이 다섯 개 회사의 공통점은 단 하나입니다. 결정은 느리지만, 책임은 빠르다는 겁니다. 결국 이것은 실행가의 번아웃으로 번지고 조직이 붕괴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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