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어귀에 자리 잡고 있는 팽나무가 몇백 살은 돼 보인다. 아마 그 뒤 옹기종기 모인 집에 살던 아이가 청년이 됐다가 중늙은이가 되고, 육지로 떠난 아들이 그리고 손주가 다시 중늙은이가 되어 돌아오는 모습을 다 보면서 같은 자리에 저렇게 서 있는 걸 거다.
여행객의 눈에 보이는 아름드리나무는 낭만이지만, 한껏 가지를 벌려 바람을 막고 있는 나무의 삶도, 마을 안, 오두막의 삶도 고되고 팍팍했을 게 분명하다. 나무가 저 너머의 어떤 이야기에 닿아있을까가 늘 궁금했다. 서럽고 아픈 이야기에, 아님, 섬찟하고 오싹한 이야기에 닿아있을지 모른다. 물론 달콤하고 따뜻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떤 이야기여도 좋다. 그 자체로 작가의 눈에 들어와 단단하게 잘 늙어가는 노인 같은 그림이 된 걸 보면, 분명 팍팍했어도 잘 버티고 산 한평생이었을 거다. 이제는 나그네에게 투박한 말투로 안부도 물어 주는 노인 같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에 나오는 부부는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길을 간다. 당신과 함께하는 삶은 아니겠지만, 당신을 오래 기억하겠다. 그러니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해라.
나는 저 나무와 관계 짓기를 한 적이 없다. 그 앞을 살짝 지나가 보았을 법하지만, 사진 한 장 찍은 적이 없는데, 떠나왔지만 오래 두고 기억하는 이야기처럼 그림 속 나무와 오두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마치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친애하는 당신...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오시게...”
박은성, <팽나무가 있는 풍경>, 캔버스에 아크릴, 45.5 x 39.9 cm,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