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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y 30. 2023

Both sides now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실제로 저런 꽃밭 앞에 서 본 적이 있는데, 현실감이 1도 들지 않더라.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구름 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하지만 그림은 오히려 더 현실 같다. 바람 많은 저곳의 바람 때문인지 군락을 이룬 꽃인데도 힘없이 여기저기로 휘둘리고 있는 모습이다. 하늘의 구름도 동화 속 장면 같은 뭉게구름이 아니다. 묵직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다. 조금 있으면 심술궂게 꽃을 젖게 할 것 같다. 꽃은 떨어지거나 힘없이 꺾이거나 살아남아도 볼품없이 변할 거다. 


Joni Mitchell이 묵직하게 부르는 Both sides now를 참 좋아하는데,

영화 CODA에서 젊은 배우가 담담하게 부른 노래도 좋아진다.

원곡자가 천천히 울림 있게 부르는 노래는 인생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데, 젊은 배우의 노래는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기대감이 실린 듯 행복감이 전해진다. 여기서도 both sides를 느낀다. 


그러니, 저 메밀 꽃밭도 누구에게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펼쳐지는 환상 같은 세상일 수도 있고, 또 누구에겐 바람과 비에 휘둘리는 힘없는 현실일 수도 있을 거다. Both sides...


세상에 both sides를 갖지 않은 게 있을까. 

그 both sides를 느끼게 되는 순간부터 우린 더 이상 어린 게 아닐 거다. 그건 바람과 비에 힘없이 휘둘릴 수밖에 없는 현실 살기에 입문한다는 의미일 테니. 바람이 더 세져 나를 완전히 날려버리지 않을까, 왜 저 비구름이 유독 내게만 비를 뿌릴까... 하지만 다른 쪽엔 아직도 아이스크림으로 만든 성 같은 구름도 있고 동화 속 같은 달도 있다. 

있나?


그냥 믿어 버리자. 

아직 다른 쪽엔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깃털 구름도, 회전 관람차도 있다고. 

아직은 꽃이 떨어지지 않았고, 지금은 잘 버티며 흔들리는 중이라고.


그런데...


꽃이 떨어져도 괜찮다. 열매가 자랄 것이다.   

        

Well something's lost, but something's gained.  In living every day     


I've looked at life from both sides now

From win and lose and still somehow     


           박은성, <한라산이 보이는 메밀밭>, 캔버스에 아크릴, 90.9 x 72,7 cm,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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