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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 May 14. 2023

외롭지 않은 고독

한라산이 동트기전 어스름에 갇혀 있다.

사소한 좌절에 들끓던 맘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고개를 들어 본 한라산은 언제나 무언가에 갇혀 있었다. 비구름, 산 중턱에 남아 녹지 않는 눈, 가끔은 산신령이라도 타고 있는 듯한 스산한 기운의 안개구름까지. 지금은 어스름이 몰고 온 고독에 갇혀 있는 듯하다.


한 삽 십 년쯤 전, 한라산을 관통하는 방법이 하루 몇 대 있는 시외버스가 전부였던 때, 제주분들의 대화에서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 가는 길을 맘먹고 가야 하는 먼 길로 여긴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삶을, 다른 편과의 연결을 가로막고 있어 어렵사리 돌아 돌아 지나야 했던 곳. 지금이야 한라산 주변 도로가 많고 누구든 쉽게 차로 진입할 수 있지만, 산은 여전히 아무와도 섞이지 않고 혼자만 살아가는 누군가의 모습 같다. 홀로 고독하지만,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어스름에 갇혀 멀리 보이는 산은 빠르게 스쳐지나 잔상만 남는 도시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고요를 오래도록 직시하게 한다. 혼자여도 외로움을 전혀 모르던, 내가 떠나온 어딘가가 바로 저 모습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따뜻하고 포근하다.


가끔은 순간순간 기대하고 절망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빛이 나를 비추기 직전, 어스름을 직시하며 고독을 경험하는 것도 좋다.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뜰 것이다.     


또 다른 세상이 찾아온다.      


박은성, <어스름, 한라산>, 캔버스에 아크릴, 90.9 x 72.7cm,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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