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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Mixtape: 데이터/전략기획 전문가 이은지

by Lia

안녕하세요! 'Tech Mixtape'의 지난 트랙에서 품어주며 성장하는 이은지 님의 다채로운 커리어와 IT 생태계에 대한 열정을 플레이했었죠. 하지만, 은지 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트랙에서는 예상치 못한 레이오프를 딛고 스스로 다시 일어서기까지의 진솔한 여정을 담아낼 거예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 속에서도 자신만의 단단한 비트를 찾아낸 이은지 님의 스토리는, 여러분에게 깊은 공감과 함께 다시 일어설 용기를 선물할 것입니다.


데이터 엔지니어로의 정체성을 넘어,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자신을 설명하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까지. 이은지 님의 Tech Mixtape 두 번째 이야기, 지금 바로 플레이해볼까요!



은지 님의 첫 번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확인해보세요!





갑작스러운

레이오프를 경험하다




Lia: 은지 님, 다시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이번엔 좀 더 개인적이고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바로 '레이오프'라는 예상치 못한 경험과 그 이후의 여정입니다.
은지 님께서 레이오프에 대한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눠주셨는데, 처음 레이오프를 마주했을 때의 심정을 나눠주실 수 있으실까요?

은지: 물론입니다. 저는 아래 별이 표시된 기간 동안을 백수 신분으로 보냈어요. 퇴사를 했거든요. 아니, 퇴사를 당했어요.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4대보험 고지서가 하나씩 날아오는데, 고작 하루이틀 놀았을 뿐인데도 벌써 무섭고 마음이 불편했어요. 재직 중 휴가를 써도 될 짧은 시간인데, 이건 전혀 다른 시간이더라고요.


어쩌면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첫 직장 신입으로 들어가기까지 3년간 취업을 준비했던 그 기억이 남아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다시 백수가 될까’ 무서웠죠. 그때 저는 저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노력은 쌓이지 않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정의했었어요.



Lia: 레이오프 후의 심정을 들으니 마음이 정말 아픈데요. 특히 한국 사회의 시선과 면접에서 느꼈던 좌절감이 컸을 것 같아요.

은지: 맞아요, 미국에선 레이오프가 흔하다는 위로도 받았지만, 한국은 노동법도 문화도 다르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과연 ‘레이오프(Laid off)’와 ‘해고(Fired)’를 구분해서 이해할까요? 이유를 설명해도 ‘포장하려 드네’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 시선이 너무 무서웠어요. 백날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걸 퇴사 1일차부터 느꼈죠.


신입사원 면접에서 3년 취업 준비기를 울면서 설명해야 했지만, 면접관은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이제는 세상이 저를 이해해줄 거란 기대조차 사라져 버렸죠. 어떤 노력을 해도 다시금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기분. 이 기분을 또다시 느끼는 게 쉽지 않았어요.



Lia: 몸과 마음이 상당히 지쳤을 것 같은데, 그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고자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은지: 가난한 사람은 쉽게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요. 경제적 의미만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까지 포함해서요. 제 상황이 딱 그랬던 거 같아요.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아무도 없는 곳에 숨었고, 몸도 종합병원처럼 아팠죠. 방구석에서조차 불안한 제 모습을 금방 알아차렸어요.


사람들은 늘 성공하고 밝은 사람을 선호하죠. '그런데도' 밝은 에너지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세상은 여전히 두려웠어요. 그래도 방 안에 숨어 떨 바엔, 차라리 레이오프 사실을 털어놓고 당당히 웅크려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니까. 내가 전 직장을 그만둔 이유가 레이오프 때문이거든? 그나저나···."


제 나름대로는 도박 같은 커밍아웃이었어요. 용기 없는 백수는 다른 얘기 도중에 레이오프를 슬쩍 끼워 넣곤 했죠. 그런데 놀랍게도 누구도 대단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몇몇은 왜 이제야 말하느냐며 핀잔을 줬죠. 그제야 알았어요. 친구들은 제 명함 때문에 곁에 있었던 게 아니었어요. 저는 이미 명함 없이도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걸 저만 모르고 있었던 거죠.



Lia: 그 깨달음이 한 발짝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나요?

은지: 네, 맞아요. 그 깨달음 덕분에 이력서를 쓸 기운이 조금씩 생겼어요. 하지만 처음엔 역시나 서둘러서 가난한 결정을 해버렸어요. 빨리 재취업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잘 맞지도 않는 채용 공고에 무작정 지원했어요. 경력직 이력서라 합격할 리 없었고요. 그렇게 지원 횟수가 쌓일수록 합격률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겨우 방구석에서 나왔더니만!”


다시 자신감을 잃고 ‘이것 봐, 역시 레이오프 때문이야’라는 변명 타임이 찾아왔어요. 레이오프로 생긴 절망과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 제 안에서 치킨게임을 벌이는 듯한 나날이었죠.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여정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나를 설명하는 또다른 방식




Lia: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거치셨던 것 같아요.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지금의 은지 님이 되기까지 어떤 경험을 하셨고, 그 경험들이 은지 님께 어떤 인사이트가 되었는지 궁금해요.

은지: 레이오프에 지면 안 되겠다는 오기로 지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어요.


“나 여기 있어요! 나라는 엄청 괜찮은 인재가 시장에 나와있어요. 어서 데려가세요.”


실은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나라는 괜찮은 인재가 지금 시장에 나와 있으니, 이런 엄청난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어필했어요. 여기서 멈추면 끝이라는 생각에 백수 신분으로 네트워킹 컨퍼런스에 당당히 참석했죠.


그곳에서 업계 관계자들에게 저를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는 '형용사'로 설명했어요. 한국인은 보통 자신을 ‘어느 학교 출신, 어떤 회사 재직 중’ 같은 ‘명사’로 설명하는 데 익숙해요. 그 명사가 하나도 없이 형용사로만 저를 설명한 이 경험은 레이오프가 제게 준 뜻밖의 선물이었어요


놀라운 건, 제가 스스로 당당해지니 면접관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저를 보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심지어 “내가 면접관이었어도 그때의 나는 안 뽑았을 것 같다.”는 소름 돋는 생각까지 들었죠.


이 모든 게 백수 신분으로 이뤄낸 결과들이었어요.



Lia: '명함 없는 나'를 드러내며 적극적으로 시장의 문을 두드린 용기가 정말 대단해요. 한국 사회에서 레이오프를 당당히 말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은지: 맞죠, 그동안 한국에서 레이오프는 '상식'이 아니었어요. '상식 밖'의 일을 당당히 말하는 게 저를 부정하는 것만큼 어려웠죠. 특히 눈치와 비교 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남들이 저를 뭔가 잘못한 사람으로 볼까 봐 두려웠어요.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고 커밍아웃을 직접 저질러보니, 그게 방 안에서 앓던 망상보다 훨씬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저로 존중받을 기회를 주더군요. 지인들은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 했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달으니 저도 다시 일어나고 싶어졌어요.



Lia: 쉽지 않은 이야기였는데, 함께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최근 오늘 나눠주신 경험들을 기반으로 책을 쓰셨다고 들었는데, 책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은지: 최고의 위로는 '나와 같은 처지의 존재 그 자체'라고 하죠. 오늘 함께 나눴던 <레이오프가 익숙지 않은 한국에서의 레이오프 경험>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이런 나라도 누군가에겐 위로 한 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담아 퇴근 후 조금씩 펜을 들어 작성하다보니, 스피치를 통해 대중 앞에 마이크를 잡을 때보단 개인적인 사례는 많이 덜어냈으나 덕분에 담백하게 적어 내린 문체를 만나실 수 있어요. 제 필명은 '이엔'('이'은지 '엔'지니어)입니다. :)


혹시 '비트윈잡스(Between Jobs)'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Job과 Job 사이'의 기간을 의미하는데, 예기치 못한 커리어 변동을 겪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시작된 커뮤니티예요. 구글에서 레이오프를 겪으시고, 유퀴즈에 나오신 로이스김님의 책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에 많은 분이 공감하며 함께하게 되었죠. 커리어와 인생에서 갑작스럽게 생긴 변화를 어떻게 맞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네트워크로 자리잡았어요.



혼자였다면 방구석에만 있었을 텐데, 저를 포함한 38명의 '비트윈잡스' 이야기 중 여러분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가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해요(제가 다시 일어났던 것처럼요!). 애써 교훈을 담기보다, 진솔한 이야기만을 전달하는 책입니다. 퇴사하면 큰일 날 줄 알았는데, 별거 없던데요? 오히려 선물을 받더라고요.


따뜻하고 공감이 가는 경험이 실려있으니 '나도 이렇게 해볼까?' 하는 용기 받아 가세요. 판매 수익금은 전액 비영리단체에 기부됩니다.


<퇴사하면 큰일 날 줄 알았지>

∙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223820

∙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9338511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0554059



Lia: 마지막으로 현재 은지 님이 겪으셨던 길을 걷고계신 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생각보다 세상은 그렇게까지 절망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회는 결국 사람을 통해 온다는 것, 어떤 순간에도 저를 알리고 끊임없이 브랜딩해야 한다는 것. 알고 보니 레이오프가 제게 선물을 남기고 갔더라고요. 예방접종이 면역을 만들듯, 명함 없이도 저를 설명할 수 있게 단련된 지금의 저는 한층 단단해졌고, 앞으로 더 여유로워질 제 모습에 스스로도 설레요.


혹시 저와 같은 경험을 하고 계시다면 같이 이야기하며 다시 한번 도전할 힘을 얻길 소망해봅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이은지 링크드인: https://www.linkedin.com/in/eunjiyi/


❣️ 러브콜 많이 받은 멘토링 재능을 기부합니다.
유니세프에 소액 기부를 하시면 원하는 형태로 멘토링 도와드립니다. 비전공자로서 취업까지 3년이나 걸린 눈물과, 해외/중견기업/스타트업/대기업을 모두 재직해 본 노하우를 대화하기 편안한 분위기로 전달해 드려요.


이은지 님과 1:1 멘토링 신청하는 법: 멘토링 신청하기



Lia: 은지 님, 오늘 정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지 님의 경험과 이야기는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특별한 비트처럼 만들어주었어요. 레이오프라는 변곡점을 딛고 더욱 단단해진 모습에서 함께 힘을 얻어가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이은지 님의 Tech Mixtape은 여기서 마무리되지만,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를 재정의해 나가는 은지 님의 여정을 응원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트랙에서 또 다른 IT 전문가의 흥미로운 Tech Mixtape을 들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Next Track



Tech Mixtape의 다음 트랙은 오픈소스에 비트를 더하며, 끊임없는 도전으로 성장의 멜로디를 만들어가는 고종현 님의 트랙이 오픈됩니다.




본 인터뷰의 내용의 저작권은 인터뷰이 이은지 님께 있으며, 인터뷰의 기획 및 편집(Tech Mixtape)에 대한 저작권은 이여진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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