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한국과 달리 유럽의 화장실은 건식이다. 샤워 후에
바닥이 젖는 한국의 화장실과 달리, 유럽은 화장실 바닥에 물이 고일 수가 없다. 실수로 샤워 부스를 열어두고 샤워를 하지 않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잠에 들기 위해 세수를 마쳤다. 그리고 무심결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닥에 물이 가득 고여있었다. 아무리 세수를 격정적으로 했어도 이 정도의 물이 튈 리가 없었다. 뭔가 불길했다. 나는 어디서 물이 나온 건지 화장실 바닥을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수원(水源)을 발견했다. 화장실과 거실 사이의 문 틈에서 물이 나오고 있었다.
또 뭘 잘못한 걸까?
화장실 사용을 할 때 잘못한 건 무엇인지 스스로를 돌이켜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잘못한 행동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집을 누수로 인해서 초토화시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거기다가 장삿속을 부리지 않고 정직한 가격에 방을 빌려준 이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왜 하필 집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에 이런 일이 생기는지. 심장이 꽉 죄여 오는 것 같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프랑스에서 사는 교민들의 커뮤니티에서 누수에 관련된 글을 검색해 보았다. 생각보다 누수를 겪은 사람들이 많았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글을 읽어보았다. 비교적 합리적으로 60유로(8만 6천 원)에 해결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누수가 장시간 진행되어, 아랫집까지 피해를 주었고, 그 일로 인해서 2000유로(287만 원가량)를 물어줬다는 글도 있었다. 심장이 더욱 가쁘게 뛰기 시작했다. 2000유로라니. 돈을 아끼려고 유학생 방을 찾아왔는데, 300만 원을 물어주고 가야 할 수도 있다니!
고국으로 돌아간 미국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자기가 빌렸던 에어비앤비에서도 내내 누수가 있었지만, 집주인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정공법으로 집을 빌려준 유학생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7시가량이었고, 프랑스 시간으로는 자정이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급한 일이기도 했다.
집에 물이 샌다는 이야기는 그녀에게도 큰 충격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빨리 집주인에게 알리겠다고 했고, 세면대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일단 가지고 있던 가장 두꺼운 수건으로 임시방편처럼 물이 흘러나오는 틈새를 막아 두었다. 상처치료도 하지 않았는데 붕대부터 감는 꼴이었으나, 달리 어찌할 도리도 없었다.
잠에 들려고 하는데 착잡한 마음뿐이었다. 어째서 단 삼 개월뿐인 파리 생활이 이리도 평탄하지 않은 걸까. 그동안 파리에서 겪었던 어려움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파리는 마지막까지 만만치가 않은 도시였다.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까.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 싸매고 잠을 청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